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1.24.
 : 겨울 한복판 들길에서

 


- 우체국에 다녀오는 길에 곧바로 집에 가지 않는다. 면소재지 언저리에서 치자나무 열매를 한참 구경한 뒤, 천등산 옆자락을 타고 골짜기로 가는 길로 가 본다. 지난해 가을부터 갑작스레 ‘관광도로’ 공사를 하는데, 얼마만큼 했는지 들여다보려 한다. 큰 장비들이 곳곳에 있다. 멧자락은 나무를 함부로 베어서 민둥민둥 볼썽사납다. 온갖 나무를 다 베어 놓고는 소나무 한두 그루는 덩그러니 남겨 놓는다. 이렇게 하면 빗물에 흙이 쓸려내려가는 줄 모를까. 멧자락을 함부로 깎아서 길만 반듯하게 펴려 하니까 가파르게 깎인 멧자락에 시멘트를 덮느니 무얼 하느니 하고 멧골을 아주 망가뜨리는구나 싶다. 더 들여다볼 것이 없겠다 싶어 자전거를 돌린다.

 

-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흐르는 구름을 본다. 자전거를 멈춘다. 말라서 서걱거리는 억새를 살며시 쓰다듬는다. 천천히 천천히 이웃마을을 돌아본다. 추운 날씨에 들에 나와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다. 겨울날 시골마을 할배는 모두 술만 마시겠지. 이 겨울날 시골로 찾아와 할매와 할배하고 어울려 놀려는 손자는 있을까. 도시로 떠난 분들이 낳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닌다면 겨울방학일 텐데, 방학 동안 아이들 데리고 시골마을에서 지내려는 식구는 얼마나 될까. 우리 마을을 들여다본다면, 어느 식구도 겨울방학에 시골집에서 지내지 않는다. 이웃마을도 비슷하리라 느낀다.

 

- 해가 구름 뒤로 숨으면 춥다. 해가 구름에서 고개를 내밀면 따스하다. 겨울 한복판이니까. 해야 해야 나오너라 노래하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전거쪽지 2014.2.21.
 : 바람맛이 다르다

 


- 하루 내내 일하느라 바쁘다 보니 아이들한테 밥을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한다. 아픈 곁님은 오늘 면소재지 밥집에 전화를 걸어 바깥밥을 시켜서 먹자 한다. 그런데 내 주머니에 돈이 없다. 서울마실을 하며 책값으로 돈을 퍽 쓰기도 했고, 찻삯과 여관삯으로 들기도 했기에, 딱 삼천 원이 있다. 맞돈이 없으니 무얼 할 수도 없기에, 일이 아직 밀리고 몸이 몹시 아프지만 자전거를 몰고 우체국을 다녀오기로 한다. 곁님한테는 내 몸이 아프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얘기를 해 본들 나를 보살펴 줄 만한 몸이 아니기도 하고, 얘기를 하면 우체국을 자전거 타고 다녀오지 말라 할 테니까.

 

- 몸이 아플 적에 자전거를 타면 여름에도 춥다. 봄을 코앞에 두며 퍽 포근한 날이지만, 몸 때문인지 매우 춥다. 장갑을 꼈어야 했다고 느낀다. 한참 달리며 뒤늦게 깨달았으니 돌아갈 수 없다. 영 도 아래로 떨어진 날씨가 아니나 참 힘들다. 그런데, 면소재지로 가는 길에 맞바람을 맞으면서 ‘바람이 바뀌었나?’ 하고 느낀다. 집에서 마당에 빨래를 널 적에도 바람이 바뀌는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다. 다른 고장은 어떠할는지 모르나, 고흥은 태평양 바다를 곧바로 끼는 남녘 뭍이기에, 철 따라 바람이 바로바로 달라진다. 여름이 저물고 가을 지나 겨울이 되면 높바람이 드세다. 겨울이 끝나고 봄으로 접어들면 마파람으로 달라진다. 집에서 면소재지 가는 길은 ‘마’ 쪽으로 가는 길이니, 맞바람이 된다. 거꾸로, 면소재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높’ 쪽으로 가는 길이라, 등바람이 된다. 바람맛이 다르다. 아무리 아픈 몸이라 하지만, 달라진 바람맛을 느끼며 즐겁다. 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살짝 웃는다.

 

- 우체국에 들러 10만 원을 찾는다. 면소재지 빵집에 들러 네모빵을 두 줄 장만한다. 살짝 빠듯한 이달 살림돈이지만, 새로운 책이 나오면서 널리 사랑받으면 더는 걱정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 집으로 등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달린다. 몸이 힘드니 사진기는 집에 두고 나왔다. 새봄내음이 무르익는 들길을 달리지만, 들빛을 제대로 돌아보기 어렵다. 그래도 눈에 힘을 주어 구름을 보고 하늘을 본다. 멧등성이를 바라보면서 푸릇푸릇한 기운을 느낀다. 겨울나기를 마친 풀이 새롭게 기운을 내듯이, 나도 아픈 몸을 추스르며 아이들과 다시금 알콩달콩 복닥이면서 놀자고 생각한다. 집에 닿아 땀으로 젖은 웃옷을 갈아입은 뒤 그대로 자리에 뻗는다. 세 식구는 아버지가 사온 네모빵을 먹으며 저녁끼니로 삼기를 바랄 뿐이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전거쪽지 2014.1.15.
 : 추워도 재미난 자전거

 


- 새해에 일곱 살을 맞이한 큰아이는 곧 스스로 자전거를 몰아 면소재지까지 함께 다녀올 수 있을까. 큰아이는 면소재지까지 걸어서 다녀올 만큼 다리가 튼튼하기는 하지만, 자전거는 어떠할는지 아직 모른다. 새끼바퀴를 붙인 채 간다면 갈 수 있을는지 모르는데, 거의 걷는 빠르기와 같지 않나 싶기도 하다. 큰아이가 혼자 자전거를 타도록 하자면, 샛자전거는 떼고, 작은아이 태울 수레만 붙인 채 달려야지 싶다. 아무튼, 아버지가 이끄는 자전거에 붙이는 샛자전거에서 내려 혼자 자전거를 달리자면, 한겨울에도 즐겁게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 한다. 겨울에는 겨울바람 쐬는 재미를 누리고, 여름에는 여름바람 맞는 즐거움을 누릴 때에 비로소 자전거를 탄다. 덥다고 안 타거나 춥다고 안 타면 자전거를 못 탄다. 더울 적에는 더위를 잊는 자전거를 떠올리고, 추울 적에는 추위를 잊는 자전거를 헤아려야 비로소 자전거를 탄다.

 

- 작은아이는 서재도서관에 들를 때까지는 씩씩하게 놀더니, 마을을 벗어날 무렵부터 수레에서 잠든다. 우체국에 닿으니 새근새근 잘 잔다.

 

- 바람이 세다. 우체국에 닿을 무렵에 모자를 벗은 큰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추워서 고개를 폭 숙이고 말이 없다. 호덕마을 지나서 자전거를 세운다. “벼리야, 추우면 모자를 써.” “응, 그런데 안 써져.” “그러니? 그러면 내려서 이리 와 봐.” 장갑 낀 손으로는 모자를 쓰기 힘든 듯하다. 자전거에 앉은 채 큰아이 모자를 씌워 준다. 머리카락으로는 귀를 덮어서 귀가 덜 시리도록 한다.

 

- 우리 마을로 돌아올 무렵 작은아이가 깨어난다. 애써 잠이 들었으나, 꼭 집에 닿으면 깬다. 그런데 오늘은 안아서 잠자리에 누이고 이불을 덮어 주니, 한 시간 남짓 더 잔다. 졸립기는 졸렸네. 아침부터 개구지게 놀았으니. 큰아이는 마당에서 제 자전거를 타며 빙글빙글 돈다. 슬슬 샛자전거를 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달리기를 꽤 잘 하고 키가 제법 자랐으니 5킬로미터쯤 신나게 달릴 만하지 않으랴 싶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전거쪽지 2014.1.12.
 : 못물 얼어붙는 고흥 겨울

 


- 수레바퀴 튜브를 갈았다. 이제 아이들과 마실을 갈 수 있다. 날은 춥지만 옷을 두툼하게 입히고 길을 나선다. 모자와 장갑을 모처럼 갖춘 아이들이 마당과 고샅을 달리면서 논다. 너희는 자전거를 타건 말건 그저 놀면 다 좋지?

 

- 지정마을 쪽으로 올라간다. 천등산 줄기 쪽으로 올라갈까 생각해 보다가, 아무래도 힘이 벅차다 싶어 못 옆에까지만 간다. 우리 마을과 지정마을 사이에 있는 못물을 바라본다. 반쯤은 물이 살짝 얼었다. 물이 얼지 않은 쪽에 오리 한 무리 노닌다. 이렇게 못물이 어는 날에도 물에 내려앉아 헤엄치며 먹이를 찾는 오리를 보면, 참말 이원수 님 동시에 나오듯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하는 노래가 터져나온다. 참말 너희는 괜찮지?

 

- 서재도서관에 살짝 들러 짐을 내려놓는다. 신기마을 논둑길을 달리기로 한다. 신기마을 어귀 염소우리 옆을 지나가는데, 흰개가 우리를 따라온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말한다. “아버지, 하얀 털 멍멍이가 우리를 따라와! 왜 따라와?” “왜 따라올까? 우리하고 놀고 싶은가 봐.” 원산마을 논배미를 지나 호덕마을로 접어들 때까지 흰개가 우리 자전거 옆을 나란히 달린다. 참말 심심해서 우리하고 나란히 달렸겠지?

 

- 호덕마을 둘레를 따라 달리다가 고인돌 여럿 있는 옆을 지나가는데 길이 질퍽질퍽하다. 날이 이리 추운데 이 길은 어인 진흙길? 지난해까지 흙도랑이던 곳을 어느새 시멘트도랑으로 바꾼 모습을 본다. 시골에 살며 늘 보아야 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시멘트도랑을 문화나 문명이나 복지로 여겨야 할까? 흙도랑을 없애면 시골살이 나아진다고 여겨야 하는가?

 

- 작은아이가 수레에서 잠들 줄 알았으나 잠들지 않는다. 거의 보름만에 탄 자전거라서 잠들고 싶지 않으려나. 그러나 동오치마을 지나 면사무소에 닿을 무렵, 드디어 작은아이가 잠든다. 면소재지 가게에서 자전거를 세우니 큰아이가 “아버지, 보라 잠들었어요.” 하고 말한다. “응, 나도 알아.” 가게에서 솜사탕을 보고는 사 달라고 조른다. 얘야, 너 이렇게 졸라대려면 자전거 타지 말자.

 

- 다시 자전거를 타기 앞서, 큰아이는 벙어리장갑을 하늘로 휙휙 던지면서 논다. 이제 집까지는 맞바람을 먹으며 달리는 길이다. 면소재지 벗어날 무렵, 마을 할매들이 “하나는 뒤에서 자고 하나는 앉고 가고, 좋겠네.” 하고 주고받는 이야기를 귓결로 듣는다. 면소재지에서 벗어난 뒤, 불긋불긋한 열매가 보여 자전거를 멈춘다. 그래, 치자 열매로구나. 하얀 치자꽃이 불그스름한 열매를 맺네. 가까이 다가서서 사진을 찍는다. 곁에는 새롭게 여린 줄기를 내놓는 찔레가 있다. 가시가 잔뜩 돋은 새 줄기이지만, 이 줄기가 보드랍다면서 봄날 ‘찔레싹’을 꺾어서 먹은 우리 어매들이고 아배들이다. 봄은 아직 멀었지만 찔레싹은 돋는다. 찔레싹을 꺾어서 먹을 시골사람 없지만, 찔레는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자란다.

 

- 땔감을 잔뜩 실은 경운기를 본다. 큰아이는 경운기 모는 할배한테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바람이 모질게 부니 큰아이가 춥다고 말한다. 거의 다 돌아왔지만, 자전거를 세운다. 겨울들 사진을 한 장 찍는다는 핑계로 몇 분쯤 쉰다. “벼리야, 춥지? 모자 바로 쓰고 옷 잘 여미어. 그러면 다시 간다.” 겨울에는 겨울바람을 먹으면서 자라지. 여름에는 여름볕 먹으면서 자라고. 이 겨울도 씩씩하게 나면서 네 몸에 새로운 빛을 가득 담기를 빈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전거쪽지 2014.1.11.
 : 수레바퀴 튜브갈기

 


- 20인치 튜브를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받았다. 바람을 넣어도 자꾸 바람이 새기만 하는 수레바퀴 튜브를 간다. 구멍이 났을까, 찢어졌을까. 땜질을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속에서 너무 닳았으리라 여겨 새 튜브로 간다. 날이 추워 손이 시리지만, 햇볕이 잘 드는 평상에서 튜브갈이를 한다. 마루에서 놀던 아이들이 아버지를 따라 평상으로 내려온다. “아버지 뭐 하게? 자전거 고치게?” 하면서 곁에서 알짱거린다.

 

- 겉바퀴를 벗긴다. 튜브를 빼낸다. 바퀴뼈대 안쪽 바큇살과 맞닿는 자리에 고무띠가 있지만 넉넉하게 있지 않다. 바큇살 끝자락과 튜브가 닿는 자리가 긁히거나 갈리지 않도록 고무띠를 조금 더 넓적하게 대면 좋으련만. 값싼 바퀴라 하더라도 고무띠는 제대로 대야 하지 않을까. 값싼 부품을 이렇게 어설피 만드니, 값을 더 치르면서 제대로 된 부품을 쓸밖에 없다. 자전거 즐김이로 오래도록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값비싼 부품을 쓰는 까닭을 알 만하다. 이렇게 엉성하게 대는 고무띠라면, 한창 달리면서 튜브가 안쪽에서 긁히거나 갈릴 수 있다. 자전거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무엇을 생각할까. 설마, 자전거 회사 대표나 일꾼은 자전거를 안 탈까.

 

- 새 튜브를 넣는다. 접히거나 말리지 않도록 살살 주무르면서 자리를 잡는다. 바람을 조금씩 넣는다. 잘 자리를 잡았다고 느끼며 마저 바람을 채운다. 빵빵하게 되도록 한다. 수레에 붙인다. 오늘 바로 자전거를 타며 아이들과 나들이를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하루 지켜보기로 한다. 아무 걱정이 없으면 이튿날이 되어도 바퀴가 주저앉지 않을 테지. 튜브를 주문하면서 함께 받은 자전거 씌우개로 내 자전거를 씌운다. 그동안 내 자전거를 씌우던 넓은 천막 천으로는 수레를 덮는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