자전거쪽지 2011.12.13.
 : 포근한 겨울날

 


- 충청북도 멧골집에서는 택배 부칠 일이 있을 때에 으레 우체국에 전화를 걸었다. 가깝다 싶은 우체국조차 칠 킬로미터 넘게 자전거를 달려야 하니까.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책꾸러미를 실으며 이만 한 길을 달리기란 그닥 힘들다 할 수 없지만, 수레에 아이랑 책꾸러미를 싣고 멧등성이를 넘다 보면 무게가 자꾸 뒤로 쏠린다. 몸이며 자전거며 몹시 고단하다. 전라남도 시골집에서는 택배 부칠 일이 있을 때에 딱히 전화를 걸지 않는다. 가까운 면 우체국까지 이 킬로미터만 달리면 되기도 하지만, 이만 한 길은 수레에 아이와 책꾸러미를 태우고 사뿐사뿐 달리며 즐겁다. 책꾸러미 무게가 제법 되어도, 옆 마을을 살짝 에돌며 달리곤 한다. 더구나 십이월 한복판에 접어들었으나 날씨가 포근하다. 아이는 수레에 가만히 앉기만 하니까 찬바람 때문에 추울까 걱정스러운데, 면에 닿으니 아이는 “나 더워. 옷 벗을래.” 하고 말한다. 참말 날이 포근하다.

 

- 우체국에 닿아 책꾸러미를 부친다. 아이를 수레에 태워 문방구에 갈 즈음, 지죽 가는 길목에 있는 도화헌미술관 아저씨하고 스친다. 도화헌미술관 아저씨는 새로 하는 전시를 알리는 책자를 들고 이곳 우체국까지 왔다. 그렇구나. 고흥군을 두루 돌면서 도화헌미술관 전시를 알리는구나. 나는 자가용 없이 자전거로만 다니는데, 자전거를 몰며 우리 도서관 행사를 알리러 다닐 수 있을까.

 

- 약국에 들른다. 뜨거운 국에 손을 온통 덴 둘째한테 쓸 천을 산다. 문방구로 간다. 문에 바를 창호종이를 사려 한다. 그런데 문방구는 문이 잠겼다. 벌써 밥때가 되었나. 아직 열두 시가 안 되었는데 문을 잠그셨네. 어떻게 해야 하나 한동안 망설인다. 아이가 걷고 싶다 하기에 걸으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버스역 옆 가게에 있을는지 모르겠구나 싶어, 아이한테 자전거에 타라 이르고는 그리로 간다. 가게 앞에 갑오징어며 여러 물고기를 늘어놓은 가게 아주머니한테 여쭌다. 창호종이가 있다. 한 장에 800원씩 한다. 여섯 장 산다.

 

- 더 볼일 없겠지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집에서 전화가 온다. 둘째가 붕대 감긴 손을 이래저래 휘두르다가 붕대가 쏙 빠졌단다. 부지런히 집으로 달린다. 땀이 비질비질 난다. 이맘때 인천에서 자전거를 몰면 으레 손이 시리니 장갑을 끼는데, 이곳에서는 아직 장갑을 끼지 않는다. 장갑을 끼지 않아도 손이 시리거나 차갑지 않다. 따스한 날씨는 그야말로 고마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 식구들 다 함께 보건소 마실을 한다. 집에서 보건소까지는 걸어서 오 분쯤.

 

- 집으로 돌아와 헌 수레에 앞바퀴를 붙인다. 새로 받은 수레는 자전거에 붙인 채 그대로 둔다. 벌써 일곱 해째 나와 함께 달린 수레는 그야말로 애 많이 썼다. 이 수레는 그동안 길을 얼마나 달렸던가. 짐을 얼마나 실었던가. 서울에서 두 딸아이 자전거수레에 태우던 아저씨가 쓴 수레를 받았다. 두 딸아이는 벌써 중학생이라 하던가. 중학생이니까 수레에 탈 수 없겠지. 우리 집 첫째는 아버지가 일찍부터 자전거에 붙이고 끌고 다니던 수레에 오래오래 탔고, 둘째는 머잖아 이 수레에 함께 타겠지. 나중에 우리 둘째가 무럭무럭 크고 나면 이 새 수레도 퍽 헐거나 닳으리라. 그때에는 이 수레도 헌 수레처럼 더는 달리기 힘들 때를 맞이하겠지. 더 달릴 수 없을 만큼 낡고 닳으면 깨끗이 닦아서 도서관 한쪽에 세우고는 예쁘게 꾸며 주리라.

 

- 첫째 아이 벼리가 앞바퀴 붙은 헌 수레를 밀면서 마당에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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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2-23 08:47   좋아요 0 | URL
벼리는 확실히 치마를 좋아해요 ^^
그런데 둘째는 어쩌다가 손을 데었나요 에구...

숲노래 2011-12-24 06:35   좋아요 0 | URL
치마돼지랍니다... -_-;;;

뜨거운 국에 손을 척 담갔거든요 ... @.@
 

자전거쪽지 2011.12.22.
 : 동짓날 자전거

 


- 생각해 보니 곧 예수님나신날이요 새해이다. 한 해 끝무렵에는 우체국 일꾼이나 택배 일꾼 모두 바쁘다. 이맘때에 편지를 띄우자면 서둘러야 한다. 부랴부랴 소포꾸러미 여럿을 싼다. 경기도 일산에서 살아가는 옆지기 어버이와 충청북도 음성에서 살아가는 내 어버이한테 보낼 우리 집 두 아이 사진을 꾸린다. 우체국에 전화를 건다. 택배를 가져갈 수 있느냐고 여쭌다. 오늘은 가져가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 가져갈 수 있단다. 접수가 늦으면 택배도 늦게 가겠지. 동짓날을 맞이해 바람이 대단히 드세게 불며 온도가 뚝 떨어졌지만, 이 바람을 뚫고 우체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 집을 나서려 하는데 옆지기가 “버스 타고 가요.” 하고 말한다. “아, 버스?” 버스 지나가는 때를 살핀다. 읍내에서 16시 40분에 나오는 버스가 있다. 그렇다면 17시 00분에 우리 마을에 지나가겠구나. 시계를 보니 딱 17시 00분. 문을 열어 내다 본다. 아직 버스 지나가는 소리 없고 버스 지나가는 모습 보이지 않는다. 부리나케 가방을 메고 양말을 신고 신을 꿰며 달음박질을 한다. 십 분을 기다린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 집으로 돌아온다. 버스가 오늘은 일찍 지나간 듯하다. 자전거에서 수레를 뗀다. 자전거로만 면에 다녀오기로 한다. 대문을 나서려다가 아차, 발목끈을 묶지 않았다. 바보스럽군. 다시 집으로 들어가 발목끈을 한다. 또 빼먹지 않았겠지, 살피며 벙어리장갑을 끼고 달린다.

 

- 옛 흥양초등학교 옆을 지날 무렵, 몹시 드센 바람으로 귀가 시리다고 느끼다. 그래, 이런 날은 털모자를 써서 머리와 귀를 가려야지. 장갑만 끼어서 되나.

 

- 면으로 가는 길은 살그마니 내리막이라 퍽 빨리 달릴 만하다. 우체국 때에 늦지 않는다. 가게에 들러 땅콩을 산다. 신집에 들러 털신을 산다. 6000원. 지난해와 견주어 1000원 오른다. 나는 2004년부터 고무신을 신었고, 이때부터 지난해까지 털신 값은 5000원이었다. 고흥에서는 고무신만으로 겨울을 날 수 있으려나 생각했는데, 동짓날만큼은 발이 시려 안 된다. 지난겨울까지 신던 털신은 쥐가 쏠아서 못 신기에 새 털신을 산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살그마니 오르막. 더군다나 더욱 드센 맞바람을 가르며 달려야 한다. 아주 힘겨이 발판을 밟는다. 맞바람이 대단히 드세기에 자전거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도, 걸을 때보다는 한결 빠르지 않니?’ 하고 생각하며 힘을 낸다. 용을 쓰며 맞바람을 뚫었고, 드디어 마을 어귀에 닿는다. 파란대문 우리 집 앞에서 자전거를 내린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자전거에 수레를 다시 붙인다. 바람이 많이 부니 자전거랑 수레를 붙여야 넘어지지 않는다. 벙어리장갑은 퍽 좋다. 둘째가 무럭무럭 크면 쓰라고 미리 산 벙어리장갑인데, 나한테는 살짝 작으나 손가락장갑보다 한결 따스하다. 자전거를 달릴 때에는 손가락을 나누어 잡는 장갑보다, 이렇게 손가락이 하나로 모이는 장갑이 살과 살이 서로 닿으며 더 따스하다고 느낀다.

 

- 이제 바깥문을 밀고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골이 띵해 비틀거린다. 찬바람이 너무 셌나 보다. 골도 띵하고 뒤꼭지도 아프다. 다음에는 털모자 쓰기를 꼭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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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12.5.
 : 문에 바를 천을 사러

 


- 돌이키면, 바쁘거나 힘들다는 말은 늘 핑계가 아니었을까. 네 식구 살아가는 집을 더 바지런히 손질하고 다듬어야 하지 않는가. 한겨울이 닥친 지 언제인데, 이제서야 문에 바를 천을 사러 나온다. 이장님 댁 아주머니가 창호종이만 바르지 말고 안쪽에 천을 하나 대면 더 따숩다 하신 말씀을 듣고는 면에 천을 사러 간다. 어느 집에서 팔려나.

 

- 면으로 가는 길에 새로운 길로 접어들기로 한다. 옆 마을로 슬쩍 접어들다가는 논둑길을 달린다. 아이는 수레에 앉아 “왜 이 길로 가?” 하고 묻는다. “오늘은 다른 길로 달릴게. 저기 좀 봐. 여기에서는 우리 집이 안 보이지만, 마을이 넓게 잘 보여.”

 

- 커텐 파는 집에 들른다. 이곳에서 천을 판다. 문 크기를 헤아리면서 조금 넉넉하게 장만한다. 할머니가 썩썩 자른다. 아이는 평상에 앉아 커텐집 할머니가 천 자르는 모습을 구경한다. 커텐집 할머니는 호덕마을에 사신단다.

 

- 면내 빵집에 들른다.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달릴 무렵, 빵집 건너편 살림집 쇠문을 바라본다. 쇠문에 ‘1967’이라는 숫자가 새겨졌다. 옳거니, 집을 새로 지을 때에 이런 무늬를 넣을 수 있구나. 1967년에 지은 집이라니. 인천에서는 1950년대 첫무렵에 지은 집을 참말 자주 많이 보았다. 시골에서는 가장 오래된 여느 살림집이 언제 적 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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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2-14 19:48   좋아요 0 | URL
된장님~ 보내주신 책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책선물보다 책읽기여야 하는데 요즘 날새기로 하는 일이 있어 금세 읽기는 어렵지만, 독서회원들이랑 지역주민들과 같이 읽겠습니다~
오늘은 16차 `도서관 자원봉사자` 교육을 마치고 14명이 우리집(작은도서관)을 둘러보러 왔었어요~ 앞으로도 심화교육과 실습 등 지속적인 모임을 가질 예정인데 늘푸른 작은도서관에서도 모입니다. 누군가에게 쓰임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지요.^^

숲노래 2011-12-14 20:04   좋아요 0 | URL
좋은 이야기 새록새록 나누면서
언제나 살뜰한 책쉼터로
이어가시리라 믿어요~~~
 

자전거쪽지 2011.12.1.
 : 추워도 잘 자는 아이

 


- 새로 받은 수레를 자전거에 달았다. 새 수레를 단 느낌을 기쁘게 맛보고 싶어 자전거를 달린다. 늘 따스하다가 모처럼 찬바람이 분다. 아이는 수레에서 춥지 않을까 걱정스럽지만, 충청북도 멧골집에서는 훨씬 추울 때에도 장보기 하러 다니곤 했으니, 이만 한 추위라면 뭐.

 

- 자전거수레를 바깥으로 빼려고 대문을 연다. 대문은 다 안 열린다. 마당에 시멘트로 북돋우면서 대문이 다 안 열리게 된 듯하다. 내가 마당 시멘트를 바르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 시멘트를 다 까야 하나. 아이가 대문을 잡아 준다. 고맙다.

 

- 면내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무렵, 아이가 크게 하품을 한다. 뒷거울로 하품 하는 모습을 보다가는 까무룩 잠드는 모습을 본다. 집에서 놀 때에는 낮잠을 안 자더니, 이렇게 자전거마실을 하면 어김없이 낮잠을 자는구나.

 

- 낮잠을 자는 아이가 스르르 미끄러진다. 자리끈을 살짝 느슨하게 했더니, 코코 자는 아이가 스르르 미끄러지며 아이한테 씌운 옷 속으로 파묻힌다. 어쩌면 잘 된 셈이지. 바람을 덜 쐬며 집으로 돌아오니까. 마당으로 자전거를 들이며 돌아보니 아예 보이지 않는다. 사진 한 장을 더 찍는다.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인다. 신을 벗기고 이불을 여민다. 아이는 한참 달게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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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11.27.
 : 부탄가스 사러 가기

 


- 집에서 쓰는 가스가 다 떨어진다. 일요일 아침. 면내 가스집에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부탄가스로 국을 마저 끓이기로 한다. 그나마 밥을 다 할 때까지 가스가 나왔다. 해가 질 무렵 면내에 다녀오기로 한다. 남은 부탄가스가 얼마나 될는지 모르니까 미리 사 놓기로 한다. 아이는 집에 있으라 하고, 나 혼자 수레를 뗀 홀가분한 자전거로 달린다. 2.1킬로미터를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나 싱싱 발판을 밟는다. 딱 4분. 쉬잖고 발판을 힘껏 밟으니 4분 만에 닿는다. 참 가깝기도 해라. 가게에서 부탄가스를 산다. 가스집에 들러 이듬날 아침에 가스통 하나 갖다 달라 이야기한다. 전화는 안 받지만 마을 구멍가게 노릇을 함께하는 가스집은 문이 열렸다. 문은 열면서 일부러 전화만 안 받으셨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천천히 달린다. 따스한 저녁바람을 쐰다. 남녘땅 시골마을 저녁바람은 차갑지 않다. 천천히 저녁바람 느끼면서 달리며 여러 마을에서 피어나는 불줄기를 바라본다. 아, 저녁이라 쓰레기 태우느라 불을 피우는구나. 어둠은 까맣게 내리고, 별빛이 차츰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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