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자전거쪽지 2010.10.12.
 : 아기수레에 아이를 처음으로 태우고 달리다



- 지난주에 노란 허머 자전거를 고쳤다. 안장과 앞브레이크와 앞쇼바와 기어줄과 브레이크줄과 뒷톱니와 체인을 갈았다. 나중에 더 고칠 곳이 있으나 먼저 이곳만 고쳤다. 그러나, 말이 몇 곳을 고쳤다뿐, 따지고 보면 몸통을 빼고 모조리 고쳐야 하는 자전거인 셈이다. 높은 급수 부품을 쓰는 사람한테는 아무것 아닐 테지만, 요 몇 가지 부품을 갈아치우는 데에 십팔만 원이 들었다. 여기에 삼만 원을 얹으면 삼천리 R-7 자전거 한 대 값이 나온다.

- 지난주에 자전거를 고치면서 20인치 바퀴 한 벌을 새로 샀다. 아기수레에 달린 자전거 바퀴를 갈려고 샀다. 오늘 드디어 아기수레 바퀴를 갈려고 튜브까지 벗겨 보는데, 바퀴뼈대 안쪽에 대는 고무띠 한쪽이 끊어져 있다. 아기수레 한쪽 튜브가 자꾸 구멍이 나서 까닭을 알 길이 없었는데, 바퀴뼈대 안쪽 고무띠가 끊어진 바람에 바퀴살을 여미는 끝쪽 뾰족한 데에 튜브가 자꾸 찔리며 구멍이 났구나 싶다. 다른 바퀴도 안쪽 고무띠가 살짝 접혀 있는 바람에 튜브에 구멍이 날 뻔했다.

- 고무띠 끊어진 한쪽은 신문지를 작게 접어서 대놓는다. 땜질로 이렇게 해 놓는다. 이렇게 해 놓은 채 자전거집까지 끌고 가서 갈든지, 자전거집에서 고무띠를 사와서 갈든지 해야지.

- 오랜만에 바퀴를 갈아 본다. 손맛이 즐겁다. 옆지기를 만나고 옆지기가 아이를 배며 옆지기가 아이를 낳은 뒤로 자전거를 손질하여 신나게 타 본 적이 언제였던가. 이 아기수레를 써 본 지도 퍽 오래되었다. 옆지기가 아직 아이를 낳기 앞서 명절날 가래떡을 뽑는다 하여 수레를 달고 떡집을 오갔을 때가 이태 앞서이다.

- 아이랑 옆지기 모두 마당으로 나오라고 부른다. 바퀴를 달고 수레 안쪽을 닦는다. 수레에 바퀴를 달고 자전거 뒤쪽하고 잇는다. 수레에 담요 한 장을 깔고 아이를 앉힌다. 아이한테 작은 담요 두 장을 얹어 준다. 살짝 졸린 아이인데 꽤 좋아한다. “좋아! 좋아!” 하고 외친다. 어서 달리란 뜻인가.

- 어디까지 달려 볼까. 오늘은 처음 달리는 날이니까 가볍게 큰길가 보리밥집까지 다녀올까. 보리밥집에서 아이 까까하고 보리술 두 병을 사 볼까. 마당을 살며시 반 바퀴를 돌고 나서 옥수수와 고구마를 심은 밭 옆을 달린다. 동네 이웃한테 인사를 하고 논을 옆으로 끼는 시골길을 달린다. 한창 벼베기를 하거나 밭을 갈아엎는 때라 트랙터 바퀴에서 떨어진 논흙이나 밭흙이 시골길에 점점이 떨어진 채 이어져 있다. 흙덩이를 밟을 때마다 자전거는 덜컹덜컹. 뒤를 돌아보며 “괜찮아?” 하고 물으니 “좋아!” 하고 대꾸. 졸립지만 이렇게 수레를 타고 함께 달리니 무척 좋은가 보다.

- 아이 몸무게를 헤아린다면 아이보다 세 곱은 무거운 책짐을 수레에 실을 뿐 아니라 등에는 가방 가득 책을 넣은 채 오르막을 얼마나 오르내렸던가. 등이 홀가분한데다 고작 십 몇 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아이를 태우고 달리니 하나도 힘이 들지 않는다.

- 보리밥집에 닿을 무렵 아이는 뒤에서 “다아 왔다!” 하고 외친다. 아이도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구나. 자전거를 멈추고 안전띠를 끌러 아이를 내린다. 아이는 아이 까까 하나를 집는다. 엄마 까까를 하나 더 고르고 보리건빵 하나를 또 고른 다음 보리술 두 병을 셈한다. 팔천 원.

- 오던 길을 되짚어 달린다. 집을 나설 때에는 줄곧 “좋아!” 하고 외쳤으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조용하다. 아빠하고 자전거를 처음으로 함께 달린 느낌이 어떠하려나. 아빠는 2005년 무렵에 이 아기수레를 처음 장만했지 싶은데, 드디어 다섯 해 만에 이 아기수레에 참말 아이를 태우고 자전거를 달렸구나. 요 몇 해에 걸쳐 ‘자전거쪽지’를 좀처럼 못 쓰며 지냈는데, 띄엄띄엄 되더라도 오늘부터 차근차근 적어 보아야겠다. 아이를 수레에 태운 첫 날이 10월 12일, 가을이 무르익으며 겨울이 다가오는 철이라 겨울날 아이를 태우고 달리자면 아이가 애먹을 텐데, 추운 날 수레를 타고 달리다가 봄을 맞이하고 여름을 맞이해 보면, 우리 아이도 이렇게 자전거로 달리는 맛이 어떠한가를 살며시 느끼겠지. 내일은 수레에 깃대를 꽂아 큰길을 달릴 때에 자동차가 우리 수레를 잘 알아보도록 해야겠다. 쌓인 짐더미에서 깃대를 얼른 찾아내야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즐거운어치 2010-10-12 23:21   좋아요 1 | URL
부럽네요, 아기수레를 끄는 아빠나 수레를 탄 아가 모두가. 우리 딸래미도 저 나이 때 저런 거 구해다가 태워줄걸. 그러저나 저 아가는 지금 무얼 생각하나. 좀 뿌듯해하는 얼굴 같기도 하고, 아빠 자전거 타는 솜씨를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숲노래 2010-10-13 04:04   좋아요 1 | URL
졸려서 그래요. 낮잠을 자 준다면 한껏 들떠서 신나게 노래를 불렀을 텐데요..
ㅠ.ㅜ
오늘은 방방 뛰면서 놀지 않으랴 싶어요~
요 수레에는 48킬로그램까지 태울 수 있으니
아이가 컸어도 얼마든지 태울 수 있답니다~
 



http://cafe.naver.com/inbusu/1505

(네이버에 있는 어느 자전거모임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자동차 모는 사람은 자전거 타는 사람을 아예 안 봐요. 자전거꾼이 헬멧을 썼건 말았건, 자전거옷을 입었건 말았건, 자전거를 잘 타건 못 타건…… 그저, 자기 차 앞에 자전거가 있으면 짜증을 내는 사람이 하나 있고, 자전거가 있는 줄 모르고 거의 칠락말락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 있으며, 자전거가 있기에 일부러 장난질하듯 갖고 노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진짜로 자전거꾼한테 마음쓰는 운전자라면, 헬멧이 없고 크기도 작은 자전거를 평상복으로 입고 타는 사람이 안전할 수 있도록 헤아려야지 싶어요.

 어제와 그제,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는데,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찻길에서 유사산악자전거나 짐자전거로 참 느리게 달리십니다. 느리게 달리니 더 안전할 것 같지만, 오히려 이분들은 손에 힘이 빠질 수 있기에 더 위험하다고 느껴요. 거의 모두 언덕길에서는 조금 오르다가 내려서 끌고 가시는데, 이렇게 달리다가 멈출 때가 퍽 아슬아슬하거든요(뒤에서 보면). 헬멧을 써야 하는 문제라면, 누구보다도 이 어르신들한테 헬멧을 구나 시나 읍면에서 장만해서 선물로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예전, 자전거로 신문배달하며 먹고살 때부터, 지금처럼 자전거로 모든 곳을 두루 다니게 된 지금까지, 제 경험을 가만히 돌이켜보건데, 자전거 사고가 나는 까닭은 몇 가지로 추릴 수 있습니다.


 (1) 길이 나쁘다
  : 패인 곳 많고 /
    턱 많고 /
    미끄러운 곳 많고 /
    오르내리막 많아서


 (2) 자전거꾼이 빠르기를 즐긴다
  : 자전거로도 제법 빨리 달릴 수 있지만, 지나치게 빠르기에만 매달리는 나머지,
    자전거를 타는 좋음과 즐거움과 보람을 잊거나 잃는 분이 많아요.
    자전거로 알맞게 달리는 빠르기를 놓아 버렸을 때는 크고작은 사고가 생깁니다.


 (3) 자동차 모는 이들 못된 성질
  :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아예 보지 않고 다니며 사고를 냅니다 /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깔보며 장난질하다가 사고를 냅니다

 ..

 〈오마이뉴스〉에 자전거 기사를 쓰는 김대홍 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되었는데, 아무리 좋은 안전장구를 갖추고 자전거를 타도, 빠르기가 25km를 넘게 달리면 다칠 수밖에 없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헬멧도 쓰고 무릎과 팔꿈치 보호대를 찼어도, 빠르기 25km를 넘게 달리면 머리 깨지고 무르팍 깨지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30km를 넘어가면 식물인간이 되거나 죽거나 하는 일에서는 똑같고요.

 그런데, 이것은 헬멧 문제만이 아닙니다. 빠르기가 25km를 넘어서면,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동차나, 동네 꼬마아이들하고 그대로 들이박고 맙니다. 아직 자전거 타면서 제동 걸기에 익숙해지지 않은 분들이라면 빠르기 20km에서도 급제동을 안전하게 하기는 어려우리라 봅니다. 자전거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 손아귀 힘과 머리 감각으로 제대로 자전거를 멈출 만한 빠르기는 15~17km쯤이 아니겠느냐 싶어요.

 제 나름대로 해 보는 생각은, 안전장구는 자기가 아직 “자전거 타기에 서툴거나 몸이 굼뜬다고 할 때 차는 편이 좋다”입니다. bmx를 타는 분이라면 헬멧은 반드시 차야 할 것이며, 이때에는 무릎과 팔꿈치 보호대도 차야지요. 산타는자전거를 타고 “진짜로 산을 탈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헬멧을 써야 할 때는 이 두 가지 때. 그리고 아직 길 앞뒤옆 형편을 헤아리기 어려운 아이들, 쉽게 넘어지며 다치는 아이들한테는 부모가 헬멧을 씌워 주어야지 싶어요.

 찻길을 달릴 때는 다르게 봅니다. 찻길에서 중요한 사항은 헬멧보다는 뒷거울이라고 느낍니다. 뒷거울을 보면서 뒤따르는 자동차를 살필 수 있는 눈길, 여기에다가, 평균빠르기 20km를 넘기지 않게 알맞게 달리면서 언제라도 급제동을 했을 때 자전거가 앞으로 쏠리지 않도록 추스를 수 있는 매무새, 여기에, 다문 몇 초 동안이라도 제자리에 설 수 있거나 아주 느리게 달릴 수 있을 만큼 자전거를 자기 몸에 붙이는 일이요.

 ..

 저는 한동안 빨리 달리기에 어느 만큼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자질구레한 사고가 많았어요. 앞브레이크 잘못 잡아서 한 바퀴 돈 것 하나는 제가 잘못한 사고였으나, 다른 모든 사고는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자동차가 친 사고, 갑자기 자전거 앞으로 끼어든 자동차와 부딪히거나 부딪힐 뻔한 사고, 찻길을 맞모금으로 가로지른 철길에 앞바퀴가 끼며 넘어진 사고, 얼어붙고 오른쪽으로 비스듬한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진 사고, …… 사고가 날 때마다 느꼈는데, 자전거로 알맞는 빠르기인 20km를 넘어간 채 달리고 있을 때에는 아무것도 쓸모가 없겠더군요. 언제나 자전거꾼 스스로 자기 목숨을 자기가 지키고 추스른다는 마음이어야지 싶어요.

 그래서, 모자라나마, 〈작은자전거〉 모임에서는 “모임을 할 때에는 빨리 안 달리고, 가장 느리게 달리는 사람한테 자전거 달리는 빠르기를 맞추도록” 하고 있습니다. 요사이, 저 개인한테 많은 일이 밀어닥치면서 모임에 제대로 못 나가서, 이런 말없는 원칙을 어느 분이 지켜 주고 계신지는 모르겠는데, 내리막을 달리든 평지를 달리든, 자전거로 무리지어 달릴 때 가장 못 달리는 사람한테 맞추어 달리면, 아무런 탈이 없다고 느낍니다.

 ‘더 빨리’나 ‘더 멀리’나 ‘더 짜릿하게’ 달리기로 치달릴수록, 자전거 사고는 일어나는구나 싶어요.

 ..

 마지막으로 아쉬운 대목을 하나 적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참말로 안전하다고 느낄 만한 값싼 헬멧이 시중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차라리 야구 헬멧이 낫다고, 럭비하는 분들이 쓰는 헬멧이 낫다고 느껴요. 오토바이 헬멧이라면 그야말로 안전하겠지만, 너무 무거워서 고개를 돌릴 수 없겠지요. 가벼우면서 튼튼한 헬멧, 그러면서 누구나 걱정없이 장만할 수 있는 헬멧을, 왜 삼천리자전거 같은 회사에서는 안 만들고 있을까요? 가만히 보면, 헬멧뿐 아니라 앞등과 뒷등과 뒷거울을 너무 후줄근하게 만들어서 거님길 턱을 내려오며 쿵 찧어도 뒷등이 떨어져 나가는 수가 잦습니다.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오르다가 벽에 콩 박아도 앞등이 깨지는 수가 잦아요. 뒷거울은 더 그렇고요. 그러면서 상표 있는 앞등-뒷등-뒷거울은 값이 오지게 비쌉니다. 자전거 즐기는 사람들이 헬멧하고 멀어지게 하는 크나큰 까닭 가운데 하나는, ‘걱정없는 싼값으로 장만해서 쓰는 헬멧부터 쓰는 느낌이 좋고 안전하며 무겁지 않고 바람이 잘 드나드는 제품’을 만들어 주지 않는 자전거회사 장삿속도 한몫을 하지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기가방도 더 튼튼하게 만들지 않아서, 으레 반짇고리를 갖고 다니며 틈틈이 바느질을 해 주어야 합니다. 등산베낭도 그렇고요.

 그리고, 제 꿈이 있다면, 자전거를 즐기는 분들이 찻길에서든 거님길에서든 사고 걱정이 없도록 다닐 수 있도록 ‘찻길 문화-거님길 문화-교통 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빗길에 자전거를 달리는데, 마을버스 한 대가 뒤에서 자지러지게 경적을 울려대더군요. 다른 차들은 아무 말 없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말입지요. 다른 버스도 아무 말 없이 제 옆을 많이 돌아서 가 주었고요. 그 마을버스는 정류장에서 모로 비틀어서 섭니다. 그렇게 비틀어 서는 일은 ‘버스 서는 원칙’에서 벗어난 짓이지만, 오로지 자전거를 못살게 굴 생각으로 그렇게 했어요. 덕분(?)에 두 개 찻길을 잡아먹은 버스라서, 뒤따르던 다른 자동차들은 왼깜빡이를 넣고 세 번째 찻길로 접어들며 잠깐 동안 병목막힘이 일어났습니다. 병목막힘이 일어났을 때, 저는 버스 왼쪽으로 살살 몰며 지나갔어요. 그렇게 지나간 뒤로 이 마을버스가 더 경적을 울려대지 않았습니다만, 비오는 날, 비맞으며 달리는 자전거라 한다면, 자동차를 모는 분들께서 더 조심해 주고 더 마음을 써서 자전거를 지켜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운전기사는, 알고 보면 ‘살인 미수’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어요.

 자전거가 자동차를 위협할 일이란 없으나, 자동차가 자전거를 위협하는 일은 너무나 뻔질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헬멧쓰기는, 자전거 타는 사람으로서 우리 목숨을 지키자는 안간힘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헬멧을 쓰건 말건 자동차 모는 이들은 ‘자전거란 녀석을 아예 안 보거나 괴롭히기 일쑤’인 한편, 헬멧을 쓴 우리들 자전거꾼은 ‘자, 이제 안전장구를 갖췄으니 신나게 달려 볼까?’ 하면서, 안전하게 달리기와 멀리멀리 떨어져 버리는 일이 흔하게 일어납니다. 안전장구를 갖추었어도 ‘알맞는 빠르기를 지키며 앞뒤옆 길형편을 꼼꼼히 살필 수 있는 매무새’가 있어야 합니다. (4340.8.14.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느 동네 찻길을 달리더라도, 길가에 함부로 대놓은 차와 부대낄 수밖에 없다)

 

4/26 - 서울에서 인천으로 46번 국도


- 어제 홍제동 산동네 비탈길을 올라가는데 길바닥 두 군데가 길쭉하게 꺼져서 쿵 하고 두 번 찧었다. 불빛 없는 어두운 데라서 깜짝 놀랐는데 넘어지지는 않았다. 뭘 하기에 길을 저렇게 파 놓았을까 싶었다. 낮에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을 나서며 비로소 무엇인가 알다. 여기 비탈길 접어들기 바로 앞서 너른 자리에 홍제3동 사무소를 새로 지었는데, 동사무소 앞 아스팔트를 새로 깔면서, 헌 아스팔트를 파내려고 미리 파 놓았던 것.

 개새끼들! 욕이 절로 나온다. 동사무소 건물 짓는다며 떠들썩거리기 앞서까지는 길이 엉망이어도 아랑곳하지 않더니. 아니, 동사무소가 새로 들어선다고 해도 아스팔트를 굳이 새로 깔지 않아도 될 만큼 괜찮은 편인데. 패인 곳 한두 군데만 때우면 되는데. 오늘은 새 아스팔트 깐다고 길을 다 막아서고 난리법석. 돌아가는 길도 없는 외통수인데 하염없이 길을 막고 있다. 허 참. 그러면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지나가라고? 지나갈 길 하나 마련하지 않고, 거기다가 알림판 하나 세워 놓지 않고, 더구나 이런 공사를 한다고 미리 알리지도 않고. 이 공무원 년놈들 나라밥 처먹고 한다는 짓거리가 이 따위인가.

- 아스팔트 까는 길을 아슬아슬 지나오는 동안 까만 찌끄러기 돌이 바퀴에 잔뜩 달라붙다. 바퀴 안 녹나 모르겠네.

- 찻길을 달리며 내 뒤나 앞을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자기 줄로 가지런히 안 달리는 자동차가 으레 있다. 이웃 줄과 자기 줄에 엉성하게 걸쳐서 두 줄을 차지하며 달린달까. 이렇게 달리는 자동차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나 다른 자동차한테 짜증스러운 경적 울리기를 하곤 한다. 자기들 달리는 모양새는 생각도 않고.

- 무어 그리 갈 길이 바빠서 들쑥날쑥 줄을 바꾸어 가며 앞지르기를 하실까. 무어 그리 빨리 가야 해서 그렇게 경적질을 하며 앞지르기를 하실까. 문득, 자동차 경적은 자전거한테만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끼리도 참 많이 한다고 느끼다.

- 네거리 신호가 바뀔 듯하면, 페달질을 더 빨리 밟지 않는다. 멀찍이 200∼300미터쯤 앞에서 신호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헤어 본다. 넉넉히 건널 만하지 않다면, 아슬아슬하므로 빠르기를 조금 늦춘다. 이렇게 하면 목적지에 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고 할 수 있지만, 시내에서는 어차피 신호에 자주 걸리는 터. 이렇게 해도 달리는 시간은 그다지 안 벌어지지 싶다.

- 양화다리로 가는 길. 합정동 버스정류장 앞에 버젓이 서 있는 자가용 한 대와 짐차 한 대. 여기에다가 새로 멈추어 서는 작은 자가용 한 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며 서 있는 사람들한테 미안하지 않나.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들한테 한 마디 할 생각은 없는가. 이런 차는 사진으로 찍어서 고발해야 하지 않을까.

 버스정류장에 멈추는 버스들은 정류장을 턱 막고 서 있는 자동차한테 빵빵거리지 않는다. 그냥 그 옆에 대충 버스를 세우고 사람들이 아슬아슬하게 타고내리도록 할 뿐이다. 그러면서 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자전거한테는 빵빵거린다. 괘씸한 것들. ‘동업자’ 정신인가?

- 양화다리 건너고 대림동 지날 무렵부터 자동차가 줄다. 한숨을 놓다.

- 송내까지 다른 탈 없이 차분하게 달리다. 몇몇 버스하고는 사이좋게 달리다. 네거리 신호가 바뀔 때 자전거를 옆으로 빼서 버스가 먼저 지나가도록 하니, 버스가 정류장에 멈출 때 자전거 지나갈 틈을 조금 넓게 마련해 준다. 서로서로 이렇게 해 주면 더 홀가분하고 즐겁게 자전거나 자동차를 몰 수 있겠지.

 그런데, 송내에서 거침없이 막 달리는 아저씨 한 분 보다. 네거리 신호가 막 바뀌어 건너가는데 불쑥 내 왼쪽으로 튀어나와 앞지르려는 아저씨. 아마 뒤에서 줄곧 달려오신 듯. 내 자전거가 슬슬 탄력을 받아 앞으로 더 나아가려는 즈음, 뒤에서 버스가 큰소리로 울리는 빠앙 빵. 깜짝 놀라다. 저 버스는 몇 초만 기다려 주면 될 터인데, 또는 옆으로 살짝 비껴 가면 될 텐데.

 거침없는 아저씨 자전거는 네거리 신호가 빨간불이건 푸른불이건 따지지 않고 그냥 건넌다. 너비 이십 미터가 넘어 보이는 넓은 네거리도 그냥 달린다. 아저씨는 목숨을 내놓고 달리시는가. 그래, 아저씨 한 분이 그렇게 목숨 내놓으시는 건 당신 뜻이니 어쩔 수 없겠지요. 하지만 아저씨 덕분(?)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거나 먼길을 오가는 사람이 똑같이 욕을 받아먹고 있습니다.

- 오류동부터였을까. 거의 부평에 다다를 때까지 88번 버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리다. 나는 버스한테, 버스는 나한테 마음을 쓰면서 달리다. 내가 버스정류장 앞을 지날 때면 외려 버스가 빠르기를 늦추며 나보고 얼른 지나가라고 해 준다. 그 다음에는 내가 길섶에 바싹 붙어 자전거를 세우며 버스보고 먼저 가라고 한다. 따로 손을 흔들어 주지는 못했지만, 또 저 버스기사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마음좋은 사람을 만났다. 혼자 달리는 이 길이 88번 버스 한 대로 외롭지 않았다.

- 달리다가 페달질이 좀 이상하다 싶어 자전거를 요리조리 살피니, 체인에 무언가 끼었다. 길가에 자전거를 세운다. 체인을 살살 돌려 본다. 누군가 길에 버린 휴지가 체인에 감겼군.

- 간석오거리를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빠졌는데, 엉뚱한 데로 길이 이어진다. 그대로 가야 했군. 백운역을 고가도로 위로 지나갔기에 자전거를 세우고 골똘히 생각하다. 인천 시내 달려 본 일이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길이 아직 잘 안 잡힌다. 자칫 엉뚱한 데로 빠질 수 있다. 표지판을 보며 다시 생각해 보자. 음. 아무래도 동암역을 가리키는 길로 가야 할 듯.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니 낯익은 길. 석바위 쪽 알림판과 동암역 알림판으로 나뉘어지다. 석바위 쪽으로 가다. 주안역 알리는 알림판 나오다. 조금 달리다 보니 고가도로 하나. 아차차. 이걸 타야 했나? 알쏭달쏭. 길을 거슬러 고가도로를 넘다. 넘으면서 보니 고가도로 밑 오른쪽 길은 ‘인천대학교’ 가는 길이란다. 어, 저쪽으로 그냥 갔어도 되었나?

 고가도로 내려오니 곧바로 오른쪽으로 꺾으면 주안역. 아, 내가 가려던 길은 이 길이다. 제대로 왔네. 하지만 다음에는 고가도로 밑으로 이어지는 주안역 뒷길로 가도 되겠구나. 그 길이 한결 낫지.

- 어린이집 노란 봉고차, 내 옆을 바싹 스치며 달리면서 빵빵거린다. 어린이집 봉고차가 저렇게 거칠게 달려도 좋은가. 저 봉고차를 탄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배울까.

- 주안역 앞. 빨간 자동차 한 대가 깜빡이 안 켜고 갑자기 내 앞으로 확 끼어들며 주안역 안쪽으로 들어섬. 살짝 급브레이크 밟으며 차와 안 부딪힘. 심장이 벌렁벌렁. 그 차를 좇아가 따끔하게 쏘아 줄까……. 아니다, 말자, 저렇게 살다가 죽으라고 하자, 그냥 가자.

- 제물포를 지나고 도원역에 이를 즈음. 기찻길 오른쪽 골목으로 갈까 하다가 그만둠. 기찻길 오른쪽 동네길은 다음에 지나가기로.

- 배다리 헌책방골목. 아이고. 이제 다 왔군. 계단 앞에 자전거를 세운다. 가방을 3층에 올려놓고 디지털사진기 들고 내려와 자전거 사진 한 장.

 자전거님, 애 많이 쓰셨어요. 이제부터 인천과 서울을 오갈 짐바리가 될 터이니, 살뜰히 아끼고 사랑하고 고이 보듬어 드릴게요. 오늘 하루는 푹 쉬셔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충북 충주에서 자전거를 타고 전국 어느 곳이든 찾아가던 삶을 2007년 4월 22일로 끝마쳤다. 4월 15일에 끝마치려 했으나 이삿짐 옮기기 벅차고 22일까지 이어졌다. 그리하여 4월 23일부터 쓰는 자전거 나들이 이야기는 새로운 [자전거쪽지]로 이어나가려 한다.

[자전거쪽지]는 다른 곳에 꾸준히 올려놓고 있었는데, 두 번째 이야기로 펼쳐 나가게 되는 만큼, 따로 자리를 나누고 싶기도 해서, 이 자리에 걸쳐 본다. 먼저 예전 글을 틈틈이 옮겨놓아야겠군. 예전 글이라 하면, 4월 23일부터 썼던 글.

=====================================================================

4/25 -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반겨 준 것이란


- 네 시쯤, 도서관 책 갈무리를 그럭저럭 마치고 길을 나선다. 4월 한 달 동안 책짐 옮기느라 책 묶고, 인천으로 와서 책 풀고 하는 일밖에 못했다. 잠깐 숨을 돌리고 싶어 서울로 책방 나들이를 떠난다. 먼걸음이라고 해도 늘 가는 책방만 찾아가는 나인 터라, 또 자전거집도 늘 가는 데만 가는 터라, 서울에서 지낼 때에도 적잖이 먼 거리를 오가곤 했다. 자전거 크랭크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동인천역에서 전철을 타기로. 표를 끊고 자동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용산 가는 전철이 들어와 있다. 부랴부랴 뛰어서 들어가니 이내 문이 닫힌다. 히유. 휠체어 자리에 자전거를 세우고 앞바퀴를 뗀다. 동인천에서 용산 가는 전철 맨 앞 칸은 사람이 안 많은 편이지만, 앞바퀴 떼어놓기는 예의라고 느낀다. 또 앞바퀴를 떼어놓을 때 흔들림이 적다. 부피 차지도 적다.

- 책을 읽다. 느긋하게 책 읽어 본 게 얼마만이냐. 신나게 자전거 타 본 게 또 언제 적 일이냐. 자전거도 타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

 서울 가는 길에 읽는 《캐시 호숫가 숲속 생활》(갈라파고스,2006). 139쪽에 “날이 따뜻해져서 요새는 거의 밤마다 늪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난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실제로 개구리를 본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라는 대목이 보인다. 이 책은 1947년에 나왔다. 그런데 1947년 미국에서도 ‘개구리를 직접 본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2007년 우리들은 어떨까? 개구리 우는 소리를 ‘개골개골’로 아는 사람은 많지만, 참말 개구리를 본 적 없는 사람, 만져 본 적 없는 사람이 많을까? 아무래도 그렇겠구나 싶다. 이 나라 사람 거의 모두가 살아가는 도시에는 개구리가 살 수 없으니까. 그림이나 텔레비전으로만 보겠지.

 그러고 보면, 자전거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 가운데 하나도, 정책을 꾸리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몸소 타지 않기 때문에, 그저 운동이나 소일거리쯤으로 가끔 공원에서 자전거를 탈 뿐, 출퇴근을 하거나 일을 할 때 쓰는 자전거로 타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싶다. 또는 어릴 적 어렵게 자전거 빌리거나 얻어서 타 본 추억만 간직하고 있어서.

- 용산에서 내리다. 내리기 앞서 앞바퀴를 붙이다. 전철 칸에서는 앞바퀴를 떼는 편이 여러모로 낫고, 전철에서 내린 뒤에는 붙이고 다니는 편이 옮기기에 좋다.

 밖으로 나오다. 기나긴 계단을 내려오다. 이곳을 오갈 때마다 언제나 느끼는데, 나야 자전거를 이렇게 들고 내려오면 된다지만, 몸이 힘든 사람은 어찌하면 좋을꼬. 기차역이라는 걸 이렇게 지어 놓으면, ‘구경꾼이 멀리서 보기에는 멋들어진’ 건물처럼 보일는지 모르나, 정작 기차역을 오가는 사람들로서는 다리힘이 많이 들고 고달프다. 휠체어로는 이곳을 어떻게 오르내리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동계단을 타라고? 꼭 전기를 먹는 그런 설비만 써야 하는가.

- 4월 들어 서울 시내에서 처음으로 몰아 보는 자전거. 신촌으로 넘어가야 하기에, 삼각지 네거리에서 꺾을 생각으로, 거님길로 달리다. 거님길에 물건 내놓고 간판 만드는 이들이 보인다. 자전거로 이 옆을 지나가기 까다롭다. 걷는 사람도 번거로우리라.

- 삼각지 네거리. 신호가 바뀌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느라 맞은편 차가 빵빵거리게 하는 자동차가 꼭 보인다. 건널목 푸른불이 들어왔으나 그냥 지나가며 사람들 발걸음을 우뚝 서게 하는 자동차 또한 꼭 있다.

- 마을버스고 시내버스고 자전거 곱게 지나가는 꼴을 못 보시는 듯. 아무 대꾸를 않고 조용히 왼쪽으로 비껴서 지나간다. 어차피 신호에 걸리고 정류장마다 멈춰야 하는 버스들이 왜 저렇게 거칠게 버스를 몰까. 저 버스에 탄 사람들 마음은 어떠할까.

- 큰길 네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내 앞으로 나와서 부릉부릉거리는 오토바이. 자전거를 오토바이 앞으로 끌고 간다. 내가 오토바이 차방귀를 고스란히 맡고 있어야 할 까닭이 없으므로.

- 동교동을 지나 홍대 전철역 둘레. 마을버스와 무단주정차 자가용과 택시 때문에 언제나 복닥이는 이 자리. 청기와주유소까지 아주 젬병. 버스들은 버스길에 차를 세우지 않고 꼭 비스듬하게 세워서 자전거가 지나가기 어렵게 한다.

- 서교동 안쪽 길. 이제 조금 마음이 놓인다.

- 서교동 단골 자전거집. 가게 앞에 닿아 가방을 내리니 등판에 땀이 흠뻑. 자전거 크랭크 말썽 생긴 곳 이야기를 하다. 크랭크 축을 이루는 곳 나사가 풀려 있다고 한다. 연장 몇 가지로 뚝딱뚝딱 맞춰 주신다. 덤으로 체인이 잘 돌아가는가 점검까지. 자전거집 아저씨 동무가 생활자전거 한 대를 짜맞추고 있다. 두 시간째 하고 있단다. 얼마 앞서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 뒤, 다시 일자리 알아보기 힘들어, 무엇이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이곳에 와서 자전거 조립을 배운다고.

 요 몇 해 사이에 서교동과 망원동 둘레에 새로 생긴 자전거집이 열 군데쯤이란다. 뜻이 있어 연 사람도 있겠지만, 회사에서 명퇴를 하거나 회사를 그만두게 된 뒤 남다른 솜씨나 재주 없이 차린 사람이 많단다. 고급자전거를 다루는 사람들도 많단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거품이라고, 기본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배우면서 익힌 다음에 자전거집을 차려야 하는데, 그런 게 없는 사람들이 많단다. 내가 가는 단골집은 당신 아버지를 이어서 2대째 꾸려 가는 곳. 이곳 아저씨는 열 해 남짓 꾸리고 있다. 아저씨 동무가 낑낑대며 “히야, 이거 하나 조립하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네.” 하니까, “야, 십 년 차이를 하루아침에 뛰어넘으려고 하냐?” 하고 퉁.

 자전거집 아저씨가 일삯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발목띠 다섯 개 사다. 이곳 아저씨는 ‘공임 받는 게 어렵다’고 말한다. 잠깐 뚝딱 손보면 될 일은 그냥 해 주는 편이 낫다고.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일삯을 받아야겠지만, 어쩌면 이런 마음씀 덕분에 동네사람들이 이곳을 자주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잘되는 동네 자전거집을 가만히 보면, 작은 마음씀 하나로 더 큰 마음씀을 돌려받는구나 싶다.

 튜브에 바람 넣는 장비를 늘 길에 깔아 놓고 누구나 쓰도록 내놓고 있는 이 집. 언젠가 어떤 자동차가 바람 넣는 장비를 밟고 지나가서 망가진 적이 있다고. 바람을 넣은 누군가 길에다 그냥 팽개쳐 놓고 가는 바람에.

- 자전거집에 있는 동안, 이 동네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사내아이가 자전거 사러 오다. 그동안 두 대를 도둑맞고 세 번째로 사는 거란다. 부모는 아이한테 자전거를 잘도 사 준다. 아이는 자전거 간수를 제대로 못하고 잘도 잃어버린다. 이렇게 잃어버린 자전거는 어디에서 헤매고 있을까.

 자전거집 아주머니한테, “저런 아이들이라면 제가 타는 바퀴작은자전거가 더 낫지 않아요? 이런 자전거는 꼬맹이 때에도 타고 어른이 되어도 탈 수 있는데.” 하고 말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 그래요. 쟤네들은 친구들끼리, 그런 거 타면 쪽팔리다고, 이거 이거(손가락으로 숫자를 펼쳐 보이신다) 돼야 해요.” 하고 한 마디. 앞에 3단 기어, 뒤에 7∼8단 기어가 있어야 한단다. 바퀴가 크고 기어가 많아야 서로 주눅들지 않고 자전거를 탄다는 소리.

 아이는 자전거 몸통에 자기 이름 알파벳 앞글자를 매직으로 적는다. 저렇게 적어도 훔쳐갈 놈들은 훔쳐갈 테지. 스프레이 뿌려서 저 글씨를 지운 다음.

- 손질을 마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선다. 서교동 헌책방 〈모아북〉으로. 그런데 가게가 사라졌다. 엥? 자리를 옮겼나? 나중에 인터넷으로 알아봐야겠군. 연락도 없이 이렇게 옮겨 가다니(나중에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증산동 쪽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골목길을 달리다가, 지난해 12월 2일 문을 닫은 헌책까페 〈캘커타〉 앞을 지나다. 텅 빈 건물. 간판은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이 4월. 그렇다면 이 가게는 다섯 달째 빈 가게라는 셈. 건물임자 생각이 달랐겠지. 또 건물임자는 달세 제대로 못 내는 이 집을 두기보다는 다른 가게 들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이런 골목길 안쪽에 무슨 가게가 들어올 수 있으랴. 가게세를 좀 낮춰 주고, 좀더 안정성 있게 이 골목을 지켜 주도록 하는 편이 서로한테 훨씬 좋지 않았을까.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다음에 이 자리에 들어올 가게한테는 좋게 마음을 써 줄 수 있기를.

- 홍대 앞 〈한양문고〉에 들러 만화책 한 꾸러미 사다. 동교동 헌책방 〈글벗서점〉에 들러 가방에 책 채울 빈자리가 없도록 책을 고르다. 이제 가방에 책이 더 들어갈 자리가 없으니, 책방 나들이는 끝이네.

- 홍제동 선배네 집으로 가는 길. 동교동 헌책방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큰길로 나오는데, 나올 때 내 뒤쪽 정류장에 가만히 멈춰 있던 버스가 빵빵거리기를 두 차례. 린나이 건물 앞 세거리. 내가 당신 버스가 못 가게 막기를 했나, 내 옆으로 돌아가면 길을 못 가나. 자전거가 조막만 해 보여서 그렇게 윽박질러 주고 싶으신가. 당신이 모는 버스보다 큰 덤프나 대형짐차가 더 큰 경적소리로 빵빵거리면 당신은 기분이 좋으신가. 당신은 당신보다 훨씬 큰 차 앞에서도 그렇게 경적을 울리실 수 있는가. 찻길 한쪽 구석에 얌전히 붙어서 천천히 달리는 자전거를 고이 지켜주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님길을 아장아장 걷는 아이한테 ‘뷁!’ 하고 소리 지르며 깜짝 놀래키는 마음결이라고 느낀다.

- 연남동께 지나는데 다른 버스가 또 빵빵. 달리는 자전거를 보고 빵빵거리는 저 버스들은, 버스정류장 앞에 무단주정차를 하고 있는 자동차한테도 빵빵거리는가?

- 홍제동 유진상가 옆을 지나는데 다른 버스가 또 빵빵. 미치겠군. 당신들은 빵빵거리지만, 당신들 차가 아닌 다른 차들은 내 옆을 아뭇소리 없이 잘도 지나가 주는데. 또 어떤 차는 일부러 내 뒤에서 멈춰 준 뒤, 내가 조금 넓은 길섶에 접어들었을 때 앞질러 가 주는데. 귀를 솜으로 틀어막고 다녀야 할까 싶은 생각.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니, 나를 반겨 주는 건, 버스기사들 귀따가운 빵빵 소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