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0.11.5.
 : 아이와 함께 읍내 장마당 마실



- 어제 빈 수레를 끌고 마을 가게에 다녀온 뒤 오늘 다짐해 본다. 오늘은 무극(금왕읍) 장날이다. 아이랑 무극 장날에 자전거를 타고 다녀와 보자.

- 혼자서 무극 읍내까지 달리는 데에는 이십 분이 조금 안 걸린다. 아이를 태우면 삼십 분쯤으로 잡아야겠지. 돌아오자면 얼마쯤 걸리는가를 헤아려 보며, 늦어도 낮 한 시에는 나가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 그러나 이래저래 살피고 자전거 손보며 가방을 꾸리다가 두 시가 거의 다 되어 길을 나서다.

- 두 시 무렵이면 아이가 졸릴락 말락 하는 때. 논둑길을 달리며 아이를 돌아보며 묻는다. “좋아? 좋아? 시원해? 시원해?” 아이는 대꾸를 거의 않는다. 틀림없이 졸리구만.

- 십일 월로 접어든 논둑길에는 잠자리가 거의 안 보인다. 이제 잠자리들은 거의 모두 흙으로 돌아갔겠지. 고작 보름쯤 앞서만 해도 이 길에서 잠자리를 수백 마리나 마주했는데.

- 한길로 나온다. 이제부터 자동차가 많으리라. 시골길이나 논둑길을 달리면 자전거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하고, 수레에 앉은 아이가 꽁알대는 소리만 듣는다. 한길로 나오고부터는 아이하고 얘기를 주고받지 못한다. 차소리가 참 시끄러우며 크다.

- 세거리 이음길에서 자가용 한 대가 끼어들려다가 멈추다. 자동차 모는 이들이여, 자전거라고 함부로 보지 말고, 제발 교통규칙을 잘 지켜 주소서.

- 신니면 광월리에서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로 살짝 접어들다가 금왕읍(무극)으로 들어서다. 일본사람이 지은 ‘금왕’이라는 이름이 싫으나, 관청에서는 읍이름을 ‘금왕’으로 붙였다. 이곳 읍내에 있는 학교는 ‘금왕’이 아닌 ‘무극’을 이름으로 삼고, 모두들 ‘무극’이라는 말을 훨씬 자주 쓴다.

- 예순터고개에 접어들기 앞서 시골버스 타는 곳에 할매 한 분 앉아 있다. 어, 시골버스 지나는 때인가. 예순터고개를 낑낑대며 오르니 무극 읍내에서 나온 거의 텅 빈 시골버스가 보인다.

- 예순터고개 한 구비를 넘고 내리막을 달리는데 차에 치여 죽은 짐승 한 마리 보인다. 자전거를 늦춘다. 천천히 멈춘다. 사진을 찍는다. 이런. 누군가 일부러 차로 치지 않았나 싶은 모습이다. 너구리가 아닌가 싶은 이 들짐승을 차로 치어 놓고 가죽을 벗기다가 그냥 두고 간 자국이 고스란히 있다. 가죽을 얻으려 했을까, 고기를 얻으려 했을까, 둘 다일까. 자동차를 모는 모든 사람이 이와 같지는 않은 줄 안다. 자동차꾼이 더없이 슬프고 불쌍하다.

- 읍내에 닿다. 장마당 한켠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아이를 내린다. 삼십 분이 조금 안 걸렸다. 아이가 잘 와 주어 고맙다. 이제 아이가 더울는지 몰라 겉옷 지퍼를 내리고 손을 잡고 걷는다. 아이가 “여기 까까 있네?” 하고 말하며 과자장수 옆을 지나고, 과일장수 옆을 지나며, 나물장수 옆을 지난다. 도토리묵 파는 집에서 도토리묵 하나를 사고, 옆 찐빵집에서 찐빵 이천 원어치를 산다. 아이한테 찐빵 하나 쥐어 주고 나도 하나 먹는다. 장마당을 한 바퀴 슥 돈다. 같은 음성군이지만 음성 읍내 장마당보다 사람이 훨씬 많고 장사꾼 또한 더 많다. 음성군에서는 무극이 외려 사람이 더 많은가 보다. 어쩌면 이곳은 나중에 음성군에서 따로 떨어져 나오지 않으려나.

- 귤과 능금을 파는 짐차 앞에 서서 오천 원어치를 산다. 작은 알을 산다. 아저씨가 여섯 알이나 덤으로 넣어 준다. 아이와 함께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장마당을 더 돌까 하다가 아이도 졸립고 더 볼거리는 없기에 동큐제과에 들른다. 퍽 오래된 시골 빵집이다. 이곳도 새끼가게이긴 할 텐데 이름난 몇몇 새끼가게보다 이 집이 좋다. 소시지빵하고 고로께하고 단팥빵하고 바게트빵을 하나씩 산다.

- 무극 하나로마트에 들러 보리술을 두 병 산다. 다른 읍내는 장마당이 열리면 하나로마트가 파리 날리던데, 무극은 장마당이건 말건 사람이 참 많다.

- 집으로 돌아가자. 아이한테 “이제 집에 가자!” 하고 몇 번 외치는데 그닥 대꾸가 없다. 참 졸린가 보다. 찐빵 하나를 더 쥐어 준다. 부디 집까지 잘 견디어 주렴.

- 읍내로 오는 길은 할딱고개를 셋 넘기는 하지만 내리막이 많고, 집으로 가는 길은 할딱고개를 똑같이 셋 넘으나 거의 오르막이기만 하다. 페달이 무겁다. 그러나 다리에 더 힘을 준다. 아이하고 함께 달리는데, 아이가 뒤에서 볼 때에 아빠 궁디가 힘차게 펄떡펄떡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어야지.

- 할딱고개를 오르며 생각한다. 네 해 앞서였나, 서울로 책방마실을 하며 이 수레에 책을 잔뜩 싣고 백오십 킬로미터를 달리며 이와 비슷한 할딱고개를 지날 때마다 얼마나 낑낑대면서 달렸던가. 이렇게 달렸는데 자전거 체인이 용케 끊어지지 않고 잘 버티어 주었고, 이 자전거도 고맙게 잘 달려 주었다. 씽씽 자동차하고 대면 참 느림보 자전거이지만, 빈 수레일 때에는 한 시간에 삼십 킬로미터를 달렸고, 수레에 책을 담거나 아이를 태울 때에는 얼추 이십 킬로미터는 달리는 셈 아닌가 싶다. 그러면 나중에 아이하고 먼 나들이를 한다 치면, 하루에 백 킬로미터쯤 달려 볼 수 있을까. 글쎄, 백 킬로미터라면 다섯 시간인데, 사이사이 쉬거나 밥을 먹거나 아이가 걷도록 해 준다 하더라도 이렇게 자전거 나들이를 할 수 있으려나. 백 킬로미터는 좀 어렵나. 아니, 백 킬로미터를 달릴 수는 있겠지만, 그냥 길을 내처 지나간다면 따분하지 않으려나.

- 드디어 할딱고개 셋을 다 넘고 내리막. 신나는 내리막에 앞서 아이를 돌아본다. 아이는 거의 눈이 감긴다. 내리막을 달린다. 오른쪽에 숱하게 있는 공장 가운데 한 곳을 스치는데, 살짝 일손을 쉬며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던 어느 일꾼이 손을 치켜들며 외친다. “멋져요. 자, 화이팅!” 어제 마을길에서 택배 짐차를 마주했을 때에도 ‘어, 어.’ 했는데, 오늘도 어제처럼 ‘어, 어.’ 하다가 지나친다. 한창 숨이 턱에 차오르며 할딱고개를 지났기에 무어라 대꾸를 하거나 인사를 받거나 하지 못한다.

- 대원휴게소 옆을 오르며 생각한다. 난 이러한 인사말과 북돋움말을 들으려고 자전거를 타는가? 아이를 수레에 태워 달리는 까닭은 무언가? 자전거가 좋으니까 아이를 수레에 태우는가? 아이하고 이렇게 놀아 주면 좋으리라 여기는가? 내 삶과 자전거가 잘 어울리니까 타는가? 내 몸을 튼튼히 지키고 싶어 자전거를 즐기는가?

- 음성군에서 충주시로 바뀌는 못고개 언덕받이에 이르다. 페달질을 늦추며 한숨을 돌린다. 시골버스 타는 데에 버스 한 대 서 있다. 어디로 가는 버스일까 궁금해서 버스 앞에 붙은 알림판을 보니 충주 시내로 간다고 되어 있다. 아이를 돌아본다. 아이는 왼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길에서 어찌어찌 할 수는 없어 조금 더 달려 마을 어귀로 들어선다. 이제 자전거에서 내린다. 수레 덮개를 내려야겠지 하고 생각하다가 한참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본다. 참 잘 자는구나. 찐빵은 먹다가 말았네. 먹다 만 찐빵을 떨어뜨렸고, 입가는 온통 팥앙금. 피식 웃음이 난다. 예쁘구나. 덮개는 못 씌우겠다. 낮이 저녁으로 바뀌는 이즈음 햇살이 곱고 바람이 포근하다. 아이가 이 햇살과 바람을 살살 맞아들이면 더 낫겠다고 느낀다. 자전거는 더 천천히 달린다. 비로소 조용한 논둑길을 달린다. 시원하구나. 가을바람이 따사롭구나.

- 어느덧 집에 닿는다. 아이 신을 벗기고 아이를 덮던 이불을 걷는다. 아이를 살그머니 품에 안는다. 아이 엄마가 문을 열고 아이를 받아 주려 한다. 가만히 아이를 건넨다. 아이가 갑자기 눈을 뜬다. 헉. 그냥 주무시지? 아이는 엄마 품에서 깨어나 저녁 아홉 시까지 잠을 안 잔다. 신나게 뛰어놀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참 대단한 아이로구나. 아니, 아이라서 이렇게 대단한가. 아빠는 죽을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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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1.4.
 : 빈 수레 끌고 언덕 오르기



- 아이를 태우고 마을을 한 바퀴 돌려고 했는데, 아이가 그만 오늘은 일찍 낮잠을 잔다. 여느 때에는 잘 안 자더니, 그동안 안 자던 낮잠이 한꺼번에 몰려 왔나. 낮잠을 자 주어 고맙다고 느끼는 한편, 늘 안 자려던 낮잠에 푹 빠져드는 아이가 걱정스럽다.

- 아이를 태우려던 수레를 떼어 놓고 마을 가게를 들를까 하다가 수레를 그대로 붙이고 달리기로 한다. 수레 무게만 하여도 제법 나가기 때문에 수레를 안 달고 달리면 한결 가볍다. 그렇지만 수레를 달고 달려 버릇해야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 내 다리가 차츰 익숙해질 테지. 더군다나, 아이를 낳기 앞서부터 아이를 낳은 뒤로 자전거를 얼마나 못 타며 지냈는가. 집식구 돌보랴 아이 안고 다니랴 하면서 늘 걸어다니기만 했지, 자전거는 좀처럼 탈 겨를을 못 냈다. 그러니까, 오늘처럼 아이가 낮잠을 자며 수레에 태울 수 없다 하더라도 빈 수레를 끌면서 돌아다녀야 한다.

- 오르막을 오른다. 마을 오르막이지만 꽤 가파르다. 높이는 낮지만, 처음부터 길이던 길이 아니라 가파르다. 새로 뚫는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는 아예 곧으며 높낮이가 없도록 닦는다. 이웃마을 멧등성이를 가로지르는 새 고속도로 닦는 모습을 가끔 올려다보는데, 우람하며 높직한 시멘트 기둥이 몹시 무섭다. 예전에는 길을 낼 때에 멧자락을 구비구비 돌도록 닦았는데, 이제는 굴을 내고 다리를 놓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할 때인가. 오르막이나 잘 올라가야지.

- 오르막을 다 오르고 삼백 살 가까이 나이를 먹은 느티나무 옆을 지난다. 며칠 앞서 이 길을 아이를 태우며 지날 때하고 그리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이 몸무게는 십오 킬로그램 즈음 된다. 수레 무게만 해도 이십 킬로그램이 넘는다. 이십 몇 킬로그램을 끄나 사십 킬로그램쯤을 끄나 매한가지일까.

- 마을 가게에 들러 달걀을 사고 김치를 얻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배 짐차를 두 번 만나다. 처음 만난 택배 짐차 아저씨가 나를 보고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이때에 난 오르막을 오르고 있었기에 ‘어, 어.’ 하면서 가쁜 숨을 몰아쉴 뿐 인사를 못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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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0.22.
 : 혼자 장날 마실 다녀오기



- 아침에 일찍 세 식구가 함께 읍내 장날 나들이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 밥을 먹이고 아이 똥을 누이며 빨래를 한다며 이래저래 부산을 떨다가 그만 버스 때를 놓친다. 11시 50분 버스 때를 놓친 다음에는 13시 40분 버스 때인데, 이무렵에는 아이가 그만 낮잠을 잔다. 여느 때에는 낮잠 안 잔다며 칭얼거리던 아이가 요사이에는 낮잠을 아주 잘 자 준다. 더없이 고마운 한편, 꼭 이렇게 함께 나갔으면 할 때에 잠이 든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아빠가 더 일찍부터 바지런을 떨었으면 아침 때에 잘 맞추어 나들이를 다녀왔고, 아이 또한 즐겁게 낮잠에 들 수 있었겠지.

- 아이가 낮잠 자는 모습을 보다가 아빠 혼자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다녀오기로 한다. 아이랑 엄마랑 먹는 능금이 다 떨어졌다. 능금을 사고, 능금을 사는 김에 장마당에 펼쳐진 먹을거리 한두 가지를 사 올까 생각한다.

- 슬금슬금 달린다. 자전거로 달릴 때에는 사진기에 가벼운 렌즈를 붙인다. 무거운 렌즈를 붙이면 내가 바라는 사진을 한결 잘 담을 수 있으나, 이때에는 자전거를 달리며 목이 좀 아프다. 언덕길을 오를 때에는 더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사진을 조금 더 잘 찍고픈 마음이라면 목이 아프건 어떠하건 무거운 렌즈를 달며 자전거를 달려야겠지.

- 늘 다니는 읍내길이지만, 가을 막바지에 이르는 읍내길은 새삼스럽다. 여름날 보던 푸르디푸른 느티나무 잎사귀가 차츰 누렇게 바뀐다. 곧 샛누런 빛깔로 탈바꿈하리라.

- 비탈논을 일구는 곳 가운데 벌써 벼를 다 벤 곳이 있고 한창 벼를 베는 곳이 있다. 내 사진기로 담아도 좋으리라 생각하면서, 사진기 아닌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담아도 좋겠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라면 사진기를 목에 안 걸어야 하지 않나? 오르막에서 멈추기 싫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셈 아닐까? 하기는. 오르막을 낑낑 오르다가 ‘아, 이 모습 사진으로 담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이 들 때에 멈추기는 어렵다. 오르막을 낑낑 오른 다음 시원한 내리막을 달리는데 ‘어, 이 모습 참 좋잖아. 찍고 싶다. 그런데 멈춰야 하다니.’ 하고 생각하다가 그예 안 멈추고 지나가곤 한다.

- 자전거를 달리면서 셔터빠르기를 1/125초까지 올리며 사진을 찍어 보다. 그러나 오르막에서 뒤뚱뒤뚱거리며 사진을 찍으니 흔들린다. 그냥 멈추어서 찍어야 한다.

- 읍내 장날에는 나처럼 자전거를 끌고 마실하는 분이 꽤 있다. 이분들은 읍내하고 제법 떨어진 곳에서 살아갈 테지. 딱히 자전거를 묶어 둘 데가 없기도 하고, 자전거 짐바구니에 물건을 담아야 하니, 다들 자전거를 끌고 장마당을 슬슬 돈다.

- 장날만큼은 시골 하나로마트가 장사를 못하는 날이라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장마당 장사꾼들 모두 물건을 잘 파는지는 모르겠다. 낮 세 시 가까이 장마당에 닿아 둘러보는데, 이때에 처음 마수를 했다는 분을 본다. 어쩌면 마수조차 못하고 장마당을 걷는 할매 할배도 있지 않을까.

- 호떡과 핫도그를 산다. 아이 엄마가 먹고 싶다는 참외까지 산다. 참외는 꼭 한 곳에서만 판다. 용케 참외를 파는 곳이 있다. 이 집에서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아이 엄마가 먹고 싶어 한다면 추운 겨울날 딸기를 어떻게든 마련해서 먹인다’고 하던 옛말을 떠올린다.

- 호떡과 핫도그가 식을까 걱정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오르막을 힘차게 달린다. 읍내로 나올 때에는 텅 빈 가방이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꽉 찬 가방이다. 그예 땀을 뻘뻘 흘린다. 용산리 숯고개를 넘어 비로소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길바닥에는 숱한 뱀과 잠자리와 작은 멧짐승 주검이 깔려 있다. 납짝꿍이 된 주검을 밟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돌면서 내리막을 달린다. 숨이 차며 집에 닿으니 아이 엄마는 아이랑 맛난 밥을 차려서 먹는다. 이런. 이럴 줄 알았으면 호떡 안 사도 됐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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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0.21.
 : 두 번째 자전거수레



- 아이가 까까 사러 가자면서 아빠 자전거수레를 가리킨다. 아빠 손을 잡으며 수레에 탄다고 한다. 한 번 태웠을 뿐인데 자전거수레에 타면 까까 사러 가는 줄 아는가? 아이한테 바람을 쏘이고 싶기도 해서, 오늘도 엊그제처럼 보리밥집으로 달려 보기로 한다. 해질녘이기에 아이 옷을 더 두툼히 입힌다. 아이는 장갑을 싫어하고 모자도 싫어한다. 수레에 앉혀 담요를 덮여 놓아도 손을 뺀다.

- 논둑길을 달리는 동안 잠자리가 떼지어 날아오른다. 아이를 돌아보며 “잠자리다!” 하고 얘기한다. 아이는 “구름! 하늘!” 하며 딴 소리를 한다. 훗. 그러나 수레에 앉으면 잠자리는 아빠 엉덩이와 등짝에 가리고, 하늘과 구름이 훨씬 잘 보이겠지.

- 보리밥집에 닿을 무렵, 네찻길에서 뒤쪽 차와 앞쪽 차가 없는 줄 잘 살핀 다음 길을 건넌다. 건널목이 있으나 이 건널목에서 푸른불이 안 들어온 지 오래. 몇 달쯤 된 듯한데, 어쩌면 더 오래되었는지 모르는데, 건널목 신호는 안 바뀌고 귤빛 불만 깜빡거린다. 시골버스역으로 건너도록 건널목이 있는데, 이 건널목을 건널 사람은 한두 시간에 드물게 있으니 굳이 건널목 신호가 없어야 한다 할 만하다. 그러나 이 길을 건너야 하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으니까, 길을 건널 사람이 단추를 누르면 이내 신호가 바뀌도록 장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골에서는 건너는 사람이 뜸하니까, 때 되면 바뀌는 신호가 아니라 건널 사람이 단추를 누르면 바뀌는 신호로 고쳐 주면 좋겠다.

- 찻길을 가로질러 건너니까 아이는 이내 “다아 왔다!” 하고 소리친다. 참 재미난 녀석이다. 우리 딸내미이지만, 어쩜 이렇게 다 온 줄 알고 이렇게 말할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인천 골목동네 집에 살던 때에도 한참 골목마실을 돌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으레 “다아 왔다!” 하고 외치곤 했다. 처음 이 말을 외친 때다 몇 달 때였을까. 열예닐곱 달쯤부터 이런 말을 외쳤을까.

-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둠이 깔린다. 어둑어둑한 길을 달리는데 아이가 “달!” 하고 외친다. 그래, 달을 보면서 집으로 가는구나. 달빛이 비추어 주는 논둑길을 달린다. 마지막 꽤 가파른 비알에서 1단 기어를 넣는데 체인이 튄다. 1×2 기어는 어김없이 튄다. 왜 그럴까. 새로 바꾼 체인과 기어가 이 자리에서만 아귀가 잘 안 맞기 때문인가. 가파른 비탈을 한창 오르다가 기어가 풀리며 페달이 헛돌면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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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0.20.
 : 잠자리밭 달리기


- 금왕읍(무극읍)에 먹을거리를 사러 가다. 가방에는 쓰레기 한 봉지를 담는다. 시골집 둘레로는 쓰레기를 거두러 오는 차가 없다. 도시라면 요일에 맞추어 쓰레기차가 오갈 뿐 아니라, 사람이 꽤 많이 사는 데에서는 날마다 쓰레기봉투를 거두러 다닌다. 그렇지만 시골마을에는 한 달에 한 번조차 쓰레기차가 다녀 가지 않는다. 시골집에서는 쓰레기를 그냥 태우거나 땅에 묻어야 한다. 우리 집이야 비닐농사를 짓지 않으니 농사비닐이 나올 까닭이 없지만, 농사짓는 이웃집들은 비닐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 비닐을 읍이든 면이든 거두지 않기 때문에 고스란히 땅에 묻거나 태운다. ‘국산 곡식’을 사들인다는 농협이라고 비닐 쓰레기를 거둘까? 시골사람은 시골사람대로 농약 담은 병이랑 막걸리 담은 플라스틱이랑 땅에 심어 놓던 비닐을 고스란히 쓰레기로 내놓으니 모조리 땅으로 흘러들고야 만다. 정갈한 자연 터전이란 건사하기 어렵다. 우리 집에서 나오는 얼마 안 되는 작은 쓰레기는 작은 봉지에 담아 읍내에 나갈 때에 버스역 쓰레기통이나 농협 하나로마트 쓰레기통에 넣는다.

- 집을 벗어나 논둑길을 달린다. 볕 잘 드는 논둑길에는 잠자리가 아주 많이 앉아 있다. 내 자전거가 지나갈 때에 수십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차근차근 날갯짓을 한다. 입을 벌리고 달리다가는 잠자리가 입에 들어갈 수 있다. 얼굴이고 안경이고 몸이고 잠자리가 부딪는다. 자전거 빠르기를 늦춘다. 자전거가 너무 빨리 달리면 잠자리가 다칠 테니까.

- 자동차 씽씽 달리는 큰길로 나오니 잠자리는 거의 안 보인다. 다만, 드문드문 몇몇 잠자리가 보이는데 이 잠자리들은 머잖아 자동차한테 밟혀 죽거나 치여 죽겠지. 자전거로 달리는 길 가장자리에는 밟혀 죽거나 치여 죽은 잠자리 주검이 잔뜩 있다. 이제 나비는 거의 안 보인다. 나비들은 벌써 숨을 거두고 말았을까.

- 충주시 신니면에서 음성군 생극면과 금왕읍으로 갈리는 세 갈래에서 금왕읍 길로 접어들어 오르막을 달린다. 조금 달리니 새 길을 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왜 새 길을 내야 할까 궁금하다. 예전 길이 뭐 말썽이 있다고. 예전 길은 그대로 둔 채 새로 닦는 고속도로하고 잇는 길 하나만 내면 되는데. 이 길을 새로 닦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일부러 산자락을 제법 파헤쳐서 안쪽으로 길을 냈고, 예전 길이 있던 자리에는 중앙분리대를 널찍하게 만들었다. 참 돈 쓸 데가 많은 대한민국이다.

- 읍내에 닿다. 마침 오늘은 무극 장날. 여느 날에는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하나로마트가 썰렁하다. 그나마 시골에서는 장날 때에만 하나로마트가 썰렁하다. 시골 작은 가게들은 온통 하나로마트한테 잡아먹혔다. 도시에서는 이마트이니 롯데마트이니 홈플러스이니 하지만, 시골에서는 작은 면에까지 하나씩 있는 하나로마트가 마을사람 살림을 무너뜨린다. 나는 이 하나로마트를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삼으며 즐겨찾는다.

- 장마당이 펼쳐진 곳에서는 자전거를 끌며 걷다. 늘 들르는 묵집에서 묵 하나 사고 옆집에서 찐빵을 사려는데 벌써 다 팔리고 없단다. 한쪽 다리를 저는 아주머니가 길바닥에 펼쳐 놓은 능금 한 봉지를 사다. 포장마차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랑 순대를 2500원어치씩 사다. 음성읍 떡볶이집보다 값이 좀 세고 부피 또한 좀 적다.

- 아이 엄마가 사 오라 했던 닭튀김을 사다. 더 살 거리는 없기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따뜻한 먹을거리가 식기 앞서 집에 닿으려고 신나게 오르막을 달린다. 읍내로 올 때에는 빈 가방에 내리막이기에 땀방울이 안 돋으나,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오르막이요 꽉 찬 가방이니 땀방울이 송글송글 돋는다.

- 공사하는 자리를 지나 대원휴게소 못 미친 굽은길 내리막을 달린다. 관광버스 한 대가 갑자기 자전거 쪽으로 달라붙는다. 굽은길 내리막을 달릴 때에 자전거 쪽으로 버스를 밀어붙이니 자전거는 옴쭉달싹 못할 뿐 아니라 도랑에 처박혀야 한다. 서둘러 브레이크를 잡는다. 가까스로 부딪히지 않고, 도랑에 처박히지도 않다. 2차선 길이 아닌 4차선 길이며 오가는 차가 드물어 관광버스는 안쪽 길로 달리면 된다. 그런데 굳이 자전거 옆으로 바짝 붙다가는 밀어붙인다. 버스기사는 차를 몰며 심심하기에 시골에서 자전거 달리는 사람을 노리개로 삼는가. 자칫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판이나, 죽이든 다치게 하든 얼른 내빼면 누가 일을 저질렀는지 알 턱이 없으니 완전범죄가 된다고 여겨 이런 짓인가. 이런 못된 짓거리 때문에 누가 치었는지 모르며 숨을 거두는 마을 할배가 얼마나 많았을까. 이런 못난 기사들 때문에 어린 나이에 숨을 거두는 마을 아이가 얼마나 많았으랴. 불쌍하다. 안쓰럽다. 가엾다. 안타깝다.

- 마을길로 접어들다. 다시 논둑길을 달린다. 집을 나서며 나를 배웅하던 잠자리떼가 나를 맞이해 준다. 잠자리들은 날갯짓 바지런히 하며 내 둘레를 오락가락한다. 내가 아주 천천히 달리면 내 머리에든 몸에든 살포시 내려앉겠지. 집에서 빨래를 마당에 널 때면 잠자리들이 빨래에든 내 손에든 내 옷에든 가만히 내려앉곤 한다. 이 잠자리들은 곧 추위가 닥치면 모두 숨을 거두겠구나. 잠자리한테는 마지막 햇살을 쪼이는 나날이요, 바라보고 마주하며 만나는 모든 목숨과 풀과 하늘과 흙과 물이 하나같이 애틋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잠자리라 하여도 논둑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 옷이나 머리나 손이나 자전거 손잡이에 얌전히 내려앉고 싶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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