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3.3.
 : 봄은 오는가


- 날이 포근하다. 그러나 물은 안 녹는다. 날이 따뜻하니, 아이 자전거도 밖으로 꺼낸다. 아이한테 스스로 타 보라고 한다. 아이는 발이 발판에 닿지만 스스로 굴리지는 못한다. 자꾸 밀어 달라고만 한다. 그러나 밀어 주기만 할 수 없다. 밀다 말다 하다가는 나중에는 물끄러미 지켜보기로 한다. 아이가 아직 발에 힘이 모자라서 발판을 더 힘차게 못 밟을는지 모르나, 밀어 주는 데에만 익숙하면 안 된다. 아이한테 안 된 일이지만, 아이가 스스로 신나게 발판을 밟아야 비로소 자전거 타기가 된다.

- 포근한 날씨를 느끼며 아이한테 자전거를 태워 주기로 한다. 아이한테 “자전거 탈까?” 하고 말하니, “어, 자전거 타자.” 하면서 양말을 주워 스스로 신는다. 양말 안 신고 겉옷 안 입으면 자전거 안 태워 준다고 하도 타일렀기 때문인지, 이제 아이는 스스로 양말을 챙겨 신는다.

- 밖으로 나오니 아이는 방실방실 웃으면서 뛴다. 수레 달린 자전거를 도서관에서 꺼낸다. 수레에 내려진 덮개를 말아 올린다. 아이를 번쩍 안아 태운다. 이불을 잘 여민다. 아무리 따뜻하더라도 시골바람은 차니까.

- 얼음 녹은 논둑길을 달린다. 아이는 뒤에서 조잘조잘 노래를 부른다. “시원해. 시원해.” 하고 말하기도 한다.

- 보리밥집에 닿아 달걀 스무 알을 산다. 이제 달걀은 아이가 하나하나 집어서 담는다. 아이는 저번에 달걀 하나를 깼기 때문인지 얌전히 잘 옮겨 담는다. 예쁘다.

- 슬슬 달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는 수레에 앉은 채 이리 살피고 저리 살핀다. 하루하루 나이를 더 먹으면서 보고픈 모습이 훨씬 늘어나겠지. 아이야, 네 아버지가 힘이 닿는다면 앞으로는 꽤 멀리까지 자전거로 마실을 다녀 보자. 집살림하고 다른 일 한다며 늘 너하고 잘 못 놀아 주는데, 아무쪼록 사랑스레 함께 살아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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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3-11 11:43   좋아요 0 | URL
ㅎㅎ 된장님이 앞에 타고 뒤에는 따님이 타시나봐요.정말 정겨워 보입니다^^

숲노래 2011-03-20 08:39   좋아요 0 | URL
아이한테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자전거쪽지 2011.2.20.
 : 따뜻한 날 논둑 달리기



- 날이 많이 풀린다. 그렇지만 우리 집 물은 아직 안 녹는다. 더 따뜻해야 하며, 해가 더 높아야 한다. 이제 좀 물이 녹아 물 길으러 다니지 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아마 따스한 봄비가 내려야 비로소 물이 녹지 않을까. 봄비가 올 때까지는 물 긷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 따스한 날, 따스한 볕을 받으며 자전거를 달리면 아이도 한결 좋아하리라 생각하며 자전거수레를 꺼낸다. 아이는 자전거 탄다며 좋다고 춤을 춘다. 두꺼운 겉옷을 입힐까 하다가 속에 여러 벌 껴입었으니, 수레에서 이불 덮으면 괜찮겠거니 생각한다.

- 해가 들지 않는 멧기슭에는 눈이 고스란히 남지만, 해가 비치는 자리에는 눈이 다 녹았다. 따스한 바람결을 느끼면서 논둑길을 달린다. 아이는 수레에 앉아서 노래를 부른다. 아버지가 아이보고 노래 좀 불러 달라 하지 않았지만, 아이 스스로 신나니까 노래를 부른다. 아이하고 함께 자전거를 타면 저절로 싱싱한 노래를 들을 수 있구나.

- 내리막에서는 아이가 “아빠, 달려? 시원해!” 하고 말한다.

- 마을 어귀 보리밥집까지만 찾아가서 달걀 열 알이랑 한두 가지 까까를 산다. 아이는 음성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 준 깨끼옷을 입었다. 설날이 지난 지 한참이지만, 아이는 설날이랑 아랑곳하지 않고 ‘예쁜 옷’이요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벼리 사 주셨어요.” 하고 외면서 춤을 춘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아이는 노래를 부른다. 지난 설날부터 읍내 장마당이 다시 선다. 주말께에 장마당이 서면,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장마당 마실을 다시 해 볼 수 있겠구나 싶다. 조금씩 조금씩 이 마을 저 마을을 자전거수레를 달리면서 아이한테 따순 시골바람 내음을 느끼도록 해 주고 싶다.

- 집에 닿으니 등판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날이 참 따뜻해지긴 따뜻해졌구나. 오늘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반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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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2.15.
 : 장갑을 안 끼어도 되다



- 날이 풀린다. 이제부터는 자전거를 탈 때에 장갑을 안 끼어도 된다. 장갑을 안 끼어도 손이 얼지 않는다. 그러나, 또 모르는 일인 만큼 장갑을 챙겨 낀다. 아무리 폭한 날이 되었달지라도 자전거를 달릴 때에는 겉옷을 한 벌 더 입고 장갑도 끼어야지.

- 그동안 아주 꽁꽁 얼어붙은 날씨였고, 아버지는 집살림 하느라 고단해서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못 태웠다. 집 물이 얼었기에 물 뜨고 빨래하러 멧중턱 이오덕학교를 오르내리다 보니까, 좀처럼 짬을 내지 못했다. 이러다가는 아이하고 자전거놀이를 아예 못할 수 있겠구나 싶어, 몸이 더 고단하거나 지치더라도 자전거를 태우고 놀아야겠다고 생각한다.

- 아이는 함께 놀아 주는 어른들이 반갑다. 잘 놀아 주는 언니나 오빠들이 반갑다. 아이 어버이라면 아이가 잘 먹고 잘 입으며 잘 자도록 돈을 벌어야 하기도 할 테지만, 무엇보다 함께 놀고 심부름을 요모조모 시키면서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몸가짐을 다스리도록 이끌어야지 싶다. 집에 자가용이 있어 어디이든 휭휭 내달리는 일이라 해서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웬만한 곳은 자전거에 수레를 달아 아이랑 함께 자전거마실을 한다면 훨씬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자전거수레를 여러 해 쓰다가, 나중에 아이가 훌쩍 자라면 앞뒤로 나란히 타는 자전거를 몰 수 있고, 아이가 더 자라면 따로 자전거를 타도록 이끌면서 함께 길을 달릴 수 있겠지. 자전거를 타는 어버이여야 아이도 자전거를 타지, 자전거를 타지 않는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자전거 타기를 이끌 수 없다. 환경사랑이나 기름 걱정 때문에 타는 자전거가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면 즐겁고 기쁘며 아름답다고 내 가슴으로 느낄 수 있으니 타는 자전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 마을 어귀 보리밥집에 닿는다. 아빠 몫으로 보리술 한 병을 산다. 아이와 아이 엄마 몫으로 얼음과자를 하나씩 산다. 통밀건빵이랑 달걀을 산다.

- 거의 스무 날 만에 아이를 자전거를 태웠다. 날이 춥기도 했다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레에 앉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 아이를 흘깃흘깃 뒤돌아보면서 참 미안하다고 느낀다. 아이는 추운 날이어도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니까, 아버지 스스로 더 기운을 내고 더 마음을 써서 함께 자전거마실을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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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1.27.
 : 눈길 달리기



- 집살림 도맡는 아빠가 혼자서 할 수 있는 반찬은 늘 어슷비슷하기 때문에 반찬을 얻으러 마실을 가기로 한다. 큰길가에 있는 보리밥집 아주머님한테서 얻을 생각이다. 아주머님은 늘 반찬을 그냥 주시는데, 밥을 사먹는 셈치고 반찬값을 받으라 말씀드리지만, 언제나 반찬을 그냥 담아 주신다. 반찬값을 안 받으시면 미안해서 다시 찾아오기 힘들지만, 그래도 다시 안 갈 수 없고, 거듭 말씀을 여쭈지 않을 수 없다. 반찬값을 안 받으시니, 노상 다른 여러 가지를 산다. 그러나 다른 여러 가지를 산다 한들 반찬값에 댈 수 있으랴. 거꾸로 생각해서 내가 밥집을 꾸리는 아저씨라 할지라도, 누군가 반찬을 얻으러 올 때에 반찬값을 받기는 쉽지 않겠지. 그러나 나는 반찬값을 값대로 받으면서 살며시 덤을 더 얹어 주리라 생각한다.

- 집 앞 길머리에서 논둑길로 갈까 마을길로 갈까 어림한다. 논둑길은 눈을 치우지 않아 고스란히 쌓였다. 내리막으로 가야 하기에 자칫 미끄러질까 걱정스럽다. 마을길로 가기로 한다. 마을길은 발굽병인가 때문에 이리로 못 가도록 막아 놓기도 했는데, 오늘은 막아 놓던 헌바퀴더미가 없다. 발굽병 때문에 바깥 자동차 못 들어오게 막는다지만, 여기를 이렇게 막는다고 일이 풀리겠는가. 발굽병이라는 병이 퍼지는 까닭이 자동차 때문이겠는가. 고기를 즐겨먹는 도시사람 때문에 생기고, 고기를 더 싸게 더 많이 먹어치우는 도시사람 때문에 일어나는 병 아닌가. 시골사람은 고기 먹을 일이 드물 뿐더러, 시골사람이 고기를 즐겨찾는다든지 자주 먹는다든지 하는 일도 없다. 온통 도시 때문에 생기거나 퍼지는 병인데, 이런 병이 생기면 늘 시골사람만 골탕을 먹는다.

- 이제 아이는 추운 겨울날 자전거마실을 잘 깨닫는다. 처음 몇 번은 장갑을 안 낀다 하고 모자를 안 쓴다 하며 손을 밖으로 내밀어 놓으려 했으나, 이제는 아빠가 장갑 끼우고 모자 씌우며 이불을 꼭꼭 여미면 얌전히 있는다. 우리가 갈 곳까지 거의 아뭇소리 없기까지 한다. 그래도 가는 길에는 꽁꽁 얼어붙으며 꼼짝을 않으나, 오는 길에는 조잘재잘 떠든다. 아마, 마실을 나가서 이것저것 얻어먹기도 하고 귀여움도 많이 받으며 돌아오니까 신이 나겠지.

- 오늘도 마실 나가는 길은 맞바람. 겨울 맞바람은 참 끔찍하다. 혼자 살던 지난날, 이 끔찍한 겨울철 맞바람을 맞으며 멧골집부터 서울에 있는 헌책방까지 어떻게 자전거로 달렸나 놀랍기만 하다. 오늘 내 나이보다 조금 어리거나 젊었다 할지라도, 그때에도 틀림없이 손이며 얼굴이며 사타구니며 꽁꽁 얼었을 텐데, 어떻게 견디며 그 먼길을 꿋꿋하게 주마다 오갈 수 있었을까.

- 개를 키우고 소를 치며 돼지를 기르는 곳 옆을 지난다. 소를 쳐서 소젖을 짜는 분들은 소젖을 거두어 가는 우유공장에서 내주는 사료만 사서 먹여야 한단다. 젖소 키우는 짐승우리에서 병이 생긴다면 젖소 키우는 사람 탓이 아니라 우유공장 탓이다. 그러나, 젖소 키우는 우리에서 발굽병 따위가 생겼을 때에 우유공장한테 잘잘못을 캐묻는 일은 듣도 보도 못한다.

- 공장 옆길을 지난다. 마을길을 거치면 공장 옆을 지나야 해서 싫지만, 이웃사람 살림집 옆을 지나는 마을길을 안 지날 수 없다. 이 공장 옆을 지날 때면 언제나 매캐하고 코를 뚫는 듯한 쇳가루 냄새를 맡아야 한다. 땅값 싼 시골마을 깊숙한 데로 공장을 지어서 물건을 팔아야 하는 우리 나라 경제란, 더 값싼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모르면서 그저 더 싸게만 사려는 도시사람을 키워 내는 제도권 사회라고 느낀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신들 아파트나 살림집 곁에 제철소나 중화학공장이 있어 쇳물이 흐르고 쇳가루가 날리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내 고향 인천은 곳곳에 중화학공장이며 제철소며 제련소며 유리공장이며 자동차공장이며 득시글득시글한데다가 화력발전소까지 있다. 다른 데도 아닌 옛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장들이 가득하고, 여느 살림집과 5층짜리 낮은 아파트 옆으로 이런 공장투성이를 이룬다. 서울사람들은, 더욱이 지식인들은, 또 글쟁이들은 공장이 어떤 곳인 줄 참 모른다.

- 보리밥집에 닿는다. 수레에서 안전띠를 끌러 아이를 내린다. 아이는 아무 말도 없더니, 밥집으로 들어가 모자를 벗기니까 비로소 웃음을 띤다. 많이 추웠지?

- 아이는 장갑을 벗겠다 하며 밥집을 이리저리 콩콩 뛴다. 얼마나 뛰고 싶었을까.

- 반찬을 얻고 몇 가지 까까를 산다. 씨있는 달걀 마흔 알을 산다. 가방에 차곡차곡 담는다. 아이하고 함께 보리밥집 아주머님들한테 인사를 한다.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안전띠를 채운다. 아빠도 자전거에 올라탄다. 영차영차 달린다. 공장 곁 스쳐야 할 마을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논둑길 쪽으로 간다. 마을 또다른 개장수 있는 논둑길 옆으로만 눈이 그대로 쌓였다. 바퀴가 폭폭 잠기는 길을 달린다. 고스란히 쌓인 눈을 폭폭폭 밟으며 달리는 맛을 오랜만에 느낀다. 그냥 좋다. 생각보다 미끄러지지 않는다. 아마 어설피 눈을 쓸거나 치워서 바닥이 얼었으면 미끄러지겠지. 외려 눈을 안 쓸어 그대로 있으니 바닥도 안 얼어 안 미끄러지는구나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뒷바람. 얼굴로 찬바람이 칼바람처럼 불지 않으니 그리 안 춥다고 느낀다. 아이도 똑같이 느끼는지, 수레에 앉아 “아빠, 저거 뭐야?” 하면서 묻는다. “응, 볏짚말이. 볏짚을 동그랗게 만 볏짚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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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1.5.
 : 추운 눈길



- 동지가 지나며 겨울해가 아주 조금 길어진다. 살림집에는 유리창이 많아 바깥이 훤히 내다보인다. 아침부터 기저귀 빨래를 하고 물을 길어 온 다음 곧바로 밥을 해서 차리느라 고단해 한숨 잔다며 누웠는데, 어느새 네 시가 코앞. 졸리면 낮잠을 함께 자면 좋을 아이가 낮잠 잘 생각이 없어 보여, 날은 춥지만 자전거수레에 태워 살짝 마실을 할까 생각한다.

- 아침에 눈발이 흩날리다가 햇볕이 들며 녹았는데, 다시 눈발이 조금 흩날린다. 아이한테 옷을 입힌다. 바깥은 추우니까 솜바지를 입히고, 웃옷 단추를 모두 꿴다. 모자를 쓰라 하고 장갑을 끼운다. 앞마당 눈밭에 자전거와 수레를 끌고 나와 둘을 붙인다. 수레에 놓은 담요를 꺼내 자전거 안장과 수레 위쪽에 얹는다. 아이 겨드랑이에 두 손을 끼고는 번쩍 들어 수레 안쪽에 앉힌다. 작은 담요를 아이 무릎에 하나씩 놓고 조금 큰 담요로 허벅지 쪽을 덮는다. 이불 하나로 몸과 다리를 덮고는, 두툼한 마고자로 마무리를 한다. 아이는 길을 나서기 앞서 자꾸 손을 밖으로 빼려 한다. 날이 춥다 해도 말을 안 듣는다.

- 자전거에 올라탄다. 눈길에서는 자전거 바퀴가 헛돈다. 눈길 자전거는 오랜만이라고 새삼 느낀다. 집살림을 꾸리며 눈길 자전거 타기는 거의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이렇게 할 수 있구나. 다만, 오래는 못 타고 짧은 거리만 달릴 수 있지.

- 오른쪽 논둑길로 달릴까 왼쪽 마을길을 달릴까 하다가 왼쪽으로 간다. 조금 달리자니 바람이 맞바람. 바람이 꽤 매섭다 싶어 뒤를 돌아보며 아이한테 묻는다. “안 춥니? 괜찮아?” 아이는 아무 말이 없다. 밖으로 내놓던 손은 어느새 마고자와 이불 안쪽으로 집어넣고 옹크린다. 칼바람을 맞아야 비로소 손을 넣니. 에그, 처음부터 넣으면 좀 좋으니.

- 마을길 오르막 막바지에서 택배 짐차를 만난다. 택배 짐차는 내 옆에서 멈추며 “책자 같은 게 왔는데, 집에 있으세요?” 하고 묻는다. “네, 집에 사람 있어요.” 하고 대꾸하는데, 눈길 오르막에서 자전거를 멈추었기에 자전거 페달이 나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수레를 질질 끈다. 택배 짐차 일꾼 옆자리에 아기를 품에 안은 아주머니가 앉았다. 택배 일꾼은 이렇게 함께 다닐 수 있겠구나.

- 겨우 십 분 즈음 달리는데 손가락이 얼어붙는다. 아이도 얼굴이 다 얼어붙겠지.

- 마을 들머리이자 큰길가에 자리한 보리밥집에 닿는다. 달걀 스무 알하고 얼음과자 셋하고 아이 까까하고 고른다. 얼음과자는 이 추위에 집으로 가져가는 동안 녹지 않으리라. 아이 얼굴과 손이 좀 녹았다 싶을 무렵 다시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집으로 달린다. 이번에는 논둑길 쪽으로 간다.

- 날이 춥기도 하지만, 여느 때에도 마을 살림집 사이를 달릴 때에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집 바깥으로 나와서 마당을 거닌다거나 하지 않으니까. 광월리 수월마을 쪽 마지막 집을 지나 호젓한 논둑길을 달리는데, 개우리 옆에서 코를 찌르는 똥내음이 물씬 풍긴다. 개똥 냄새인가 싶어 놀란다. 다른 때에는 개똥 냄새가 이렇게 나지 않았으니까. 조금 더 달리니 오른쪽 새로 일구는 인삼밭에 뿌린 거름이 보인다. 그렇구나. 인삼밭을 퍽 널따랗게 일구며 거름과 흙을 잔뜩 뿌리니까 이 냄새가 퍼지는구나.

- 집 앞 가파르면서 짧은 비알길에서는 자전거를 내려 자전거를 민다. 미끌미끌한 눈을 밟으며 자전거를 끌어올린다. 겨울에는 칼바람을 맞는 추위를 느끼는 가운데 눈밭에서 미끄러지는 맛으로 자전거를 타지. 아무렴. 집 앞 마당에서 자전거를 세우니 아이는 꼼짝을 않는다. 졸음이 오기도 했고 춥기도 했으니까. 아이를 안아 자전거수레에서 내린다. 아이는 “추워.” 하고 말하면서 집으로 들어간다. 아이가 신은 목긴신은 아빠가 한 짝씩 벗긴다. 바퀴에 눈이 소복하게 묻은 자전거를 굴려 도서관에 넣는다. 풀리는 날씨 하루 없이 꽁꽁 얼어붙기만 한 겨울이 참 길다. 기름 300리터를 넣었어도 두 달을 견디기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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