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아만 따라와 (양장)
김성희 지음 / 보림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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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292


《형아만 따라와》

 김성희

 보림

 2019.9.25.



  아이는 어버이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버이 시늉을 냅니다. 왜 이렇게 어버이를 따라서 하느냐 싶으나, 아이는 바로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어버이가 하는 모든 일을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배워 새롭게 북돋우고 싶기에 이곳에 태어났어요. 어버이는 아이가 자라나는 결을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이 아이 곁에서 씩씩하고 의젓하며 아름답고 환한 사람으로 서자고 말예요. 이러다가 곧잘 넘어지거나 부딪혀요. 이때에 어느새 아이가 살그마니 다가와서 묻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웃으며 다시 일어나요. 즐겁게 또 해봐요.” 《형아만 따라와》는 언니(형)하고 동생이 사이좋게 놀면서 자라나는 길을 들려줍니다. 언니는 무엇이든 거칠 것이 없다가 마지막에 가서 움츠러드는데요, 아직 물들거나 길들지 않은 동생은 바야흐로 앞장서서 언니를 보살피는 사랑이 됩니다. 아마 언니도 동생만 한 나이일 무렵에는 동생처럼 어버이를 따사로이 품고 보살피는 씩씩님 노릇을 했겠지요. 그나저나 범·악어·물뚱뚱이·박쥐가 무섭거나 사나울까요? 줄거리는 상냥하지만, 우리 곁 숨결은 놀이벗일 뿐이라는 대목에 더 마음쓰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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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도서관


 열네 해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2020.3.22.)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열네 해 동안 책집 창고에서 조용히 숨죽이던 꾸러미를 조금 받았습니다. 새롭게 문을 연 여러 고장 알뜰한 마을책집 지기님한테 하나둘 나누어 주다 보니 어느새 저한테 몇 자락 안 남은 《헌책방에서 보낸 1년》이란 책인데요, 열네 해란 나날을 끈(기계 벤딩)에 묶인 채 있던 책이다 보니 앞뒤로 눌린 자국이 있습니다. 다섯 자락 가운데 두 자락은 끈으로 눌린 자국이 졌어요. 그렇겠지요. 열네 해 동안 끈으로 묶여서 종이상자에 담긴 채 고이 잠들었다고 하니까요. 눌린 자국이 있어도 속살을 마주할 눈빛이 된다면,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국 헌책집 연락처 꾸러미’를 갈무리해서 담아낸 이 책을 읽어낼 수 있겠지요. 2005년 그해에 얼마나 잠을 잊어 가면서 이레 가운데 사흘은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는 데에 바치고, 다른 나흘은 자전거를 달리면서 이 고장 저 고장 헌책집을 두루 돌았나 하고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우리 집 큰아이가 열네 살이 되면 이 두툼한 891쪽짜리 책을 읽겠다고 나서려 할 듯하다고 요즈막에 물씬 느낍니다. ㅅㄴㄹ







* 새로운 한국말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알라딘에서]

 http://blog.aladin.co.kr/hbooks/578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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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펴내는 '동화읽는 어른'에 실은 글입니다.


+ +


우리말 이야기꽃

여덟걸음 ― ‘해보기’ 너머 ‘숲’으로



  둘레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수첩에 적습니다. 어쩐지 머리나 마음으로 스미지 못하는구나 싶은 말을 한참 바라봅니다. 이 말을 쓰신 분으로서는 이 말이 그분 생각을 나타내는 길에 어울린다고 여겼을 테지만, 저는 제가 쓸 말을 곱씹습니다. ‘방향전환’이란 말 한 마디를 수첩에 옮겨적고 보니 ‘뜯어고치다’를 나타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살짝 눈을 감고 생각을 잇습니다. ‘뜯어고치다’란 낱말 하나가 어떤 이야기를 담는가를 헤아리면서 화살표를 넣고서 다른 말을 줄줄이 붙여 봅니다.


뜯어고치다 ← 혁명, 혁신, 변혁, 개혁, 리빌딩, 개보수, 재건축, 개과천선, 방향전환


  그냥그냥 ‘방향전환’ 같은 말씨를 써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둘레에서 이런 말을 흔히 쓰면 받아들여도 되겠지요. 그러나 으레 스스로 묻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제가 여덟 살이나 열 살 어린이라 한다면, 둘레에서 쓰는 이런 말을 알아듣겠느냐고 묻습니다. 이다음으로 혀짤배기에 말더듬이 어린이가 이런 말을 혀에 얹어 소리를 내기 좋으려나 하고 묻습니다.


  저는 혀짤배기로 태어났고, 소리가 자꾸 새서 말더듬이로 어린 나날을 보냈습니다. 둘레 다른 분들이 아무렇지 않게 소리를 내는 말씨라 하더라도, 저로서는 모두 걸러내야 했습니다. 어릴 적에 소리를 내기 힘든 말씨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우리말’이었습니다. 어쩐지 ‘우리’가 들어가는 모든 말씨가 어렵고 소리가 샜고, 뒷말하고 안 이어져서 더듬더듬했어요. ‘우리’를 비롯해 ‘고리·뿌리·나리·소리·머리’처럼 ‘ㄹ’이 첫머리에 깃든 ‘리’란 말씨는 엄청난 담이더군요.


  이 담을 넘으려고 스무 해쯤 씨름을 했어요. 어떻게 했느냐 하면, 사람이 아무도 없다 싶은 외지거나 깊은 곳에 가서 큰소리로 혼자 외치면서 노래를 했어요. 적어도 하루에 두어 시간쯤. 누가 시켜서 하지 않았어요. 국민학교란 곳을 다니는 동안 소리가 새어 말더듬질을 할 적에 늘 놀림을 받고 괴롭힘질을 받은 터라, 살아남으려고 악을 썼을 뿐입니다.


길 ← 차도, 보도(步道), -가(街), 도로, 차로, 방법, 법, 방안, 방도, 수단, 대안, 대책, 방도, 노정, 노상, 기회, 여정, 도중, 지평, 도구, 지식, 루트, 루틴, 로드, 경로, 통로, 방식, 세대(世代), 과정, 교통, 노선, 선로, 행로, 행보, 행적, 목적, 목적의식, 목표, 정책, 이치, 원리, 레이스, 가도(街道), 가로(街路), 가두, 차례, 비전(vision), 진출, 선택, 선택지, 비결, 비방(秘方), 노하우, 키, 해결책, 해결 방안, 해결 대책, 묘수, 묘책, 돌파구, 캐치프레이즈, 습관, 공식(公式), 아이콘, 여행, 순리, 답(答), 해답, 처세, 처세술, 방면, 방향, 모델, 복(福), 제도(制度), 창구, 도상(途上), 궤도, 궤적, 사이클, 지리, 지형, 측면, 타운(town), 측(側), 운명(運命), 운(運), 운수(運數), 지표


  한국말사전이란 책을 쓰기에 늘 말을 헤아리기도 하지만, 저 스스로 혀에 얹을 만한 말씨인가 하고 살펴야 하기에 언제나 말을 헤아립니다. 어느덧 마흔 몇 해를 살아낸 몸이기에 이 걸음을 되새기면서 ‘길’이란 무엇일까 하고, 이 ‘길’은 얼마나 너른 품인 낱말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저는 그저 ‘길’ 한 마디만 쓰는데, 둘레에서는 갖가지 말을 잔뜩 써요.


  자리마다 다르게 쓸 수 있습니다. 여러 말을 쓴대서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궁금하더군요. 왜 ‘길’ 한 마디이면 안 될까요? ‘길’이란 낱말 하나가 얼마나 넓고 깊은가를 하나하나 또렷하게 밝혀서 어린이한테 들려주고 어른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이 ‘길’로 깊이 생각(철학)을 할 수 있어요.


  숱한 한자말이나 영어를 ‘길’로 고쳐쓰자는 뜻이 아닙니다. 아주 수수하면서 쉽고, 또 소리를 내기에도 부드러운 ‘길’이란 낱말이 있다면, 이 낱말에 얽힌 수수께끼를 즐겁게 풀어내면서 새롭게 이야기를 지을 만하지 싶습니다.


시골 들길을 걷는 사람이 없어지고 들바람을 쐬면서 노는 아이도 어른도 사라진 자리에는 기계가 울리는 소리만 가득할 뿐, 들일꾼이 부르는 들노래는 없습니다. 집집마다 텔레비전을 두면서 대중노래를 듣지만, 마을이 어우러져서 부르는 마을노래와 일노래와 놀이노래는 자취를 감춥니다.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68쪽


  1982년이란 해에 국민학교에 들어간 터라, 그즈음 대통령이 된 분이 나라 곳곳에 세운 커다란 돌을 흔히 보았어요. 이 가운데 제가 늘 봐야 했던 큰돌 글씨는 “하면 된다”예요. 그러나 뭘 하면 되는지, 하면 어떻게 되는지, 해서 되면 뭐가 달라지는지 알 길이 없더군요. 그무렵 어른들은 새마을이란 바람을 타고서 “하면 된다”는 말을 윽박지르기에 바빴다고만 느낍니다.


  대중노래가 확확 퍼졌고, 프로야구에 프로축구에 프로씨름에 프로배구에 ‘프로’란 이름을 내세운 운동경기가 넘쳤습니다. 동무끼리 골목이며 마을에서 스스로 지어서 부르던 놀이노래는 어느덧 구닥다리로 여기면서, 대중노래하고 프로스포츠에 사로잡히는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런 어린 날을 되새기면서 앞뒤 모두 빠졌지 싶은 “하면 된다”란 말에 하나씩 살을 입혀 봅니다. “해보면(하면서 보면) 된다”로, “꿈대로 해보면 된다”로, “꿈꾸는 길대로 해보면 된다”로, “이루고 싶은 꿈길대로 생각해 보면 된다”로, “사랑으로 이루고 싶은 꿈길을 가는 대로 된다”로, “사랑스레 살림을 짓는 꿈길대로 해보면 된다”로, “사랑스레 살림을 짓는 숲에서 슬기로운 사람으로 살면서 해보면 된다”로, “어깨동무하는 즐거운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숲에서 슬기로운 사람으로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해보면 된다”로, 말 한 마디씩 보태면서 마음에 씨앗을 심습니다.


  놀림받던 혀짤배기는 이 혀짤배기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말을 스스로 찾는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대학교를 그만두는 길에서 스스로 살림을 세우는 하루를 찾기로 했습니다. 군대에서 의문사를 여럿 지켜보고 살아남으면서 주먹질이 낳는 길을 새삼 돌아봤습니다. 서울·인천에서 사는 동안 집삯을 다달이 대는 길이 목을 얼마나 죄는가를 뼛속까지 느꼈습니다. 시골로 삶터를 옮겨 아이 둘을 돌보는 동안 손으로 빚는 살림길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인가를 몸으로 새겼습니다.


해보다 ← 시도, 도전, 시험, 조치, 대처, 처리, 시범, 연습, 시행, 액션, 실천, 실행, 몰두, 활동, 실습, 경험, 체험


  여느 사전에는 아직 ‘시도’를 가리키는 ‘해보다’란 낱말이 없습니다. 둘레 많은 분들이 입말로 ‘해보다’를 꽤 오래 익히 쓰는데, 이웃들이 쓰는 ‘해보다’가 어떤 뜻이나 결인가를 하나씩 짚고 보니 꽤 재미있어요. ‘해보다’를 새말 한 마디로 삼아서 쓸 만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새롭게 가고 싶은 삶길 얼거리를 펼쳐 본다면 이렇습니다. 보다(구경) → 하다(몸짓) → 해보다(겪다) → 맛보다(느낌) → 알다(배움) → 다시하다/새로하다/거듭하다(삶) → 익히다/깨닫다(마음) → 살림/철(보금자리) → 짓다(사랑) → 꿈(길) → 아이/씨앗(숲).


  갓 태어난 아기는 그저 지켜봅니다. 지켜보고 또 보고 자꾸 보다가 슬슬 움직입니다. 슬슬 움직이며 스스로 겪어요. 이러다가 하나씩 느끼고 어느덧 배워서 말을 터뜨립니다. 이다음에는 더 느끼고 더 배워서 더 많이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새 깨닫는 이야기가 생기고 마음을 다스려요. 이렇게 흐르고 보면 철이 드는 나이에 이르고 새로 보금자리를 내고는 사랑을 찾아 꿈을 이루면서 스스로 어른이나 어버이란 자리에 섭니다.


  혀짤배기 말더듬이 어린이는 놀림질이랑 괴롭힘질이랑 따돌림질에서 살아남으려고 싸우는 어린 날을 보냈지만, 혀짤배기하고 말더듬질을 스스로 풀어낸 뒤에는 이다음에 뭘 해야 하는가를 놓고 헤매다가, 사전쓰기라는 길을 보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숲길을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해보기였다면, 이제는 이 너머에서 새롭게 손을 잡을 수 있는, 또 스스로 푸르게 빛날 수 있는 숲을 노래하는 길을 아이들하고 걸어가자고 생각합니다. 해보고 또 해보는 하루보다는 사랑하고 거듭 사랑하며 바람이며 해님이며 빗방울이며 푸나무마냥 고요하면서 고운 사랑이 되는 길을 가려고 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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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조선일보 사랑 : 조선일보를 사랑하든, 조중동을 좋아하든 마음대로 할 노릇이다. 한겨레·경향을 사랑해도 되고, 어느 신문이나 방송이든 마음대로 즐기면 된다. 다만, 신문이나 방송이 어떤 속내이며 구실인가를 알아야 하고, 그들 신문하고 방송이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고, 오늘 어떤 속셈이나 꿍꿍이나 꾀를 부리는가를 읽어내야겠지. 이러한 눈썰미가 없다면 ‘기생충 서민 교수’가 2020년 3월 25일치 〈조선일보〉에 손수 써서 실은 “‘문빠’가 언론 탄압하는 시대, 조선일보 없었다면 어쩔 뻔“ 같은 글을 쓰겠지. 어떤 이는 동인문학상이고 조선일보 신춘문예이고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동인문학상이나 이상문학상뿐 아니라 조중동 신춘문예에도 발을 담그지 않는다. 어떤 이는 문학은 문학이고 상은 상이라면서 아랑곳하지 않으며, 어떤 이는 글을 쓰는 길이란 아무 신문이나 출판사나 방송에 기웃대지 않으면서 삶길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나저나 ‘언론 탄압’이란 뭘까? 무엇이 ‘언론 탄압’이고, 무엇이 ‘매판 언론’이며, 무엇이 ‘독재·제국주의 일본에 빌붙으며 사람들 피를 빨아먹고 죽음수렁으로 내몬 언론’일까? ‘기생충 서민 교수’는 책을 팔고 싶으면 책광고를 하고, 책소개를 하면 될 텐데, 왜 ‘조선일보 사랑타령’을 할까? 아, 그렇지. ‘조선일보 사랑타령’이 바로 〈조선일보〉를 읽는 이한테 책을 알려서 파는 일이 되겠구나. 잘 가셔요. 그대 사랑 조선일보 품으로. 2020.3.25. ㅅㄴㄹ



https://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23&aid=0003517503&date=20200325&type=1&rankingSeq=4&rankingSectionId=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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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멈출 때 풀빛 그림아이 32
샬롯 졸로토 지음, 스테파노 비탈레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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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286


《바람이 멈출 때》

 샬롯 졸로토 글

 스테파토 비탈레 그림

 김경연 옮김

 풀빛

 2001.1.11.



  아이들이 집에서 노는 동안 아버지 혼자 저잣마실을 다녀옵니다. 아버지 등짐에서 하나둘 나오는 먹을거리를 이리 챙기고 저리 건사하던 아이들이 “아버지, 무거웠을 텐데 어떻게 들거 와요?” 하고 묻습니다. 이 말에 웃음이 나와 “무겁다고 생각하면 못 들고 오지.” 하고 대꾸합니다. 참말 그래요. 두 아이가 매우 어리던 때에 등짐에 여러 어깨짐을 짊어진 채 두 아이를 한 팔씩 안고서 우산을 받고서 빗길을 한참 걸은 적도 있거든요. 기지개를 켜고 몸풀이를 합니다. 같이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눕습니다. 문득 듣는 가랑비 소리에 부스스 일어나 마당을 살피며 하늘을 봅니다. 바람이 없이 가볍게 찾아드는 빗방울은 새삼스럽습니다. 2월 끝자락부터 깨어난 멧개구리가 3월 끝자락에 내리는 따스한 빗물을 먹으면서 그악그악 노래합니다. 《바람이 멈출 때》를 펴면 이야기가 사르르 흐릅니다. 아이가 마음으로 듣고픈 이야기가, 어버이가 마음으로 물려주고픈 이야기가, 서로 따사롭게 만납니다. 우리는 이 보금자리에서 어떤 하루를 빚을까요. 비 바람 해 별 흙 풀 나무 들 냇물 멧골 숲 바다 못 구름을 어떻게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지을까요. 아이는 자라는 동안 무엇을 배우면서 슬기롭게 마음을 가다듬을까요. 한밤이 고요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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