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10.12.
 : 새벽안개와 가을들판



- 새벽 여섯 시 삼십육 분 음성역 기차를 타기로 한다. 집에서 새벽 여섯 시 사 분에 나선다. 바깥은 안개가 짙게 낀다. 멧골집이라 새벽안개가 더 짙게 오래 간다. 짐을 꾸리고 자전거를 마당에 세운다. 문을 잠그고 가방을 멘다. 자전거에 올라탄다. 1분쯤 마당에 자전거를 세우기만 했는데에도 안장에 이슬이 앉는다. 기어를 넣는데 삐걱삐걱한다.

- 손이 꽤 시리다. 무릎도 좀 시큰하다. 이른새벽에 자전거를 몰면 이런가. 문득, 지난날 신문배달 하던 나날을 떠올린다. 신문은 봄이고 겨울이고 날마다 같은 때에 일어나 같은 때에 돌린다. 언제나 새벽 두 시 무렵에 일어나 신문을 챙겨 바구니와 짐받이에 싣고 달렸다. 한여름에도 깊은 새벽은 썰렁하기 마련이요, 이제 와 돌이키면 내 몸이나 내 자전거는 새벽 내내 찬기운을 맞아들이면서 애먹었겠구나 싶다. 신문배달 자전거는 다른 자전거보다 일찍 삭고 일찍 망가질밖에 없겠다.

- 손도 몸도 자전거도 똑같이 얼어붙는다. 한겨울 신문배달 하던 일을 되새긴다. 장갑을 두 겹으로 끼더라도 손가락이 금세 언다. 짐자전거를 탄 지 오 분이 채 안 되어 손가락부터 언다. 다음으로 발가락이 언다. 그렇다고 두툼한 장갑을 낄 수 없다. 장갑이 두툼하면 바구니에서 신문을 집지 못한다. 신문을 돌릴 수 없다. 신문배달 일꾼은 실장갑을 두 겹으로 끼며 겨울나기를 해야 한다. 새벽 두 시 무렵부터 다섯 시 무렵까지 차디차게 얼어붙은 몸으로 골목을 누비면서 신문을 돌린다.

- 그래도 나는 나은 셈이지, 하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늘 새벽 여섯 시 사 분에 길을 나섰으니까. 이십 분 남짓 달리면 기차역에 닿으니까. 그러나 손가락이 얼어붙기 때문에, 한손씩 갈마들며 엉덩이에 대고 녹인다.

- 새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길이기에 가방이 퍽 무겁다. 이번 길에는 새로 얻을 집에서 며칠 묵으면서 집 손질을 하고 도서관 책을 옮길 자리를 다져서 이동식주택 짓는 일까지 맡겨야 한다. 작은 버너랑 부탄가스를 챙긴다. 옷가지도 조금 더 챙긴다. 이래저래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숯고개 오르막을 넘는다.

-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 이제 자전거로 이 길을 달릴 일은 없을까. 이 자전거는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 작은 집에 둘 테니까, 다시 충주 멧골집으로 돌아와서 마지막 짐을 꾸려 짐차에 싣더라도, 자전거로 이 길을 다시 달릴 일은 없으려나. 어느덧 음성 읍내로 접어들고, 어둑어둑한 길을 지난다. 음성역에 닿는다. 한숨을 몰아쉬며 자전거에서 내린다. 손가락이 꽁꽁 얼어붙었다. 주머니에 손가락을 찔러넣는다. 몇 분쯤 손가락을 녹이고 나서야 꼬물락꼬물락 움직일 만하다. 자전거는 기차 타는 곳까지 끌고 가서 뜯어야겠다.

- 음성역부터 대전역까지는 무궁화 기차를 탄다. 대전역에 내려 서대전역으로 달린다. 그러나, 대전역부터 서대전역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가를 찬찬히 보여주는 길그림이 없다. 대전역에서 청소하는 일꾼한테 말씀을 여쭌다. 이 말씀대로 달리며 도청 앞에서 왼쪽으로 도는데, 도청 앞에서 왼쪽으로 꺾는 길이 두 갈래. 이런, ‘어느 왼쪽’으로 가야 하나. 깊은 왼쪽 말고 안쪽 왼쪽으로 가기로 한다. 어디로 가든 길은 이어지겠지. 한동안 달리며 저 옆으로 갔어야 하나 하고 생각한다. 몇 분쯤 그대로 달리다 보니 드디어 길알림판이 나온다. 내가 달리는 이 길이 맞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 서대전역에 닿아 먼저 뒷간에 들른다. 기차 들어올 때를 기다린다. 기차역 일꾼이 “접이식 자전거이지요?” 하고 묻는다. 싱긋 웃으며 “네.” 하고 대꾸한다.

- 고속철도에는 자전거를 접어서 예쁘게 모실 자리가 있다. 다만, 이 자리는 ‘승무원 자리’. 고속철도 승무원한테 미안한 일이지만 이곳에 둔다. 승무원이 앉을 자리는 기차 칸 사이사이 빈 데에 둘 더 있기에, 미안하면서도 여기에 두기로 한다. 자전거 몸통 잘 보이는 데에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큼직하게 적는다. 기차에 자전거를 실을 때에는 붙임쪽지를 챙겨서 붙이면 한결 잘 보이겠다고 생각한다.

- 광주역에 닿다. 그런데 이곳이 ‘광주역’인지 ‘광주송정역’인지 헷갈린다. 고속철도는 광주송정역으로 달리지 않나. 물어 볼 사람이 없어 알쏭달쏭해 하다가 그냥 달려 보기로 한다. 어느 쪽이든 시내 안쪽으로 가야 시외버스 타는 데가 나올 테니까. 대전에서처럼 내 느낌을 믿고 달린다. 내 느낌을 믿고 달리다가 엉뚱한 데로 빠지는 적이 곧잘 있는데, 오늘은 용케 내 자전거가 제길을 잘 찾는다. 무등경기장을 왼쪽으로 낄 무렵 시외버스 타는 곳을 알리는 길알림판이 드러난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자전거로 건널목을 건너는데 까맣고 커다란 자동차가 푸른불인데에도 씽 하고 지나가려 한다. 깜짝 놀라서 멈춘다. 자동차도 멈춘다. 버젓이 푸른불이요, 이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과 자전거가 있는데 왜 함부로 내달리는가.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야 하시는가.

- 광주에서 고흥 들어가는 시외버스 표를 끊는다. 내가 선 줄에 있는 두 사람이 몹시 오래 끌며 표를 끊는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저희 표를 다 끊었으면 뒤에 선 사람을 생각해야지요. 한 사람 두 사람이 일 분 이 분 질질 끄는 바람에 뒷사람은 그만 차를 놓칠 수 있어요. 당신들한테는 가벼운 수다요 ‘이제 표를 끊었으니 느긋할’는지 몰라도, 표를 끊으려고 기다리는 사람한테는 다른 일이 돼요.

- 고흥읍에서 내린다. 짐칸에서 자전거를 내릴 때에 버스 일꾼이 내려서 바라본다. 도와주려고 하셨나 보다. “거그 말고 뒤에 실었으면 바퀴를 빼지 않고도 통째로 실을 수 있는디.” “아, 그래요. 그러면 다음에는 그렇게 할게요.”

- 우체국에 들러 편지 한 통을 부친다. 김밥집에 들러 김밥 두 줄을 산다. 우리 식구가 살아가고픈 마을까지 자전거로 달리기로 한다. 고흥읍에서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까지 군내버스로는 20분. 자전거로는 몇 분이 걸릴까.

- 14시 08분에 고흥읍에서 벗어난다. 읍내에서 포두 쪽으로 나오는데, 읍내에서는 길이 판판하지만, 도양과 포두로 갈리는 길부터 오르막이다. 신호리에서 읍내로 나올 때에 읍내 막바지는 내리막이 될 테니까, 이때에는 괜찮겠지. 한참 오르막을 달리고 나서 포두면에 접어들 때까지는 내리막. 거꾸로 읍내로 나올 때에는 이곳까지 오르막이 되겠구나. 14시 24분 포두면. 조그마한 면내를 슬슬 지나간다. 나중에 자전거에 수레를 달고 이 길을 달릴 때를 어림해야 하니 애써 빨리 달리지 않는다. 포두면을 벗어나 도화면 쪽으로 가는 길도 오르막. 면내나 읍내만 길이 판판하고 면과 읍을 잇는 길은 다 오르내리막인가. 이래저래 다리힘을 많이 써야 한다고 느낀다. 14시 37분 도화면 들머리. 도화면 길알림돌을 바라보며 새로운 오르막을 맞이한다. 고흥읍부터 신호리까지는 오르내리막이 세 차례로군. 퍽 만만하지 않겠다. 생각보다 오가는 자동차가 많다. 그러나, 자전거로 시골길 달리는 시간이 기니까 오가는 자동차를 많이 만난다 할 수 있겠지. 또, 고흥군에서 고흥읍을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14시 47분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 마을회관 앞. 도화면 들머리부터 이곳까지 오는 동안 자동차가 거의 없다. 그래, 이렇게 마을 깊이 들어오는 데로는 오갈 차가 없겠지. 77번 국도까지만 자동차가 조금 있다 할 테지.

- 읍내에서 마을로 들어오기까지 자동차에 치여 죽은 짐승을 제법 많이 보았다. 군내버스를 타고 움직일 때에는 길죽음짐승을 거의 헤아리지 못했다. 아니, 버스를 타면 길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버스가 길죽음짐승을 거듭 밟고 지나가더라도 느끼지 못한다. 길죽음짐승은 그야말로 떡처럼 납작하게 눌린다. 어느 길죽음짐승은 찻길 맨 바깥 하얀 줄 너머인데에도 떡이 된다. 어떻게 이러할 수 있을까. 이 자리에서 치여 죽고 떡이 되었다면,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 일부러 하얀 금 바깥으로 달렸다는 소리일밖에 없다.

- 마을 빈집에 닿아 혼자 청소를 하다가 문득 떠올라, 자전거를 몰고 도화 면내로 가서 가게에서 막걸리 두 병이랑 담배 한 보루를 사다. 가게 할머니가 “으떻게 이런 데까지 와서 젊은네가 살려고 할까?” 하고 묻는다. “좋은 마을에서 아이들하고 잘 살고 싶어서요.” 하고 말씀드린다. 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갓 벤 나락을 말린다고 온통 노란 빛깔. 나락내음 흙내음 땀내음. 나락 사이를 자전거가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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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8.26.
 : 새 사진기 들고 첫 마실



- 그동안 목걸이처럼 쓰던 무겁고 큰 사진기를 내려놓는다. 새 보금자리로 옮길 때부터 옆지기하고 아이가 쓰도록 마련한 자그맣고 가벼운 사진기를 목에 건다. 새로 장만한 사진기는 목에 걸든 손에 쥐든 무게를 느끼기 어렵다. 참 가볍고 작다. 참 가볍고 작은데, 화소수는 내가 여러 해째 쓰는 무겁고 큰 사진기하고 엇비슷하다. 어느 모로 본다면, 자그맣고 가벼운 디지털사진기는 커다랗고 무거운 디지털사진기보다 화소수가 높다.

- 자그맣고 가벼운 사진기는 완전수동으로 놓고 빛느낌이나 빛깔이나 그림자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웬만한 자리에서는 자동으로 찍어야 한다. 웬만한 자리에서는 자동으로 불을 터뜨리거나 감도를 높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 잘 안 나온다. 그러나, 이 사진기를 목에 걸고 언덕을 넘을 때에는 목이 안 아프고 몸이 덜 고단하다.

- 읍내 찐빵집에 들러 만두랑 찐빵을 산다. 아이가 찐빵집 할매와 할배 앞에서 까르르 웃으면서 논다. 둘째는 갓난쟁이라 하지만 워낙 얌전한데, 첫째는 갓난쟁이 때부터 다른 사람한테 덥석 잘 안기고 잘 웃으며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크면 클수록 귀여움을 더 많이 받는다.

- 옆지기가 먹고 싶다 해서 피자를 산다. 몇 번 들르지 않았으나 그동안 가던 피자집은 ‘맛은 있으나 마음씨가 차가웁’기에 내키지 않는다. 오늘 새로 간 피자집은 ‘맛은 떨어지지만 마음씨가 차가웁지 않’다. 나는 맛이 더 나은 데로 가지 못한다. 애쓰고 힘써도 맛을 더 낫게 하지 못할는지 모르지만, 착하거나 따스히 일하는 사람들 가게에서 물건이나 먹을거리를 사고 싶다. 나는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자리보다 집식구하고 더 사랑스레 어울릴 겨를을 낼 수 있는 일자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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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8.13.
 : 내장 터진 개구리와 빗길


- 장날은 어제 읍내로 나오려 했지만, 비가 너무 쏟아지는 바람에 길을 나서지 못했다. 13일인 오늘도 낮부터 비가 내린다고 했지만 아침에는 비가 멎었기에 아이와 함께 읍내로 마실하기로 한다. 오늘 어떤 먹을거리를 장만해야 하는가를 수첩에 적는다. 당근, 양배추, 마늘, 무, 양파, 오이.

- 아이는 오랜만에 자전거를 탄다며 좋아한다. 아이를 수레에 앉히고 띠를 채우는데, 띠에 핀 곰팡이가 보인다. 비가 끝없이 내리니 이 띠에까지 곰팡이가 앉는가.

-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읍내로 가는 오르막에서 신나게 땀흘리며 오르다가 개구리 한 마리를 본다. 개구리는 내장이 다 튀어나왔고 머리가 어디론가 날아갔다. 자동차에 치이고 밟혀 죽은 개구리 주검을 지나친다. 조금 가다가 자전거를 돌려 개구리 주검 자리로 돌아온다. 딱하게 죽은 개구리한테 고개를 숙인 다음 사진을 찍는다. 수레에 앉은 아이가 고개를 내밀며 죽은 개구리를 바라본다.

- 읍내에 닿을 무렵 빗방울이 듣는다. 우리 집에도 빗방울이 들을까. 집에 전화해서 마당에 내놓은 빨래를 걷으라고 이야기한다.

- 가게에 들러 오늘 장만할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가방에 담는다. 자전거집에 들러 내 자전거 뒷바퀴 옆자리에 깃대꽂이를 단다. 깆대꽂이에 구멍을 내어 뒷바퀴 버팀쇠 한쪽에 붙인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빗줄기가 굵어진다. 수레 안쪽에 물이 튀지 않도록 종이상자 하나를 펼쳐서 깐다. 아이한테 비옷을 입으라 한다. 덮개를 닫는다. 나도 비옷을 입는다. 빗줄기가 아주 거세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들이붓는다. 들이붓는 빗줄기를 가르며 달리자니 죽을맛이다. 아이는 수레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할까. 덮개를 후려치는 무시무시한 빗줄기를 아이는 어떻게 느낄까.

- 빗줄기는 숯고개 오르막까지 가늘어지지 않는다. 숯고개 오르막에 닿을 무렵 빗줄기가 잦아든다. 참 사람을 애먹이는 비로군요, 하고 생각하다가는, 그래도 이렇게 고갯마루부터는 비가 그쳤으니 고맙군요, 하고 인사를 한다.

- 아이는 고갯마루에 닿을 무렵 잠든다. 덮개를 덮은 채 내리막을 달린다. 비탈논에서 넘치는 물이 내리막길을 적신다. 흐르는 물이 자전거로 쏟아진다. 집에 닿으니 온몸은 비와 땀으로 범벅이고, 아이는 새근새근 잘 잔다. 자는 아이 비옷을 살며시 벗기고 살살 안고 자리에 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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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8.10.
 : 사진기는 살짝 내려놓고



- 읍내로 후다닥 볼일을 보러 나가는 길. 아이는 집에서 어머니하고 영화를 보기로 하고 아버지 혼자 나선다. 아버지 혼자 길을 나설 때에도 으레 사진기를 챙기지만, 비가 하도 끊이지 않기에 오늘은 사진기를 내려놓고 나선다. 아이를 수레에 태우지 않는데다가 사진기까지 집에 내려놓고 나서는 마실길은 참 따분하다.

- 오가는 자동차가 거의 없는 시골길을 달리는데, 이런 길을 달리면서도 아주 가끔 보는 얄궂은 자동차가 꼭 있다. 오가는 자동차가 거의 없다지만, 길가에 함부로 대는 자동차들. 이들은 왜 아무 데나 자동차를 댈까. 읍내에서든 시내에서든 똑같은데,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저희 볼일을 보자며 아무 데나 차를 세운다. 자동차가 한 줄로 죽 섰어도 옆에다가 새로 차를 멈춘다. 뒤에서 지나갈 차가 지나가지 못하게 길을 막으면서 저희 볼일을 버젓이 본다. 무슨 마음일까. 무슨 생각일까. 어떻게 이런 못된 버릇이 들었을까. 왜 이런 못난 매무새로 살아갈까.

- 길바닥을 기어가는 개미를 본다. 언제나 개미를 본다. 자그마한 벌레가 내 앞을 볼볼볼 기어갈 때면 얼른 뒷거울을 보며 뒤따르는 자동차가 있는가를 살핀다. 내 자전거 바퀴가 벌레를 밟지 않게끔 요리조리 비껴 달린다.

- 읍내를 다녀오는 그닥 길지 않은 시골길에서 수많은 주검을 늘 보아야 한다. 어떠한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죽음이요, 어떠한 사람도, 환경운동 일꾼도, 진보 지식인도, 우익인사도 헤아리지 않는 죽음이다. 길바닥 개미와 길바닥 나비를 바라보는 내 자전거는 바보스럽거나 어리석은 자전거일까.

- 길은 자꾸 넓어진다. 길은 끝없이 늘어난다. 사람이 사람다이 오갈 길은 좀처럼 늘지 않는데다가, 사람이 사람다이 오가던 길은 이 옆을 싱싱 달리는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 때문에 숨이 막힌다.

- 읍내에서 몇 가지 먹을거리를 장만하고 우체국을 들르고 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끔찍한 사람들을 겪다. 이들은 아무런 자동차가 오가지 않는 호젓하며 고즈넉한 시골길에서 시끄러이 빵빵대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더니, 이렇게 스쳐 지나가면서 담뱃재를 탁탁 턴다. 너무 어처구니없지만, 막말이나 거친 짓을 하고 싶지 않지만, 오른손을 들어 가운뎃손가락을 쭉 뻗으며 앞으로 휘젓는다. 이들이 내 몸짓을 볼 일은 없겠지. 이들은 어디에서나 이렇게 살겠지. 부디, 사람 치지 말고 멧짐승 다치지 말면서 자동차를 몰기를 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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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7.30.
 : 자전거쪽지 2011.7.30.


- 내 자전거는 아이를 태우고 수박을 싣고는 멧부리를 넘는다. 아이는 수레에 앉아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는 오르막에서 땀을 비처럼 쏟으면서 멧길을 달린다.

- 아이야, 즐겁지? 그래, 네가 즐거웁도록 이렇게 자전거를 몰아야지. 아버지는 너랑 길을 나서기 앞서 둘째 기저귀 빨래를 남김없이 해 놓는다. 너와 읍내를 다녀온 다음에는 너를 씻기거나 너를 재운 다음 네 옷가지하고 아버지 옷가지에다가 이동안 쌓인 동생 기저귀를 함께 빨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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