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3일 자전거마실인데, 오늘 문득 사진을 갈무리할 수 있어, 이렇게 느즈막한 자전거쪽글을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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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4.3.
 : 봄을 달리는 자전거

 


- 시골에서 봄은 고즈넉하면서 포근하고 시원하다. 알맞게 따스하고 알맞게 시원하다. 이 시골길은 두 다리로 거닐면 온몸으로 느긋한 이야기와 소리가 감돌고, 이 시골마을은 자전거로 두루 오가는 동안 살가운 빛과 무늬가 스며든다.

 

- 하늘이 파랗게 탁 트여 자전거를 몰고 나온다.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본다. 아직 아무것도 안 심은 논에서 스스로 피어나는 봄꽃을 바라본다. 논 한복판에 들꽃이 자라기도 하고, 논둑 언저리에 자운영이 줄지어 피어나기도 한다. 이 들꽃은 해마다 온갖 농약을 얻어맞으면서도 용케 가을과 겨울 잘 견디고는 새 봄이 찾아오면 씩씩하게 돋는다. 여름과 가을과 겨울 동안 다른 풀이 한껏 자랄 뿐 아니라, 여름 동안 논에 물이 찰랑찰랑 고이는데, 흙 품에 안긴 풀씨는 참 잘 살아남는다. 게다가 경운기와 트랙터와 콤바인이 땅을 파헤치는 데에도 풀씨는 삽날과 바퀴에 다치지 않는지, 아니 다쳐서 죽는 풀씨도 있을 테지만, 더 많은 풀씨는 튼튼히 살아남는 듯하다.

 

- 들길을 가로질러 달리는 동안 자전거수레에 앉은 작은아이는 잠든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봄노래를 부른다. 그래, 봄 들길 달리는 자전거이니, 우리는 봄을 노래하고, 봄을 맛보며, 봄을 누리는구나.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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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7.8.
 : 바다를 보고 싶어

 


- 사름벼리가 바다를 보고 싶다 노래한다. 이렇게 무더운 날 바다를 가야 할까 싶으나, 곧 휴가철 되어 사람들이 바닷가로 잔뜩 놀러오면 우리 식구 느긋하게 쉴 자리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래, 오늘 바다에 가자. 마을빨래터나 마당고무통은 언제나 누릴 수 있는 물놀이인 만큼, 자전거 타고 바다 보러 가자.

 

- 발포 바닷가로 갈까 하다가 자전거를 돌린다. 다른 바닷가에도 가 보고 싶다. 익금 바닷가도 퍽 좋았다 싶은데, 그곳은 지나가며 보았으니, 오늘은 아직 안 가 본 바닷가로 갈까 싶다. 도화면 가화리 바닷가 쪽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 면소재지 빵집에 들러 빵 몇 점 산다.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일찌감치 잠든다.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는 작은 빵조각 반쯤 뜯어먹다가 아버지한테 내민다. 더 못 먹겠다고 한다.

 

- 날이 워낙 덥기에 달리는 틈틈이 쉬며 큰아이한테 물을 준다. 구름이 빠르게 흐르면서 길에 구름그림자 남긴다. 참 예쁜 빛이로구나 하고 느낀다. 구름이 그림자 드리울 때에는 참으로 시원하고, 구름이 걷혀 햇볕이 내리쬐면 무덥다.

 

- 도화면소재지 벗어날 즈음 길가에 무궁화나무 있다. 누가 따로 심었겠지. 지등마을과 이목동마을 지나 황촌마을 어귀부터 바다가 보인다. 저쪽 바닷가로는 아직 간 적이 없다. 포구만 있을는지 모래밭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자전거를 돌려 대통마을로 접어든다. 조그마한 동산을 빼고는 나무 한 그루 없이 온통 들판인 길을 땀을 쪽 빼며 달린다. 바닷가까지 온다. 생각했던 대로 황촌·대통마을 바닷가는 포구일 뿐, 아이들이 몸을 담그며 놀 만한 바닷가는 아니다. 이 아이들이 더 나이를 먹어 헤엄을 잘 칠 만하면, 이 바닷물에 첨벙 뛰어들며 신나게 놀 테지. 아이들아 씩씩하게 자라며 헤엄을 잘 배우렴.

 

- 마을회관이지 싶은 곳에 느티나무 한 그루 우람하게 섰다. 저렇게 우람하게 나무 한 그루 서니 그늘 아주 시원할 테지. 들판에서 나락도 알뜰히 거두어야 할 테지만, 들판 곳곳에 이렇게 나무 몇 그루 자라도록 하면, 일하면서도 한결 느긋하게 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황촌마을에서 벗어나 여의천마을로 간다. 여의천마을 바닷가는 어떠할까. 여의천마을도 황촌마을처럼 포구이지, 모래밭이 아니다. 그런데, 여의천마을 바닷가에는 아이들이 쉴 만한 평상이 있네. 누구라도 와서 쉴 평상이 여럿 있다. 화장실도 따로 마련해 두었다. 꽤 좋다고 느끼면서 이곳에서 쉬기로 한다. 마침 작은아이도 깬다. 큰아이는 바닷물에 들어가지 못한다며 서운하게 생각한다. 다음에는 물에 들어갈 만한 바다로 갈게, 미안하구나. 오늘은 이 나무그늘 평상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며 놀자.

 

- 평상이 있고 화장실도 있지만, 바닷가를 빙 둘러 시멘트 퍼붓는 공사를 한다. 황촌마을 바닷가에서도 이런 공사를 보았다. 왜 바닷가를 빙 둘러 시멘트벽 세우려 할까. 충청도 태안 바닷가에서는 이런 시멘트벽 때문에 오히려 모래가 바다로 휩쓸리고 말아 시멘트벽 다시 없애려고 돈을 들이는데, 전라도 고흥에서는 거꾸로 간다. 깨끗하고 아름답게 남은 사랑스러운 바닷가에 시멘트를 그예 들이붓는다. 이런 막공사와 막개발을 발전이라고 여길까? 이렇게 해서 자가용으로 ‘드라이브’ 하기 수월하도록 하면 ‘관광상품’이 된다고 여기는가? 제주섬에서도 바닷가를 빙 둘러 찻길을 닦는 바람에 바닷가 모래밭이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며 사라진다. 제주섬 해수욕장에서는 모래 날아가지 않게 하려고 비수기에는 모래밭을 꽁꽁 덮어둔다. 성수기를 앞두고는 다른 데에서 모래를 퍼서 나르기 바쁘다. 고흥군 관계자와 공무원은 이런 대목을 알기나 하는지, 살피기나 하는지 궁금하다.

 

- 바닷물에는 못 들어간 채 바다마실을 마친다. 그래도 다음에는 가화리 원도동마을과 화옥마을에도 가려 한다. 그곳도 포구일 뿐 모래밭이 없다 하더라도, 크레파스와 종이를 챙겨, 바닷가에서 그림 그리며 놀 수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로 씩씩하게 달리려 한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도화면소재지에 다시 들러서 ‘카페 유자나무’에 들른다. 이곳에서 팥빙수를 시켜서 아이들 먹인다. 시원하게 팥빙수 먹은 아이들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온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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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29 00:09   좋아요 0 | URL
'카페 유자나무' 이름이 참 좋습니다. 벼리와 보라가 먹은 팥빙수도 참 맛나게 보이네요.^^
문득, '카페 사과나무'가 머릿속에 슬그머니 떠올라...ㅎㅎㅎ
보라가 오늘은 누나의 예쁜 원피스를 입었군요~

숲노래 2013-07-29 08:38   좋아요 0 | URL
아주 조그맣고 예쁜 시골 찻집이랍니다~
 

자전거쪽지 2013.7.17.
 : 하늘을 보렴

 


- 하늘빛 파랗게 눈부신 한낮, 자전거를 이끌고 나온다. 산들보라는 많이 졸린지 낑낑거리기만 한다. 갑자기 고무신을 홱 벗고는 안 신으려 한다. 누나가 착하게 동생 신을 신긴다. 보라야, 누나가 네 떼를 다 받아주는 줄 아니.

 

- 이웃 신기마을 냇가에 오리들이 있다. 이웃마을 누군가 키우는 오리인 듯하다. 큰아이가 오리 소리를 듣고는 쳐다본다. 깃털이 온통 새하얀 오리가 예쁘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래, 너한테는 그 오리가 이쁘니.

 

- 오리 구경 마친 큰아이가 샛자전거에 탄다. 작은아이는 벌써 잠들었다. 졸린 아이들은 자전거에서 아주 잘 잔다. 큰아이도 지난날에 이렇게 수레에 앉아 낮잠을 자곤 했다.

 

- 하늘빛 바라보면서 면소재지까지 천천히 달렸다가 집으로 천천히 돌아온다. 구름이 아주 조금씩 하늘을 물들인다. 온통 파랗기만 한 하늘에 하얗게 무늬를 새긴다. 벼리야, 하늘을 보렴. 저 하늘에 하얗게 날아가는 해오라기를 보렴. 이 하늘에 네 마음도 하얗게 새기렴. 시원하고 싱그러운 빛을 가슴에 담고, 맑으며 밝은 숨결을 하늘로 흩뿌리렴.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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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20 21:11   좋아요 0 | URL
정말 어여쁜 아이들이고,
그 모습을 담으신, 함께살기님의 아름다운 사진들입니다~

파아란 하늘 사진에, 이 밤...무척 시원하고 행복하네요. ^^
감사드리며, 편안하고 고운 밤 되세요. *^^*

숲노래 2013-07-21 01:21   좋아요 0 | URL
날은 덥지만
날씨는 아름답기에
하루하루 새삼스레 누리는구나 싶어요~ ^^
 

자전거쪽지 2013.7.4.
 : 밤길이 무섭니

 


- 아침부터 내린 비는 저녁이 되어 멎는다. 비오는 날 아이들은 비 맞고 놀기를 좋아하는데, 오늘은 벼락이 끝없이 치고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분다. 이런 비라면 아이들이 마당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큰아이는 우르릉릉 꽝 하고 치는 소리가 무섭다고 한다. 작은아이는 이런 소리에 그닥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싶은데, 큰아이는 좀 다르다.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태어나서 갓난쟁이 적에 지낸 곳이 다르기 때문일까. 둘 다 많이 어린 아이들이지만, 큰아이는 세 살 때까지 도시에서 살았고, 작은아이는 멧골자락에서 태어나 세 살인 오늘까지 시골에서 살아가니 둘이 다를 수 있을까.

 

- 벼락이 치는 날이기에 셈틀 전원을 뽑고, 인터넷줄을 뽑는다. 마당에 내려가서 빗놀이 즐기지 못하니, 집에서 영화 보고 싶다 말하지만, 이런 날은 냉장고 빼고는 아무것도 전기를 먹이지 않는다. 날씨가 이러면 조용히 지내야지. 그림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면 되지.

 

- 저녁이 되어 빗줄기 멎고 벼락도 치지 않기에, 하늘을 멀리멀리 바라본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날씨 소식은 영 못 미덥다. 우리 마을 날씨는 하늘을 살피고 풀잎과 벌레와 개구리를 살펴야 잘 알 수 있다. 인터넷에서 나오는 날씨 소식으로는 우리 마을에 비가 온다고 되었으나, 막상 비가 안 오기 일쑤요, 저녁까지 비가 온다고도 나오지만, 정작 해가 고개를 내밀면서 방긋 웃을 적이 많다. 비가 멎은 지 두어 시간 지났으나, 인터넷 날씨 소식과 내가 몸으로 느끼는 날씨는 사뭇 다르다. 곰곰이 생각한다. 삼십 분만 더 기다리자. 삼십 분쯤 더 기다리면 길바닥 물기 제법 마를 테고, 그러면 우리 아이들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쯤 천천히 다녀올 만겠지.

 

- 해가 기운다. 구름이 두껍게 낀 하늘이지만, 해가 기우는 줄 느낄 수 있다. 저녁을 차려 아이들을 먹인다. 막 낮잠(이라기보다는 이른저녁잠)에서 깬 작은아이는 허둥지둥 퍼먹는다. 보라야, 네가 잠에서 깰 때에는 배고파 하겠구나 싶어, 꼭 그때에 맞추어 밥도 국도 해 놓았지. 참말 작은아이는 밥그릇만 쳐다보면서 바지런히 입으로 밥을 퍼넣는다.

 

- 큰아이와 작은아이 모두 밥그릇 싹싹 비운다. 자, 이제 그럼 자전거마실을 가 볼까. 바깥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운다. 깜깜하다. 작은아이는 어둡든 밝든 자전거를 탄다 하면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냥 좋다. 큰아이는 자전거를 탄다니 좋아하면서도 ‘밤이라 무섭다’고 한다. 벼리야, 밤은 그저 밤일 뿐이야. 너희가 저녁 아홉 시 반인 이맘때까지 잠을 안 자니, 이렇게 가볍게 자전거마실을 다녀올 뿐이야. 저녁을 먹고 배가 부르면 아이 좋네 노래하면서 조금 놀다가 자면 되잖니. 그러나, 너희는 열 시 열한 시 되어도 안 잘 낌새라 이렇게 자전거를 끌고 나온단다.

 

- 밤길을 달린다. 밤길에 자동차도 사람도 없다. 개구리 노랫소리만 들판과 마을에 가득하다. 불을 끄고 달릴까 하다가, 큰아이가 밤길을 좀 많이 무서워 하는구나 싶어 그냥 켠 채 달린다. 큰아이는 여느 때에는 조잘조잘 신나게 떠들고 노래를 하는데, 밤길에는 무섭다며 아뭇소리 없다.

 

- 해 떨어진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마실을 잘 안 다녔기 때문일까. 큰아이가 불빛 없이 깜깜한 시골마을 밤을 훨씬 어릴 적에 제대로 누린 적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내는 이 마을에서 밤마실을 꾸준히 다닌다면 큰아이도 어둠을 익숙하게 받아들여, 밤이 무서울 까닭 없이 밤은 밤일 뿐인 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큰아이는 뒤에서 “아버지, 빨리 달려요.” 하고 말한다. 무서우니까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는 소리이다. 그런데, 벼리야, 밤에는 밤 빛깔이 있어.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렴. 논에서 개구리들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렴. 자동차 하나 없이 호젓한 이 시골길을 우리들이 오롯하게 누린단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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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7.2.
 : 시골을 달리는 자전거

 


- 저녁 일곱 시 반,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는다. 아이들아, 우리 저녁마실 다녀와 볼까?

 

- 시골마을 한여름 일곱 시 반은 아직 환하다. 해는 아직 저 멧자락 너머로 넘어가지 않았다. 마당에 내놓은 빨래를 걷는다. 오늘 비가 온다 한 듯하지만 마을에서 하늘을 볼 적에는 비 올 낌새는 없다. 다만, 물기 머금은 바람이 불어 한여름인 데에도 빨래가 잘 안 마른다. 집안으로 빨래를 옮긴다. 나무로 된 평상에 덮개를 씌운다. 오늘은 비가 안 올 테지만, 아마 새벽에 비가 올는지 모르니까.

 

- 대문을 활짝 열고 자전거를 밖으로 끌어낸다. 아이들은 벌써 저 밑까지 달려 내려간다. 그러고는 다시 달려서 올라온다. 이렇게 다니기만 해도 좋지?

 

- 늘 다니던 큰길로 가다가 자전거를 돌린다. 오늘은 천천히 다니자. 논둑길로 달리면 어떨까. 마을과 마을 사이에 펼쳐진 넓따란 들판을 가로지른다. 저기 해오라기 두 마리 보인다. 나도 보고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도 본다. “아버지, 저기 해오라기 있어요. 두 마리만 있어요. 많이는 없어요.” 그래, 저녁이니까 다들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두 마리만 남았는지 모르겠다. “쟤네들 여기에서 뭐 먹어요? 쟤네들도 바람 먹어요?” “응, 바람도 먹고 개구리도 먹지.”

 

- 장마비 몰려든다고 하는데, 구름빛이 좋다. 온갖 구름 갖은 빛깔로 어우러진다. 시골에는 높다란 건물 없어 하늘을 한껏 누린다. 시골에는 널찍한 찻길 없어 조용히 하늘과 멧자락을 바라본다. “아버지, 아버지, 저기 구름이 앉았어.” 멧봉우리에 구름이 걸린 모습을 본 큰아이가 말한다. “그래, 구름이 멧자락에 앉았네.” 숲에 깃들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풀과 나무와 바람과 햇살과 흙을 누리면 모두 아름다운 생각을 가슴에 품는다.

 

- 논도랑 옆에서 자전거를 살짝 세운다. “벼리야, 소리 들리니? 이 소리가 또랑물 흐르는 소리야.” 비록 흙 아닌 시멘트로 바꾼 논도랑이지만, 도랑물 또는 또랑물 소리를 아이들과 함께 듣는다. 다시 자전거를 달린다. 길 없는 데로 달렸다가 돌아나온다. “아버지, 길 있는 데로 가야지요.” 길 있는 데로 엉금엉금 올라와서 한참 달리니 퍽 넓은 봇도랑 곁을 지난다. “아버지 저건 뭐야?” “응, 냇물. 아니 시냇물.” 봇도랑이라고 해야 할까 시냇물이라 해야 할까 모르겠다. 온통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서 막은 이곳을 참말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알쏭달쏭하다. 흙바닥 아닌 물줄기를 시냇물이나 냇물이라고 해도 좋을까? 흙바닥 아닌 시멘트바닥이 된 곳을 ‘강’이나 ‘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을마다 농약을 치니 농약 기운이 봇도랑물에 퍼지는 모습 보인다. 이런 비닐쓰레기 저런 비료푸대 그런 갖가지 쓰레기가 봇도랑물과 함께 흐른다. 그런데 이런 봇도랑물에도 물고기가 있다.

 

- 면소재지 가게에 들른다. 아이들 과자 몇 점 산다. 자, 집에 가서 먹자, 알았지?

 

-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다른 길로 빠진다. 천천히 천천히 달린다. 저녁바람을 마시고 저녁하늘을 바라본다. 어스름 천천히 깔린다. 하늘빛 천천히 바뀐다. 여름해가 지고 여름밤 찾아든다. 개구리 노랫소리 천천히 늘어난다. 이제 우리들 집에 닿을 무렵 온 마을에 개구리 노래잔치 이루어지겠지. 장마철에는 어느 집도 농약을 안 칠 테니까 이 노래잔치 흐뭇하게 누릴 수 있겠지. 곰곰이 생각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언제쯤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버릴 수 있을까. 이 나라 사람들은 언제쯤 똥오줌 거름을 내어 논밭을 일구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무래도 도시가 이토록 큰 오늘날에는 안 되리라 본다. 사람들 스스로 도시를 떠나지 않고서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도시에 앉아서 도시내기 되는데, 시골이 바뀔 수 없다. 생협이나 협동조합이니 모두 좋다만, 도시에서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짓지 못하면서 머리만 맞댄다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겠는가. 사람들 스스로 자가용을 버리지 않으니 자꾸만 시멘트길과 아스팔트길이 늘어난다. 사람들 스스로 아파트를 버리지 않으니 자꾸만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를 짓는다. 사람들 스스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노동자 쳇바퀴 삶을 버리지 않으니 시골사람은 시골땅을 농약범벅으로 망가뜨리면서 겉보기 때깔 번드레한 곡식과 열매 거두는 일을 할 뿐이다. 젊은 일꾼이 시골에 있고, 아이들이 시골에서 노래하면, 어떤 사람이 이곳에 농약을 함부로 치겠는가. 저 맑은 하늘과 구름과 햇살과 달빛과 바람이 사람들 모두 먹여살리는 줄 우리 이웃들은 언제쯤 헤아릴 수 있을까.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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