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뒷거울


 버스와 전철과 기차를 멀리하면서 자전거를 즐겨타던 2004년부터 내 자전거 손잡이에 붙였으나 이리 부딪히고 저리 넘어지며 깨진 ‘자전거 뒷거울’에 들인 값을 어림하면 (백만 원이 넘는) 꽤 괜찮은 자전거를 한 대 장만하고 돈이 남아 20인치 자전거를 한 대 더 장만할 수 있다. 뒷거울 없이 잘 다니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뒷거울을 꼭 붙이려고 한다. 여느 자전거꾼은 나처럼 자전거를 탈 일이 없을 테니까, 뒷거울이 굳이 없어도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는지 모른다. 나는 더 빨리 달린다든지 아주 한갓지게 다니는 자전거가 아니다. 살아가며 늘 타야 하는 자전거요, 집일을 도맡는 일꾼이라서, 내 몸이 다치면 우리 집에는 큰일이다. 시골길과 국도를 자주 달려야 하고, 도시나 읍내로 나아가면 자동차 물결하고 뒤섞여야 하는 터라, 여기에 수레를 달아 아이와 함께 다니기 때문에, 뒷거울로 틈틈이 뒤를 살펴야 한다.

 고개를 홱 뒤로 젖히며 뒤를 살피면 한결 잘 보인다 할 만하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가는 앞에서 뭐가 튀어나올는지, 또 길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를 놓치기 일쑤이다. 며칠 앞서부터는 뒷거울로 아이를 살피는 일이 퍽 재미나다고 느낀다. 아이는 제 아버지가 고개도 안 돌리면서 어떻게 제가 수레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다 알아챌까 놀랍게 여길는지 모를 터이나, 뒷거울로 늘 지켜보니까 코를 후비든 꾸벅꾸벅 졸든 수레에서 일어나 두리번거리든 얼음과자막대기를 입에 물고 장난을 하든 금세 알아챈다.

 자전거 뒷거울은 이 나라 자동차들이 너무 무섭고 무시무시하게 내달리기 때문에 꼭 붙이려 한다. 그렇지만 제대로 만든 뒷거울은 찾기가 아주 어렵고, 값이 좀 세다. 자전거를 얌전히 세웠어도 지나가는 사람이 툭 치고 지나가며 깨진 적이 꽤 되고, 바람에 자전거가 휘청거려 넘어지며 깨진 적 또한 잦다. 그나저나, 자전거를 한창 달리다가 뒷거울로 아이가 어떻게 있는가를 돌아보는 일이 나날이 새롭게 즐겁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자전거 손잡이에 달린 뒷거울로 제 아버지가 오르막을 어떤 얼굴이 되어 헉헉거리며 오르는지, 또 내리막에서는 어떤 얼굴로 바뀌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겠지. (4344.7.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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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7-12 11:06   좋아요 0 | URL
ㅎㅎ 자전거 뒤의 따님 얼굴이 넘 귀여워 보이네요^^

숲노래 2011-07-12 16:43   좋아요 0 | URL
작은 사진이지만,
얼음과자 막대기를 입에 문 모습입니다.. -_-;;;
 

자전거쪽지 2011.7.2.
 : 담배꽃 언덕길



-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음성 읍내 장마당 마실을 나오려 하는데 빗물이 듣는다. 마당에 널었던 빨래를 바삐 걷는다. 빨래를 집에 넌다. 다시 바깥으로 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살짝 비치려 한다. 다시 마당으로 빨래를 내놓을까 하다가, 어쩌면 날이 활짝 개면서 무더울는지 모르기에, 빨래는 집에 둘 때가 한결 나으리라 생각한다.

- 여느 날처럼 헐떡이며 넘는 숯고개에 이를 무렵, 오른편 담배밭을 바라보니 담배꽃이 피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아이한테 “저기 봐, 담배꽃이 피었네.” 하고 이야기한다.

- 음성 읍내로 들어서기 앞서, 길고양이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은 모습을 보다. 아이는 “고양이가 저기 누웠네.” 하고 말한다. 고양이 곁에 자전거를 세우고는 가만히 들여다본다. “고양이 눈 없어.” 하는 아이 말. “아니야, 눈 있어. 차에 치여 죽어 그래.”

- 읍내에 닿아 먹을거리를 장만한다. 우리처럼 자전거에 수레를 달고는 아이를 태운 아저씨를 한 사람 스치듯 만나다. 다음에 다시 만날 때에는 인사를 하면서 수레를 태우고 다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 과일집에 들러 수박이며 오얏이며 장만한다. 살구를 장만하고 싶었는데, 우리가 들르는 단골집에는 살구가 없다.

- 아이한테 오얏 하나를 쥐어 준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얏을 냠냠 깨물어 먹는다. 빵집에 들러 조금 비싼 얼음과자를 사 준다. 아이는 얼음과자를 막대기까지 쪽쪽 빨며 먹는다. “얼음과자 맛있어?” “응, 맛있어.” 용산리를 지나 큰못 오르막에 들어서기 앞서 꾸벅꾸벅 졸더니 이내 잠든다. 배가 고프다 하기에 찐빵을 하나 더 주었는데, 찐빵을 문 채 잠들었다. 찐빵은 살며시 빼내어 봉지에 담는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아이를 수레에 눕히기로 한다. 가장 느긋하게 쉴 수 있도록 하고 싶다.

- 아이가 앉은 채 잠든 수레를 끌 때하고 아이를 눕힌 수레를 끌 때하고 사뭇 다르다. 아이를 눕히니 훨씬 힘겹다. 자전거 발판을 밟기 꽤 벅차다. 누우면서 무게가 뒤로 더 쏠려 이렇게 되는 듯하다. 그렇지만, 예전이든 앞으로이든 아이가 수레에서 흔히 잠들기 마련인 만큼, 이렇게 눕혔을 때에도 자전거 발판을 씩씩하게 잘 밟아야 한다. 기운을 내자. 다리에 더 힘을 주자.

- 숯고개 꼭대기에 닿으며 살짝 숨을 돌린다.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문지른다. 아이하고 살아가는 나날을 곰곰이 생각한다. 요즘은 여느 집마다 아이를 일찌감치 어린이집에 넣는다. 어린이집에서는 일찍부터 영어를 가르친다. 집에서도 여느 어버이들은 영어 그림책을 읽히고 영어 비디오나 만화영화를 보여준다. 초등학교에 들기 앞서 아이들은 영어를 꽤 쏼라쏼라 읊는다. 어린 나날부터 영어를 듣고 익히는 아이들은 앞으로도 영어를 여느 말마디에 쉽게 섞겠지. 자랑이나 뽐내기가 아니더라도 영어를 영어로 느끼지 않으면서 쓰겠지. 나는 우리 집에서 이 아이한테 영어를 가르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착하면서 더 쉽고 더 바른 말을 쓰도록 이끌려고 힘을 쓴다. 옆지기도 함께 힘을 쓴다. 그러나 우리 둘레 이웃이라든지 동무라든지 여느 어른들은 영어를 비롯해 말답지 않은 말을 너무 쉽게 쓰고야 만다. 아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자가용에 태우는 일도 나로서는 하나도 달갑지 않다. 아이는 뛰어놀아야 한다면서 왜 아이를 자가용에 태울까. 어른부터 스스로 자가용을 멀리하거나 안 타면서 아이한테 뛰어놀라 이야기해야 옳지 않을까.

- 숨이 턱에 닿은 채 집으로 돌아오다. 아이를 살며시 안아 집으로 들어간다. 자리에 눕히니 아이가 잠에서 깬다. 그냥 더 주무셔 주면 얼마나 좋을까. 저녁나절, 아이는 마당에 놓은 제 자그마한 자전거를 타면서 논다. 얼른 다리힘을 키우고 키도 크렴. 앞으로 몇 해 뒤에는 너 스스로 자그마한 자전거를 몰며 아버지 곁에서 함께 달려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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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6.30.
 : 집일에 치이는 일꾼이 장마당 마실



- 요즈음 들어 몹시 갑갑하다고 느낀다. 둘째가 태어난 뒤로 더없이 오래도록 집일에 얽히기 때문이 아니다. 집일을 도맡기로는 첫째가 태어난 뒤로도 이와 같았다. 돌이켜보면, 집에 아이가 둘일 때에는 아이가 하나일 때보다 훨씬 고되다 할 만한데, 집일이 많고 끝없기 때문에 고되지 않다. 둘레 사람들이 집일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고되면서 갑갑하다. 내 몸이 힘들거나 벅차기에 집일을 하며 기운이 빠지지 않는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남자가 집일을 도맡는’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다가 ‘여자라 해서 집일을 더 잘 알지’ 못한다. 생태와 환경을 걱정한다는 일꾼이라 해서 집일을 더 아끼거나 사랑한다고 느끼지 못한다. 진보와 평화와 평등을 바라는 일꾼이기에 집일을 더 즐기거나 좋아하면서 얼마나 고된 한편 보람이 가득한가를 느끼지 못한다. 나로서는 말로만 읊는 남녀평등이나 여남평등은 달갑지 않다. 가사노동분담이라는 말마디도 내키지 않는다. 집안일을 나누어 할 수 없다. 집안일은 누구나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집에서 살아가는 식구라면 서로서로 집안일을 해야 한다. 어른은 어른대로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할 집일이다. 집에서 한솥밭을 먹는 살붙이라 하면서 집일을 모른다면 집식구라 일컬을 수 없다고 느낀다.

- 사람들은 왜 집일을 모를까. 사람들은 왜 집일을 헤아리지 않을까. 사람들은 왜 집일을 하찮게 여길까. 사람들은 왜 집일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갈까.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 맡아야 할 집일이다. 하루 한두 시간을 거든다든지, 서너 시간을 거든대서 집안 모양이 나아질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까지 꾸준히 보살피거나 건사해야 할 집일이다.

- 날마다 열두 시간은 들여야 비로소 집이 집다울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나는 날마다 열두 시간까지 들이지는 못한다. 다른 일이 있기도 하고, 집식구 밥벌이를 해야 하며, 요사이에는 살림집과 도서관을 옮겨야 하는 터라 책짐을 싸느라 집일에 알뜰히 품을 들이지 못한다.

- 애 엄마 미역국을 끓여 먹이고, 장마철 사이 살짝 하늘이 갠 때를 살펴 기저귀를 잔뜩 빨아 바깥에 넌 다음, 둘째를 씻기고 나서 장마당 마실을 생각한다. 너무 늦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자전거를 마당에 내놓고 아이를 태운 때는 네 시 반.

- 부지런히 달린다. 집으로 돌아올 때가 늦지 않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허둥지둥 다니고 싶지는 않다. 차근차근 발판을 밟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금왕 읍내로 가는 오르막을 달리면서, 아이가 뒤에 앉아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는다. 오르막에서 땀이 뻘뻘 나지만, 왼쪽과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푸성귀밭과 능금밭과 복숭아밭을 바라보면서, 이 밭에는 무엇이 있고 저 나무에는 무엇이 열린다고 꾸준히 이야기한다. 지날 때마다 거듭 이야기하고, 볼 때마다 새삼스레 이야기한다.

- 어느새 첫째 꼭대기에 닿다. 이제 서른일곱 나이로 아이를 수레에 태우며 다니기란 퍽 만만하지 않은데, 요즈음 한 주에 두 차례쯤 아이랑 읍내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가만히 돌아보면, 처음 아이랑 다닐 때보다 한결 수월하게 잘 다닌다고 느낀다. 오르막에서 기어 넣기도 꽤 가볍다. 곧 마흔 나이가 되는데, 마흔 나이가 되더라도 자전거를 달리는 기운은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셈인가. 만화영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나오는 할아버지는 퍽 늙은 할아버지인데에도 홀로 나무를 베고 지며 갖은 일을 도맡는다.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려 하느냐에 따라 몸 또한 잘 따라오는 셈일까.

- 오르막이 힘들면 길면서 가파르다고 느낀다. 오르막이 썩 힘들지 않으면 짧으면서 판판하다고 느낀다.

- 눈으로는 앞을 보거나 뒷거울로 자동차들 움직임을 살핀다. 발로는 내가 달리는 이 길이 내 몸에 어떠한가를 느낀다. 발판이 무겁다고 느끼면 안장에서 일어나 더 힘을 낸다. 이렇게 하고도 발판이 무거우면 기어를 넣는다. 눈으로 앞을 바라볼 때에 언덕이나 오르막이라서 기어를 넣어서는 안 된다고 자꾸 생각한다. 다 아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때그때 다시금 생각한다. 언덕은 자전거 발판을 밟은 내 다리가 언덕이라고 느껴야 언덕이다.

- 뒷거울로 아이를 바라보다가 노래하며 노는 짓이 귀여워 뒷거울을 사진으로 찍어 보자고 생각한다. 흔들리기도 하지만 한두 장쯤 살릴 수 있겠지.

- 금왕 읍내를 오가자면 네찻길을 다니는 자동차가 너무 많을 뿐 아니라, 이 네찻길에서 자동차들은 ‘빨리 달리기 내기’라도 하듯 무시무시하게 달린다. 자전거 곁을 너무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오르막에서 기운이 빠지며 손목이 살짝 삐끗하다가 왼쪽으로 조금 꺾이면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는 자동차에 받힐까 걱정스럽다. 수레에 앉은 아이도 아버지가 이렇게 느끼는 줄 똑같이 느끼리라 본다.

- 금왕 읍내 장마당에서 느타리버섯과 알배추와 두부와 새우살과 양배추를 산다. 따로 더 살 먹을거리는 없다. 빵집에 들른다. 아이가 케익을 보더니 케익 노래를 부른다. 돌이켜보니, 오늘 6월 30일은 우리 식구가 인천을 떠나 시골자락으로 살림집을 옮긴 날이다. 케익을 언제 먹었는 지 생각나지 않는데, 오늘 모처럼 사 볼까.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는 무척 졸리면서 잠을 안 잔다. 수레에서 자꾸자꾸 “케익 먹고 싶은데.” 하고 말하기에 “집에 가서 어머니하고 함께 먹어야지.” 하고 이야기한다. 몇 번 더 “케익 먹고 싶은데.” 하다가는 “케익 어머니하고 먹어요?” 하고 묻더니, 이내 “케익 집에 가서 어머니하고 먹어요?” 하고 묻는다. 오르막에서 땀을 비오듯 쏟는데, 이때에도 아이는 다시금 묻는다. 물이 되어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로 범벅이 된 얼굴은 아마 시뻘겋겠지. 헉헉대는 숨을 몰아쉬다가 살살 고르며 “집에 가면 어머니하고 먹을 수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주셔요.” 하고 말한다.

- 마을 어귀에 들어서다. 비닐을 씌우지 않은 감자밭은 장마비에 흙이 다 쓸리면서 감자가 다 죽고 만 듯하다. 비닐을 씌운 곳은 장마비에도 흙이 쓸리지 않는 듯하다. 이제 시골마을에서는 비닐을 안 쓰면 흙을 일굴 수 없을까.

- 집에 닿다. 두 아이를 씻기고 나서 아버지도 씻는다. 밥상을 차리느라 부산을 떠는데, 아이는 케익을 먹고프다며 끝없이 노래를 부르고 케익 상자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만 케익을 엎는다. 아버지는 아이를 꾸짖고, 아이는 서럽게 운다. 밥상을 다 차리고 나서 밥을 먼저 먹은 뒤 케익을 먹는다. 케익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니 언제 울었느냐는 듯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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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6.20.
 : 빠방이가 시끄러워



- 아이 어머니 미역국을 이제부터 고기를 넣지 않는 미역국으로 끓이기로 한다. 그런데 무가 다 떨어져서 사야 한다. 음성 장날은 이틀을 기다려야 한다. 오늘은 무극 장날이라 무극으로 가기로 한다.

- 무극으로 가는 길은 네찻길이고, 음성으로 가는 길은 두찻길이다. 네찻길 무극길은 길가에 나무 그늘 하나 없으며, 자동차가 대단히 씽씽 달릴 뿐더러, 커다란 짐차가 무척 자주 달린다. 두찻길 음성길은 길가에 나무 그늘이 많고 논밭이 드넓게 펼쳐지며, 곳곳에서 쉬어 갈 수 있는데다가 오가는 자동차가 몹시 적다. 아이는 음성으로 오가는 길에서는 신나게 노래를 부르지만, 무극을 다녀오는 길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자동차 소리에 파묻힐 뿐 아니라, 자동차 소리가 귀를 찌르기 때문이다. 자전거수레에 앉은 채 자동차를 바라볼 때에는 자동차란 몹시 무시무시할 뿐 아니라 우람해 보인다. 이런 무시무시하고 우람한 자동차가 내는 소리는 대단히 시끄럽다. 자동차를 타는 사람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나 수레에 탄 사람을 하나도 생각하지 못한다.

- 집을 나선 다음 논둑길을 달릴 때에는 시원하다며 노래를 부르던 아이가 마을 어귀 두찻길을 지나 무극으로 이어지는 네찻길에서는 조용하다. 자동차가 살짝 뜸한 몇 초 즈음 해서 “빠방이가 시끄러워!” 하고 외친다. “빠방이가 시끄럽지?” “응, 빠방이가 시끄러워.” “그래서 우리 집에는 빠방이가 없어요. 아버지도 시끄러운 빠방이를 안 좋아해서 자전거를 타요.”

- 음성으로 가는 두찻길에서도 자동차들은 빨리 달린다. 자전거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자동차는 몹시 많다. 그러나 두찻길이기 때문에 조금 멀찍이서 마주 달리는 자동차가 보이면 자전거 뒤에서 달리던 자동차는 으레 빠르기를 조금은 줄이기 마련이다. 네찻길과 견주면 아주 조용하다 할 만하다. 게다가 두찻길이란 빨리 달리도록 쭉 뻗은 길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길이다. 네찻길이란 빨리 달리려고 반듯하게 편 길이다. 반듯하게 편 길에서 자동차들은 거침없다. 더 빨리 달려야 하고, 둘레를 살필 까닭이 없다. 고속도로 둘레에 나무그늘이 없는 까닭을 생각해 본다. 참말 고속도로 둘레에는 나무그늘이 있을 까닭이 없다. 천천히 가며 쉬엄쉬엄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어우러지는 곳에만 나무그늘이 있다.

- 죽은 길짐승을 여럿 본다. 찻길이 넓어질수록 길죽음이 늘어난다. 땅밑길에서도 길죽음을 여럿 보다. 짐승들이 어쩌다가 이곳 땅밑길에 접어들면 더 무서움에 떨다가 차에 받치겠지. 굴을 울리는 소리에다가 커다란 쇳덩이가 몸을 받을 때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자전거를 길가에 세우고 길죽음 짐승 옆에서 한동안 지켜보는데, 어느 자동차도 길바닥 주검 옆으로 비켜 달리지 않는다. 그냥 밟고 지나간다.

- 읍내에 들어서는 두찻길로 빠지다. 이 길로 가면 장마당으로 가는 데에 2분쯤 늦추어지지만, 돌아가는 두찻길은 조용하다. 이 호젓한 길에서 아이는 드디어 노래를 부른다. 바람에 나뭇잎 나부끼는 소리를 듣는다.

- 천천히 달리면 한결 느긋하다.

- 나중에 아이하고 자전거마실을 다닐 때를 맞이한다면, 되도록 두찻길 시골길로만 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 무하고 당근을 사는데 바가지를 썼다고 느낀다. 다음에 다시 무극 장마당에 올는지 모르겠으나, 오늘 산 곳에서는 두 번 다시 사지 말자고 다짐한다.

- 장마당에서 조개살을 살 수 없어 할인마트에 간다. 할인마트에는 언 바지락살만 있다. 바지락살을 사서 나오려는데, 셈하는 분이 “아이하고 추억을 만드세요? 나도 저기 타고 싶어요.” 하고 이야기한다. 더위에 힘들어 대꾸하지 못했지만, 아이하고 추억을 만들려고 태우는 수레가 아니라, 장마당에 먹을거리 마련하려고 타고 나오는 자전거이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첫째 오르막에서 자전거 뒤에 살짝 떨어진 채 붙어서 뒤에서 다른 차가 으러렁거리며 달라붙지 않게끔 막아 주는 노릇을 해 주는 자동차가 하나 있다. 지난 2007년 2월에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자동차를 한 번 겪은 뒤 네 해만에 처음이다. 모두들 더 빨리 더 씽씽 더 아슬아슬 지나치려고만 하는데, 이렇게 수레 뒤에서 수레가 조금이나마 걱정없이 오르막을 지날 수 있게끔 마음쓰는 사람이 있구나.

- 나무그늘 하나 없지만, 둘째 오르막을 넘은 다음 살짝 멈추어 아이한테 물을 먹이고 나도 물을 마신다. 참말 이런 찻길은 달릴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런 찻길을 지나가는 마을사람을 보기도 힘들겠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리자니, 장마당 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 자전거를 건너편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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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6.3.
 : 아이와 자전거로 다니는 아버지



- 오늘날 거의 모든 집에서는 아이하고 걸어서 다니지 않을 뿐더러, 자전거로 다니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집에서는 아이를 자가용에 태워서 다닙니다. 갓난쟁이일 때부터가 아니라 어머니 뱃속에서 자랄 때부터 자가용으로 움직이는 아이들입니다. 아니, 어머니 뱃속에 목숨이 예쁘게 깃들기 앞서 늘 자가용으로 움직였다고 해야 맞겠지요. 대여섯 살 먹은 아이들뿐 아니라 서너 살 아이들까지 자가용에 타는 일을 아주 마땅하고 스스럼없이 여깁니다. 여덟아홉 살이라든지 열 살 넘은 아이들은 집에 자가용 없는 삶을 생각조차 못합니다. 자가용은 필수품과 같다 할 수 있고, 자가용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가는 줄 압니다.

- 연예인이나 노래꾼이나 정치꾼이나 높은자리 공무원은 대중교통인 버스나 전철을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름과 얼굴이 널리 팔려서 대중교통을 타면 힘들다고 합니다. 열 해쯤 앞서였나 핑클이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던 옥주현 님이 지하철을 한 번 타고 나서 느낌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늘 버스나 전철이나 지하철을 타는 사람이라면 지하철을 타고 나서 느낌글을 쓸 일이 없겠지요. 언제나 자가용만 탔다가 지하철을 거의 처음으로 탄 사람으로서는 느낌글이 샘솟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 탔다 해서 앞으로도 내내 타지는 않는 만큼, 여느 때에 대중교통을 타는 사람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걷는 사람 마음이라든지 자전거 타는 사람 마음 또한 알 길이 없겠지요.

- 지난 1999년에 서원희라는 분이 《아이 키우기는 가난이 더 좋다》(내일을여는책)를 낸 적 있습니다. 서원희 님은 아이를 키우면서 자가용을 두지 않았고(둘 수 없는 살림이었고), 아이들은 다른 집 어른한테서 자가용을 얻어 탈 때에 무척 어려워 하면서 고마워 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내 집 자가용을 탈 때에도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마땅히 여기거나 스스럼없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가용을 태워 줄 때에도 고맙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 어린 날부터 자가용 타기에 익숙한 아이들은 버스를 탈 줄 모릅니다. 늘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이라든지, 버스가 흔들릴 때 느낌이라든지, 버스삯이라든지, 버스에서 부대끼는 다른 사람들 모습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한여름에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가는 느낌이라든지, 한겨울에 짐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느낌을 알 수 없어요.

- 둘째가 태어난 뒤로 집에서 오랫동안 지내야 하는 첫째는 퍽 심심해 합니다. 그러나 첫째하고 자주 오래 놀아 주지 못합니다. 둘째 기저귀를 빨고 옆지기 미역국을 끓이면서 여느 때처럼 밥하고 빨래하며 살림하는 모든 일을 도맡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로서 아이하고 할 수 있는 일이란 가끔가끔 숲을 함께 바라보면서 숲바람을 맞는다든지 자전거를 태우는 일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갔다 나오고 싶어도, 이동안 애 어머니와 아기가 힘들 때가 찾아올는지 모르니, 장보기 하러 읍내에 갈 때가 아니고는 좀처럼 밖으로 멀리 가지 못합니다.

- 저녁나절 아이를 불러 자전거마실을 하기로 합니다. 멀리는 못 가고, 마을 어귀 보리밥집에 다녀오기로 합니다. 달걀 열 알을 사고 보리술 두 병을 사는 마실입니다. “자전거 타자!” 하고 부르면 “네!” 하고 뾰르릉 달려옵니다. 저녁이니 바람이 차갑기에 겉옷을 입힙니다. 어머니가 입는 옷을 입히고 수레에 앉힙니다. 아이는 좋아서 입이 벌어집니다. 논둑길을 달릴 때 아이는 수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릅니다. 고작 저녁 한때 아이하고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아이를 놀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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