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3.20.


《the Witch's Vacation》

 Norman Bridwell 글·그림, scholastic, 1973



오늘 우리는 아주 놀라운 터전에서 산다. 지난 열 해를 돌아보면 엄청나게 뒤바뀌었고, 스무 해를 훑으면 어마어마하게 달라졌으며, 서른 해를 되새기면 확 뒤집혔구나 싶다. 마흔 해나 쉰 해를 어림하면 아주 새로운 겨레가 되어 하루를 맞이하지 싶기까지 하다. 외국말로 적힌 책 하나를 구경하기도 힘든 때가 엊그제 같으나, 이제는 아주 손쉽게 만날 뿐 아니라, 값싸게 바로바로 살 수 있기도 하다. 더구나 나라밖에 있는 책마저 며칠쯤 기다리면 비행기가 실어다 나르지. 노먼 브리드웰 님 그림책은 여태 하나도 한국말로 안 나왔으나, 영어 쓰는 나라에서는 매우 사랑받는다. 다만 서울 강아랫마을에서는 ‘어린이 영어 첫걸음책’으로 두루 읽히는 줄 안다. 《the Witch's Vacation》은 아주 쉬운 낱말이며 짜임새로 글을 담았고, 그림이며 줄거리도 상냥하면서 아름답다. 이 그림책뿐 아니라, 노먼 브리드웰 님 다른 그림책도 매한가지라, 이분 그림책은 보이는 대로 장만하고, 요새는 아마존 누리집을 뒤적이면서 ‘언제쯤 이 시골자락으로 날아오려나’ 하면서 손가락을 빨면서 기다린다. 돌림앓이 바람이 무시무시하다지만, 이 모진 바람을 고우며 맑은 바람으로 돌려세우는 손빛은 바로 우리 마음에 있겠지. 우리가 오늘 눈을 뜬다면.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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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3.19.


《문어의 영혼》

 사이 몽고메리 글/최로미 옮김, 글항아리, 2017.6.16.



지난해 4월에 광주마실을 하며 장만한 《문어의 영혼》을 한참 묵혀 놓다가 이제서야 다 읽었다. 문어를 다룬 책이라 반갑게 장만했으나, 옮김말이 얼토당토않아서 한 해 가까이 안 들여다보았다. 문어는 문어일 뿐이다. 문어는 ‘그녀’가 아니다. 예전에 어느 책은 뱀장어를 뱀장어가 아닌 ‘그녀’로 옮겨서 도무지 읽어내 주기 어려웠다. 영어라면 ‘she’일 테지만, 한국말은 아닌 줄 언제쯤 알아채려나. 그런데 《문어의 영혼》은 옮김말도 얄궂지만, 글쓴이가 문어를 마음으로 읽는 대목이 너무 얕다. 문어 이야기가 아닌 곁다리로 자꾸 샌다. 문어라는 숨결을 ‘넋’으로 마주하는 이야기라면 문어를 마음으로 마주하고 벗으로 삼으면서 풀어내면 될 텐데, 왜 자꾸 딴길로 빠지고 말까. 아무래도 문어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덜 했거나 제대로 안 했거나, ‘설마 문어가 이렇게 생각했을까?’ 하고 못미더워서 샛길놀이를 해대었지 싶다. 사람이란 눈으로만 바라본다면 문어를 알지도 읽지도 사귀지도 못한다. 이 책을 다시 훑으니, 글쓴이 목소리는 영 심심하지만, ‘수족관 사육사’ 목소리는 돋보인다. 차라리 ‘수족관 사육사’가 문어하고 붙어살면서 겪고 본 삶하고 주고받은 말로만 책을 엮었다면 좋았겠구나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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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3.18.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

 매튜 코델 글·그림, 비룡소, 2018.6.10.



저자마실을 하려고 읍내에 갈 적에 큰아이는 으레 “아, 버스 냄새 때문에 힘들었어!” 하고 말한다. 난 인천에서 나고 자랐으나 그 인천에서 시내버스를 탈 적에도 멀미를 했고, 어버이 시골집인 당진에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할 적에도 멀미를 했으며, 작은아버지 사는 서울에 가려고 신도림에서 지하철로 갈아탈 때에도 멀미를 했다. 그때에는 둘레에서 말해 주거나 돕는 어른이 없어서 몰랐으나, 버스나 지하철이나 택시 모두 화학약품덩이라서 냄새가 모질었으니 멀미를 할밖에. 어느덧 화학약품덩이에 익숙하다기보다 마음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배웠기에 큰아이한테 “그렇지? 그런데 네가 즐기는 데에 온마음을 쓰면 아무 냄새도 못 느낀단다. 보렴, 너희 아버지는 그 흔들리고 고약한 냄새투성이 버스에서 흔들리지도 않고 책을 읽고 종이에 동시도 쓰잖니?”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라는 이름으로 나온 그림책은 ‘소녀’ 아닌 ‘늑대’ 이야기를 다루는데, 책이름 때문에 엉뚱하게 읽는 분이 많다. 왜 《wolf in the snow》라는 책을 이렇게 뒤엎어 버릴까? 그러나 그림책뿐이랴. 신문·방송에 흐르는 숱한 이야기는 ‘거짓말·눈속임’이기 일쑤인데, 우리는 쉽게 속거나 엉뚱하게 받아들이기까지 하는걸. 늑대는 슬기롭고 착한 벗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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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에 다달이 내던 돈을 끊으려면 탈당계를 내야 한단다. 탈당계를 써서 보냈다. 푸른눈, 푸른길, 푸른삶, 푸른넋, 푸른집, 푸른말, 이러한 풀빛을 헤아리지 않는 곳은 녹색당일 수 없다.


푸른 정치를 모르겠으면, 그리고 집행부나 선본이나 비례대표후보 뜻하고 당원 뜻이 안 맞는다 싶으면, 구태여 녹색당이란 이름을 쓰지 않기를 바란다. 이 봄에 들이며 숲에 얼마나 싱그러운 들풀(들나물)이 가득 돋는 줄 아는가? 들풀을 잊은 도시 정치판에 풀씨를 심는 길을 가는 곳이 녹색당일 텐데, 한국에서 오늘 녹색당 일꾼은 어쩐지 ‘일꾼’이나 ‘심부름꾼’이 아닌 ‘관리자’나 ‘벼슬아치’나 ‘지식인’ 노릇을 하려고 드는구나 싶다.


농사꾼이 되지 않아도 된다. ‘풀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탈당계에 적은 글을 옮기면서 녹색당을 떠난다.


+ + +


녹색당은 풀꽃나무를 첫째로 바라보는 마음에서 비롯한 정당입니다. 풀꽃나무를 삶 한복판에 놓으면서 시골이든 서울이든 숲으로 가꾸는 길을 정치행정에서 제대로 알아보도록 이야기하고 알리며 어깨동무하는 뜻을 펴려는 정당입니다. 풀꽃나무하고 숲을 바탕으로 하기에, 여기에서 ‘여럿(다양성)’을 아우르는 눈빛으로 자라납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 녹색당은은 풀꽃나무도 숲도 어디론가 사라진 채 ‘어깨동무하는 여러 눈길’마저 가뭇없이 종잡지 못하는데다가 외눈박이가 되는군요. 푸르지 않은 녹색당이라면 더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푸른길을 잃거나 잊은 이들로는 푸른 정치를 밝히지 못하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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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56


《가우디의 바다》

 다지마 신지 글

 최시림 옮김

 정신세계사

 1991.10.1.



  1980년대가 저물 무렵뿐 아니라 1990년대가 저물 무렵에도 이 나라에서 푸른길을 헤아리는 목소리는 없다시피 했습니다. 씨나락 까먹는 배부른 소리쯤으로 여겼습니다. 2020년을 가로지르는 요즈음은 푸른길을 바라는 푸른삶이 얼마나 힘을 받을 만할까요. 온누리를 뒤덮는 돌림앓이가 퍼지지 않더라도 푸른눈이 되고, 매캐한 먼지구름이 하늘을 덮지 않더라도 푸른빛을 꿈꾸고, 갖가지 환경병이 불거지지 않아도 푸른숲을 가꾸는 숨결이 되기란, 그렇게도 어렵거나 까다롭거나 힘들는지 아리송합니다. 소설책이라기보다 동화책이요 이야기책인 《가우디의 바다》는 1991년에 처음 나왔는데 그리 사랑받지 못하고 사라지면서도 석 판쯤 출판사를 옮겨 단출하게 다시 나왔습니다. 1990년에 정신세계사에서 새로 낸 《빠빠라기》가 읽힌 결을 생각한다면 아쉽구나 싶지만, 《빠빠라기》도 1980년에 둥지출판사에서 처음 한국말로 낼 적에는 거의 안 읽히다시피 했습니다. 이제라도 푸른글이 읽힐 수 있다면, 이제라도 푸른별을 바라보는 눈길이 퍼질 수 있다면, 이제라도 푸른살림을 가꾸려는 푸른벗을 만날 수 있으면 오늘 이곳이 참 아름다울 텐데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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