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을 내놓는 마음이 궁금하다. 두 권째 세 권째 시집을 내놓는 마음도 궁금하지만, 첫 시집을 이웃 앞에 내놓아 ‘나 이제 시인이라오.’ 하고 넌지시 웃는 마음이 궁금하다. 시집을 내놓아야 시인이 되지는 않고, 시집이 있어야 시인답지는 않다. 이름 높은 출판사에서 시집이 나온들 혼자 쌈지돈 꾸려 비매품 시집을 낸들 모두 같다. 백만 사람이 읽어 주어야 아름다운 시가 되지 않는다. 혼자 숲에 깃들어 나무한테 읽어 주고 풀꽃한테 읊어 주는 시 또한 더없이 아름답다. 수많은 시인들 이야기를 책으로 돌아보면, 어느 시인이든 첫 시집이 그이 걸음걸이가 되는구나 싶다. 첫 시집 틀에서 못 벗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첫 시집에서 선보이는 고운 사랑이 한결같이 흐른다는 뜻이다. 마음으로 스며드는 이야기가 감도는 시를 쓴 님이 있으면 으레 이녁 첫 시집이 궁금하다. 애틋하게 선보이는 첫 시집에서 어떤 사랑과 꿈을 푸른 숨결로 들려주는지 만나고 싶다. 4347.3.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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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사랑
조동례 지음 / 애지 / 2009년 4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4월 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4년 03월 0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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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마실 앞두고 노트북 장만할 생각

 


  지난 열 해 동안 곁에 두고 알뜰히 쓰던 노트북이 있다. 무게 990그램짜리 가볍고 작은 노트북인데, 이제껏 망가진 일 한 번 없이 참 고맙게 내 곁에 있어 주었다. 작고 예쁜 노트북은 조금 오래되다 보니 퍽 느리고, 무게가 가벼운 만큼 화면이 작아서 글을 쓰면서 살짝 힘들기는 하다. 오래된 만큼 전기줄을 꽂지 않으면 쓸 수 없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은 노트북으로 이제껏 글을 무척 많이 썼다. 헌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눌 적에도 곧바로 녹취를 하며 잘 썼다.


  열 해 앞서 이 작고 예쁜 노트북을 장만할 적에 이백만 원을 들였다. 앞으로 열 해 동안 쓸 물건이니 이만 한 값은 비싸지 않다고 여겼다. 참말 열 해를 이모저모 썼으니 기계값을 잘 건사했다고 느낀다.


  이달 끝무렵에 외국마실을 가리라 본다. 어느 방송국에서 취재 일이 들어와서 여드레쯤 외국으로 나가야 한다. 취재를 하는 동안 이래저래 움직일 테지만, 새벽과 밤에 글을 쓰자면 노트북을 챙겨야 할 테지. 그동안 잘 쓴 작고 예쁜 노트북을 가져가면 될까 싶으면서도, 이제 새로운 기계를 들여야 할 때가 되었나 하고 돌아본다. 그리 무겁지 않으면서 글쓰기와 사진편집에 걸맞을 노트북을 여러모로 알아보니 요즈음은 칠십만 원이면 넉넉한 듯하다. 참 값싸네 하고 생각하면서도 은행계좌에 돈이 없으니 곧장 장만하지는 못하겠다 싶은데, 앞으로 노트북 값은 더 내려갈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고흥에서 서울이나 부산으로 바깥일을 보러 다녀야 할 적에 시외버스나 기차에서 참 오랫동안 지내야 한다. 흔히 이동안 책을 읽지만, 마감에 맞추어야 하는 글을 써야 하기도 하고, 미처 마무리짓지 못한 글을 마무리지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언제나 피시방을 찾는데, 피시방에 기대고 싶지 않기도 하고, 기차에서도 전원 걱정을 안 하며 글을 좀 만지고 싶기도 하다.


  노트북을 새로 장만하자면 돈을 잘 벌어야 할까. 돈을 잘 벌자면 책을 신나게 팔아야 할까. 눈을 감고 가늘게 숨을 쉰다. 밤이 깊으니 어서 아이들 곁으로 가자. 4347.3.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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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지기 자전거

 


  요새는 누구나 자가용을 몬다. 요새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몸을 생각해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자전거를 탄 사람은 예나 이제나 자전거를 탄다. 시골에서도 아직 자전거에 삽이나 낫을 끼우고 들일을 가는 할배가 있다. 어느 시골이든 짐차나 경운기나 오토바이를 많이 몰지만, 아주 드물게 자전거를 천천히 달리는 할배가 어김없이 있다.


  헌책방지기 가운데 자전거를 모는 분은 매우 드물다. 거의 다 오토바이나 짐차나 자가용으로 바꾸었다. 오늘날에도 책자전거를 모는 헌책방지기는 거의 다 자가용을 끌지 않는 분이다. 돈이 없기에 자가용을 안 몰지 않는다. 자전거는 어디에나 세우기 수월하고 좁은 골목도 달리기 좋으며, 천천히 달리다가 골목골목 책꾸러미를 보면 곧바로 멈추어 가뿐히 실을 수 있다. 짐자전거에 책 백 권은 거뜬히 싣고, 이백 권은 아슬아슬 튼튼하게 여미어 나를 수 있다.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오는 이들 가운데 자전거를 타는 이는 매우 드물다. 버스나 전철을 탄다든지 천천히 걸어서 오는 이가 아직 가장 많다 할 수 있는데, 요사이는 자가용을 몰고 찾아오는 책손이 꽤 많다. 자가용을 몰아 책방마실을 할 수 있겠지. 자가용을 몰아 회사나 학교를 다니기도 하지 않는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자가용을 몰면 자가용을 몰 수밖에 없다. 자가용을 몰면서 책을 읽지 못하고, 자가용을 몰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한다. 자가용을 몰기에 봄꽃이나 가을잎을 돌아보기 어렵다. 자가용을 몰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힘들다. 라디오를 틀기는 할 테지만, 흥얼흥얼 느긋하게 노래를 부르면서 자가용을 모는 이는 몇이나 될까.


  헌책방지기는 자전거를 몰면서 바람을 마신다. 추운 겨울에는 손가락이 꽁꽁 얼지만 찬바람 씩씩하게 마신다. 더운 여름에는 땀을 씻어 주는 시원한 바람을 듬뿍 마신다. 추위에 곱은 손으로 책먼지를 닦는다. 더위를 씻은 바람맛을 헤아리면서 책을 한 번 더 쓰다듬는다. 비바람에 슬고 햇볕에 바래는 자전거는 헌책방지기와 함께 늙는다. 비바람을 맞고 햇살을 받는 자전거는 헌책방 오래된 간판과 나란히 세월을 머금는다. 4347.3.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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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놀이 12 - 자전거는 누나와 함께

 


  누나가 자전거에 태워 준다. 뒷자리에 앉으라고 동생을 부른다. 동생이 뒷자리에 앉으니 누나를 꽉 붙잡으라고 말한다. 꽉 붙잡지 않으면 떨어져서 다치고, 떨어져서 다치면 울잖니, 하고 단단히 이른다. 동생은 누나 허리를 안 잡고도 안 떨어지겠다고 으시대고 싶은 듯하지만 누나 말을 곱게 들어야지. 마당 한 바퀴를 영차영차 돈다. 큰아이는 다리에 힘이 제법 붙었지만, 큰아이 다리에 힘이 붙는 만큼 작은아이도 몸무게가 늘었다. 서로 엇비슷하다. 큰아이는 다리에 힘이 더 붙어야 마을 고샅길에서도 자전거를 끌 수 있을 듯하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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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놀이 9 - 빨래터는 우리 놀이터

 


  마을 할매는 아주 빠르게 조용히 빨래터를 치우신다. 지난 한 해 마을 할매가 빨래터를 세 차례쯤 치우신 듯하다. 세 차례를 뺀 나머지는 모두 우리 식구가 치웠다. 우리 식구는 빨래터를 치울 적에 시끌벅적하다. 아무래도 두 아이가 시끌벅적 노래하고 떠들면서 놀기 때문이다. 두 아이는 놀게 하고 아버지 혼자 신나게 벅벅 밀어 물이끼를 벗긴다. 마을 할매는 힘이 모자라 물이끼를 벗기지는 않는다. 마을 할매는 풀을 뽑기만 한다. 어느 모로 보면 서로서로 달리 치우니 한결 깔끔하게 치우는 셈이라고 할 만하다. 두 아이는 처음에는 솔질도 하고 물도 퍼내면서 거드는 시늉을 하지만, 어느덧 벽타기도 하고 다른 놀이를 찾아낸다. 아직 물이 차니 물에 들어가지는 않으나, 따사롭다 못해 후끈후끈 햇살이 내리쬐면 빨래터에 풍덩 뛰어들어 놀 테지. 조금만 기다리렴. 빨래터가 곧 신나는 물놀이터가 된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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