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2.7.
 : 된바람

 


- 어떻게 된바람 부는 날 우체국을 다녀온다. 그렇다고 이 된바람이 가라앉고 나서 우체국에 갈 수 있지도 않다. 보내야 할 편지가 있으면 우체국에 다녀와야 하는데 바람이 너무 모질어 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하루나 이틀쯤 지나고서 바람이 가라앉으면 고맙지만, 하루나 이틀을 기다리지만 바람이 잦아들지 않으면, 그냥 길을 나설밖에 없다.

 

- 면내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도 된바람이 드세다. 참 드세다. 나야 자전거를 몬다지만 수레에 앉아서 함께 가는 아이는 아주 춥겠다. 햇살은 따사로이 비추지만 바람은 자전거가 휘청거리도록 분다. 그래도 면내로 가는 길은 얕은 내리막이기에 그렁저렁 달린다. 우체국에 들른 다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기어를 높이고 선 채 힘껏 발판을 밟아도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용을 쓰면서 한 발 두 발 구른다. 걸을 때보다는 조금 더 빠르다는 생각으로 겨우 자전거를 끈다.

 

- 바람이 되게 드세기 때문에 수레 덮개를 내리기로 한다. 뒷거울로 살피니 아이는 몸을 앞으로 폭 숙인다. 바람이 너무 불기 때문이리라. 웬만한 바람에는 아랑곳하지 않던 아이인데. 덮개를 내리려고 자전거를 멈추니 아이가 몸을 일으킨다. 바람도 바람이지만 졸립구나. “바람이 너무 불어 덮개를 내릴게. 덮개 내릴 테니까 코 자.” 덮개를 내리며 달리는데 아이는 멍한 눈으로 바깥을 바라본다. 이러다가 이내 한쪽으로 고개를 기대고는 잠든다.

 

- 고작 2.1킬로미터 길이지만 바람이 드세기에 한 번 다리쉼을 한다. 어쩜 이런 날 자전거를 끌고 나오나 싶지만, 이런 날 우체국에 들러야 하니까, 봄을 기다리는 겨울 들판이랑 파란 빛깔 하늘이랑 하얀 빛깔 구름이 얼크러진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둘째가 제 두 다리로 걸어다닐 무렵이면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다닐 테니, 머잖아 끌 ‘두 아이 수레’는 이만 한 무게를 버틸 수 있게끔 하늘이 날 담금질한 셈으로 치자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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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1.31.
 : 시골집 달밤 촉촉한 길

 


- 해 떨어진 저녁나절 첫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에 다녀오기로 한다. 오늘은 집에서 저녁밥 차리지 말고 바깥밥을 먹자고 생각한다. 시골마을 면내에서 사먹을 만한 바깥밥은 마땅하지 않아, 중국집과 닭집과 빵집, 이 셋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 중국집과 닭집은 전화로 시킬 수 있고, 빵집은 자전거를 타고 다녀와야 한다. 어느 쪽으로 할까 하다가 빵집으로 고른다.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실한 지 퍽 되었다고 느껴, 한겨울 1월 저녁나절이지만 자전거를 몰고 싶다. 겨울철 자전거마실은 찬바람 듬뿍 마셔야 하지만, 전라남도 고흥은 한겨울에도 꽤 따스하다. 오늘 저녁은 바람이 그닥 안 부니까, 낮까지 비가 흩뿌려 길바닥이 젖었어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 예전에 쓰던 수레에 달린 등불을 뗀다. 새로 쓰는 수레에 등불을 달려 한다. 그런데, 등불 받침대가 톡 하고 부러진다. 드라이버로 받침대를 풀어 새 수레에 달려고 조이다가 이 모양이 되다니. 자전거에 붙이는 등불 받침대가 쇠붙이라면, 또는 스테인리스라면 얼마나 좋을까. 플라스틱은 너무 잘 부러진다. 하는 수 없이 등불만 수레 뒤쪽에 유리테이프로 붙인다.

 

- 밤길을 달린다. 한겨울이라 하지만 이곳은 늦가을과 같다. 살짝 서늘하면서 손이나 얼굴이 얼어붙지는 않는다. 풀벌레 소리는 듣지 못하나, 자전거 달리는 소리만 듣는다. 수레에 탄 아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저기 달이 떴네. 구름이가 깜깜하지 말라고 달이 하얗네.” 하고 말한다. 자전거가 달리니 “달이 따라오네.” 하고 말한다.

 

- 굽이진 길에서 뒷거울로 아이를 살피다가 깜빡 굽이를 놓치며 미끄러질 뻔하다. 옆으로 미리 꺾어야 했는데, 등불 없는 시골길을 달리면서 굽이에서 미리 돌지 못한 탓에 서둘러 꺾다가 살짝 삐끗했다. 마주 달리는 자동차이든 뒤따르는 자동차이든 하나도 없기 때문에 건너편 찻길까지 넘어가면서 오른돌이를 한다.

 

- 수레에 앉은 아이가 노래를 부른다. 등불 없이 깜깜한 시골길에 아이 노랫소리가 울려퍼진다. 혼자서 마실을 한다면 그냥 싱싱 빨리 달리겠지만, 이처럼 아이를 태운 저녁나절 마실길이니 느긋하게 달리면서 노래를 즐길 수 있다.

 

- 면에 닿아 빵집에서 빵을 산다. 가게에 들러 마실거리를 산다. 집으로 천천히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등불은 없다. 아이는 이 깊은 시골 저녁 자전거마실을 어떻게 느끼려나. 우리 시골에서는 이맘때, 그러니까 저녁 일곱 시를 살짝 넘은 이맘때만 되어도 그냥 깜깜한 밤이다. 도시에서라면 저녁 일곱 시는 한창 불 밝히며 번쩍번쩍할 때라 하겠지. 아침을 빨리 열고 저녁을 일찍 닫는 시골 터전이, 풀과 나무와 사람과 들짐승 모두한테 가장 걸맞다 할 보금자리가 아니겠느냐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 집으로 돌아가는 깜깜한 찻길에 마주 달리는 자동차를 둘 만난다. 이 자동차는 어쩐 일로 이 외진 시골을 구비구비 돌며 달릴까. 그나저나, 이 자동차 두 대는 등불을 위로 치켜든 채 달린다. 앞에 자전거가 마주 달리는 줄 뻔히 알면서 등불을 밑으로 내리지 않는다. 왼손으로 눈을 가린다. 마주 달리는 자동차가 불을 치켜들면 자전거를 모는 이는 길을 볼 수 없다. 길이 더 깜깜해진다. 밤에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마주 달리는 자동차나 자전거가 있을 때에 마땅히 불을 내리깔아야 한다. 걷는 사람이 있을 때에도 불을 내리깔아야 한다. 마주 달리는 자전거와 사람을 가장 헤아리는 이라면 아예 불을 끈다. 예전에 여덟아홉 시간쯤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다 보면, 아주 드물게 ‘등불을 끈 채 마주 달린’ 자동차를 만났다. 이처럼 마음을 살뜰히 쓰는 운전자는 한국에서 만나기 너무 힘든가. 아니, 자동차를 모는 이로서 밤에 등불을 내리까는 일은 ‘밑마음’이 아닐까. 등불을 내리깔 줄 모르는 운전자라 한다면, 운전면허를 취소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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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1.16.
 : 대문 여는 손

 


-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띄워야 한다. 지난 한 해에 걸쳐 아이들과 부대낀 시골살이 이야기를 그러모은 동시꾸러미가 있어, 이 꾸러미를 출판사 일꾼한테 보내려고 한다. 동시책을 내줄는지 안 내줄는지 알 길이 없다. 더구나, 동시책을 내지 않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일꾼한테 글꾸러미를 보낸다. 동시책을 펴내는 출판사가 여럿 있으나, 나로서는 이들 출판사 가운데 내키는 데가 없다. 나는 말놀이 동시를 쓰지 않고 쓰지 못하며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우리 아이하고 즐길 동시를 쓰고, 우리 아이와 비슷한 나이로 무럭무럭 자라날 아이들이 함께 읽으면 좋으리라 여기는 동시를 쓰기 때문이다.

 

- 곧 설날이기에 서둘러 우체국으로 가자고 생각하며 자전거수레를 몬다. 이렁저렁 고뿔 기운 가라앉은 첫째를 수레에 태운다. 수레에 타고 마실을 한다니 타기 앞서부터 아주 좋아한다. 너하고 자주 들길이나 멧길을 거닐어야 하는데, 미안해.

 

- 마을을 한 바퀴 빙 돌고 나서 면내로 달린다. 겨울이지만 마치 봄과 같은 날씨라 춥지 않다. 아이는 수레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노래소리 들으며 다리에 더 힘을 주어 발판을 밟는다.

 

- 편지를 부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를 수레에서 내린다. 대문 빗장을 연다. 아이는 대문 한쪽에 붙어 문이 닫히지 않게끔 붙잡는다. 고 자그마한 손으로 용을 쓰며 붙잡는다. 아버지가 왜 얼른 안 들어오냐고 부르면서도 놓지 않는다. 사진 한 장 예쁘게 찍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이 착하고 어여쁜 아이하고 살아가는 나는 얼마나 고마운 선물을 늘 누리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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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1.15.
 : 마당에서 자전거 놀이

 


- 아이가 마당에서 자전거를 타고 논다. 이제 네발자전거 아주 씩씩하게 잘 달린다. 가고픈 데 마음껏 달릴 수 있다. 다섯 살 아이는 제 네발자전거 앞바구니에 콩순이 인형을 앉힌다. 긴 뜨개치마가 자꾸 바퀴에 걸리기에 “긴 치마 좀 벗으렴.” 하고 이야기했더니, 치마를 벗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아랫단을 끌어올려 콩순이 앉힌 바구니에 넣는다. 치마를 벗기 싫다는 뜻. 싱글생글 웃으며 자전거를 탄다. 마당을 빙글빙글 돈다. 마당이 제법 넓으니 아이가 마음껏 놀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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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1-16 15:27   좋아요 0 | URL
아아, 벼리가 행복해보이네요.
그리고 뜨게질 옷 너무 인상적이예요, 저두 저런거 뜨고 싶다고
너무 부럽다고 옆지기님께 전해주셔여~

숲노래 2012-01-16 17:10   좋아요 0 | URL
옆지기가 이 옷 뜨느라 한 달 조금 안 되게 걸렸던가 그래요.
^^;;;
익숙한 사람은 며칠이면 뜰 테고,
서툰 사람은 한 달쯤 잡으면 돼요 ^^;;;;;

울보 2012-01-16 16:46   좋아요 0 | URL
정말 솜씨가 좋은 옆지기님을 두셨네요,,
웃는 따님 얼굴이 너무 이뻐요,

숲노래 2012-01-16 17:10   좋아요 0 | URL
솜씨이기도 할 테지만,
참을성과 꾸준함이에요 ^^;;;
 

자전거쪽지 2011.12.25.
 : 두 아이 태운 자전거수레

 


- 자전거수레에 아이 둘을 처음으로 태우다. 마을 웃집에 세 살 민준이가 찾아왔다. 민준이 어머님이 둘째를 낳고 몸풀이를 하시느라 민준이를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며칠 맡겼단다. 마을회관에 네 살 벼리를 데리고 찾아가서 함께 놀다가, 두 아이가 회관에서 심심해 한다고 느껴 논둑길을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 집으로 함께 와서 몸을 녹이고 놀다가,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운다.

 

- 날이 좀 쌀쌀하고 바람이 제법 불어 자전거마실을 멀리까지 안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을 웃집 손자 민준이가 자전거수레에 탄 지 얼마 안 되어 꾸벅꾸벅 하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잠든다. 아까부터 많이 졸린 얼굴이었으나 도무지 낮잠 잘 생각을 않더니 자전거수레에서 새근새근 잠든다. 마치 우리 집 벼리를 보는 느낌이다. 벼리도 집에서 낮잠을 안 자려 들다가 자전거수레에 타고 함께 마실을 다니다 보면 어느새 꾸벅꾸벅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앞으로 푹 숙이곤 했다.

 

- 자전거수레에 앉으면 마냥 앉아서 달리니까 스르르 졸음이 오는지 모른다. 앞에서 달리는 사람은 졸음이 올 수 없고, 앞에서 달리니 땀이 줄줄 흐른다. 아이 하나는 잠들고 다른 아이 하나도 잠들락 말락 한다. 어떡할까 하고 살작 생각하다가 면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수레에서 잠들었대서 바로 회관으로 돌아가 자리에 눕히면 금세 다시 깰는지 모른다. 면까지 다녀오면 우리 집 벼리도 사르르 잠들는지 모르고.

 

- 깊은 시골마을 면소재지는 일요일에 거의 다 문을 닫는다. 작고 깊은 시골마을 면소재지 밥집이라면 면사무소나 우체국 일꾼한테 장사를 할 테니, 애써 일요일까지는 안 연달 수 있으리라. 면소재지 가게에 들러 벼리를 수레에 다시 태울 때에는 아이가 겉옷 맨 위 단추를 안 꿰려 한다. 수레에 태울 때에는 단추를 다 꿰었는데, 아이가 답답하다며 스스로 끌렀다. 면소재지 들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인다. 졸릴까. 추울까. 시골길로 접어들어 볕이 잘 드는 조용한 데에서 멈춘다. 벗겨진 모자를 다시 씌운 다음 아이한테 단추 꿸까, 하고 묻는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추우니까 이런 날에는 단추를 다 꿰어야지, 단추를 안 꿰니 바람이 다 들어가잖아.

 

- 면으로 가는 길은 살며시 내리막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살며시 오르막. 면으로 갈 적에는 두 아이 태운 수레가 그리 힘들지 않다고 느끼나, 집으로 돌아올 적에는 두 아이 태운 수레가 이렇게 무거우며 벅차다고 느낀다. 아이 둘을 수레에 태우며 다니는 분들은 허벅지와 등허리가 얼마나 딴딴하려나. 수레를 달아 끌려면 허벅지뿐 아니라 등허리가 튼튼해야 한다. 자전거도 사람도 모두 튼튼해야 한다. 새해를 맞이하고 여름이 찾아오면 둘째 아이도 수레에 태울 수 있을 테니, 그때까지 내 몸을 알뜰히 추스르고 다스려야겠다. 두 아이를 수레에 태워 면내 마실을 다니자면 참말 튼튼하고 씩씩해야겠다.

 

- 호덕마을을 지날 무렵 우리 아이도 새근새근 잠든다. 그러나 집에 닿아 자리끈을 풀고 살며시 안아 방으로 들어가자니 잠에서 깬다. 아이 어머니가 말한다. “눈을 떴잖아. 벼리야, 안기지 말고 내려서 걸어.” 자리에 눕히면 다시 눈을 감고 잠들기를 바라며 살며시 눕힌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방에서 나와 땀으로 젖은 옷을 벗고 저녁 차릴 준비를 한다. 아이는 내가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갈 때에 다시 눈을 뜨고는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단다. 그냥 더 자면 덧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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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12-27 13:14   좋아요 0 | URL
ㅎㅎ 아빠가 태워주는 자전거 그네로 아이들이 넘 좋아하겠네요.그나저나 한 겨울에는 좀 춥겠는데요^^

숲노래 2011-12-28 04:55   좋아요 0 | URL
지난해 더 추운 날에도 눈 맞으며 자전거를 탔는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