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0.12.5.
 : 모자 안 쓰려면 내려



- 찬바람 씽씽 부는 날 수레에 아이를 태우고 마실을 하면서 생각한다. 애 아빠는 왜 찬바람 불 무렵부터 자전거에 수레 붙일 생각을 해서 스스로 몸을 힘들게 한담. 진작에 따순 날씨일 때부터 자전거에 수레를 붙이며 아이랑 마실을 다니지, 원.

- 날이 찬데, 수레에 가만히 앉아야 할 아이가 모자를 안 쓰겠다며 버틴다. 쳇, 네가 그렇게 굴면서 마실을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래, 모자 안 쓰니? 그러면 아빠 안 갈래.” “아냐, 모자 써, 쓰잖아.” 아이는 모자를 쓴다. 그러나 막상 자전거를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벗었다. 요 깜찍한 놈.

- 장갑을 끼고 달릴 생각이었는데, 한창 달리고 보니 손이 시렵다. 어, 장갑 안 꼈네. 그러나 자전거를 멈추지 못한다. 낑낑대며 오르막을 오르던 길이었으니까. 그런데 오르막을 다 오르고 나서는 이내 내리막. 이야, 이제 숨을 좀 돌리는구나 하는 생각만 할 뿐, 살짝 자전거를 멈추어 겉옷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어 낄 생각을 깜빡 잊는다.

- 마을길을 달려 큰길로 나오는데, 큰길을 코앞에 두고 길에 하얀 가루가 잔뜩 뿌려진 모습을 본다. 뭘까 하고 생각해 보니, 이곳에도 무슨 구제역인가 해서 뿌린 약가루가 아닌가 싶다. 겨울이라 우리 마을 닭공장은 쉬는데 무슨 약가루를 뿌린담, 하고 헤아리지만, 글쎄, 여기에만 이렇게 뿌린다고 무슨 병균이 안 퍼질까 궁금하지만, 이렇게라도 뿌려야 하겠지.

- 마을 어귀 보리밥집에 들러 아이 까까랑 아빠 보리술을 산다. 보리밥집 할머니가 아이한테 바나나 하나를 내어준다. 아이는 좋아서 방방 뛴다. 수레에 앉히니 좋아하는 몸짓이면서 퍽 졸린 얼굴이다. 그래, 좀 자 주련? 아이는 잘 듯 말 듯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논둑길로 잡는다. 아이는 곯아떨어질 듯 말 듯하더니, 끝내 안 잔다. 조금 더 멀리 돌아다니는 마실이었으면 수레에서 곱게 잠들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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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2.2.
 : 버스 타고 가요?



- 아빠랑 엄마 모두 집에 콕 박힌 채 바깥으로 좀처럼 나다니지 못하다 보니 아이는 좀이 쑤시겠구나 싶다. 산에 올라 이오덕자유학교 언니 오빠들이랑 놀도록 하면 가장 나을 텐데, 학교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때에 맞추어 산에 가지 못한다면 읍내 마실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한다. 시골버스 때에 맞추어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아이를 안고 헐레벌떡 버스 타는 데로 나가려는 때, 옆지기가 문득 묻는다. “버스 타고 가요?” 응? 뭔 소리인가, 그럼 버스 타고 가야지. 버스 탈 때에 놓칠까 걱정스러워 땀 뻘뻘 흘리면서 달린다. 아이는 내려서 함께 걷고 싶단다. 버스 놓칠까 봐 “안 돼, 이렇게 가자.” 하고 말하지만 내리고 싶다며 자꾸 말하기에 내린다. 아이도 아빠랑 함께 달린다. 막 웃으면서 달린다. 그래, 너도 이렇게 신나게 달음박질을 해 보고 싶었구나. 그러나 이내 지쳤는지, 또는 졸린지 안아 달라 한다. 아이 눈을 살핀다. 눈가가 바알갛다. 졸립구나. 졸린데 읍내 마실이 괜찮을까? 아무렴, 자도 돼. 아니, 자 주면 더 좋지. 네가 요새 거의 낮잠을 안 잤잖니. 버스 타는 데에 닿는다. 버스는 아직 안 왔다. 히유, 한숨을 돌린다. 사 분쯤 있자니 버스가 온다. 버스를 타고 표를 낸다. 자리에 앉는다. 아이는 신이 나서 방방 뛴다. 이제 비로소 느긋하게 생각을 가다듬는다. 버스 탈 때를 놓치면 그냥 시골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와도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굳이 읍내를 다녀와야 할 일은 없다. 오늘이 음성읍 장날이기는 하지만, 장날이라 해서 딱히 무언가를 더 사지는 않는다. 다만, 오늘은 쥐끈끈이를 더 사야 하기는 했지. 그런데 나한테는 자전거가 있고 아이를 태울 수레가 있다. 음성읍 갈 때보다 고단한 길인 금왕읍으로 가는 길도 아이를 태우고 신나게 오갔는데, 음성읍이야 거뜬한 길 아닌가? 집을 나설 때 옆지기가 문득 물은 말이 떠오른다. 그래, 버스 아닌 자전거를 타도 되었지. 아니, 진작에 자전거로 올 생각이었으면 한결 느긋하게 집에서 길을 나서지 않았을까. 애써 바쁜 걸음을 하기보다 찬찬히 너그러운 마음과 몸으로 가붓하게 마실을 나올 때에 나도 좋고 엄마도 좋고 아이도 좋을 텐데, 참말 늘 잊는다. 어쩌면 늘 생각을 안 하며 산달지 모르겠다. 입으로는 느긋하게 살자 외면서, 정작 몸과 마음은 느긋하게 못 사는 바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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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1.20.
 : 달리는 자동차는 빠르기를 늦추지 않는다



- 토요일 무극 장날에 맞추어 읍내 마실을 다녀오기로 한다. 이른겨울을 눈앞에 두었기에 한낮에 길을 떠나 일찍 돌아오자고 생각한다. 12시 27분에 집에서 나서다.

- 집에서 길을 나서기 앞서 읍내 마실은 좀 머니까 체인이며 자전거며 꼼꼼히 살피고 손질한다. 날이 추운 탓인지 수레를 달고 시골 오르막을 낑낑대며 오르다 보면 기어가 잘 안 먹곤 한다. 가는 길은 괜찮아도 돌아오는 길에 꼭 말썽이 생기곤 한다.

- 조금 쌀쌀하지만 반바지를 입고 길을 나선다. 긴바지를 입고 바지 아래쪽을 끈으로 묶곤 했는데, 한창 달리다 보면 땀이 차며 덥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말든 수레를 더 잘 끌며 오갈 수 있도록 차려입어야 한다. 예순터 고개를 오를 즈음, 처음 길을 나설 때 생각했듯이 등이며 다리이며 후끈후끈하면서 땀이 흐른다.

- 멧기슭 우리 집에서 무극 읍내(금왕읍)로 가는 길은 네찻길. 이 네찻길을 오가는 차는 그리 안 많지만 우리 시골마을에서는 차가 가장 많이 오가는 길이다. 그래 보았자 도시로 치면 아주 한갓진 길이라 할 텐데, 신호에 따라 한 차례 차가 씽 지나가고 나면 귀가 먹먹하다. 아이도 아빠하고 마찬가지인가 보다. 차들이 씽 하고 지나간 뒤에 “빠방이 시끄러워.” 하고 한 마디 한다.

- 자동차 흐름이 끊어지고 아주 조용히 시골길을 달릴 때면, 길가 풀숲과 안쪽 산골짝에 깃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잘 들린다. 그런데 풀숲에 있던 자그마한 새들은 자전거가 달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깜짝깜짝 놀라는지,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내뺀다.

- 예순터 고개를 다 오르고 내리며 바야흐로 무극에 들어선다. 읍내에 들어설 즈음, 고등학생 둘이 길가를 나란히 거닐며 수다를 떨다가 문득 과자봉지를 휙 내던지는 모습을 본다. 참으로 아무렇지 않게 휙 내던진다. 갑작스런 일이라 멍하고 얼떨떨하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이 어린 나이에 이렇게 손쉽게 과자봉지를 길에 함부로 버릴 수 있는가.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지? 이 아이들은 집에서 어떻게 지내지?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이 아이들을 낳아 기른 어버이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 무극 읍내 하나로마트에 들러 보리술 한 병을 산다. 무극은 장날이어도 하나로마트에 사람이 드글드글하다. 음성 읍내 하나로마트는 장날이면 하나로마트에 사람이 거의 없는데. 무극 읍내는 하나로마트 코앞에 높직한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으니, 이 아파트숲 사람들이 장마당까지 걸어가기 귀찮거나 자동차를 타고 가도 대 놓기 마땅하지 않아 하나로마트로만 가려나. 그러나 무극 읍내 개천가에는 차 댈 자리가 아주 넓다. 시골 읍내에 살아도 아파트가 살림집이라면 마트에 다니기가 수월하고, 장마당 둘러보기는 익숙하지 않으려나.

- 도토리묵을 사고 두부를 한 모 사며 찐빵을 이천 원어치 산다. 오늘은 찐빵이 하나도 따뜻하지 않다. 아이는 찐빵을 두 입 베어물다가 더는 안 먹고 아빠 먹으라고 자꾸 내민다. 따뜻하지 않은 찐빵은 아이가 먹기에도 맛이 없구나. 아빠가 다 먹어 준다.

- 짐차에 과일을 잔뜩 실은 아저씨가 파는 능금보따리를 하나 고른다. 오천 원짜리를 고르는데 능금 몇 알에다가 감하고 귤을 덤으로 얹어 준다. 고작 오천 원어치를 살 뿐인데 이삼천 원어치를 더 얹어 주는 셈. 고마우면서 미안하다.

- 아이 엄마가 사 오라 한 밤을 한 봉지에 사천 원을 주고 장만한다. 약국에 들러 쥐끈끈이 두 봉지 천 원에 산다. 저잣거리에서 그때그때 빚어서 파는 물고기묵을 오천 원어치 산다. 양파 작은 묶음을 삼천 원에 산다. 양파하고 능금은 수레 뒷칸에 싣는다. 가방이 묵직하다.

- 집으로 돌아오는 예순터 고개는 한결 힘겹다. 그렇지만 읍내로 올 때에는 제법 수월했으니 마땅한 노릇이지. 생각해 보면, 집에서 읍내로 나올 때에는 빈 가방이니까 조금 더 힘겨워도 괜찮고,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가방이 꽉 차니까 길이 한결 수월하면 좋으련만. 이쪽 읍내로 가든 저쪽 읍내로 가든, 언제나 집에서 나설 때에는 길이 수월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더 비알진 고개를 더욱 힘겹게 올라야 한다.

- 읍내를 벗어나 예순터 고개 두 번째 고비를 오를 무렵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었다. 읍내 장마당부터 퍽 졸렸는가 보구나. 그래도 과일장수 아저씨가 건넨 작은 귤 두 알을 두 손에 하나씩 꼬옥 쥔 채로 잠들었다. 얼굴과 등판으로는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싱긋 웃는다. 고갯마루에 닿아 자전거를 세운다. 아이가 덮는 담요하고 두툼한 겉옷을 잘 여미어 놓는다. 수레 덮개를 내린다. 긴소매 웃옷 한 벌을 벗는다. 반소매 차림으로 달린다. 마지막 고빗사위 오르막을 지나 내리막을 씽 달리는데 퍼더덕 소리가 나면서 덮개가 말려 올라간다. 덮개를 제대로 안 덮었구나. 이제 막 잠든 아이가 춥겠다. 내리막에서는 좀 신나게 달리며 땀을 식히고 싶었으나 빠르기를 줄여 천천히 내려온다.

- 마을 어귀에 있는 보리밥집에 들른다. 땀도 식히고, 아이 엄마가 먹을 김치를 얻으며, 아이 까까를 하나 사기로 한다. 아이 까까는 보리건빵 한 봉지. 매운 밥을 못 먹는 나는 김치를 손대지 못하지만, 아이 엄마랑 아이는 김치를 무척 잘 먹고 좋아한다. 오늘도 김치를 고맙게 얻는다. 내가 김치를 못 먹다 보니, 집식구 둘이 김치를 좋아하는 데에도 김치를 담글 생각을 못한다. 매운 것은 건드리기조차 힘들다. 그렇다고 몸이 아픈 아이 엄마가 김치를 담글 수도 없고.

- 논둑길로 접어든다. 논둑길로 접어들어 달리면 좋다. 마주 달리는 차가 아주 드물게 있는데, 이때만 빼고는 이 논둑길은 언제나 자전거 차지라서 호젓하다. 호젓한 길을 달리며 생각에 잠긴다. 읍내를 다녀오며 달린 네찻길 국도에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기 힘들었다. 자동차가 그리 많이 오가지는 않아도 이 자동차들이 오가며 내는 소리 때문에 몹시 시끄러우니까 생각이고 뭐고 없다. 조용하고 호젓한 시골길이나 논둑길을 달릴 때 비로소 무언가 생각을 할 수 있다. 자동차로 시끄럽거나 바쁜 국도라든지 도심지에서는 차소리 때문에 고단하기도 하지만, 자전거가 차에 치일까, 또는 신호라든지 길가에 마구 대 놓은 자동차 때문에 다른 데에는 마음을 쓰지 못한다. 도시에서는 나 스스로 차분히 자전거를 즐기지 못하고, 조금 더 느긋하게 자전거를 달릴 수 없다. 더군다나 어디에선가 불쑥 튀어나오는 오토바이가 좀 많은가.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자전거를 고달프게 하고, 오토바이는 오토바이대로 자전거를 고단하게 한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더 빨리 달릴 생각에 매여 있다고 느낀다. 더 빠르고 더 곧은 길을 바란다고 느낀다. 더 느긋하며 더 호젓한 찻길을 바라는 자동차꾼이나 오토바이꾼은 없겠지. 자전거꾼하고 나란히 느긋하며 호젓하게 달리기를 바라거나 꿈꾸는 자동차꾼이나 오토바이꾼이 있을까.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자전거꾼이라든지 두 다리로 걷는 사람한테 착하게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을 만나기 참 어렵다. 게다가 시골에서는 짐승한테까지 곱게 마음을 쏟는 자동차꾼이란 아예 없다시피 한다.

- 달리는 자동차는 빠르기를 늦추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싶다. 네찻길에서 앞지르기를 하려고 빠르기를 높이던 자동차는 길가 한켠에 자전거가 아이를 태운 수레를 살살 끌면서 지나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참말 아슬아슬 스쳐 지나가며 매캐한 차방귀를 뿜는다. 빠르기를 살짝 늦추면서 옆 차 뒤에 서서 여느 자전거이든 수레를 단 자전거이든 걱정없이 달리도록 도와주는 자동차를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고작 1초, 또는 2초, 아니면 3초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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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1.22.
 : 정작 추운 사람은 아빠



- 겨울을 앞둔 시골에서 읍내이든 큰길가 보리밥집이든 다녀올 때면, 아이는 수레에 앉아 꼼짝을 않는다. 처음 달릴 때에만 말 몇 마디를 하지, 이내 조용하다. 두 손을 담요나 아빠 겉옷 사이에 넣고 가만히 있는다. 오늘도 보리밥집으로 달걀이랑 아이 까까를 사러 다녀오는 길에 아이는 아무 소리를 않으며 얌전히 있기만 한다. 보리밥집에 닿아 수레에서 내리니 보리밥집 안팎을 신나게 뛰고 달리며 놀던데, 물건을 다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조용하며 얌전하다. 마을길 오르막을 끙끙거리며 오르다가는 논둑길을 달려 집에 닿아 다시 수레에서 내리니 “엄마 엄마” 하고 부르며 집으로 달려 들어간다. 아빠는 수레와 자전거를 도서관 한쪽에 집어넣고 담요와 겉옷을 잘 개 놓은 다음 집으로 들어간다. 아빠가 아이하고 보리밥집에 다녀오는 사이 저녁은 거의 다 되었고, 아이 엄마가 모처럼 마련한 ‘집 된장 볶음 짜장면’을 먹는다. 아빠는 손발을 씻고 밥자리에 함께 앉아 밥을 먹는데, 얼굴이 얼얼하며 슬슬 썰렁하다고 느낀다. 어쩌면 아이는 담요 여러 겹과 아빠 두툼한 겉옷을 포근히 덮으며 제법 따뜻하고, 아빠는 시골길 오르내리막을 달리며 땀을 뻘뻘 흘리지만 외려 더 추운 셈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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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1.10.
 : 잃는 자전거



- 날이 쌀쌀해진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쪽에 세워 둔 자전거를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하며 길을 나선다. 내 자전거 한 대를 책쉼터 〈나비날다〉 일꾼이 타라며 한동안 이곳에 두었다. 자전거는 〈나비날다〉하고 헌책방 〈삼성서림〉 사이에 쇠문으로 닫히고 지붕이 있어 누군가 넘어 들어올 수 없으며 비를 맞지 않는 데에 자물쇠로 묶어 놓았다. 늘 옆지기하고 아이랑 마실을 하다가 혼자 서둘러 볼일을 보고 돌아와야 할 일이 있어 자전거를 끌고 갔다가, 그만 들고 돌아올 짐이 무척 많아 자전거를 놓고 왔다.

- 혼자 살던 때에는 언제나 내 몸뚱이처럼 곁에 두던 자전거인데, 이제는 옆지기하고 아이를 내 몸뚱이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터. 자전거는 예나 이제나 내 몸뚱이와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를 안고 자전거를 타지는 못한다.

- 빈몸으로 집을 나서는 길. 가방을 주섬주섬 꾸려 나갔다고 생각했으나, 시골버스 때를 살펴 논둑길을 한참 달리며 가방에서 버스삯을 꺼내려 하다 보니 지갑이 없다. 이런. 지갑을 어디에 두었지. 아, 엊그제 읍내 장마당에 나갔다 오면서 다른 가방에 옮겨 놓았구나. 헐레벌떡 집으로 달린다. 지갑을 찾아 챙긴다. 다시 신나게 달린다. 시골버스 놓치면 큰일이다. 논둑길을 달리고, 고샅길을 달린다. 오르막인 마을 고샅길을 헉헉거리며 달린다. 버스 타는 데까지 쉬지 않고 달린다. 걸어서 이십 분 즈음 되는 길을 육 분 만에 달리다. 숨을 몰아쉬며 먼 길 쪽을 바라본다. 버스는 올까. 이 분쯤 지나자 버스 그림자가 보인다. 오, 놓치지 않았구나. 고맙다. 버스삯은 며칠 앞서 올라, 저번까지는 1300원이었고, 이제는 1600원이다.

- 생극면에 닿아, 시외버스 타는 데로 온다. 동서울 가는 표를 끊는다. 7000원. 이곳에서 동서울 가는 찻삯은 7000원인데, 동서울에서 이곳으로 올 때에는 7100원이다. 왜 서울에서 시골로 오는 찻삯은 100원이 더 비쌀까.

- 서울에서 반가운 벗님을 만나 술 한잔을 한다. 찜질방에서 묵다. 이튿날 아침에 인천으로 간다. 동인천역에서 내려 골목마실을 한다. 두 시간 가까이 골목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자전거를 챙겨 돌아올 길이지만, 이 길에 이렇게 골목 사진 몇 장 얻을 수 있어 기쁘다. 환하고 맑은 가을빛 곱게 서린 골목 이야기를 한 타래 두 타래 가슴에 차곡차곡 담는 일이란.

- 동인천역 뒤쪽 송현1동부터 걸어 송현2동과 화평동과 전동과 내동과 신포동과 답동과 경동을 거쳐, 금창동(금곡동+창영동)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닿다. 책쉼터 〈나비날다〉에 들어간다. 그런데 자전거가 없다. 어찌 된 일인가 여쭈니 누군가 훔쳐 갔단다. 자전거를 둔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 다만, 이곳 2층에 있는 유도장에 다니는 아이들이 곁문으로 들어갈 수는 있다. 헌책방 〈삼성서림〉 일꾼도 드나들 수 있다. 그렇지만 헌책방 〈삼성서림〉 할배는 오토바이 사고로 퍽 오랫동안 병원에서 지내셨고, 자전거는 헌책방 할배가 병원에 있는 사이 사라졌단다.

- 자전거를 누가 훔쳐 갔다는 소리를 들어 기운이 빠지는데다가, 두 시간 가까이 골목마실을 하며 찍은 사진이 갑자기 날아간다. 찍어 놓은 사진이 어떠한가 돌아보려고 ‘찍힌 사진 보기’를 하려는데, 메모리카드에는 틀림없이 ‘찍혀서 앞으로 찍을 수 있는 장수’가 얼마 안 남았으나 사진이 하나도 안 뜬다. 이게 무슨 일이람. 뭐 이런 일이 다 있담. 쓴 지 몇 달 안 될 뿐더러, 자주 쓰지 않던 메모리카드가 이렇게 맛이 갈 수 있나.

- 누가 내 자전거를 훔쳤는지는 뻔한 노릇이라고 느낀다. 다른 사람 물건을 몰래 가져간 그놈 때문에 짜증이 나거나 성이 나거나 슬프거나 하지는 않다. 그저 한 가지, 다른 이 물건에 손을 댄 그 어린 넋이 안타깝다. 동네 푸름이들이 다른 사람 자전거라든지 오토바이를 훔치는 일이 곧잘 생긴다. 지난날 신문배달 일을 하던 때에도 신문배달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몰래 훔쳐서 타다가 아무 데나 처박아 버리는 푸름이를 으레 보았다. 몇몇 푸름이들이 깊은 밤에 다른 이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훔쳐 타다가 새벽 즈음에 아무렇게나 버리며 ‘놀이’를 하는 셈인데, 이런 못난 짓을 누구한테서 물려받았을까 궁금하다. 이 아이들 어버이는 당신 아이가 무슨 짓을 하며 푸른 나날을 보내는가를 알려나 궁금하다.

- 나도 한 번쯤은 예쁘장한 자전거를 타고 싶어 2008년에 장만했던 비토 자전거를 앞으로 다시 장만할 수 없겠지. 내 살림으로는 꿈일 뿐이니까. 자전거 한 대 다시 장만할 돈은 없다. 바구니 붙인 비토 자전거를 타고 읍내 장마당에 다녀올 때에 무척 좋았던 일은 한낱 옛이야기로 남겠구나. 부디 어디에서 어떤 이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로 되더라도, 잘 건사하며 사랑해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후미진 데에 쓰레기처럼 버리지 않기를 빌 뿐이고, 훔쳐 간 이가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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