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피꽃 바라보기



  초피나무에 꽃이 핀다. 아주 조그마한 꽃망울이 터진다. 이 작은 꽃망울이 터지기에 초피알이 맺는다. 초피알은 작은 새들이 아주 좋아한다. 새들은 초피알을 먹으면서 겨울나기를 한다. 초피잎에 붙은 범나비 애벌레를 잡아서 먹고, 초피나무 둘레에서 먹이를 찾는 사마귀와 방아깨비를 잡기도 한다.


  살짝 피어났다가 살며시 사라지는 초피꽃을 눈여겨보는 이웃은 누구일까. 초피나무를 바라보면서 언뜻선뜻 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꽃잔치를 웃으며 들여다보는 동무는 누구일까. 봄볕이 작은 꽃송이에도 곱다라니 내려앉는다. 4347.4.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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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민들레 노래



  우리 집 둘레에 흰민들레가 많이 핀다. 흰민들레가 꽃이 핀 뒤 씨앗을 골고루 날리도록 돌보니, 대문 앞에도 꽃밭에도 뒤꼍에도 옆밭에도 흰민들레가 하나둘 퍼져서 하얗게 빛난다. 다른 마을에서는 흰민들레를 뿌리째 캐어 읍내 저잣거리에 가지고 나와 판다. 약풀로 많이 사고팔리니 캐낼 만하다고 느끼지만, 씨앗을 날리도록 남겨 두면서 캐야 하지 않으랴 싶다. 곁님과 나는 잎사귀만 조금 뜯어서 먹는다. 뿌리까지 캐내어 먹으면 더 좋다 하지만, 온통 민들레밭이 될 때까지는 고이 건사하고 싶다. 우리 집뿐 아니라 우리 마을 어디에서나 흰민들레가 춤출 수 있기를 꿈꾼다. 4347.4.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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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42. 이야기가 쏟아진다



  즐겁게 지켜보면서 기쁘게 노래하다가 사진을 찍으면 예술이 되리라 느낍니다. 이름난 작가가 찍든 일곱 살 아이가 찍든, 즐겁게 지켜보다가 찍는 사진은 늘 예술이 되는구나 하고 느껴요. 사진길 걸은 지 마흔 해가 넘든 사진기 붙잡은 지 넉 달이 되든, 기쁘게 노래하면서 찍는 사진은 언제나 예술이 된다고 느껴요.


  예술품을 만들려고 하기에 예술이 되지 않습니다. 즐겁게 누리는 삶이 예술입니다. 예술가들이 만들기에 예술이 되지 않습니다. 기쁘게 노래하는 삶이 예술입니다.


  송송 썰어서 접시에 얹은 가지런한 오이채와 무채가 예술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들보들한 밥을 정갈하게 담은 밥그릇이 예술입니다. 개운하면서 구수한 맛이 나는 된장국이 예술입니다. 갓난쟁이 똥오줌이 묻은 기저귀를 척척 비비고 헹구고는 빨랫줄에 널어 해바라기 시키는 하루가 예술입니다. 아이들이 한글을 처음 익힌 뒤 연필을 야무지게 쥐어 또박또박 깍두기공책에 적는 글이 예술입니다.


  오이채와 무채가 예술인 까닭은 오이채와 무채에 이야기가 깃들기 때문입니다. 밥 한 그릇이 예술인 까닭은 밥 한 그릇에서 이야기가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된장국이 예술인 까닭은 된장국에서 이야기가 샘솟기 때문입니다. 기저귀 빨래가 예술인 까닭은 기저귀를 빨고 널고 말리고 개고 다리는 삶에서 이야기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한글 익히기가 예술인 까닭은 글빛을 처음 느끼는 아이들이 눈빛을 또랑또랑 밝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예나 이제나 예술입니다. 사진이라는 갈래가 예술이기 때문에 예술이 아닙니다. 사진이 이야기를 찍어서 나누기 때문에 예술입니다. 사진은 언제나 문화입니다. 사진찍기와 사진읽기가 문화생활이기 때문에 문화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고 읽는 동안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기 때문에 문화입니다.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는 이야기를 생각하셔요. 내가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거나 이웃이 찍은 사진을 바라볼 적에는 이야기를 헤아리셔요. 나 스스로 어떤 이야기를 이 사진에 담았는지 살피고, 내 이웃은 이녁 이야기를 저 사진에 어떻게 담았는지 돌아보셔요.


  사진은 이야기밭이 됩니다. 사진은 이야기바다가 됩니다. 사진은 이야기누리가 됩니다. 사진은 이야기숲이 되고, 이야기터가 되며, 이야기빛이 됩니다.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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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또 진다 - 손석춘과 지승호의 대자보, 창간호 01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1
손석춘.지승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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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0



이대로 가는 삶이 아름답습니까?

― 이대로 가면 또 진다

 손석춘·지승호 이야기

 철수와영희 펴냄, 2014.4.19.



  곁님 핏기저귀를 애벌빨래 해 놓고 두 아이 잠자리를 살핍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작은 책상맡에 앉아서 글씨쓰기를 하다가 “나 잘래요. 졸려요.” 하고 말한 뒤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곧바로 잠자리에 눕습니다. 큰아이는 자겠다고 말하면 언제나 몇 분 안 되어 곯아떨어집니다. 낮잠이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는 아이는 이렇게 까무룩 꿈나라로 갑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열 해쯤 앞서를 돌아봅니다. 그무렵에는 곁님 속옷을 손빨래 할 수 있는 사내가 드물었습니다. 거꾸로 보면, 오늘날에도 가시내는 사내 속옷이며 양말을 모두 빨래합니다. 빨래기계에 넣든 손으로 비비든 아직도 집식구 빨래는 거의 다 가시내 몫입니다. 빨래기계를 쓸 줄 모르는 사내도 꽤 많지 않을까요? 속옷이나 양말은 빨래기계에 넣어서는 잘 안 빨리고, 손으로 비비고 헹구어야 잘 빨리는 줄 아는 사내는 퍽 드물지 않을까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 가운데 아기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를 손으로 비벼서 빨래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지난날에는 모두 천기저귀였을 테지만, 이제는 종이기저귀를 쓰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에서는 거의 다 종이기저귀를 씁니다. 천기저귀를 쓰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기도 하지만, 천기저귀를 손으로 빨래하는 사람은 더욱 드뭅니다.


  이불을 발로 꾹꾹 눌러서 빨래하는 살림꾼이라면 기저귀를 마땅히 손으로 빨겠지요. 걸레를 손으로 빨고, 집식구 옷가지를 손으로 복복 비비면서 ‘여기에 때가 많이 탔구나’라든지 ‘이쪽이 많이 해졌구나’ 하고 생각하는 살림쟁이라면 똥기저귀이든 핏기저귀이든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빨래하리라 생각합니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선으로 보면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농민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 걱정스러운 것은 여전히 문재인 의원 같은 분이 차기 대선 출마를 언급하면서 계속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차이를 강조한다는 거예요. 마치 자기들 외에는 깨어 있는 시민이 아니라는 듯이 주장하거든요 … 스스로 진단했듯이 노무현 정부의 최대 과오가 이명박 정부한테 정권을 넘겨준 거라면, 왜 그랬는지를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  (22, 23, 24쪽)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손빨래를 했습니다. 마흔 살이 된 올해에도 손빨래를 합니다. 앞으로 스무 해가 흘러 예순 살이 되어도 손빨래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손빨래를 하면 마음이 차분하면서 따스합니다. 손빨래를 하는 동안 옷과 이불을 더 찬찬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 몸이 얼마나 작은지 헤아리고, 곁님 몸이 어떠한가를 살핍니다. 두 아이가 갓난쟁이였을 적에 오줌기저귀를 빨래하며 날마다 무럭무럭 크는구나 하고 깨달았고, 똥기저귀와 똥바지를 빨래하며 ‘밥을 잘 삭히고 튼튼하게 자라는가’를 곰곰이 눈여겨보았습니다.


  내 어버이와 곁님 어버이가 몸져누우면 그때에도 기저귀를 쓸까요. 어쩌면 늙은 할매와 할배가 기저귀를 대셔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저귀를 대어서 바지런히 갈며 빨아야지요. 아기 똥이든 할매 똥이든 모두 같습니다. 사랑하는 집식구 몸을 살피고 돌보는 일은 언제나 같습니다.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내가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듯,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가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사랑둥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녁 아이들을 살뜰히 아낍니다.


  밥을 차리면서 이 밥을 누가 얼마나 맛나게 먹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맛나게 먹은 밥으로 신나게 일하거나 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쁘게 밥상맡에 둘러앉고, 즐겁게 노래하듯이 수저를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박정희 권력은 비정했잖아요. 박근혜는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생각, 이런 게 지금 국면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고요 … 한번 상상해 볼까요? 만일 손석희가 〈뉴스타파〉로 옮겨갔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뉴스타파〉에 엄청난 기부금, 후원금이 몰렸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거든요 … 어려운 환경에서 싸우는 사람에게 좀더 힘을 실어 주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 진보 진영 내부에서 소통이 안 되는 이유도 자기중심적인 사고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얘기를 듣기보다는 자기 생각을 상대에게 주입하려고만 하는 경향이 있어요 ..  (32, 37, 38, 55쪽)



  어떻게 가꾸는 삶이 아름다울까요? 아름답게 가꾸는 삶이 아름답겠지요. 어떻게 나아가는 삶이 사랑스러울까요? 사랑으로 나아가는 삶이 사랑스럽겠지요.


  평화를 생각하기에 평화롭습니다. 전쟁을 생각하기에 툭탁거리거나 싸웁니다. 민주를 생각하기에 민주를 이룹니다. 독재를 생각하기에 독재가 불거집니다. 착한 돈을 생각하기에 착하게 돈을 벌어 착하게 씁니다. 안 착한 돈을 생각하기에 안 착하게 돈을 벌어 안 착하게 돈을 써요.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살아간다고 느껴요. 스스로 삶을 어떤 생각으로 지으려 하느냐에 따라 하루하루 새로운 모습이 된다고 느껴요. 아름다울 삶을 생각해야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울 삶이 아니라 돈을 더 벌 삶을 생각하면 아름답지 못해요. 아름다울 삶이 아니라 대학교 학벌이나 자가용이나 아파트를 생각하면 이때에도 아름답지 못해요.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대학교도 다니고 돈도 즐겁게 벌면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게 삶을 가꾸면서 자가용을 몰고 도시에서 아파트를 얻으면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넋이 아닐 적에는 책을 많이 읽어도 아름다운 말을 베풀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얼이 아닐 때에는 훌륭한 스승한테서 배운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길을 걷지 못합니다.



.. 이명박이나 박근혜만 소통이 안 되는 게 아닙니다. 진보운동 세력 내부에서도 소통이 안 되고 있어요 … 폐쇄적인 1980년대식 비합법 조직을 지금까지도 유지하다 보니 자기들의 경직성을 못 느끼는 겁니다. 오히려 그 경직된 사상을 아직도 엄청난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소통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밝히고 함께 토론해야 해요. 아마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자신 있게 얘기 못 할걸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사상은 잘못된 거죠. 굳이 왜 그런 말을 하느냐 하면 그런 폐쇄적인 사상으로는 어떤 변혁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41, 53쪽)



  손석춘·지승호 두 분이 주고받은 이야기로 엮은 책 《이대로 가면 또 진다》(철수와영희,2014)를 읽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들은, 참말, 이대로 나아가면 아름다울는지요? 한국에서 한국말을 주고받는 한국사람으로서, 참말, 이대로 살면 아름다운가요?


  2014년 4월 16일 아침에 전라남도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한 척 거꾸러집니다. 기우뚱하다가 뒤집어지면서 가라앉습니다. 너무 어처구니없습니다. 배가 어딘가에 부딪혀 쿵 소리가 났다는데, 두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손을 쓰지 않다가 삼백에 가까운 사람들이 배에 갇힌 채 바닷속에 잠겼습니다.


  아주 놀라울 뿐 아니라 끔찍하고 슬픈 일이 벌어졌으나 ‘제가 잘못했습니다.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고 밝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배를 몰던 사람도, 나라를 다스리던 사람도,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그저 멍합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과 제주여행을 가던 어른들은 왜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배가 거꾸러져서 이렇게 되는데, 배가 거꾸러지지 않아도 삶과 죽음 문턱에서 아픈 이웃이 아주 많습니다. 한국 곳곳에서 아파서 끙끙 앓는 사람이 몹시 많습니다. 계급과 신분과 학력과 지역과 재산 때문에 푸대접을 받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얼굴과 몸매와 키 때문에 따돌림을 받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1등이 아니면 뒤로 처질 뿐 아니라 눈길이나 사랑을 못 받는 한국 사회입니다.



.. 물론 〈한겨레〉가 조중동보다야 훨씬 낫습니다. 그런데 정말 창간 이후 진보와 노동 쪽에 근거한 이야기와 의제 설정을 충실히 해 왔느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 후임은 거의 보수적 학자로 채워집니다. 미국식 사회과학자, 미국식 박사들이 대학을 지배하는 거죠. 1980년대만 해도 대학 총장들이 지식인의 사명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게 아예 없어요. 총장들이 다 경제학이나 경영학 하는 사람들이죠. 인문적 소양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 그 두 사람이 처절하게 뭔가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무너졌으면 정말 괜찮은데, 김대중은 공기업까지 다 팔아넘겼고, 노무현은 한미FTA를 강행했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의 현실 아닙니까 ..  (72, 86, 104쪽)



  비가 내리는 사월입니다. 비가 내리면서 아주 조용합니다.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 밤바람은 선선합니다. 마을 어귀에도 저 먼 큰길에도 오가는 자동차가 없습니다. 오직 빗소리가 마을과 집을 감쌉니다.


  비가 그치면 멧새가 노래하겠지요. 멧새 노랫소리 사이로 개구리 노랫소리가 퍼지겠지요. 개구리 노랫소리에 이어 머잖아 풀벌레 노래잔치가 펼쳐지겠지요.


  어제 낮에 마을 들판에서 제비 여섯 마리를 보았습니다. 딱 여섯 마리를 보았습니다. 지난해 이맘때에는 마을 들판에서 제비 수백 마리를 보았습니다. 올해에는 고작 여섯 마리입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지난해 여름에 제비들이 한창 시골집마다 처마 밑에 깃들어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울 적에 항공방제를 한다면서 헬리콥터가 온 마을과 들과 숲을 날아다니면서 농약을 뿌려댔어요. 농약바람이 보름 남짓 불면서 제비가 거의 다 사라졌고, 개구리도 거의 다 사라졌어요. 풀벌레 또한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시골마을에서는 쓰레기를 아주 잘 태웁니다. 비닐이든 농약병이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태웁니다. 감나무 옆에서도 태우고, 이웃집 돌울타리 옆에서도 태웁니다. 비닐 타는 냄새가 이웃집에 퍼져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농약이 이웃집으로 날려 냄새가 코를 찔러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시골에 젊은이와 아이가 사라져 풀(나물)을 뜯을 사람이 없는데다가, 풀을 뜯길 소나 짐승도 사라지니, 그야말로 시골에서는 풀을 잡는다며 온통 농약투성이입니다.



.. 박근혜는 한 번도 서민으로 살아 본 적이 없죠. 당연히 권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 박근혜는 자기가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노동에 대한 생각이 닫혀 있어요. 최소한 진실을 알려고 하는 마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조차 안 보입니다 …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면서 생각을 좁혀 갈 수 있는 토론이 많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 진보를 이루려면 상상력을 키워야 합니다. 현실의 한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해요 ..  (91, 100, 106쪽)



  이대로 가는 삶이 아름답습니까. 이대로 나아가는 삶이 사랑입니까. 이대로 내달리는 삶이 꿈입니까. 이대로 치닫는 삶이 즐겁습니까.


  대통령을 바꾼대서 나라가 바뀌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바꾸면 대통령이 바뀔 뿐입니다. 나라가 바뀌려면 나라를 바꾸어야 합니다. 사회를 바꾸려면 사회를 바꾸어야지요. 나라가 바뀌고 사회가 바뀌려면, 나라와 사회를 이루는 사람이 스스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새로운 빛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사랑을 찾고 꿈을 지으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아름답게 걸어갈 길을 찾고 사랑스레 어깨동무할 길을 살피며 즐겁게 노래할 길을 가꾸어야 합니다.


  이대로 그냥 가면 대통령 뽑는 자리에서 또 엉터리 같은 일이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이대로 그냥 가면 여린 아이들과 착한 어른들이 터무니없이 바닷속에 잠기는 일이 다시 터지리라 생각합니다. 이대로 그냥 가면, 참말 이런 삶이 재미있을까요? 이대로 그냥 가는 삶이 우리한테 빛이나 소금이 될 수 있을까요?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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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삶을 사랑하는 하루



  배가 한 척 가라앉았습니다. 배에는 오백 사람 가까이 탔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삼백이 넘었다고 해요. 배는 처음부터 와장창 무너지듯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배에 탄 아이와 어른 모두 걱정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배가 한참 기울고 나서야 사람들이 빠져나올 수 있었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바닷속에 잠긴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뒤집힌 배에 갇힌 채 바닷속에 잠겨야 한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배가 기우뚱하며 말썽이 생겼을 때에 왜 사람들을 재빨리 바깥으로 내보내어 살리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비가 내립니다. 사월에 내리는 비는 촉촉하며 포근합니다. 삼월에 꽃이 피었다가 진 매화나무에는 매화알이 푸르게 굵습니다. 매화나무에 이어 모과나무에 꽃이 피고, 모과나무에 이어 느티나무에 꽃이 핍니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나 벚나무를 잔뜩 심어 봄꽃잔치를 하니, 벚꽃이 지면 마치 꽃이 다 진 줄 여기곤 하는데, 탱자나무는 요즈음이 한창 꽃철입니다. 탱자꽃이 질 무렵에는 찔레꽃이 피고, 찔레꽃이 질 무렵에는 밤꽃이 피어요. 사이사이 오리나무에 꽃이 피고 등나무에 꽃이 핍니다. 치자나무에 꽃이 피며 감나무에 꽃이 피어요. 겨울을 난 동백나무와 닥나무와 산수유나무에 꽃이 피면,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꽃철입니다.


  마쓰나리 마리코 님이 그리고 고향옥 님이 옮긴 그림책 《할아버지의 벚꽃 산》(청어람미디어,2008)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할아버지는 기쁜 일이 있을 적에 조용히 숲에 가서 벚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다고 합니다. 기쁜 마음을 담아 나무를 심고 기쁜 웃음으로 나무를 보듬으면서 기쁜 노래를 불렀다고 해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쓰다듬으며 나무에 말을 건네는 할아버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6쪽)” 하는 모습처럼, 늘 나무한테 말을 걸면서 하루하루 가꾸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가이 말을 걸 때에 나무가 더 푸르게 자랍니다. 우리가 웃음 어린 손길로 쓰다듬을 때에 나무가 더 굵게 줄기를 올립니다. 우리가 곁에서 노래하며 즐겁게 뛰놀고 일할 때에 나무가 잎을 찰랑이면서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꽃도 이와 같아요. 따사롭게 웃으며 바라보면 꽃은 더욱 곱습니다. 풀도 이와 같아요. 따스하게 웃으며 톡톡 끊으면 더욱 맛있습니다. 사람한테도 이와 같을 테지요.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걸 적에 싫을 수 있을까요? 활짝 웃으며 어깨동무할 적에 거북할 수 있을까요? 깔깔 웃으며 이야기꽃 피울 적에 못마땅할 수 있을까요?


  꼭 사월 오일에 나무를 심어야 하지 않습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우리 모두 언제나 나무를 심어요. 기쁜 일이 있으면 씨앗을 얻어 들과 숲에 뿌려요. 늦봄에 모내기를 하면서 하하호호 웃어요. 도시에 살더라도 시골로 봄일을 거들려고 찾아가요. 시골을 떠나 도시로 나와 살림을 꾸린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마다 싱그러운 바람과 햇볕을 누리면서 함께 일하러 마실을 가요.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나무 밑에 섭니다. 빗방울이 또르르 구르는 풀잎을 바라봅니다. 빗방울을 머금는 꽃송이를 톡 건드립니다. 이 비가 그치고 둠벙이 늘거나 논마다 물이 고이면 개구리가 즐겁게 알을 낳겠지요. 개구리알은 곧 올챙이로 깨어나고, 올챙이는 씩씩하게 자라 개구리로 태어나겠지요. 새로 깨어난 개구리는 여름에 흐드러진 노래잔치 베풀겠지요.


  열여덟 살이 되어 배를 처음 타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물여덟이나 서른여덟 살에 비로소 배를 처음 타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흔여덟이나 쉰여덟 살에 비행기를 처음 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다를 가르거나 하늘을 가로지르면 무척 시원합니다. 자동차로 들길을 달려도 즐거울 테지만, 자전거로 숲길을 달리거나 두 다리로 마을길을 걸어도 즐겁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은 새로운 삶을 느끼고 싶어 먼 뱃길을 달립니다. 과자 한 점을 사먹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하면서, 새로운 이웃을 만나고 동무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나눕니다. 시험공부에서 며칠 홀가분하고, 어버이 품을 떠나 동무들끼리 지내면서 삶과 사랑과 살림에 새롭게 눈뜹니다. 삶을 사랑하는 하루입니다. 삶을 노래하는 하루입니다. 삶을 가꾸는 하루입니다.


  그림책 《할아버지의 벚꽃 산》에 나오는 할아버지는 나이들어 몸져눕습니다. 아이는 할아버지하고 숲마실을 가고 싶으나, 할아버지는 좀처럼 일어나지 못합니다. 아이는 홀로 숲으로 가면서 생각합니다. “벚꽃 산의 벚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할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많은 벚꽃, 벚꽃, 벚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22쪽).”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아이 손을 잡고 숲을 돌아봅니다. 멋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잔치를 바라보며 빙긋 웃습니다. 그러고 나서 할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이제부터 참말 아이는 할아버지하고 숲으로 올 수 없습니다. 혼자 숲으로 와야 하고, 혼자 나무한테 말을 걸어야 합니다. 혼자 풀놀이를 해야 하며, 혼자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아이는 한 살 두 살 먹으며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아이는 마음이 맞는 짝꿍을 만나 살림을 꾸립니다. 어른 두 사람은 사랑으로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가 자라 다시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아이는 새롭게 짝꿍을 만나 살림을 꾸릴 테고, 곧 아이를 사랑으로 낳겠지요.


  할아버지는 이녁 할아버지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아 숲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아이는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가꾸어 이녁 아이한테 다시 곱게 사랑을 물려줍니다. 숲은 수많은 아이와 할아버지한테서 사랑을 받아 오래오래 푸르게 빛납니다. 수많은 아이와 할아버지는 숲에서 푸른 바람을 즐겁게 받아마시면서 한결같이 아름다운 삶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비가 그친 땅에서 봄풀이 새롭게 돋습니다. 유채꽃이 노랗게 한들거리는 둘레에 모시풀이 올라오고 쑥줄기가 활짝 벌어집니다. 차가운 바닷속에 갇힌 아이들은 몹시 춥습니다. 차가운 바닷속에 갇힌 아이들을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 어버이도 매우 춥습니다.


  삶이 흘러 새로운 삶이 찾아옵니다. 사랑이 흘러 새로운 사랑이 피어납니다. 이야기가 흘러 새로운 이야기가 자랍니다. 시든 풀잎으로 누렇던 겨울들이 새로 돋은 풀잎으로 새빛이 됩니다. 풀씨는 긴긴 겨울을 견디어 봄에 하나둘 깨어나며 흙을 어루만집니다. 아픈 이들 눈가를 쓰다듬는 풀싹이고, 슬픈 이들 손을 꼬옥 붙잡는 풀꽃입니다. 마당 한쪽에서 자라는 흰민들레 꽃송이에 입을 맞추며 비손합니다.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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