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모래밭에 벼리·보라 (2014.6.9.)


  바닷가 모래밭에 그림을 그린다. 바다로 나들이를 와서 한껏 들뜨고 신나는 두 아이를 그린다. 산들보라가 펄쩍 뛴다. 하늘을 난다. 옆에서 사름벼리가 폴짝 뛴다. 하늘을 훨훨 난다. 두 아이는 가볍게 하늘을 난다. 언제나 하늘을 날고,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기쁘게 하늘을 난다. 바다에서도 마당에서도 들에서 늘 하늘을 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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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살배기가 미끄럼틀에서 똥을 쌀 적에



  바다에서 신나게 놀면서 낮잠을 거른 네살배기 산들보라가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놀다가 그만 똥을 바지에 싼다. 그런데 마침 여름이라 반바지를 입다 보니 똥이 그대로 흘러서 미끄럼틀에 쏟아진다. 작은아이는 똥을 가린 지 꽤 되었으나, 몸이 많이 고단한지 어제는 똥을 못 가리고 만다.


  아이 밑을 씻기고 미끄럼틀을 치워야겠는데,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바깥물꼭지에서 물이 안 나온다. 왜 안 나올까. 왜 물꼭지를 바깥에 두고 물이 안 나오게 막았을까. 초등학교 옆에 면사무소가 있다. 면사무소 뒷간이 떠오른다. 초등학교는 저녁 여섯 시가 넘었기에 문을 닫아 들어갈 수 없지만, 면사무소에는 갈 수 있다. 면사무소로 가다가 길가에 버려진 물병을 본다. 돌아오는 길에 가져가서 미끄럼틀을 닦으면 되겠네.


  면사무소 뒷간에서 작은아이 고추와 똥꼬와 허벅지를 씻긴다. 손닦개로 물기를 훔친다. 똥범벅 바지는 똥 기운만 헹구어서 빼낸다. 초등학교 놀이터로 돌아가는데, 일곱살배기 사름벼리도 똥이 마렵다면서 어머니하고 면사무소 뒷간으로 오는 길이다. 이동안 곁님이 미끄럼틀 똥을 치웠단다.


  작은아이가 똥을 누니 큰아이도 똥을 눈다. 거꾸로, 집에서도 큰아이도 똥이 마렵다면서 똥을 누면 작은아이도 똥을 누겠다고 달라붙으며, 참말 작은아이도 똥을 눈다. 두 아이는 함께 똥을 누고 오줌을 눈다. 두 아이는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난다. 두 아이는 함께 놀고 함께 노래하며 함께 자란다. 4347.6.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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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8] 뒤꼍에서 만난 실잠자리
― 풀숲놀이


  네 식구가 함께 먹을 풀물을 짜려고 풀을 뜯습니다. 풀물을 짜려면 들풀이나 숲풀을 뜯어야 합니다. 농약이나 비료 같은 기운을 아주 조금이라도 받지 않은 풀을 뜯어야 합니다. 풀이 스스로 꽃을 피워서 씨앗을 맺은 뒤 스스로 퍼뜨려서 자라난 풀을 뜯어야 합니다.

  지난날에는 시골사람 누구나 풀죽을 쑤어 먹었습니다. 먹을거리가 없어서 풀죽을 쑤어 먹었다 말하는데, 나는 이 말을 달리 느낍니다. 다른 어느 것보다 풀죽이 맛나면서 좋기 때문에 풀죽을 쑤어 먹기도 했다고 느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풀이 언제나 이웃이요 삶벗입니다. 흙일을 괴롭히는 풀이란 없습니다. 사람 곁에 있는 풀은 언제나 세 갈래예요. 첫째, 사람이 입으로 먹는 풀입니다. 둘째, 사람이 몸에 걸칠 옷을 짜도록 실을 얻는 풀입니다. 셋째, 사람이 그릇이나 바구니로 엮도록 쓰는 풀입니다.

  예부터 시골에서는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옛날 시골사람 삶에는 ‘쓰레기’라는 낱말조차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버릴 것이 없던 옛날 시골살이요, 버릴 것이 없던 옛날 시골살이라 할 만하기에, 옛날 시골은 아주 아름답고 깨끗합니다.

  세 해 동안 즐겁게 묵힌 뒤꼍 일흔 평 풀숲을 천천히 누빕니다. 스무 가지 즈음 되는 풀을 뜯습니다. 온갖 풀이 저마다 얼크러져 자라니, 온갖 딱정벌레가 우리 집 뒤꼍 풀숲에서 자랍니다. 나는 온갖 풀을 기쁘게 얻으며 풀물을 짭니다. 이런 풀 저런 풀 기쁘게 뜯어 바구니에 담아서 부엌으로 가려는데, 실잠자리 한 마리 살랑살랑 바람 타고 날아서 내 앞에 앉습니다. 하늘빛 몸통과 꼬리로 춤추는 실잠자리입니다.

  걸음을 멈춥니다. 숨을 고릅니다. 이 아이는 제 고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나타났구나 싶습니다. 싱그러운 풀숲에서 노닐며 누린 맑은 빛을 알려주고 싶어서 나왔구나 싶습니다. 학술이름으로는 ‘푸른아시아실잠자리’라 하는데, 내 눈앞에 나타난 이 실잠자리 몸빛은 ‘하늘빛’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 뒤꼍에서 만난 실잠자리한테 ‘하늘실잠자리’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풀숲에서 풀을 뜯으며 놉니다. 딱정벌레하고 놀다가 실잠자리하고 놉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놀고, 해마다 보송보송 살아나는 흙땅을 밟으며 놉니다. 4347.6.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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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6-1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잠자리가 '하늘빛'이네요~
몸빛이 노랗거나 빨간 고추잠자리만 보았는데, 하늘빛 '하늘실잠자리'가
참 곱습니다.^^

숲노래 2014-06-10 09:43   좋아요 0 | URL
이제는 시골에서도 실잠자리는
만나기 참 힘들어요.

여느 잠자리도 실잠자리도
어디에서나 우리들과 함께
살 수 있기를 빈답니다..
 

4. 케익 먹기, 눈 먹기



  나는 1995년 11월 6일에 군대에 갔습니다. 나는 오른눈이 나쁘고 코가 나빠서 현역군대면제 대상이었지만, 내 앞뒤로 ‘미리 면제를 받을’ 누군가 있은 탓에, 오른눈으로는 4급 현역을 받고 코로는 3급 현역을 받았습니다.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기 앞서 내 눈은 ‘1.5(왼눈) + 0.1(오른눈)’이었습니다. 그러니, 너무 마땅히 면제가 나오리라 여겼는데, 신체검사를 한 군의관은 30분 동안 ‘눈 검사 기계’에 내 눈을 들이대고 나서 ‘1.0 + 0.1’로 바꾸었습니다(다른 사람은 눈 검사를 1분만에 끝냈으나 저한테만 30분 동안 했습니다). 면제를 안 주려는 숫자였어요. 내 코는 수술을 해도 만성축농증을 고치지 못한다 했고, 그무렵 늘 병원에 다녔으나 이 또한 군의관은 5급이 아닌 3급을 주었습니다. 이때 군의관은 나한테 ‘7급(재검 자격)을 받아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가지고 오면 5급(면제)을 주겠다’고 몰래 얘기했습니다만, 나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려면 그때에 10만 원씩 든다고 했는데, 도무지 이만 한 돈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진단서를 떼어 오면 면제를 주겠다는 말이란, 진단서가 없어도 면제를 주어야 마땅하다는 뜻이니까요. 덧붙여, 그 자리에서 이녁한테 10만 원을 주면 병원에 다녀오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진단서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1995년 11월에 군대에 들어가서도 줄을 잘못 섰는지, 논산에서 18시간을 기차를 타고 이리저리 돌다가 성북역에서 한 차례 쉬면서 오줌을 누었고, 다시 기차를 달려 춘천역에 내렸습니다. 그러고는 춘천에서 군대 짐차를 타고 두 시간 달렸고, 배를 타고 소양강을 가로질렀으며, 다시 군대 짐차를 타고 저녁 내내 달렸습니다. 눈이 워낙 많이 내려서 더디게 가야 했고, 춘천에서 내린 지 이레만에 드디어 내 ‘자대(복무할 부대)’에 닿았습니다. 이동안 밤에 잠을 자던 곳에서 언제나 눈쓸기를 했는데, 태어나서 이토록 많은 눈은 처음 보았습니다. 자대에 닿으니, 곧 지오피(비무장지대)에 들어간다면서 마지막 훈련이 한창이었습니다. 자대에 온 지 하루나 이틀밖에 안 된 이등병은 훈련에서 면제라 했지만, 이때에도 어떤 까닭에서인지 더블백을 풀지도 않았으나 소총부터 받고 겨울훈련(혹한기훈련)을 뛰었습니다.


  제가 배치를 받은 중대를 거느리는 중대장은 ‘똘아이’라고 했습니다. 제풀에 미쳐서 날뛰면 대대장이나 연대장 앞에서도 삿대질을 하는 놈이었습니다. 연대장이 ‘너무 추우니 훈련을 멈추고 어서 천막을 치고 병사를 재우라’고 명령했지만, 중대장은 산속에서 길을 잃은 일 때문에 혼자 창피하고 짜증이 난다면서 밤샘걷기를 했어요. 18시간 동안 강원도 양구 멧골짜기를 쉬지 않고 오줌도 누지 못하는 채 완전군장을 메고 걷기만 했습니다. 먹지도 쉬지도 오줌을 누지도 못하는 채 또 ‘18’(왜 18이라는 숫자가 되풀이되었을까요? 나중에 알아차릴 날이 오겠지요?)시간을 걷다가 문득 눈을 주워서 먹자고 생각했습니다. 옛날에 물이 없으면 하얀 눈을 녹여서 마셨다고 했으니, 물을 마시는 셈치고 눈을 먹자고 했어요.


  병장을 단 고참이 ‘눈을 먹으려면 조금만 먹어야 한다’고, 많이 먹으면 배앓이를 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듣지 않기로 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팠거든요. 둘레에 가득 쌓인 이 하얀 눈을 눈이 아닌 ‘먹을 것’으로, 먹을 것 가운데 ‘케익’으로 그리기로 하면서 먹었어요(나는 배앓이를 안 했습니다).


  나는 군대에 가기 앞서까지 케익을 못 먹었습니다. 생크림조차 못 먹었습니다. 빵을 먹어도 크림빵은 안 먹고 단팥빵만 먹었어요. 생크림이나 케익을 먹으면 늘 배앓이를 하거나 물똥을 여러 날 누었습니다. 생일잔치를 할 적에 어릴 적에 크림케익을 꼭 한 번 먹고 크게 배앓이를 해서, 그 뒤로 늘 롤케익만 먹었어요. 그런데 왜 크림케익이 떠올라, 크림케익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눈을 집어먹었을까요?


  비무장지대에 들어가기 앞서 짧게 휴가를 받았습니다. 닷새 말미로 나온 휴가에서 동무들이 “뭐 먹고 싶니? 고기 먹고 싶지? 고깃집 가자?” 하고 말했지만, 나는 “아니, 케익.”이라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동무들은 깔깔 웃으면서 나를 고깃집으로 데려갑니다. 동무 하나가 밖에 나가서 생크림케익을 사 주었습니다. 1초쯤? 망설이다가 세겹살 고깃점과 케익을 나란히 먹었습니다. 케익을 먼저 혼자 다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동무들은 케익을 하나 더 사 주었고, 또 혼자서 고깃집에서 케익을 다 먹었습니다.


  군대에서 사회로 돌아온 지 어느덧 스무 해 가까이 됩니다. 이제 나는 생크림케익을 먹을 수 있습니다. 내가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서 먹은 눈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고깃집에서 먹은 케익은 무엇이었을까요.


  여느 때에 그냥 물 한 잔을 마실 적하고, 물 한 잔에 이마를 대고 조곤조곤 사랑스러운 말을 속삭인 뒤 마실 적하고, 내 몸은 어떻게 맞아들일까요.


  군대를 마친 뒤 내 눈은 더 나빠졌으나, 내 코는 나아졌습니다. 깊디깊은 멧골짝에서 스물여섯 달을 살았기 때문일까요? 아마 그러하리라 느낍니다.


  좋은 것은 무엇이고 나쁜 것은 무엇일까요. 좋은 길은 무엇이고 나쁜 길은 무엇일까요. 1995년 3월에 신체검사를 받고 11월에 군대에 가기로 했기에, 깊은 멧골에서 스물여섯 달을 오롯이 보낼 수 있었고, 이때 기운이 바탕이 되어 나는 오늘 깊은 시골에서 네 식구 살림을 꾸릴 수 있습니다. 4347.6.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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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7] 딸기알 함께 먹는 이웃
― 딱정벌레와 애벌레와 개미와


  해마다 오월을 맞이하면 우리 식구는 들딸기 먹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날마다 들딸기를 실컷 먹던 어느 날, 며칠쯤 바깥마실을 하고 시골집으로 돌아오면, 누군가 우리 들딸기밭에 몰래 들어와서 ‘덜 여문 딸기’까지 모조리 훑어 가져갑니다.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그리고 올해에도 이런 일이 되풀이됩니다.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다녀오느라 여러 날 집을 비우니, 우리 들딸기밭에 며칠 나가지 못하는데, 꼭 이 즈음 누군가 모조리 훑습니다.

  날마다 바구니를 그득 채울 만큼 들딸기를 많이 거두던 들딸기밭이 텅 빕니다. 우리 마을에서 어떤 분이 이렇게 우리 들딸기를 모조리 가로챘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함께 누리거나 같이 즐기는 마음이 없는 모습을 읽습니다.

  씨가 말랐을 뿐 아니라, 들딸기넝쿨이 많이 짓밟혀 더 나기 어려운 자국을 살펴봅니다. 덜 여문 들딸기까지 따더라도, 이제 막 영글려 하는 넝쿨은 그대로 두어야 할 텐데, 이런 넝쿨까지 그예 짓밟은 자국을 보면 부아가 치밀기보다 안쓰럽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쩌다가 이런 몸가짐이 되었을까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런 매무새가 되었을까요.

  군데군데 들딸기알이 몇 남습니다. 벌써 들딸기를 마지막으로 맛보는 셈인가 서운하지만, 아이들한테 몇 알이라도 맛보게 하려고 찬찬히 살펴봅니다. 그런데, 몇 안 남은 들딸기알마다 딱정벌레와 애벌레가 잔뜩 달라붙습니다. 개미도 달라붙습니다. 그래, 그렇지. 이 들딸기알은 사람만 먹지 않아. 너희들 딱정벌레도 먹고 애벌레도 먹으며 개미와 진딧물도 먹지. 풀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웃이 함께 먹지.

  벌레가 앉아서 단물을 빨아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봅니다. 이 아이들이 들딸기알 먹는 모습을 보니, 이 아이들을 휘휘 털어서 훑을 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이 먹을 작은 들딸기알조차 모조리 훑었으니, 풀벌레는 얼마나 서운하며 슬플까요. 예부터 콩을 석 알씩 심을 적에 사람은 한 알만 먹도록 한다고 했지만, 풀벌레가 먹을 들딸기알을 조금도 남기지 않는 오늘날 시골사람 손길은 어떤 빛이 될는지 다시금 곱씹습니다. 4347.6.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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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6-08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딸기인가요

숲노래 2014-06-08 09:35   좋아요 0 | URL
네, 산딸기라고 할 수 있어요.
뭐, 그래도 좋은 들밥
잘 먹으셨기를 바라는데,
덜 여문 것까지 다 훑은 까닭은
효소로 담그거나 술을 담그려는 목적 때문이지 싶어요.
그러니 한 알이라도 더 훑어서 몽땅 가져가려고 했겠지요 ^^;;

하늘바람 2014-06-08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못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