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님 책을 마음으로 담기

 


  진주에 있는 헌책방 〈형설서점〉에 갔다가 《아프리카 기행화문집》이라는 이쁘장한 책을 본다. 천경자 님이 빚은 책이다. 여행을 하며 그림을 누린 빛이 서린 책이다. 한참 만지작거리고 펼쳐서 읽다가 내려놓는다. 이 책 한 권에 얼마쯤 할까? 제법 비싸리라. 그렇지만, 새책방에서 사라진 이 책을 건사한 도서관이 한국에 몇 군데 있을까?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있을까? 아마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면 다른 도서관에는? 부산에는? 인천에는? 고흥에는 있을까?


  천경자 님은 고흥에서 자고 자랐다. 우리 식구는 고흥에서 살아간다. 우리 식구가 고흥으로 가서 뿌리내리며 살아가기 앞서까지, 나는 천경자 님 책을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다. 고흥으로 가고 난 뒤, 고흥읍에 있던 ‘천경자 미술관’을 알았고, 천경자 님 수필책을 새삼스레 찾아서 읽곤 했다.


  이제 고흥에는 ‘천경자 미술관’이 없다. 고흥읍에 있던 허울뿐이던 ‘천경자 미술관’은 여느 때에도 문을 열지 않아 찾아갈 수도 없었는데, ‘천경자 미술관’ 이름표만 붙였던 창고 옥상에 있던 물탱크가 터져서 물바다가 된 일이 있었다. 이리하여, 천경자 님 유족은 고흥군한테 따져서 ‘고흥군에 기증했더 그림’을 모두 돌려받았고, 고흥관광지도에는 아직도 ‘천경자 미술관’이 적히지만, 그곳에는 허울뿐이던 이름표도 없고 그림도 없다.

 

  고흥군 공무원이 잘못한 일을 놓고 ‘고흥사람’인 내가 부끄러워 해야 할 까닭은 없을는지 모른다. 이런 일을 놓고 여러 사람이 고흥군 문화행정과라든지 고흥군수한테 참 숱하게 따지기도 했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바뀌거나 나아지지 않았다.


  보배와 같은 책일 수 있는 《아프리카 기행화문집》을 사진으로 담는다. 이 책을 장만해서 고흥으로 가져가면 좋기야 좋을 텐데, 고흥에서 천경자라는 사람을 얼마나 헤아리거나 읽거나 느낄는지 모르겠다. 고흥 아닌 다른 곳에서 다른 책손이 아름다운 눈빛으로 이 책을 알아보아 장만하고 아끼면 한결 낫겠다고 느낀다. 책이 책대로 빛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책이 있을 자리가 되겠지. 4347.3.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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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은행 책’에서 먹는 ‘책까스’

 


  돈까스가 아닌 ‘돼지고기튀김’이지만, 아무튼 춘천시 서면에 있는 〈이야기은행 책〉이라는 곳을 찾아갔고, 이곳에서 ‘책까스’를 먹었으며 하룻밤을 묵었다. 커다란 고깃조각에 양념을 얹고 ‘책’이라는 글을 하나 빚었다. 한자 아닌 한글로 적어도 예뻤을 텐데, 어찌 되든 ‘책까스’이다. 따끈한 기운이 살짝 식을 때까지 ‘책’이라는 낱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들여다보았다. 4347.3.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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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4-03-23 09:27   좋아요 0 | URL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책을 읽으면서 식사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인가요? 안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

숲노래 2014-03-23 10:43   좋아요 0 | URL
네, 밥도 먹고 책도 보고, 게다가 아래층에는 '게스트하우스'까지 있답니다! 게스트하우스는 웬만한 모텔처럼 넓으면서 씻는방도 시설이 잘 되었고, 무선인터넷도 쓸 수 있고 @.@ 참 재미났어요~

아, 2층에서는 막걸리도 마실 수 있었는데, 나중에 내부 모습을 따로 올려야겠네요. ^^;;; 이곳을 제대로 소개하는 글을 써야겠습니다~ 전화번호도 주소도 이 글에는 안 적어 놨었네요 ^^;;;;
 

작은 풀꽃이 즐겁다

 


  통영을 걷는다. 처음 찾아간 통영에서 헌책방을 찾다가 골목과 동산을 걷는다. 통영에 마지막까지 있던 헌책방은 조용히 사라진 듯하다. 헌책방이 있었으리라 보는 곳은 무언가 확 바뀌었다. 찻길이 넓고 아파트가 높다. 틀림없이 이 언저리일 텐데 하고 한참 뒤돌아보지만 몇 해 앞서 문을 닫고 말았네 싶은 헌책방은 내 눈앞에 없다.


  통영에도 이마트가 있다. 통영시는 작지 않다. 그렇지만, 책이 흐르는 물길 가운데 하나가 사라졌다. 통영에 헌책방이 없으면, 통영에서 책은 어디로 가야 할까. 도서관에서 버리고, 이삿짐 사이에 섞여 나오는 책은 어디로 가야 할까.


  골목길을 걷는다. 시내에서 벗어나 자동차 소리에 귀가 아프지 않은 골목길을 걷는다. 큰길에서 몇 미터 안쪽으로 깃들 뿐인데, 자동차 소리가 그치면서 새소리가 들린다. 아, 통영 골목동네에도 새가 있구나. 바닷가에는 갈매기가 날고, 골목동네에는 직박구리와 딱새와 박새와 때까치가 있구나. 통영 골목동네에는 사월에 제비가 찾아오겠지? 통영 골목동네에서는 제비 노랫소리도 누릴 수 있겠지?


  조용한 골목동네를 걷다가 풀꽃을 만난다. 동백꽃 붉은 큰 나무 둘레에 앙증맞도록 조그맣고 귀여운 풀꽃이 방긋방긋 고개를 내밀며 바람에 흔들린다. 골목 한켠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코를 대고 봄풀내음과 봄꽃빛을 맡는다. 너희는 이곳에서 예쁜 골목사람 고운 손길을 받으면서 살겠지?


  통영에 있던 헌책방 〈개미서점〉을 만나지 못해 서운한 마음이 작은 풀꽃을 보면서 풀린다. 작은 헌책방은 역사책에 이름 넉 자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작은 풀꽃은 작은 골목동네를 이렇게 밝히는구나. 너희 푸른 숨결이 통영을 살린다. 4347.3.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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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자락을 오르내리면서 멧등성이를 바라보면 어떤 마음이 될까. 사람들이 아파트와 자동차와 온갖 건물을 바라보는 하루 아닌, 숲을 바라보며 하늘숨을 마시는 하루를 누리면 어떤 삶이 될까. 사람들이 텔레비전 들여다보는 삶 아닌, 들꽃과 나뭇잎을 바라보다가 살그마니 쓰다듬는 삶 누리면 이 나라는 어떻게 거듭날까. 이성부 님 시집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를 읽는다. 시를 쓰는 사람들이 숲내음을 늘 맡으면서 살아간다면 참 아름답겠구나 싶다. 공무원과 회사원과 공장 노동자와 학생까지 언제나 숲바람을 쐬고 숲빛을 먹으며 지낼 수 있으면 아주 사랑스럽겠구나 싶다. 4347.3.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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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이성부 지음 / 창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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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2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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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란 피아노 연주

 


  춘천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춘천에서 어느 책쉼터(북카페)에 들러 다리를 쉬고 가방을 내려놓으며 늦은저녁을 먹는데, ‘깜짝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 우리가 앉은 자리 뒤쪽에서 맥주를 마시던 분들이 있는데, 하하호호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문득 한 사람이 일어나서 피아노 앞에 앉더니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노랫가락을 들려준다. 한참 피아노를 치고는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하하호호 웃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머리카락이 허연 저 아저씨는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피아노 깜짝 연주를 하던 아저씨와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일어서서 나갈 적에 이녁이 누구인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예전에 태백시 부시장을 맡은 적이 있고, 올해에 춘천시장 예비후보로 나온 사람이란다. 춘천에서 공무원으로 일할 적에 김유정문학마을을 마련하도록 힘쓰기도 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분 정치 성향이라든지 어느 정당에서 후보로 나온다든지 잘 모른다. 다만, 책쉼터 한쪽에 놓인 피아노 앞에 조용히 앉아서 노랫가락을 들려주던 손길을 떠올린다. 피아노를 치는 공무원이 있구나, 피아노를 치는 ‘부시장’이 있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내가 태어나 살던 인천에 피아노를 치는 시장이나 공무원은 있을까? 없지는 않겠지. 내가 오늘 곁님과 아이들과 살아가는 고흥군에는 군수나 공무원 가운데 피아노를 친다든지 대금을 분다든지 하모니카를 읊는다든지 하는 분이 있을까. 4347.3.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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