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박꽃망울 책읽기



  지난해 우리 집 후박나무는 아래쪽 가지에서는 후박꽃이 거의 안 피었다. 안쪽 깊숙한 자리에서만 후박꽃이 피었다. 지난해에는 우거진 잎과 가지 사이에 묻혀 후박꽃을 거의 못 보았으나, 올해에는 아래로 낭창낭창 드리운 가지에도 꽃망울이 가득 맺혔다. 곧 꽃망울이 터지려고 한다. 비늘이 벗겨져 평상으로 떨어지고, 바람 따라 살랑이면서 고운 내음을 흩뿌린다. 사월 둘째 주로 넘어가는 후박꽃망울이 앙증맞고 어여뻐서 아이들을 불러 다 같이 꽃망울을 살살 어루만진다. 우리 집 마당에는 언제나 새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앞으로 더 많이 찾아와서 오래오래 머물겠구나.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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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헤엄을 아직 못 친다



  나는 헤엄을 아직 못 친다. 목까지 물이 차는 곳에 있으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어릴 적에 바닷물에 휩쓸려 그만 꼬르륵 하고 숨을 거둘 뻔한 일을 여러 차례 겪은 뒤로 허리 위쪽으로 물이 차는 데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물을 두려워 하기보다는 헤엄을 익히면 될 텐데, 스스로 생각을 가다듬지 못하기에 헤엄을 못 치지 싶기도 하다. 어쩌면, 어릴 적 겪은 쩌릿쩌릿한 무서움 때문에 헤엄을 몸에서 거스르는지 모른다.


  배를 탈 적마다 생각한다. 나는 아직 헤엄을 못 치는데, 이 배가 가라앉으면 어쩌나 하고. 그래서 배를 탈 때면 튜브나 조끼나 배가 어디에 있는가부터 살핀다. 그러고는 이 배가 내가 가려는 데까지 걱정없이 잘 가겠거니 생각한다. 바닷물 따라 배가 흔들릴 적마다 ‘잘 가겠지. 잘 가겠지.’ 하고 마음속으로 빈다.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면 참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배가 가라앉아서 아프거나 괴로운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게다가 배가 가라앉으면 바닷속은 얼마나 어수선할까. 사람은 사람대로 죽을 테고, 바닷속 수많은 목숨들도 가라앉은 배 때문에 죽거나 괴롭다. 바다에 기름이 흘러나올 적마다 얼마나 많은 바다 목숨들이 숨을 거두고 아파 하는가.


  어제 낮에 순천으로 볼일을 보러 다녀오는데, 곳곳에서 ‘특보’가 퍼진다. 여느 때라면 들을 수 없던 소식이다. 여느 때에는 신문도 방송도 인터넷소식도 안 살피니까. 낮에 순천에 있을 적부터 ‘수학여행 간 아이들이 잔뜩 탄 배가 가라앉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하루가 흘러도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 많은 아이들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배에 갇힌 채 그예 숨을 거두고 말았을까. 깜깜한데다가 물이 가득 차오른 그곳에서 어떤 마음일까.


  2011년 여름, 작은아이가 막 태어나고 큰아이가 네 살 적 일을 떠올린다. 그때 큰아이는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일곱 살 아이가 우리 아이를 뒤에서 미는 바람에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 모습을 오십 미터 뒤쪽에서 아주 우연하게 보았기에 부리나케 달려가서 아이를 건져내어 살린 적 있다. 큰아이는 이때부터 이태 남짓 물 가까이 가기를 몹시 꺼렸다. 이제는 이럭저럭 바닷물에서 첨벙첨벙 잘 놀고, 이때 일을 떠올리지 않지만, 아이 몸에 크게 아로새겨졌으리라 느낀다. 큰아이는 여섯 살(지난해) 때까지 곧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일’을 나한테 들려주곤 했다.


  우리 아이가 물에 빠진 그때, 며칠 동안 아무 일을 할 수 없었다.


  삼백에 가까운 아이들이 물에 빠져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길이 없다. 아이들 어버이는 모두 바닷가로 달려와서 눈이 빠져라 기다리며 빌 테지. 꼭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지만, 이 나라 우두머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많이 바쁘신가?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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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4-17 08:42   좋아요 0 | URL
너무 무서운 일이라 눈물밖에 안 나네요 자식을 안 낳아본 대통령 이라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숲노래 2014-04-17 09:46   좋아요 0 | URL
자식을 낳지 않았어도
조카가 있을 테고
이웃에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니,
가슴으로 함께 아파 하면서
1초를 서둘러 움직여야 할 텐데
무언가 갑갑하게 막히며
하나도 안 움직이는구나 싶어요.

그분이 낳은 아이가
이런 사고를 겪었어도
그렇게 미적거릴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책아이 132. 2014.4.5. 담요 쓴 책읽기



  한창 뛰놀면 땀이 나서 덥다 하지만, 얌전하게 앉아 만화책을 펼치면 서늘하다고 해서 스스로 담요를 뒤집어쓰는 아이.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조용히 앉아서 책을 넘길 때에 춥다 싶으면 햇볕 내리쬐는 바깥으로 걸상을 갖고 나가서 읽으면 되지. 그러면 따뜻할 테니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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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은 신문 들추기 (사진책도서관 2014.4.5.)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유채꽃 냄새를 맡으며 두 아이와 함께 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 둘레로 피어나는 딸기꽃을 들여다본다. 딸기 익을 철을 기다리며 하얀 꽃잎을 쓰다듬는다. 도서관 창문을 모두 연다. 향긋한 풀내음이 고소하다. 숲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은 풀내음을 먹고도 배부르겠다고 느낀다. 이 풀내음이 바로 밥이요, 풀내음과 섞이는 봄꽃가루가 맛난 숨이 되리라.


  오늘날에는 시골에서도 숲을 누리기 만만하지 않다. 외딴 멧골로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숲바람이나 숲내음을 알기 어렵다. 마을에서는 농약을 끔찍하도록 많이 쓴다. 면소재지나 읍내는 도시하고 똑같은 얼거리이다. 시골마을조차 나무그늘이 드물고, 풀밭에 드러누워 햇살을 누릴 수 있는 데를 찾을 수 없다. 시골에서는 풀밭마다 농약을 쳐대니 섣불리 풀밭에 앉거나 드러눕지도 못한다.


  살림집과 도서관을 시골로 옮기며 우리 식구가 품은 꿈 가운데 하나는, 우리 도서관에 찾아오는 책손이 ‘풀밭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쉬’도록 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나무로 짠 좋은 책걸상에 앉아서 책을 읽어도 좋고, 풀밭이나 나무그늘 맨땅에 앉아서 책을 읽어도 좋다. 책은 내려놓고 풀밭에서 뒹굴며 바람을 쐬어도 좋다. 풀노래를 듣고 풀벌레와 개구리와 멧새 노래를 가만히 들어도 좋다.


  책이란 무엇인가. 지식이나 정보를 담아야 책이겠는가. 삶을 노래할 때에 책이요, 책을 이야기할 적에 책이며, 삶을 사랑하는 사이에 시나브로 책이다.


  이런 책을 반드시 읽을 까닭이 없다. 사진길 걷는 이들이 꼭 이런 사진책을 들추어야 사진을 잘 알 수 있지 않다. 이런 책이 있어야 도서관이 되지 않는다. 종이책을 곁에 두어도 좋은 한편, 종이책에서 홀가분하게 살아가면서 이웃을 사랑하고 풀과 나무와 숲이 얼크러진 보금자리를 가꾸거나 아낄 수 있어도 좋다.


  묵은 신문을 들춘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으기만 하고 너른 자리에 펼치지 못한 신문꾸러미이다. 신문을 잔뜩 모으지는 않았다. 신문배달을 하며 살던 1995∼1999년 사이에 오려모으기를 무척 많이 했고, 어느 때에는 신문을 통째로 건사했다. 중·고등학교 다니며 모은 예전 인천 신문이 몇 가지 있다. 대학교 학보에 글을 쓰면서 건사한 대학신문이 제법 있다. 네덜란드말을 배울 적에 그러모은 네덜란드 신문이 조금 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같은 이들이 대통령이 되던 날 나온 신문이 차곡차곡 나온다. 중앙일보가 신문에 ‘한자’를 안 쓰기로 하면서 가로쓰기를 처음 하던 1995년 10월 9일치 신문이 있다. 모든 신문을 건사할 수는 없으나, 이럭저럭 뜻있고 재미난 신문들이 보인다. 우리 도서관에서 한결 너른 자리를 쓸 수 있으면 이 신문들을 알뜰히 펼쳐서 선보일 수 있겠지.


  ‘신문 박물관’이 있을까? 있겠지? 신문박물관에서는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묵은 신문을 손으로 만지면서 볼 수 있을까? 헌책방에서 찾아낸 1970년대 〈기자협회보〉라든지 〈조선일보 노동조합 소식지〉는 앞으로 여러모로 뜻있는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런 신문꾸러미는 그저 들여다보기만 하면서도 온갖 이야기가 쏟아진다.


  도서관 골마루를 이리저리 달리면서 놀던 아이들이 조용하다. 큰아이는 도라에몽 만화책에 빠졌다. 일본책인데 아랑곳하지 않고 들여다본다. 워낙 많이 읽은 만화책이니 그림만 봐도 무슨 줄거리인 줄 알 테지. 하늘은 파랗고 들은 푸른 아름다운 사월이다. 이 사월빛을 가슴에 담는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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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고 걷는 길



  아이들과 손을 잡고 걷는다. 아이들이 우리 손을 놓고 저희끼리 신나게 앞으로 달린다. 큰아이가 곁님이나 나보다 훨씬 빠르게 앞장서서 걷는다. 작은아이가 혼자서 콩콩 뛰듯이 걷다가 제 어머니 손을 잡고 걷는다. 걷다가 힘이 드니 어머니 손에 기대어 걷는 셈이다.


  어디에서 살든 네 식구는 함께 걷는다. 함께 손을 잡고 눈을 마주하면서 살아간다. 일곱 살 큰아이는 열 리 길도 씩씩하게 걸을 수 있고, 네 살 작은아이는 다섯 리 길쯤 씩씩하게 걸을 수 있다. 두 아이를 지켜보면서 곁님과 내가 이 아이들만 하던 나이에 어떤 몸짓과 눈빛으로 놀고 어울렸을까 돌아본다. 나도 씩씩하게 이 길을 걸었겠지. 나도 힘이 들면 기대거나 업히면서 다리를 쉬려 했겠지.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분다. 사월바람이 싱그럽다. 조용히 호젓하게 들길을 걸어가면서 온몸이 개운하다.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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