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55


《들어라 양키들아, 큐바의 소리》

 C. 라이트 밀스 글

 신일철 옮김

 정향사

 1961.4.14.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를 밟지 않았으니 모르는데요, 일본하고 중국 못지않게 미국 이야기가 책으로 엄청나게 나옵니다. 길그림을 펼치면 바다 건너 한참 멀다 싶지만, 삶으로는 더없이 가까운 나라 가운데 하나라는 뜻일 테지요. 미국은 이 땅에서 여러모로 뒷힘을 많이 씁니다. 한겨레가 둘로 갈려서 싸울 적에도, 남녘이 따로 꼭두각시가 서서 사람들을 억누르거나 옥죌 적에도, 미국은 으레 뒷그늘로 도사렸습니다. 2020년 봄에 미국 우두머리가 펴는 일을 지켜보다가 ‘미국은 늘 미국이 꽃등’이라는 길을 걸었다고 느낍니다. 마땅하겠지요. 미국이 한국이나 일본을 미국보다 앞세울 까닭이 없어요. 그렇다면 한국은? 오늘날 한국은 한국을 제대로 꽃등에 놓기나 할까요? 한국에서 벼슬아치하고 우두머리는 하나같이 그들 뒷주머니를 차면서 끼리질을 일삼지 않나요? 《들어라 양키들아, 큐바의 소리》라는 책은 1990년대로 들어설 무렵 꽤 널리 읽혔습니다만, 이에 앞서 1960년대 첫무렵에 더 널리 읽혔지 싶습니다. 쿠바사람은 미국에 대고 그들 목소리를 제대로 냈는데, 요즈막 이 나라는 무슨 ‘제 목소리’가 있을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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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54


《여자의 참모습》

 분도출판사 편집부 글

 분도출판사

 1975.10.25.



  ‘성숙기의 젊은 여성들이 알아야 할 일’이라는 이름이 작게 붙은 《여자의 참모습》은 1975년에 가을에 나왔습니다. 천주교에서 젊은 아가씨나 푸름이를 가르치는 자리에서 썼지 싶은 103쪽짜리 작은 책입니다. 이 책하고 맞물려 ‘남자의 참모습’ 같은 책을 천주교회에서 펴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아마 없지 싶습니다. 곰곰이 본다면 가시내하고 사내를 가르기보다는 ‘참다운 사람길’을 가르치고 배우도록 열린마당을 짤 노릇이지 싶어요. 제가 태어난 해에 나온 《여자의 참모습》을 전주에 있는 헌책집에서 만났고 샅샅이 읽었는데 끝내 “결국 모든 처녀가 바라는 것은 ‘행복한 결혼’을 하는 데 있다. 정상적인 처녀라면 누구나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와 평생토록 결합하여 그의 아기를 갖게 되기를 원한다 … 독자적인 ‘자유’를 누리려고 꿈꾸는 일부 처녀들은 틀림없이 어떤 점에서는 손해를 본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아직 내면생활에서는 미숙한 상황에 있거나 ……(29쪽).”를 밝히려 했네 싶어요. 가시내를 억누르는 두동진 삶터를 얼핏 짚는다 싶었지만, 모든 짐을 가시내 스스로 지라 하면서 ‘짝짓기’로 가는 길에 머물고 말더군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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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만쥬의 숲 5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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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바람이 부는 숲에서



《파란 만쥬의 숲 5》

 이와오카 히사에

 오경화 옮김

 미우

 2019.12.31.



  비가 오면서 하늘이 맑고 땅이 깨끗합니다. 바람이 불면서 먼지가 걷히고 땅에 뒹굴던 찌끄레기가 쓸립니다. 비란, 하늘이며 온땅을 말끔하게 다스리는 님이로구나 싶습니다. 바람이란, 이 별을 구석구석 어루만지면서 정갈하게 돌보는 님이로구나 싶어요. 비바람이 있기에 숲이며 들이며 마을이 아름다워요. 비바람이 들지 않는 숲이나 들이나 마을이라면 언제나 지저분하거나 매캐할 테지요.



“인간인 너는 아무것도 못 해.” “아뇨. 내가 그를 막을 겁니다. 나무들과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겠지만, 내가 꼭 막지 않으면 안 돼요. 난 시나코 씨도, 다른 이들도 살아 있기를 바라니까.” (87쪽)



  돌림앓이가 나라 안팎으로 퍼지기 앞서까지 사람들은 그냥그냥 살았습니다. 날씨가 미친다고 해도, 남북극 얼음이 녹는다고 해도, 숲이 망가져 바람이 매캐하다 해도, 한국이며 중국이며 인도이며 베트남이며 공장을 잔뜩 지어서 화학제품을 끝없이 쏟아내어 누리기만 하면서 이 별을 안 쳐다보았어요. 얼추 스무 해쯤 앞서 권정생 님은 “자가용을 버려야 이라크 파병을 안 한다”는 말씀을 남긴 적 있는데, 자가용을 버리면 달라지는 대목이 아주 많은데, 막상 자가용을 버리고서 살림을 두 손 두 다리로 짓거나, 자가용을 버린 자리에 나무를 심으려고 하는 분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글로는 읽고 머리에 지식으로는 담되, 마음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슬기로운 사랑으로는 좀처럼 나아가지 않는 몸짓이었지 싶습니다.


  우리가 짓는 살림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울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살림을 넉넉하게 짓습니다. 이 넉넉살림을 몇몇 우두머리하고 장사꾼이 거머쥐는 굴레를 더 깊고 단단히 여미기에 가난하거나 굶는 사람이 나옵니다. 우두머리하고 장사꾼은 전쟁무기하고 군대를 자꾸 늘리면서 엉뚱하게 살림돈을 들이부으니 가난하거나 굶다가 죽는 사람이 자꾸 나오고 말아요.


  이제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돌림앓이가 퍼지면 대통령이고 시장·군수이고 부질없을 뿐 아니라, 학교도 비행기도 멈추기 마련입니다. 군대가 쓸모있을까요? 아무 쓸모가 없어요. 이즈막에 쓸모있는 한 가지는 바로 비바람입니다. 비가 씻고 바람이 쓸어냅니다. 이동안 숲하고 들이 되살아나서 맑고 파란 하늘이며 정갈하며 푸른 땅을 되찾는구나 싶습니다. 참말로 하늘빛이 확 바뀌는데 이러한 하늘빛을 바라보면 좋겠어요. 2020년 겨울 끝자락하고 봄 첫머리에 유난히 비바람이 잦아요. 그만큼 이 어지럽고 매캐하며 지저분한 지구라는 별을 곱게 달래듯 씻고 털어 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건 평범한 카드였다. 그런데도 소이치가 갖고 있으면서 오랜 세월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 (151쪽)



  바람아씨하고 숲돌이 두 사람이 맺고 얽히는 삶을 그린 《파란 만쥬의 숲 5》(이와오카 히사에/오경화 옮김, 미우, 2019)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은 다섯걸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바람아씨는 끝없는 나날을 살아내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거나 엉터리인지, 그러나 이 어리석고 엉터리인 한복판에서도 사랑이라는 따사로운 빛을 넉넉히 나누려는 이가 한둘쯤 어김없이 있는 줄 지켜봅니다. 바람아씨는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이 별을 돌보기만 하면 죽음 없이 살아갈 만합니다. 그렇지만 바람아씨는 자꾸자꾸 숲이며 마을에 사뿐히 내려앉으려 합니다. 제 숨결을 숲돌이랑 숲순이한테 조금씩 나누어 준달까요.


  이런 바람아씨를 지켜본 다른 바람사내도 어느새 사랑스러우면서 의젓한 숲돌이나 숲순이를 만나다가 이내 모든 숨결을 숲사람한테 나누어 주고서 먼지처럼 사라지기까지 했어요. 다른 바람사내는 어리석고 엉터리인 사람 때문에 바람님이 사라지는 꼴이 못마땅합니다. 이리하여 바람님 사이에서 다툼질이 생겨요. 이 다툼질을 가장 어리석고 엉터리라는 ‘사람 하나’가 아무 힘도 없이 온마음을 맡겨서 녹여내는 길을 간다는 줄거리를 그린 만화책 《파란 만쥬의 숲》입니다.



“집에 가자.” “싫어! 할아버지도 이 숲을 지키고 싶잖아. 도망치면 안 돼!” (74쪽)


“이봐, 소이치. 들리냐? 난 무사해! 나무들도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 마음껏 써먹어 줘.” (77쪽)



  만화책 하나는 참으로 작습니다. 이 별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참으로 작아요. 우리는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사람은 매우 작기 때문에 때로는 더없이 커다란 빛이 되곤 합니다. 작기 때문에 크지요. 크기 때문에 다시 줄어요.


  고요하면서 아늑한 사랑은 크기가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일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람님이 바람님일 적에는 어떠한 크기도 힘도 따로 없습니다. 오롯이 바람님이에요. 사람이 사람일 적에는 어떠한 힘이나 이름이나 돈이 따로 없습니다. 옹글게 사람이지요.


  우리는 오늘 어떠한 살림을 펴는 하루를 짓는가요? 우리는 오늘 ‘우한 폐렴’이든 ‘코로나 19’이든 이런저런 이름으로 일컫는 돌림앓이를 어떤 눈으로 지켜보는가요? 입가리개를 하거나 집밖에 나서지 않으면 되나요. 화학약품으로 방역을 하거나 수돗물로 손을 씻으면 되나요. 질병관리본부라는 곳을 건사하면 되나요. 아니면 우리 모든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새길을 생각하면서, 앞으로는 수돗물 아닌 냇물을 다같이 누리는 마을로 거듭날 만한가요. 정수기도 수돗물도 댐도 아닌 냇물이며 샘물이며 우물물일 적에 비로소 몸이 맑게 트이는 줄 알아챌 수 있나요. 방독면이나 공기정화장치가 없이 맑게 일렁이는 바람을 쐬고 따사로이 드리우는 햇볕을 쬐며 싱그러이 내리는 빗물을 머금기에 사람을 비롯한 뭇숨결이 튼튼하면서 아름다운 길이 되는 줄 알아낼 수 있나요.



‘이 마음만은 부디 제대로 전달되기를. 와 줘서 고마워. 잠시나마 만날 수 있어 기뻤어.’ (209쪽)



  나라 안팎을 떠도는 온갖 이야기를 가만히 보면 ‘오늘은 확진자가 얼마나 늘고, 또 얼마나 숨을 거두었나 하는 숫자놀이’ 같습니다. 이 대목이 대수롭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너무 여기에 목을 매달면서 이런 이야기만 자꾸 퍼나르는 셈 아닌가 궁금해요. 입가리개를 하면 한결 나을 수 있습니다만, 입가리개하고 손씻기만으로 더러워진 이 별을 깨끗하게 돌리지 못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한바탕 춤추는 돌림앓이 하나만 지나간다고 해서 끝나지 않아요. 요일에 맞추어 누가 입가리개를 살 수 있다고 알리는 나라지기라면, 또 사람들을 약국 앞에서 한참 줄서기를 하도록 내모는 나라일꾼이라면, 이 나라 앞길은 참으로 아찔합니다.


  견디고 참고 이겨낼 돌림앓이만 바라보기보다는, 이제는 우리 ‘펑펑질(소비주의)’을 끝장내고서 큰고장이며 시골이며 비닐·농약·화학비료 없는 흙짓기랑 살림짓기를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아스팔트하고 시멘트는 차츰차츰 줄이면서 숲정이를 가꾸는, 돈벌이 관광산업이며 골프터나 커다란 경기장은 그만 짓고서 오롯이 해맑은 숲을 돌보는, 이러한 길을 내다볼 노릇이지 싶습니다. 2020년 일본 도쿄 올림픽을 멈추느냐 미루느냐로 말이 많은데, 앞으로는 올림픽을 아예 없애도 되어요.


  미국에서는 농구에 야구까지 멈추었어요. 미국사람은 곧 죽어도 농구(NBA)하고 야구(MLB)를 보는 하루를 살았다지만, 또 유럽사람은 곧 죽어도 축구(프리미어리그·라리가·세리에)를 보는 하루를 누렸다지만, 온누리 모든 운동경기가 한꺼번에 멈추었어요.


  잘 봐야 합니다. 돌림앓이가 퍼지니 모든 관광시설이며 경기장이며 쓸데없어요. 그런 관광시설이며 경기장이 없으니, 게다가 학교마저 멈추니 ‘집에서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붙어서 살아야 해서 괴로’운가요? 관광시설이며 경기장이 멈추니 나라 안팎 하늘이 파랗게 트이고 온갖 먼지가 줄어드는 줄 느낄 만하지 않나요? 더구나 여태 관광시설이며 경기장에 들이부은 돈이란, 갖가지 ‘운동경기 세계대회’를 치른 일이란, 우리 스스로 이 별을 망가뜨린 바보짓인 줄 깨달을 만할까요?



“그게 정말로 재미있던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좀더 충족되어 있어야죠.” “어?” “당신은 그걸로 만족이 안 됐잖아요. 당신뿐만이 아니에요. 시나코 씨도 충족이 안 됐으니까, 그래서 아마 이 숲에 도달한 거겠죠. 당신들을 알아보는 존재가 있는 이 숲에.” (109∼110쪽)



  고작 백 해는커녕 쉰 해조차 안 되었는데요, 우리가 학교랑 회사랑 관공서랑 정치랑 경제랑 문화랑 교육이랑 종교에 안 얽매이고 살아갈 무렵에는, 모든 집마다 하루 내내 아이들하고 복닥이면서 새롭게 놀이하고 이야기를 지폈습니다. 아이들은 빈터나 들이나 숲이나 바다나 멧골로 가서 스스로 놀이를 지어서 놀았고, 어른들은 집이며 마을이며 숲이며 들이며 바다에서 밥살림·옷살림·집살림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아름별을 되찾을 노릇입니다. 아름살림이며 아름마을이며 아름놀이에 아름일을 되찾을 길입니다. 아름사랑으로 가야지요. 어른도 어린이도 아름이란 몸빛으로 거듭나야지요. 아직은 입가리개를 하고 방역을 하고 질병관리본부가 땀흘려야 한다면 한동안 이대로 가되, 이 모든 돌림앓이를 씻어낸 뒤부터 비바람이며 햇볕이며 풀숲이며 어떻게 마주하고 건사할 적에 다시는 아프지 않는, 아니 눈부시게 튼튼한 우리가 될는지를 생각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이야기할 때라고 여깁니다. 집집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마을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학교를 다시 열 수 있을 텐데, 아예 올해는 모든 교육과정을 없애도 되어요. 올해는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까지 ‘한 해치 교육과정’을 일찌감치 접어놓고서, 앞으로 이 지구라는 별에서 우리가 지을 꽃살림이며 숲살림이며 사랑살림을 어디에서 어떻게 누가 어떠한 땀빛이며 웃음빛으로 함께할 적에 즐겁고 튼튼한 터전이 되려나 하는 이야기를 해야지 싶습니다. 입시도 시험도 돌림앓이 앞에서는 부질없는 줄 지켜보았다면, 우리가 참말로 지켜볼 길이 어디인가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틈을 넉넉히 누릴 만한 요즈음이겠지요.



둘이서 있을 수 있는 건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나는 카드론 일으킬 수 없는 기적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다. 숲에서 모두가 평온하게 웃는, 노와키조차도 같이 웃고 있는 모습을. (88쪽)



  이럴 때일수록 모든 나라가 ‘전쟁무기 없애기’에 뜻을 모으기를 빕니다. 모든 나라가 바로 이런 때에 ‘군대 없애기’에 뜻을 같이하기를 바랍니다. 학교만 멈출 일이 아니지 싶습니다. 전쟁무기하고 군대도 모조리 멈추고서, 이제까지 전쟁무기하고 군대에 퍼붓던 살림돈을 사람들한테 고루 나누어 주기를 바라요. 모든 군인을 집으로 돌려보내서 텃밭을 가꾸고 살림을 돌보는 마을일꾼이 되도록 북돋우기를 바라요.


  ‘국방비’라는 돈을 ‘재난기금’으로 모조리 돌리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한국뿐 아니라 이 지구라는 별에 있는 모든 나라에서 모든 사람이 다달이 150∼200만 원쯤 누릴 만하리라 생각해요. 그만큼 모든 나라 국방비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전쟁무기하고 군대를 다같이 없애면 아무 걱정이 없어요. 이 지구를 이룬 모든 나라에서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마을가꾸기랑 숲가꾸기에 온힘을 쏟는다면 돌림앓이가 더는 불거지지 못합니다. 그리고, 비행기나 자동차나 기차가 아닌, 두 다리나 자전거로 어느 나라이든 홀가분하게 마실을 다니는 새터가 될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달이 살림돈을 넉넉히 누리니 훔치거나 빼앗거나 가로챌 일이 없이, 아름답고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겠지요.


  오늘도 비바람이 불어 매캐하고 지저분한 이 별을 고이 씻고 쓸어 줍니다. 《파란 만쥬의 숲》에 나오는 두 숨결, 바람아씨하고 숲돌이는 온몸을 맡겨 바람숲을 지키는 길로 나아갑니다. 이윽고 두 숨결은 하늘나라에서 빛으로 새롭게 만나서 이 땅에 ‘사람’이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사랑’으로 처음부터 작은 살림을 꾸려 나갑니다. 그리고 이 둘 곁에서 바람이랑 숲이랑 모든 넋이 즐겁게 웃으면서 따스히 맞이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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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모의 플래시백 3
우에시바 리이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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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책으로 삶읽기 586


《오쿠모의 플래시백 3》

 우에시바 리이치

 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9.12.31.



“고마워, 스즈키. 앞으로도 남자아이 그릴 때는 모델이 되어 줘.” ‘아,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자주 모델로 삼았으니, 당연히 날 닮게 되겠구나.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즐거운 하루였어.’ (64쪽)


“나랑 같이 축제에 가 줄 거니?” “어? 그, 그야 당연히, 엄마의 만화를 위해서라면 나, 나도 도와야지!” (148쪽)



《오쿠모의 플래시백 3》(우에시바 리이치/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9)을 읽다가 생각해 본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는 아버지가 일찍 죽었다. 아이 어머니는 곁님을 잃은 뒤에 한동안 멍하니 지내다가 아이가 이녁더러 ‘만화를 그리라’고 일깨워 주어서 넋을 차리고는 제법 사랑받는 만화님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아이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으나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어머니하고 도란도란 보금자리를 가꾼다. 더구나 어머니가 만화를 그리다 보니 집안일을 못할 적이 수두룩해서 집살림도 야무지게 꾸린다. 먼저 떠난 아버지를 그릴 틈이 없다 할 만큼 바쁜 삶이지 싶은데, 어쩌면 이런 두 사람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던 죽은 아버지가 골을 부리듯 그대 어릴 적에 바라본 모습을 아들한테 살몃살몃 보여줄는지 모르리라. 그러나 우리는 늘 마음으로 어우러지는걸. 산 몸이든 죽은 몸이든 서로 마음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라, 몸이 이곳에 없더라도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이곳에 없는 넋’을 마음으로 그리면서 오붓하게 살아가는 길을 걸어갈 수 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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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원 시전집
박서원 지음 / 최측의농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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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22


《박서원 시전집》

 박서원

 최측의농간

 2018.4.26.



  누가 시를 쓰는가 하고 돌아보면 으레 두 갈래이지 싶습니다. 첫째로는 삶을 노래하기에 시를 씁니다. 둘째로는 멋을 부리려고 시를 씁니다. 삶을 노래하는 시는 사람뿐 아니라 뭇숨결한테 싱그러이 퍼지면서 웃음눈물을 자아냅니다. 멋을 부리는 시는 그럴듯해 보이기에 꾸밈거리로 퍼지면서 겉치레로 흐릅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자장자장 노래할 뿐 아니라, 아이 손을 잡고 호호하하 웃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날마다 시를 씁니다. 책상맡에서 붓대를 놀려 종이를 채우는 이라면, 이름값에 돈벌이에 교수나 시인이라는 허울이 드높으면서 콧대가 높습니다. 《박서원 시전집》을 조곤조곤 읽으면서 삶을 노래하는 사랑이란 어디에서 비롯하여 어디로 흐르는 빗물 같은가 하고 그려 봅니다. 빗물은 언제나 모두가 됩니다. 바다에서 아지랑이로 피어나 구름을 이루어 내려오는 빗물이 있기에 숲이 푸르고 냇물이 맑으며 뭇열매가 자라요. 우리는 모두 빗물을 머금은 몸이자, 빗물로 하나인 숨결이에요. 노래가 되는 시라면 빗물일 테지요. 바다를 품고, 구름을 안고, 바름을 가르고, 땅을 적시고, 숲에 드리우고, 풀벌레에 과일에 깃들고, 다시금 가만히 빠져나와서 하늘로 오르는, 노래하듯 놀이하듯 춤추는 숨가락이 바로 시라고 할 만하겠지요. ㅅㄴㄹ



산은 물구나무 선 / 하느님 / 내가 가까이 가면 갈수록 / 멀어지고 / 멀어지면 가까워지는 / 하느님 (산/74쪽)


모르죠? // 당신 심장에 / 해바라기 씨앗 하나 / 숨어들었다는 것 (모르죠?/343쪽)


어둠 속에서 숲은 싱싱했다 / 이파리들은 더 푸르러져 / 붉어져만 가는 달을 삼키고 / 새 달이 내려보낸 두레박에 실려 / 내려오는 별들과 해님 한 덩이 (뱃길/4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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