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9.10.
 : 나비 주검

 


- 아주 오랜만에 수레와 샛자전거 모두 뗀 홀가분한 자전거를 달린다. 옆지기가 미국 람타학교에서 돌아왔으니 아이들 안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셈이지. 도서관에 들러 청소를 한다. 며칠 앞서 비가 내렸기에, 비가 새는 곳에 빗물이 고였다. 이 빗물을 밀걸레로 문지르면서 골마루를 닦는다. 비질과 밀걸레질을 마치고는 우체국으로 가서 편지를 부친다. 이제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청룡마을 쪽 접어드는 언덕길을 달린다. 언덕길 한쪽에 석류나무밭 있다. 누가 따로 심어서 돌볼 텐데, 찻길을 따라 두 줄로 석류나무가 자란다. 붉게 익는 알이 소담스럽다.

 

- 홀로 자전거를 달리니 무척 가벼운 한편, 자전거 발판 밟는 느낌이 다르다. 그동안 아이들 태우는 발판질에 익숙하다 보니, 혼자 타는 자전거 발판질이 갑자기 잘 안 된다. 자전거가 자꾸 흔들린다. 미후마을 장촌마을 지나 신촌마을 언저리 닿기까지 곰곰이 생각한다. 자전거 뒤에 수레나 샛자전거 붙일 적에는 발판질을 그만큼 무겁게 하고, 이렇게 혼자 가볍게 자전거 달릴 적에는 발판질도 그만큼 가볍게 해야 한다고 느낀다. 가볍게 밟자, 가볍게, 가볍게.

 

- 신촌마을에서 해창 들판 접어드는 샛길로 들어선다. 안동마을 즈음 해창만 드넓은 들판 쪽 길로 빠진다. 그런데, 한참 달리고 보니 길이 없다. 바닷물 흐르는 데가 나온다. 오던 길을 거슬러 달린다. 이쪽에는 자전거로 들어올 사람이 없을 테니 알림판 세우지도 않을 테고, 이리로 들어서는 이들은 들판을 일구는 농사꾼 짐차와 경운기뿐일 테니 알림판 없어도 저마다 길을 다 알겠지. 한참 돌고 다시 돌며 빙빙 돈 끝에 남촌마을까지 나온다. 송산마을 어귀까지 온다. 다시 돌고 더 돈 끝에 해창만방조제로 나오고,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해창만공원 옆을 스친다.

 

- 두 시간 즈음 해창 들판을 헤매고 달리며 생각한다. 이 너른 들판은 모두 뻘밭이었다는데, 얼마나 넓은 뻘밭이 사라진 셈일까. 이 너른 들판을 달리며 풀벌레 노랫소리 거의 못 듣는데, 이 너른 들판에는 얼마나 푸른 숨결이 감돌까. 이 너른 들판에도 나비가 몇 날지만, 마을에서 만나는 나비와 대면 아주 적다. 어떤 소리가 흐르는 들일까. 어떤 내음이 감도는 들인가. 드문드문 지나가는 자동차한테 치이고 밟혀 죽은 범나비 한 마리를 본다. 자전거로 옆을 슥 지나쳤다가 한참만에 돌아온다. 아무래도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나비 주검을 한둘 아닌 수십씩 마주치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풀섶으로 옮기기는 힘들는지 모르나, 언제나 모르는 척 지나칠 수는 없다. 길바닥에 납짝쿵으로 눌러붙은 주검을 어렵게 뗀다. 풀섶에 내려놓는다. 너는 바람이 되고, 너는 빗물이 되고, 너는 햇살이 되고, 너는 꽃이 되어, 이 땅에서 곱게 웃을 수 있기를 빈다.

 

- 집으로 돌아간다. 세 시간 남짓 자전거를 달리니 엉덩이가 몹시 아프다. 옥강리 내초마을 앞에서 노란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 넷 본다. 이 노란버스는 오취 쪽으로 달리다가 다시 포두 쪽으로 돌아나온다. 돌아나오면서 자전거 옆으로 아주 바짝 붙으며 시잉 달린다. 초등학교 아이들 태우는 노란버스인데 얌전히 달려야 하지 않나. 노란버스는 되도록 천천히 달려야 하지 않나. 이 시골마을 아이들은 시잉 달리는 노란버스를 타면서 무얼 생각할 수 있을까. 마을마다 조그맣게 있는 배움터 아닌 면소재지나 읍내에 있는 학교까지 먼길을 오가면서 무엇을 보거나 느낄까.

 

- 흙밭과 자갈밭 한참 달린 자전거는 먼지투성이가 된다. 오랜 나날 나와 함께 어디로든 달리는 자전거가 고맙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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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12 17:27   좋아요 0 | URL
사진들이 너무 좋습니다~
자동차에 치이고 밟혀 죽은 나비를 어렵게 떼어 풀섶에 내려 놓고 나비에게
바람이 되고 빗물이 되고 햇살이 되고 꽃이 되어 이땅에서 곱게 웃을 수 있기를 비신
함께살기님의 마음에 찡해집니다...
아, 길가의 나무에 석류가 빨갛게 열렸네요~^^

숲노래 2013-09-12 17:50   좋아요 0 | URL
이날 사진을 200장쯤 찍었어요.
다른 글 하나를 쓰려고
이 글에는 몇 가지만 뽑았어요.

놀라운 시골마을 가을빛 담은
사진 곧 선보일게요~ ^^
 

자전거쪽지 2013.7.24.
 : 나리꽃 자전거

 


- 아이들과 놀기란 아주 쉽다. 그저 마음을 홀가분하게 열고 아이들하고 놀면 된다. 아이들은 아주 놀랍거나 대단한 깜짝잔치를 베풀어 주어야 반기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전거에 태워 가까운 면소재지 우체국 다녀오는 길로도 즐거워 한다. 그러면, 자전거는? 대단한 자전거를 몰아야 아이들과 다닐 수 있지 않다. 튼튼한 자전거라면 다 즐겁다. 여느 짐자전거라면 뒷자리에 방석을 깔아 아이 하나 앉힐 만하고, 손잡이와 안장 사이에 조그마한 걸상을 놓아 아이 하나 더 앉힐 만하다. 돈을 조금 들일 수 있으면 자전거수레 하나 장만할 수 있다. 아이 태우는 자전거수레는 20∼30만 원이면 장만할 수 있다. 우리 집 아이는 둘이고, 큰아이는 여섯 살 되면서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나란히 못 태운다. 큰아이 몸이 많이 큰 만큼 따로 샛자전거를 붙여서 달린다. 샛자전거는 10∼20만 원 즈음 헤아리면 장만할 만하다. 이만 한 값을 비싸다고 여긴다면 가없이 비쌀 테지. 그런데, 이만 한 값은 자동차 기름 몇 번 넣을 만한 값일 뿐이다. 자가용을 덜 타고 자전거를 장만해서 아이들과 즐겁게 삶을 누릴 적에 얻는 보람과 빛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돈으로 셀 수 없는 웃음과 이야기를 낳는다.

 

- 한여름 더위가 한풀 꺾이려는 너덧 시 즈음 아이들을 부른다. “얘들아, 이제 땡볕이 덜 따가우니 자전거 탈까?” ‘자전거’ 소리에 작은아이가 먼저 고개를 홱 돌려 쳐다본다. “자정거? 자정거 타자!” 하면서 부리나케 마당으로 내려선다. 큰아이도 바로 따라온다. 수레와 샛자전거 붙인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으니 작은아이는 누나가 앉는 샛자전거에 붙은 무당벌레 딸랑이를 만진다. 아이야, 네가 무럭무럭 자라서 샛자전거에 앉을 수 있으면 이제 네가 이것 늘 만질 수 있어. 그때에 네 누나는 혼자서 따로 자전거를 몰 수 있겠지.

 

- 소포꾸러미를 수레에 싣는다. 물을 챙긴다. 자, 이제 달릴까. 우체국으로 신나게 달리는 길에 호덕마을과 원산마을 들판 맞닿는 자리에 핀 나리꽃을 본다. 마을 어르신들이 틈틈이 풀베기를 하느라 해마다 몽땅 베여 죽는데, 용하게 해마다 다시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운다. 땅에 뿌리박은 숨결이란 이렇게 씩씩할까. 마을 어르신들은 어느새 논둑이나 밭둑에 이처럼 고운 꽃 피어나도 썩 반기지 않는데, 집안 마당 한쪽에 일구는 꽃밭에서만 꽃을 보려 하시는데, 너희 들나리(들에서 피는 나리)는 기운차고 다부지게 살아가는구나.

 

-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친다. 소포를 부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까 본 나리꽃 앞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큰아이한테 꽃내음 맡아 보라 이야기한다. 키 껑충 자란 나리꽃을 보려고 꽃대를 살살 잡아 끌어당긴다. “아, 냄새 좋다!” 냄새를 맡고 또 맡는다. 냄새를 맡고 자꾸 맡는다. 얘들아, 이 여름 지나고 가을이 와서 다시 너희가 싹둑 베이더라도, 이듬해 여름에 또 이렇게 어여쁜 꽃잔치 베풀어 주렴. 언제나 씩씩하고 다부진 고운 빛으로 우리 마을에 꽃빛을 나누어 주렴.

 

- 집에 닿는다. 큰아이한테 대문 열어 달라고 말한다. 큰아이는 콩콩 달려간다. 대문을 연다. 착하고 예쁘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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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8.28.
 : 별학산 넘기

 


- 여름이 저문다. 올 한 해 여름비 거의 없이 땡볕만 가득했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더위가 차츰 식으며 가을이 다가온다. 제아무리 모진 더위라 하더라도 시원스런 바람과 함께 겨울이 식힐 테고, 제아무리 드센 추위라 하더라도 따스한 바람과 함께 봄이 어루만져 주겠지. 더위가 한풀 꺾이는구나 싶어, 모처럼 퍽 멀리까지 자전거마실을 할까 하고 생각한다.

 

- 마을마다 콩을 터느라 부산하다. 자동차 뜸한 마을이면 찻길에 길게 콩포기를 펼친다. 펼친 콩포기는 할아버지가 경운기로 밟아 털고, 할머니가 방망이를 두들기며 마무리짓는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 할매 할배 곁을 지나갈 적에 큰아이가 꼬박꼬박 “할머니 안녕하셔요!” “할아버지 안녕하셔요!” 하고 외친다.

 

- 자전거를 몰며 나들이를 나오자마자 큰아이는 새근새근 잔다. 작은아이한테 자전거마실은 낮잠 누리는 마실이다. 큰아이도 제법 졸릴 텐데 졸음을 참으며 함께 잘 달린다. 도화면 서오치를 지나고, 처음 마주하는 오르막을 땀 빼며 오른다. 면소재지 언저리 길가에 심은 감나무는 키가 작다. 감을 따기 좋도록 키가 안 자라게 가지치기를 한 탓일 테지. 그런데, 감을 딸 적에는 따더라도 이 길에 그늘을 누릴 수 있도록 키가 좀 크도록 하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한다. 그늘이 없는 길은 걷기에 몹시 힘들다.

 

- 길에 그늘이 드리우자면,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야 하는데,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자면 찻길을 따라 전봇대가 없어야 한다. 전봇대가 있더라도, 나뭇가지를 함부로 안 자르면 된다. 나무가 높이높이 자라 전봇대 키를 껑충 넘으면 전깃줄이 나뭇가지에 걸리느니 어쩌느니 걱정할 일이 없다. 걱정해야 한다면, 전봇대와 전깃줄 때문에 나무가 아파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해야 옳다고 느낀다.

 

- 지등마을 지나고 이목동마을 가까이 닿을 무렵, 길가에서 새 주검 하나 본다. 자전거로 슥 지나치다가 빙 돌다. 새 주검한테 다가선다.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왜요?” “응, 저기 새가 죽었어.” “새가? 정말? 왜 죽었어?” “아마, 차에 치여 죽었겠지.” 자전거를 세운다. 참깨꽃 하나둘 지며 열매를 맺는 길가에서 가녀린 새 주검을 손에 쥔다. “나도 보여줘.” “제비야, 너는 다음에 꽃으로 태어나렴. 꽃으로 태어나면 너를 치여 죽일 사람은 없겠지.” 마을 어르신들은 찻길 가장자리까지 참깨를 심거나 콩을 심는다. 제비 주검을 누일 마땅한 자리가 딱히 안 보인다. 한참 여기저기 헤맨 끝에 빈 풀섶 조그마한 자리를 찾는다.

 

- 황촌마을 지난다. 여의촌마을과 강동마을 지날 무렵 우체국 일꾼을 만난다. 오토바이를 몰며 편지를 나르는 우체국 일꾼하고 큰아이하고 몇 마디 주고받는다.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는 누구라도 만나면 깍듯이 인사를 한다. 얼마나 예쁜가.

 

- 남당마을 앞 너른 마당은 콩을 터는 할매와 할배로 부산하다. 바닷마을 콩밭에서 자란 콩은 바닷바람과 바닷내음 물씬 들이켰겠지. 햇볕과 바람과 빗물뿐 아니라 바다가 들려주는 노래까지 새록새록 담았겠지.

 

- 풍남항에 닿다. 풍남초등학교 옆에 있는 영월수퍼 앞에 자전거를 세운다. 아이들한테 얼음과자 하나씩 사 준다. 작은아이도 이제 낮잠에서 깬다. 잘 잤지? 이제 우리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별학산을 넘자꾸나. 우리가 이 자전거로 비봉산 기슭과 천등산 기슭과 마복산 기슭을 넘었잖아. 오늘은 별학산 기슭을 따라 넘어가 보자고.

 

- 영호마을에 닿을 즈음, 큰아이가 “아버지, 저기 바닥에 뭐야?” 하고 묻는다. “뭐? 아, 그거? 우리 집에도 많잖아. 생각 안 나?” 자전거를 세운다. “자, 내려서 들여다봐.” “뭐지?” “후박 열매야. 먹어 봐.” 멧새들 많다면 이 후박 열매 먹느라 바쁠 텐데, 마을마다 하도 농약을 쳐대니 새들이 살아날 길이 없다. 올해에는 지난해와 견줘 새를 드물게 만난다. 새가 곡식이나 씨앗을 쪼아먹는다고 하는데, 새들이 먹이가 사라지니 자꾸 쪼아먹는다. 새가 있어야 벌레와 나방도 잡아먹고, 이렇게 널브러진 후박 열매를 비롯해 숲나무 열매를 먹을 텐데, 새가 자꾸 자취를 감추며 농약에 살충제에 온통 화학약품 범벅이 된다. 새가 노래하지 않는 곳을 시골이라 할 수 있을까. 새가 날갯짓하지 않는 데를 숲이라 할 수 있을까. 새는 죄 사라지고 사람만 남는 데에서 제대로 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 영호마을 어귀에 있는 우체통 빨간 빛이 도드라진다. 저 우체통은 앞으로 언제까지 저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이 시골마을에서 우체통에 편지를 넣을 할매나 할배는 몇 분이나 있을까. 요새는 편지 아닌 손전화로 안부 인사를 나눌 테니, 참말 시골마을 우체통은 머잖아 모두 사라지리라 느낀다.

 

- 저 멀리 천등마을 들판을 바라보면서 냉정마을 어귀를 오른다. 이제부터 오르막이다. 가쁜 숨을 고르며 천천히 자전거 발판을 밟는다. 첫가을 언저리이지만 한낮 햇볕은 뜨겁다. 한여름처럼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지 않으니, 멧기슭 타고 달리는 자전거는 이렁저렁 나무그늘을 누린다. 나무그늘 없는 길을 달릴 적하고 나무그늘 있는 길 달릴 적은 사뭇 다르다. 건물이 드리우는 그늘은 그다지 안 시원하다. 나무는 조그마한 나무라 하더라도 그늘이 참 시원하다.

 

- 오리나무숲을 실컷 느끼며 별학산을 넘는다. 얘들아, 우리 셋이 이렇게 자전거를 몰아 별학산을 넘는단다. 멧길 달리는 느낌을 알겠니?

 

- 내율마을 지나고 율치다리 건넌다. 푸른 들판에 누르스름한 빛이 살몃살몃 감돈다. 가을빛은 천천히 천천히, 그야말로 천천히 온 들판으로 찬찬히 스며든다. 풍양면소재지 쪽으로 자전거를 꺾는다. 풍양중학교에 닿는다. 학교에 들러 아이들과 논다. 아이들은 너른 마당 있는 데라면 어디이든 즐겁다. 달리고 뛰고 만지고 구르면서 신나게 논다.

 

- 저녁 다섯 시에 다시 자전거에 오른다. 해가 떨어지기 앞서 집으로 돌아가자. 해가 떨어지면 마당에 넌 빨래가 다시 축축해진다. 우리 얼른 돌아가자. 오던 길을 되짚는다. 별학산 기슭을 다시 넘는다. 할매 한 분 우리처럼 별학산 기슭을 넘으려 한다. 할매는 짐을 실은 작은 수레를 끈다. 할매는 이녁 젊을 적부터 이 고개를 숱하게 넘으며 살아오셨겠지요.

 

- 저녁해가 되며 별학산 기슭은 온통 나무그늘이 된다. 내리막을 그늘길로 달리며 매우 시원하다. 냉정마을과 영호마을 앞을 싱싱 달린다. 남당마을 앞에서 살짝 자전거를 멈춰 아이들한테 물을 준다. 다시 자전거를 몬다. 바닷바람을 마시고, 바닷노래를 들으면서 자전거를 차근차근 몬다. 더 빠르지도 않고 더 느리지도 않게 자전거를 달린다. 하늘은 파랗고 바다도 파랗다. 하늘과 바다는 한동아리 빛깔이다. 구름 하나 없이 파란 하늘 저 끝자락부터 하얗게 물든다. 하얀 물은 이내 발그스름하게 바뀌고, 발그스름한 빛은 곧 저녁노을이 되겠지. 우리 마을도 이웃 여러 마을도 가을볕 골고루 받는다. 가을노래는 물결 따라 천천히 번지고, 바닷마을도 들마을도 멧마을도 산들산들 시원스레 감도는 바람이 어루만진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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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8.29.
 : 제비야, 방아깨비야

 


- 어제 우체국에 갔을 때에 등기우편 하나를 못 보냈다. 잘 보려고 잘 챙긴다고 하다가, 그만 집에 두고 안 가져갔다. 오늘 날씨를 보니 낮부터 비가 올 듯하다. 아침 일찍 우체국에 다녀와야겠구나 싶어, 바지런히 아침을 차려 아이들 먹이려는데, 아이들이 배고프다 하면서도 제대로 안 먹고 놀기만 한다. 바삐 등기우편과 소포를 꾸려 나가려 하는데, 이동안 작은아이는 밥을 안 먹고 크레파스를 우물우물 씹는다. 얘야, 크레파스가 그리 맛있니. 너희 먹으라고 밥을 차려 놓았는데, 왜 밥은 안 건드리고 크레파스를 먹니. 큰아이야, 너는 네 동생이 크레파스 씹어먹는데 곁에서 만화책만 들여다보고 동생은 안 돌보아도 되니. 너도 밥은 먹기 싫고 만화책만 보고 싶니.

 

- 바람이 세게 분다. 여름을 떠나보내는 바람일까. 비를 부르는 바람일까.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가 “아버지, 저기 구름 좀 봐야. 저기는 하얀 구름이고 저기는 까만 구름이야. 아버지, 구름 좀 보라구요.” 하고 말한다. “그래, 구름 다 봤어.” 어제 퍽 먼 데까지 자전거마실을 다녀온 탓인지, 다리가 아주 무겁다. 몸도 매우 무겁다. 어제는 아이들 태우고 세 시간 즈음 자전거를 탔다. 이렇게 자전거를 타면 이튿날은 다리를 느긋하게 쉬어야 하는구나.

 

- 군과 도에서 벌이는 ‘시골마을 상수도사업 공사’가 한창이다. 길을 파헤쳐서 물관 묻은 자리에 어제오늘 새로 아스팔트를 덮는다. 아무렇게나 파헤쳐 놓은 채 여러 달 그대로 두더니, 어제오늘 갑작스레 아스팔트를 덮는다. 이렇게 하루이틀 사이에 덮을 만한 일이라면, 길을 파헤친 뒤 곧바로 아스팔트를 덮었어야 옳다. 그동안 자전거뿐 아니라 자동차도 다니기 힘들게 길을 파헤쳐 놓더니, 딱히 더 공사를 할 것이 없었다면, 마무리를 깔끔히 할 노릇 아닐까. 도시에서 공사를 이렇게 한다면, 신문·방송사에서 취재보도를 하며 이러쿵저러쿵 시끄러웠을 텐데.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큰아이가 아버지를 또 부른다. “아버지, 저기요. 저기 제비 죽었어요. 제비 풀밭으로 옮겨 주고 가요. 아버지. 그냥 가지 마요.” 요즈음, 제비 몇 마리 차에 치어 죽은 모습을 보았다. 어제그제 이들 제비 주검을 풀밭으로 옮겨 주었다. 오늘 본 제비 주검은 자동차 바퀴에 얼마나 밟혔는지 몸통과 머리가 사라지고 날개만 남은 납작꿍이다. 저 주검은 할 수 없겠거니 생각하며 지나치려는데, 큰아이가 자꾸 부르기에 자전거를 돌린다. 손으로만 떼어내기 힘들어, 나무막대기 하나를 쓴다. 가까스로 떼어낸다. 깃털이 파르르 떨어지며 날린다. 자그마한 깃털 셋을 건사한다. 이 조그마한 깃털로 조그마한 날개를 이루고, 조그마한 몸통을 하늘에 띄워 멀디먼 길을 날아다니는가.

 

- 차에 치이고 밟힌 들짐승이나 새 주검을 풀밭으로 늘 옮기기는 하지만, 시골이라 하더라도 풀밭이 드물다. 조그마한 땅뙈기 하나조차 밭으로 삼으려 하고, 논둑은 죄다 시멘트로 덮인다. 이러니 작은 짐승들 주검을 옮기려면 풀밭을 찾으려고 퍽 헤매야 한다.

 

- “벼리야, 걱정하지 마. 제비는 아름다운 나무로 다시 태어날 테니까.” 제비 주검을 풀밭으로 옮긴 뒤 몇 미터 앞에서 방아깨비 주검을 본다. 방아깨비는 차에 치이거나 밟히지 않았다. 몸통이 통통히 있다. 살며시 들어 주둥이를 살피니, 농약을 맞아 죽은 티가 난다. 그래, 제비는 자동차에 치이고, 풀벌레는 농약에 스러지는구나. 사람들은 제비도 참새도 그저 다 싫어하지. 사람들은 방아깨비도 메뚜기도 개구리도 그예 모두 미워하지. 그러면, 이 지구별에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지구별에 모든 들짐승과 새 사라지고 사람만 남으면 될까. 사람만 남는 지구별에는 미움도 싸움도 전쟁도 없이, 사랑과 평화와 평등이 감돌 수 있을까. “벼리야, 방아깨비는 예쁜 꽃으로 다시 태어난단다.” 부디 예쁜 꽃으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 손에 다시 애처롭게 죽지 않기를 빈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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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8.20.
 : 구름과 바람과 벼꽃

 


- 마을 빨래터를 청소하면서 물놀이를 한다. 아이들이 한참 물놀이 하는 모습 지켜보다가 자전거를 빨래터 옆으로 끌고 오기로 한다. 땡볕 내리쬐는 날씨에 아이들이 집까지 갔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오자면, 애써 물놀이를 하며 식힌 몸에 다시 땀이 흐르리라 생각한다.

 

- 볼그스름한 꽃이 가득 핀 배롱나무 밑에서 자전거에 태운다. 나무그늘 구비길을 달린다. 나무그늘 구비길이 끝나면 곧바로 들판이다. 들판에는 그늘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탁 트인 들판에서는 들바람이 분다.

 

- 들바람 냄새를 맡는다. 냄새가 다르다. 지난 이레 동안 바깥마실 다니느라 자전거를 못 탔는데, 이레만에 마을 들판을 자전거로 달리니 사뭇 다른 냄새가 흐른다. 자전거를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일찍 심은 벼는 벼꽃이 맺혔다. 벼꽃이 맺히면서 볏잎은 푸른 기운이 조금씩 빠져나가 살짝 노르스름한 빛이 돌려고 한다. 저 자그마한 벼꽃이 어우러져서 들빛이 달라지는구나. 얘들아, 냄새를 맡으렴. 이제부터 날마다 들내음이 달라진단다. 벼꽃이 핀 오늘 이곳 냄새는 이 다음날 다시 지날 적에 다른 냄새가 되고, 또 다음날 다시 지날 때에 다른 냄새가 된단다.

 

- 들내음 맡으며 하늘을 본다. 하늘빛도 남다르구나 싶다. 구름과 하늘이 빚는 맑은 기운을 들이마신다. 바람이 불며 들이 눕는다. 바람 따라 살랑이는 모습은 푸른 물결빛이다. 이 푸른 물결은 곧 누런 물결이 될 테고, 누런 물결 흐드러질 무렵에는 온 들과 마을에 고소한 내음이 퍼지겠지.

 

- 작은아이는 들에 나올 적부터 잠이 든다. 면소재지 우체국 들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깨어나지 않는다. 잘 자렴. 눈으로는 안 보더라도 네 몸과 살갗은 들내음과 들빛을 모두 받아들이겠지.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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