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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협과 아줌마


 우리 나라에서 스스로 진보라 하는 분들하고 보수라 외치는 분들을 곰곰이 살펴보면, 생협에 다니지 않을 뿐더러 생협을 알고자 힘쓰지 않는데다가 생협 같은 모임을 느끼지조차 않기 일쑤입니다. 그렇다고 진보인 분들 스스로 농사를 짓는다든지, 보수인 분들 스스로 시골에 터를 마련해 조용히 농사짓기를 즐긴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아줌마들만이 왼날개나 오른날개 아닌 여느 수수한 살림꾼으로서 생협에 다니고 있습니다. (4343.7.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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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보는 눈과 사진을 담는 손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  
Erika Stone(사진)+Merle Good(글),  《Nicole visits an Amish farm》(Walker & com,1982)


 고추밭에서 고추를 딸 때에는 긴소매에 긴바지를 입어야 합니다. 한여름이라고 반바지나 끌신 차림으로 고추를 딸 수 없습니다. 담배밭에서 담배잎을 딸 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글로 적어 놓은 책은 없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글로 쓰고자 하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사진과 그림으로 옳게 담는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농사를 짓는 이름난 그림쟁이 한 분이 곡괭이질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고 씁쓸하게 웃은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틀림없이 삽질과 곡괭이질을 알지만 ‘곡괭이자루를 쥐고 내리찍는 모습’을 엉터리로 그렸습니다. 곡괭이질을 하는 느낌, 영어로 말하자면 ‘이미지 보여주기’에만 마음을 쏟았을 뿐, 곡괭이질을 할 때에 두 손으로 자루 어디를 잡고 어떻게 내리찍는가를 옳게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자전거 타는 글쟁이와 그림쟁이와 사진쟁이는 꽤 늘었습니다. 그러나 자전거 그림이 옳은지 그른지를 제대로 알아차리는 글쟁이나 그림쟁이나 사진쟁이는 대단히 드뭅니다. 아주 쉬운 보기로, 자전거 체인이 어느 쪽에 달려 있는가라든지 페달이 붙는 자리라든지 손잡이와 앞바퀴가 어떻게 이어져 있으며 안장과 뒷바퀴는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를 올바로 그릴 줄 아는 그림쟁이란 드물고, 올바르지 않은 그림을 깨닫는 지식인은 몇 안 됩니다.

 콩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콩을 먹는 사람 가운데 콩을 심어 김을 매거나 콩꽃 어여쁜 하얀 꽃잎을 쓰다듬어 본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감자를 즐겨먹든 안 먹든, 감자를 먹는 사람 가운데 감자꽃이 무슨 빛이요 꽃잎이 몇 장인지를 아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배를 먹으면서 배꽃이 하얀지 노란지 헤아리거나, 능금을 즐기면서 능금꽃이 붉은지 불그스름한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귤나무에 귤꽃이 피는지 생각하거나 대추나무에 대추꽃이 피는지 돌아보는 사람은 아예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지식은 넘치고 대학교 다닌 사람은 넘실거리지만, 정작 우리 삶자락 밑바탕을 둘러싼 지식을 보듬으며 껴안는 사람은 나날이 줄어듭니다.

 우리들은 밥을 잘 할 줄 모르거나 밥을 아예 할 줄 모르면서도 밥을 얻어 먹을 수 있습니다. 돈을 치러서 밥을 사다 먹을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물레를 잣고 길쌈을 한 다음 베틀을 밟고 나서 바느질을 거쳐 옷 한 벌 지을 줄 모를 뿐 아니라, 이렇게 하는 흐름을 하나조차 모르면서 옷 한 벌 예쁘장하게 사서 입을 줄은 압니다. 어쩌면, 이제는 옷 한 벌 사서 입는 값이 훨씬 싸며 품이 거의 안 들기 때문에 옷이란 돈 주고 사서 입으면 그만인 삶자락이라 할 만합니다.

 보도사진이든 다큐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초상사진이든 풍경사진이든 만듦사진이든 사진은 사진입니다. 갈래가 다를 뿐 사진은 사진입니다. 사진은 사람이 찍어서 이루는 문화요, 사진은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며 즐기는 예술입니다.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는 삶이 사진입니다.

 일본사람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조선을 생각한다》 같은 책을 쓸 수 있던 까닭은 당신 스스로 ‘조선 삶’을 ‘당신 삶’으로 맞아들이며 어깨동무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잘나거나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당신 뜻이 거룩하거나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미국사람 허먼 멜빌 님이 《모비딕》 같은 책을 쓸 수 있던 까닭은 당신 스스로 ‘고래잡이 삶’을 ‘당신 삶’으로 받아들이며 껴안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용케 살아남았거나 굳센 고기잡이라서가 아닙니다. 당신 눈이 남다르거나 그윽해서가 아닙니다.

 이오덕 님이 《일하는 아이들》 같은 책을 엮을 수 있던 까닭은 당신 스스로 ‘어린이 삶’을 ‘당신 삶’으로 안아들이며 웃고 울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뛰어나거나 교육자 얼이 단단해서가 아닙니다. 당신 마음이 더 따뜻하거나 훨씬 너그러워서가 아닙니다.

 사진책 《Nicole visits an Amish farm》을 펼치면서 생각합니다. 까망둥이 니콜(Nicole)이라는 계집아이가 하양둥이 채리티(Charity)라는 계집아이를 만나서 보낸 보름에 걸친 나날을 담은 이 작은 사진책에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으로 살아가는 니콜이라는 ‘까망둥이 아이’가 1970∼80년대에 오로지 하양둥이만 살아가고 있는 ‘아미쉬 마을’에 들어가서 부대낀 삶을 보여주는데, 이토록 따뜻하고 살가운 이야기로 엮을 수 있나 싶어 놀랍니다. 그러나 이 사진책을 들여다볼 사람들 가운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나 《아미쉬》 같은 책이나마 읽었을 사람은 거의 없을 테며, 《Nicole visits an Amish farm》 같은 사진책을 알아볼 한국사람부터 거의 없습니다. ‘아미쉬’가 무엇인지를 생각할 사람조차 드물고, 이 사진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왜 거의 언제나 맨발인 모습일는지를 알아챌 사람이란 없을 테며,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낮은학년일 아이들이 밥하기이며 빨래이며 농사일이며 숱한 집일을 함께하는 삶에 어떤 뜻이 깃들어 있는가를 읽을 사람이란 없으리라 봅니다. 더욱이, 아미쉬 사람들은 무늬없는 투박한 긴소매와 긴치마를 입으나 니콜이라는 계집아이는 목덜미 드러나는 온갖 빛깔 밝은 민소매 웃도리에 무릎 위로 올라가는 치마를 입는데, 아미쉬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볼 줄 모르면 찍을 줄 모른다지만, 살 줄 모르니 볼 줄 모릅니다. 살 줄을 모르니 무엇을 어떻게 왜 언제 누구하고 찍어야 하는 줄 모릅니다. 보도사진이든 다큐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초상사진이든 풍경사진이든 만듦사진이든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볼 줄 알아야 하는데, 볼 줄 알자면 살 줄 알아야 하고, 살 줄 알자면 스스로 뿌리내리어 녹아든 매무새이자 마음밭이어야 합니다. (4343.6.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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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84 ― 하루에 2분만 들이면 세상을 바꾼다
 : 마조리 램, 《2분 간의 녹색운동》


- 책이름 : 2분 간의 녹색운동
- 글 : 마조리 램
- 옮긴이 : 김경자, 박희경, 이추경
- 펴낸곳 : 성바오로출판사 (1991.6.10.)



 (1) 아기를 생각하는 삶


 며칠 앞서입니다. 어느 소설쓰는 분을 만난 자리에서 이 소설쓰는 분을 아끼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술잔도 부딪혔는데, 제 앞에 앉으신 분은 아이를 둘 키우는 아주머니였고, 두 아이를 모두 천기저귀를 손빨래 하며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신한테 돈이 더 많았다면 그렇게 천기저귀를 쓰지 못했으리라는 말씀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천기저귀 손빨래를 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생각하지 못할 일입니다. 아이를 키우며 기저귀 빨래만 해도 된다면, 천기저귀 빨래가 수월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할 만할 수 있지만, 아버지 된 이는 아이 키우는 일에 팔짱을 끼고 있는 가운데 두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놀리고 가르치고 하자면 어머니 된 이는 몸이 죽어납니다. 그러니 저절로 ‘한 가지라도 손이 덜 가는 일’을 찾을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종이기저귀를 사다 쓰는 일도 고달픕니다. 부지런히 저잣거리 나들이를 해야 하며,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다 보면 군물건에 눈길을 빼앗길 뿐더러, 꽤 긴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아기를 업고 안고 무거운 종이기저귀를 들고 오기도 벅차, 자동차를 끌게 됩니다. 자동차를 끌면서 길에 기름값을 버리게 되고, 또 자동차에 들어가는 보험삯이며 다른 돈이며 ……. 돈이 있어도 할 만하지 못한 일이 ‘종이기저귀 쓰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종이기저귀를 쓰면서 나오는 이 쓰레기들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 삶터를 더럽히고 맙니다.


.. 나는 베이비붐 세대였으나 생활습관은 공황시대에 성장한 나의 부모님들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분들로부터 얻은 교훈들은 다음과 같다. 새옷을 사는 것을 보류하고 낡은 것을 기워서 입는다. 애채는 직접 재배해서 저장한다. 작은 나무조각이나 종이조각, 쇳조각도 쓰이는 곳이 있다. 적게 사들이고 수리를 많이 한다. “직접 만들어라, 낡을 때까지 입어라, 끝까지 사용해라.” 어릴 적의 인상적이었던 검약의 필요성이 환경 시대에서는 미덕이 되었다 … 정치가와 정부와 기업이 무엇인가 하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단정했다. 우리는 바로 지금 자신의 집에서 무엇인가를 시작해야만 한다 ..  (14∼15쪽)


 아기를 안고 업고 나들이를 다니는 우리 식구를 보는 이웃 분들은 ‘그러지 말고 작은 차라도 한 대 장만하지?’ 하고 말을 합니다. 예전에 저 혼자서 책방 나들이를 하며 가방이 미어터져라 책을 장만하면서 땀 뻘뻘 흘리고 나르는 모습을 볼 때에도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 우리는 자동차를 장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들 수 있을 만큼 책을 장만하여 들 뿐이고, 아기와 함께 다닐 때 챙겨야 하는 기저귀 짐보따리는 마땅히 어버이로서 짊어질 보따리이거든요. 그만한 보따리 하나 몸뚱이로 짊어질 수 없다면, 어버이 되기를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방이 미어터지든 가방으로 모자라 두 손으로 더 챙겨 들어야 하든, 스스로 짊어지거나 들고 나를 만큼만 책을 사들이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종이기저귀 생산자나 소비자들은 그 편리성을 떠들어댄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편리할까? 종이기저귀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장에 갈 때마다 기저귀를 사야 한다. 기저귀를 다 쓰면, 그것을 사러 일부러 시장까지 가기 일쑤다. 천기저귀를 쓰면, 세탁기에 집어넣는 1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면 되는데, 이렇게만 하면 2년 반 동안 아이는 계속 기저귀를 차게 되는 셈이다 … 종이기저귀를 쓰기 위해 얼마만한 시간 동안 일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36∼37쪽)


 인천에서 일산까지 나들이를 다니는 길은, 자동차를 얻어 타면 한 시간이 채 안 걸리고, 전철로 돌고 돌아 버스 타고 들어가면 세 시간이 넘습니다. 자그마치 두 시간 넘게 벌어지는 길이라, 옆지기 부모님을 만나뵙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충북 음성에 있는 제 부모님 만나뵙기도 꽤나 벅찹니다. 대중교통으로는.

 그렇지만 이 거리를 자가용으로 움직인다고 치면 몹시 가깝습니다. 고속도로나 고속국도가 아주 잘 뚫려서 금세 씽 하고 찾아갈 수 있어요. 다만, 이 가까이 잘 뚫린 길로 다니는 대중교통은 없습니다. 시골사람들은 옆마을에 살아도 서로 느긋하게 오갈 차편이 없어요. 차를 타면 3∼5분 거리인데, 걸어가면 한 시간이 넘습니다. 버스를 기다리자면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도 음성에 가며 버스 기다리기 힘들어 끝내 택시를 잡아탔는데, 택시삯이 만칠천 원이 넘게 나와, 인천에서 음성까지 기차나 버스 타고 가는 삯보다 훨씬 더 나왔어요.

 나라에서는, 또한 지역자치정부에서는, 우리들이 대중교통으로는 움직일 수 없도록 하는 셈입니다. 오로지 자동차를 장만해서 굴리라고 하는 셈입니다. 자동차 굴릴 돈을 벌고, 자동차에 넣을 기름값을 벌며, 자동차 유지관리비와 보험삯 모두 벌라는 셈입니다.


.. 새로운 유행이 나오면, 신분을 의식하는 사회에서는, 필요하지 않아도 구입하게 된다. 옷감 가게는 여러 가지 테두리나 장식품들을 갖추고 있어야만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자동차회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해마다 한 대씩 최신형 자동차를 만들고, 해마다 다른 모델을 생산하는 생산조직을 재정비한다. 당신이 새 차를 운전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미 그 차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동차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아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도시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대중교통수단보다 자가용으로 더 쉽게 시내에 진입하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52주 중 1주 반 동안만 이것을 실행한다면 무엇인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우체국까지 항상 자동차로 간다면 그곳을 자전거 타고 가는 지점으로 정하라. ‘직장까지 자전거로’ 가는 주일을 정하는 것은 어떨까? 안전하게 자전거를 세워 놓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달라고 직장에 건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주차장이 있는 직장이라면 자전거를 세워 놓을 장소 제공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  (60∼63쪽)


 일산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리고 일산 나들이를 하려고 집에서 떠날 때, 요즈음은 여행가방에 아기 기저귀와 옷가지를 그득그득 채우고 끕니다. 여행가방 바퀴는 플라스틱이라 오돌토돌한 길을 끌 때면 극극극 끌리는 소리가 참 큽니다. 왜 여행가방 바퀴에 고무를 대지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걸어다니는 길이 ‘겉으로 보기에는 예뻐 보일’ 뿐, 정작 우리가 다니기에 안 좋다는 뜻입니다. 여행가방을 끌 때 극극극 큰소리가 나는 길에서는, 우리가 아기수레를 끌고 다닌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수레에 탄 아기는 덜덜덜 떨리는 느낌을 고스란히 받아야 합니다. 게다가 턱이나 계단이 오죽 많습니까. 1층 건물에도 턱이나 계단을 만들어서 ‘멋스럽게 꾸민’다고 합니다. 용산역이나 서울역 같은 데에는 자동계단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자동계단으로는 아기수레를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승강기라도 찾아보아야겠는데, 어디에 붙었는지 찾기가 퍽 어렵습니다.

 이웃에서 ‘아기수레 드릴 테니 쓰셔요.’ 하고 말씀하는 분이 여럿 되지만, 이러저러한 길 형편을 헤아릴 때, 우리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길이 이러저러해서 우리는 안 쓰려고 해요. 죄송해요.’ 하면서 손사래를 칩니다. 가방 짊어지고 아기 안고 다니자면 팔 빠지고 등허리 쑤실 노릇이지만, 어버이 몸이 좀 고달프다고 해서 갓난아기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세상이 이토록 ‘걷는 사람’을 헤아리지 않도록 내버려두거나 팔짱을 끼거나 모르쇠로 지냈던 우리 스스로를 탓하면서 우리가 떠안아야 하는 고달픔입니다.


.. 점심시간 후에 학교 쓰레기통을 본 일이 있는가? 넘쳐나지 않는가? 환경에 친숙한 학교 도시락에는 한 가지 간단한 법칙이 있다. 버려야 할 것은 도시락에 넣지 말라. 몇 가지 물건으로도 아이들은 몇 년 동안 쓸 수 있다. 플라스틱 봉투, 종이봉투, 개인용 음료수통, 그리고 플라스틱 랩을 사용하는 대식 플라스틱 점심그릇이나 헝겊 도시락가방이나 단열 혹은 진공병을 쓰도록 하라 … 아이들을 학교 시절에 일찍 바로잡아 놓으면 학창 시절을 거친 누구라도 녹색기준을 고수하리라는 확신을 할 수 있다 … 아직 멀쩡한 옷, 차, 그리고 살림집기들을 해마다 모조리 버리는 것을 우리는 어디서 배웠는가? 일찌감치 학창 시절의 영향으로 시작된 것일까? … 내 생각에 아버지는 가장 값있고 영원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 주셨는데, 새 설계를 위해, 쓰던 물건을 간직하고, 이미 가지고 있으면 새 것을 사지 말라는 것이었다 … 북아메리카에서 우리는 자원이 무한히 많은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쓰레기 치우는 날이면 어김없이 길가에 놓여 있는 값나가는 물건을 많이 보는데 모두 쓰레기 매립장으로 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  (117∼124쪽)


 늘 느끼는데, 더도 덜도 말고 내 아이를 생각해 보면 세상이 나빠질 수 없다고 느낍니다. 내 아이만 생각해도 세상이 나빠질 수 없다고 느낍니다.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는 내 아이를 생각하고, 어버이를 모시는 사람으로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나 아이가 없으면 동무와 이웃을 생각하면 됩니다. 나와 내 이웃과 내 동무가 다 함께 즐겁게 살아갈 세상이라 한다면 우리 세상은 어찌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꾸려야 하겠습니까. 어떤 물건을 쓰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놀이를 즐겨야겠습니까. 내 어버이와 아이와 이웃과 동무를 떠나, 내 몸 하나만 생각한다고 하여도, 우리들은 1회용품이란 어느 한 번이라도 쓸 수 없습니다.
 





 (2) 책을 생각하는 삶


 《2분 간의 녹색운동》이라는 그리 두툼하지 않는 푸른빛 책을 처음 알게 되어 읽은 때는 2000년 가을입니다. 책을 펴낸 곳은 ‘성바오로출판사’이고, 이곳은 천주교 책을 부지런히 내는 데이지만, ‘분도출판사’와 마찬가지로 ‘종교 테두리를 넘어서면서 사회와 삶과 사람을 돌아보는’ 책을 꾸준히 냈습니다. 요즈음은 꽤 뜸하게 되었지만.

 1991년에 나온 《2분 간의 녹색운동》은 이런 흐름, ‘종교를 믿는 사람도 읽어야 하지만, 종교를 안 믿는 사람도 즐겁게 읽을 만한 책’으로 나온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쉽게도 《2분 간의 녹색운동》은 ‘바오로딸’ 책방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안 팔리고 남은 책이 있는 ‘바오로딸’에는 있겠지만, 시중 새책방에서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오로지 헌책방에만 남은 책이 되었습니다. 더 아쉽게도 이렇게 좋은 책이 천주교회에서 두루 읽히지 못하는데, 어쩌면 천주교회 스스로 이 책이 판이 끊어지지 않도록 미사 때 알리고 교리 공부 하면서 함께 나누지 않은 탓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말이지요.

 그런데, 천주교회뿐만이 아닙니다. 기독교회나 불교에서는, 또 천도교회에서는, 우리 삶과 세상을 돌아보는 책을 얼마나 가까이하면서 속깊이 받아들이거나 나누고 있을까요. 지율 스님이 《초록의 공명》과 같은 책을 펴냈을 때, 불교를 믿는 분들은 얼마나 이 책을 가슴으로 껴안으면서 받아들여 주었을까요. 아니, 찾아서 한 줄이나마 읽기라도 했을는지요. 알도 레오폴드와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 쓴 책을, 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책을 기독교회 사람들은 얼마나 가까이하면서 가슴으로 새기고 있을는지요.


.. 새로운 땅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물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있는 물을 잘못 사용한다는 것은, 깨끗한 물의 원료가 없어진다는 말과 같다 … 물 절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라 : 매일 필요로 하는 물을 전부 내가 집까지 운반해 와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머리 위에 항아리를 이고서 … 우리가 집에서 사용한 세제들의 대부분은 배수구로 빠져 하수구로 흘러나가, 우리의 마실 물이 될 호수와 강, 하천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  (18, 28, 38쪽)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2분 간의 녹색운동》이 보이면 일부러 더 장만합니다. 저는 일찌감치 읽었지만, 옆지기한테 읽히려고 한 권 더 사고, 옆지기 어머님한테 선물하려고 한 권 더 사며, 우리 동네에 있는 송림동성당 신부님과 수녀님한테 선물하려고 한 권 다시 삽니다. 그러고도 또 보이면 또다른 이웃한테 선물하고자 집어듭니다.

 다만, 헌책방 나들이를 하는 그날 바로 사지는 않습니다. 몇 번 나들이를 하면서 ‘우리 말고 다른 분들이 이 책을 알아보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다립니다. 몇 달을 기다리고 나서 그예 안 팔리고 얌전히 꽂힌 모습을 본 다음, ‘어쩔 수 없네. 우리가 사서 선물해 주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 새하얀 것을 선호하는 것이 미덕인가? 이상하게도 심술궂은 인간행동 중의 하나가 누군가 청소를 쉽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면, 청결도의 기준을 높인다는 점이다. 진공청소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먼지가 침대 밑이나 옷장 뒤에 요즘보다 훨씬 더 많이 쌓여 있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일 년에 한 번 ‘춘계 대청소’를 하면서 그동안 쌓인 때나 먼지를 닦아냈다. 요즘은 매주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한다. 세탁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한 번 입어서가 아니라, 옷에 때가 있어야 세탁을 했다 … 어머니는 집의 구석구석을 문지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셨다. 어머니는 늘 네 명의 수선스런 아이들의 과제물, 학교 연극, 인형 만들기, 성쌓기 등을 도와주실 준비를 하고 계셨다. 그 덕분에 누구나 우리 집에 오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 인생에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지 볼 수 있는 시각을 유지하도록 하자. 창문테가 깨끗하지 않다고 친구들이 우리를 덜 좋아할까? ..  (42∼43쪽)


 새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사서 선물해 주는 책도 있습니다. 《씨앗의 희망》이나 《수달 타카의 일생》이나 《회색곰 왑의 삶》 같은 책은 헌책방에 잘 안 들어오기도 하지만(많이 안 팔리니까), 오래도록 꾸준하게 새책방에 남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틈틈이 선물해 줍니다. 또는, 쪽지에 ‘이러저러한 책이 있는데 참 좋아요. 책방 나들이를 하시면서 한번쯤 둘러보시고 괜찮으면 사서 읽어 보셔요.’ 하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흔히 《오래된 미래》나 《침묵의 봄》이나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나 《육식의 종말》 같은 책만 알고 다른 훌륭한 생태환경책에는 눈길을 못 돌리기 일쑤입니다. 《모래 군의 열두 달》 같은 책조차 제대로 알려지거나 읽히지 못합니다. 그나마 잡지 《녹색평론》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두루 독자를 얻고 있는데, 잡지를 꾸준히 찍을 수 있을 만한 독자수일 뿐이지,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을 가다듬거나 새로워지도록 다스릴 만한 독자수는 아닙니다.

 어쩌면, 이런 독자수와 책 팔림새가 오늘날 우리 모습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우리 눈높이요 우리 얼굴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우리 움직임이요 매무새가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스스로 한결 아름다워지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스스로 더 물질문명에 젖어드는 사람이 되려는, 속보다 겉에 훨씬 더 마음을 쏟는 우리들 삶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 음료수 판매대에 가면 선택을 해야 하는데, 다양한 포장 때문에 혼란을 느낀다. 회수가능한 유리병, 회수불능 유리병, 재생가능 플라스틱병, 재생불가능 플라스틱병, 재생가능 캔 등이다.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첫 번째 선택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음료수를 사지 않는 것이다 … 헬스클럽의 회원이거나 스포츠센터의 직원인가? 회비를 냈다고 해서 자원을 남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다니는 클럽에서도 일회용 면도기의 사용을 권하는가? 집에서는 수건 한 장이면 될 것도, 거저 쓸 수 있다고 몸을 닦는 데 세 장씩 수건을 쓰는 건 아닌지? 수건 한 장마다 세탁하고 건조시키는 데 에너지가 든다. 회비에 포함됐다고 해서 20분 동안 샤워하지는 않는가? ..  (79, 92∼93쪽)


 저는 동네에서 ‘사진책 도서관’이라고 이름을 내걸며 꾸리고 있지만, 정작 제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책은 ‘생태환경책’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좋아하고 아끼면서 차곡차곡 그러모아 보아도 생태환경책으로는 책꽂이 두어 칸을 채우기 어렵습니다. 잡지를 빼고 낱권책으로는. 시중에 나오는 모든 책이 아닌 제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이웃하고 나눌 책으로는. 아니, 제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쯤 되면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까지 다 하더라도.

 참말로 오늘날 한국땅에서 생태환경책은 출판사에서 잘 안 냅니다. 잘 안 팔리니 잘 안 낼밖에 없는데, 오늘날 어느 누구라도 ‘환경 문제가 아주 큽니다’ 하고 말을 하지만, 정작 환경 문제가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라고 해 보면 ‘쓰레기 안 버리기’를 넘어서기 어렵고, 요즈음은 ‘이명박 대운하’쯤을 겨우 건드릴 뿐입니다. 스스로 환경책을 읽어 보지 못했을 뿐더러, 어떤 환경책이 있는 줄 모르고, 우리 삶을 살리는 환경 문제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20세기 많은 질병들은 현대 건축자재들이 발명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집이나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콘크리트, 합성카펫 등 기타 물질들에서 방출되는 증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 우리들의 집과 아파트에는 플라스틱, 접착제, 페인트, 프롬알데히드, 용제, 방부제, 살균제, 살충제 등 유독물질이 함유되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새 집에 어떤 유독성 물질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  (136쪽)


 성당 반모임을 하러 이웃집에 찾아가 보면, 이웃집에 계신 분들 밥은 모두 하얗습니다. 오로지 흰쌀로만 밥을 짓습니다. 찌개며 반찬이며 조미료를 많이 치는 분도 있고, 조미료를 안 친다지만 유기농 곡식으로는 장만하지 못하곤 합니다. 으레 ‘비싸서 안 쓰지’ 하고 말하지만, 유기농 곡식이 비쌀 일이란 없는데, 이런 흐름을 붙잡지 못합니다. 성경에 적힌 좋은 말씀을 받아먹는 가슴이지만, 이 좋은 말씀을 자기 삶으로까지 녹여내지 못합니다. 신부님이 스스로 당신 삶을 바꾸며 ‘환경을 생각하는 밥먹기’를 말씀하고 알려주어도 이를 몸으로 받아들여 고치는 분은 아주 드뭅니다. 오래도록 굳어진 버릇이라 못 고쳐지는지 모르지만, 믿음 앞에서는 ‘오래도록 굳어진 버릇’이 없음을 돌아본다면, 밥먹기에서도 이 땅과 사람을 헤아리는 매무새로 너끈히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친소 고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이 ‘안 미치고 여물 먹고 자란 소 고기’를 먹자면, 이 땅에서 유기농 곡식을 빚어내고자 애쓰는 농사꾼들 땀방울을 도시사람이 즐겁게 사서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도 제 고향 인천은 천주교구 테두리에서 ‘대운하 반대’를 공식으로 내걸어, 몇 군데 성당과 답동 교구청에는 크고작은 걸개천을 내겁니다. 다른 지역교구에서는 이렇게 안 하지만. 또 다른 교구뿐 아니라 이 나라 수많은 기독교회와 절집에서는 아무런 걸개천도 안 내걸지만(종교 이야기를 들었지만, 천주교회에서도 몇 군데에서만 이렇게 ‘대운하 반대’를 공식으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걸개천까지 내걸지 않은 기독교회와 절집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도 합니다).
 





 (3) 덮지 않고 꽂지 않고 책상맡에 놓는 책


 다 읽고 또 읽는 책도 많지만, 다 읽고 또 읽은 다음 책상맡에 놓는 책도 제법 있습니다. 여러 번 거듭 읽어 줄거리를 꿰고 있기는 하지만, 늘 가까운 자리에 놓고는 둘레에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책을 소개할 때면 곧바로 집어들어서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2분 간의 녹색운동》은 저로서는 언제나 책상맡에 놓아 두면서 가끔 펼쳐 보기도 하고, 손님들한테 보여주기도 하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 나는 내 딸의 인생이 특별한 인생이기를 바란다. 나는 그 애가 맑은 공기를 숨쉬고 맑은 물을 마시며 건강한 음식을 먹고 푸른 지구를 즐기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아이들, 손자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같은 것을 원하고 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 모두가 매일 작은 일 한 가지씩만 실천한다면 우리는 함께 지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  (16쪽)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이 없지는 않습니다. 옮긴이가 여럿이라 그러할는지  모르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이 두루 읽기에는 알맞지 않은 옮김말이 보이고, 얄궂은 말투가 많습니다. 제대로 가다듬어지지 못한 글월입니다. 또한, 미국에서 어느 만큼 잘사는 분이 자기 삶을 잣대로 삼아서 썼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한국에서 2분만 들이며 할 푸른운동”을 써 내려갈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 해》 같은 책처럼.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같은 책처럼. 그러나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 해》는 ‘삶’보다 ‘지식과 운동’이라는 느낌이 짙고,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는 ‘스스로 문제라고 느끼지만 못 고친다’고 하는 이야기를 바탕에 깔고서 ‘도시계획 대안찾기’에 머물고 말아, 일본사람 후쿠오카 켄세이 님이 쓴 《즐거운 불편》하고 견주어도 한참 뒤떨어집니다.

 우리한테는 ‘일본판 《즐거운 불편》’과 ‘미국판 《2분 간의 녹색운동》’을 ‘한국판 무엇무엇’이라고 내놓을 수 있을 만한 이야기책으로 새롭게 꾸며내도록, 우리 스스로 삶을 바꾸고 생각을 북돋우며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 잔디밭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았는가? 잔디밭은 자연스럽지 못한 생태계이다. 단 하나의 종-잔디-을 넓은 지역에 기르기 위해 다양성을 사랑하는 자연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무성한 처녀림이 수천 종의 식물과 동물을 번성하게 하고 지탱하는 것처럼, 자연은 잡초와 벌레 그리고 다른 식물과 동물 들을 잔디밭에 자라게 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패배시키려고 한다. 우리가 잔디를 제외한 모든 것을 죽인다면 지구를 건강하게 하는 생명의 다양함을 잃게 되는 것이다. 잔디밭을 줄여서 얻는 이익은 잔디 깎는 일이 줄어들고, 유지하는 데 힘이 덜 들고, 물을 적게 주고, 창 밖에 흥미있고 다양한 경치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 우리가 사슴이나 비버, 물고기의 집을 마구 침입한다면 그 동물들은 우리가 떠난 후의 상태에 대해서 무어라고 생각할까? 인간들이란, 손님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며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라지 않을까? 야생의 자연이란 몇몇 눈에 띄는 동물들뿐만 아니라 수천 종류의 생명체들의 집이며, 그 중에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미생물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는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풍부하고 충만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 전에는 늘 호수에서 머리를 감았으나 나는 올해부터 머리감기를 그만두었다. 미생물분해가 가능한 샴푸를 쓸지라도 물속에 샴푸를 집어넣는 짓은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호수에서 헤엄을 치고, 사람들은 낚시를 하며, 새들은 호숫가에 집을 짓고 물가를 따라서 물풀들이 자라고 있다. 샴푸는 해양생태계에 본래부터 있었던 자연적인 요소가 아니다 ..  (167, 180∼181쪽)


 혼자 살아가는 땅이 아니니까요. 혼자만 잘살면 그만인 터전이 아니니까요. 혼자면 잘되면 즐거운 삶이 아니니까요. 전우익 님 책이름 그대로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입니다. 이오덕 님 책이름 그대로 “나무처럼 산처럼” 꾸려갈 우리 삶입니다. 권정생 님 책이름 그대로 “하느님의 눈물”을 받아먹으면서 나누어야 할 사랑입니다. (4342.2.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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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여자를 키우는 남자, 아니 두 여자가 키우는 남자


 딸아이 백일을 며칠 앞두고, 신포시장 떡집에 백설기와 가래떡을 맡기려고 흰쌀 사십 킬로그램 남짓을 지고 안고 갑니다. 모두 해서 사십 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무게일 텐데(어쩌면 더 나갈는지 모릅니다만), 집부터 떡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리 멀지는 않으나 썩 가깝지 않습니다. 높은 언덕을 넘어야 하지는 않으나, 인천이라는 데는 오르락내리락 골목이 끝없이 이어진 곳이다 보니 다리가 후들후들입니다.

 새벽나절 깨어나 일손을 붙잡다가 잠깐 눈을 붙인다고 했지만, 언제나 새벽같이 깨어나서 아빠 엄마랑 함께 눈 말똥말똥 뜨면서 놀아 달라고 하는 딸아이하고 씨름하노라면, 새벽잠도 낮잠도 저녁잠도 밤잠도 어영부영, 아니 대충대충 넘기게 됩니다. 어른들은 ‘아기가 잘 때 어른도 자야 한다’고 말씀하지만, 몸이 썩 좋지 않은 애 엄마는 집안일을 하나도 할 수 없는 터라, 먹고사는 일을 하는 애 아빠는 홀로 집안일까지 도맡습니다. 없는 틈을 쪼개어 집안일을 해야 하니, 아기가 자도 깨고 아기가 깨도 함께 깨는 때가 잦습니다. 한 시간 넘게 깊이 잠들기 어렵고, 조금 쉬는가 싶으면 기저귀 빨래가 밀리니 부랴부랴 언손 녹여 빨래를 하노라면 잠이 달아납니다. 잠이 달아나면서 쌀과 콩팥을 씻고 불려 놓아야 하고, 다 마른 빨래를 걷어 놓고는 잠깐 아기를 안고 어르다가 바깥 일손을 붙잡다가, 하루 밥거리를 무엇으로 마련할까를 헤아리다가 기저귀를 빨다가, 또 아기하고 애 엄마하고 함께 어울리다가 밥을 안치다가, 그러면서 찌개나 반찬거리 하나 장만하다가 아까 걷어 놓은 기저귀를 개다가 …… 하면 하루가 훌쩍 지나갑니다.

 일기를 쓸 겨를이란 없지만, 달력 귀퉁이에다가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지나가는가를 적어 놓을 겨를조차 못 내고 넘어가는 날이 늘어납니다. 겨우 잠자리에 들 무렵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돌아보면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머리속이 새하얗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민방위훈련이 있는 날. 일은 겹쳐서 온다고, 그나마 아침잠조차 한 시간 느긋하게 잘 수 없어 퀭한 눈으로 민방위훈련 하는 곳까지 부랴부랴 종종걸음. 세 시간 동안 졸음이 쏟아지는 강의가 이어지는데, 여느 사람들 상식밖에 안 되는 구급법과 119 전화 거는 법을 그토록 오래도록 떠벌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교육장에서 문득 휘 둘러보니 5/6쯤 되는 우리 동네 아저씨들은 꾸벅꾸벅 졸거나 엎드려 자거나 코를 골고 있습니다. 그래도 1/6이나 되는 아저씨들은 자지 않고 깨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때야말로 책을 읽어야 하지 않느냐 싶어 두 권을 챙겨 와 감기는 눈을 비벼 가면서 읽습니다. 세 시간 동안 이백 쪽 안팎 읽어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시간에 비디오를 보여주는데, ‘세계 5위 군사대국 북한의 위협 가운데 화학무기가 가장 무섭다’고 하는 말머리로 ‘가정에서 화생방 대피 요령’을 연속극처럼 찍어서 틀어 줍니다.

 힘들 일은 없다고 하는 민방위훈련이기는 해도, 억지스럽게 국민의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고 ‘내 이웃이 간첩인지 아닌지 살펴보라’는 비디오까지 귀가 멍멍하도록 듣고 나서야 도장 꾹 찍히고 풀려납니다. 동사무소에서 나와 출근부(?) 도장 찍는 젊은 직원은 한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넣고 한손으로 도장을 쾅쾅 찍습니다.

 어질어질한 머리로 집으로 돌아와 그사이 밀린 기저귀를 빨다가, 애 엄마가 ‘뜨거운 물이 씻을 만큼 되느냐’고 묻기에, 넉넉하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면 아기하고 함께 씻어도 되겠네 하기에, 그래도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리하여 졸음을 꾹 참고 큰 통에 뜨거운 물을 받습니다. 기저귀 빨래를 마치고 빨래줄에 널어도 물은 더 받아야 합니다. 방을 들여다봅니다. 애 엄마도 자고 딸아이도 잡니다. 통에 2/3쯤 찼을 무렵 애 엄마를 흔들어 깨웁니다. 애 엄마도 고단한 몸이라 겨우 일어납니다. 애 엄마가 먼저 씻는방에 들어가고, 딸아이는 애 아빠가 옷을 벗겨서 나중에 들어갑니다. 물통에 들어가 앉은 애 엄마가 딸아이를 안습니다. 저는 한손으로 아기 귀를 막은 채, 한손으로 바가지에 물을 퍼서 아기 몸에 끼얹습니다. 어제까지는 작은 통에 물을 담아서 손바닥으로 끼얹으며 씻겼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제대로 씻겨 봅니다.

 다 씻기고 나와서는 떡집으로. 이렇게 새벽 아침 낮나절을 보내고야 떡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무거운 쌀짐을 이고 가기 앞서까지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은 몸대로 고단하면서 짐은 짐대로 무거우니 다리가 후들거릴밖에요. 게다가 아기를 낳아 기르는 동안 몸무게가 7킬로그램쯤 빠지며 힘도 많이 줄었으니 더욱 후들거리고요.

 그래도 떡집까지 가까스로 쌀을 다 지고 안고 찾아갔습니다. 안은 쌀과 진 쌀을 내려놓으니 팔과 등이 가볍습니다. 아니, 등짝이 없는 듯하고 팔이 없는 듯합니다. 문득, 군대에서 훈련 뛴다며 완전군장에다가 부대 깃발 들고 전화기를 목아지에 걸친 데다가, 탄약통까지 군장 위에 올려놓고 낑낑대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때 내 군장 무게도 오늘 쌀 무게에 버금갔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용케 버티면서 여덟 시간이고 열 시간이고 걸었을까 놀랍습니다. 낙오는커녕 낙오하는 후임병들 군장을 뒤에서 밀어 주고 앞에서 잡아당기고 하면서 산길을 타고 오르기까지 했으니 ……. 하기는, 그때는 지금과 견주면 몸무게가 십 몇 킬로그램이 더 나갔으니 힘이야 더 있었을 테고 젊기도 젊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배고픈 애 엄마한테 밥을 먹이려고 밥을 차리고 찌개를 끓입니다. 그런데 애 엄마는 맛있게 먹기는 먹었으되 조금 많이 먹은 탓에 그만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하고 더 먹어대어 탈이 납니다. 애 엄마한테 식사장애가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밥차림 부피를 늘 제대로 못 맞춥니다. 딱 알맞게끔, 아니면 조금 모자라게끔 해야 하는데. 탄수화물을 안 먹이든지 아주 조금만 먹이든지.

 탈이 난 애 엄마는 저녁 여덟 시부터 밤 두 시 가까이까지 힘겨워하며 게워내고 끅끅거리다가 겨우 잠이 듭니다. 애 엄마가 잠이 들 때까지 애 아빠는 팔다리와 등허리를 주무르고 안아 주고 등을 비벼 주고 합니다. 이동안 딸아이는 때맞춰 오줌을 누면서 기저귀갈이를 시킵니다. 그래도 낮에 똥 한 번 누고 저녁에는 안 누어 주니 이만 해도 고맙습니다. 오늘은 어인 일인지 잠투정도 얼마 안 하고 고이 잠들어 줍니다. 이리 귀여울 수가.

 애 엄마가 자리에 눕고 나서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흐릅니다. 애 아빠도 자리에 눕고 싶으나 어느새 잠이 싹 달아나 버립니다. 그러나 이동안 밀려 있는 기저귀를 빨 엄두는 못 냅니다. 팔과 팔꿈치가 너무 아프기 때문입니다. 새벽과 낮에도 기저귀를 빨고 물을 짤 때 손목과 팔꿈치가 저릿저릿해서 ‘이러다가 앞으로 어쩐담?’ 하는 소리가 ‘아이고 아이고!’ 소리와 함께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이제 슬슬 몸뚱아리가 더 버티지 못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니 잠자리에 들면 달게 잘 수 있을 듯한데, 새벽 다섯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면 언제쯤 깨어날까요. 아니, 딸아이는 새 하루에도 어김없이 새벽같이 눈 번쩍 뜨고는 까르르 웃어대면서 놀아 달라고 할 텐데, 애 아빠는 얼마나 아이 웃음을 모르는 척하면서 잠자리에서 꼼지락거릴 수 있을까요.

 속탈이 난 애 엄마 등을 어루만지면서, 애 아빠가 집일이 아닌 바깥으로 나가서 돈버는 일을 했다면, 이 모든 집살림에서 홀가분하거나 느긋할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돈만 벌고 들어오면 애 엄마가 혼자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며 마음이 갑갑해지기도 하는지를 조금도 못 느끼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 ‘출산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모습을 하나도 못 느끼면서 닦달을 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벌 수 있을 때 밖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둘레에서 자꾸자꾸 말을 하지만, 그렇게 돈을 벌어서 어디에 쓰는가를 헤아린다면, 저로서는 돈은 조금 적게 벌더라도 딸아이가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뿐 아니라 함께 돌보고 함께 자라고 함께 놀고 함께 생각하면서 살 때가 돈으로는 도무지 살 수 없는 고마운 삶을 배우는 일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딸아이 옆에 있고, 애 엄마 곁에 있는 일이, 돈으로 아기돌봄이 아줌마를 사서 쓸 때보다 훨씬 사랑 나누는 일이요, 한결 사랑 키우는 일이 아니겠느냐 싶어요.

 애 아빠는 젖을 물릴 수 없으니, 오롯이 애를 키운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여러모로 많은 대목에서 아이를 키우는 한편,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고 힘든 애 엄마를 키우고(돌보고) 있습니다. 흔히들, ‘엄마 한 사람이 아이와 아빠를 키운다’고 하는데요, 우리 집에서만큼은 ‘아빠 한 사람이 아이와 엄마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지요, 옆지기도 이런 말을 하고 저도 이런 생각, ‘두 여자를 키우는 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애 아빠가 애 엄마와 딸아이를 키운다기보다, 애 아빠가 애 엄마하고 딸아이한테 배운다는 느낌이 짙게 들곤 합니다. 먹여살리지 살림하지 뒤치닥꺼리와 앞치닥꺼리 도맡지 하지만, 세상에 둘도 없이 깊은 가르침을 고마이 배우는 셈입니다. 가난이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축복이라는 말씀처럼, 애 엄마와 딸아이 키우는 고단함은 오히려 애 엄마와 딸아이가 애 아빠를 키우는 첫손 꼽을 축복이지 싶습니다. 고단한 만큼 배우고, 고달픈 만큼 깨달으며, 지치는 만큼 느끼고, 벅찬 만큼 보람이 있습니다. 괴로운 만큼 기쁘고, 속썩이는 만큼 즐거우며, 애태우는 만큼 찡합니다.

 날마다 다짐합니다. 두 여자를 키우는 남자가 아닌 두 여자가 키우는 남자이고, 두 여자가 키워 주는 남자인 이 삶은 누구한테도 내주고 싶지 않다고. 가슴속에 켜켜이 묻어 놓고 싶습니다. 이 삶을. 몸뚱이에 알알이 새겨 놓고 싶습니다. 이 하루를. 마음밭에 차곡차곡 다져 놓고 싶습니다. 오늘 부대낀 온갖 일들을.

 눈물 한 줄기 눈가에 타고 흐릅니다. (4341.11.21.쇠.05:01.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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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다고 느끼는 책
 ― 열 해 뒤 우리 아이한테 물려주어야지



 아침에 ㅎ출판사로 전화를 건다. 얼마 앞서 읽은 책 하나가 퍽 좋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집어낸 잘못과 군데군데 잡아챈 오탈자를 알려주고 싶었다. 인터넷편지로 글을 갈무리해서 띄울 수 있지만, 이 책을 펴낸 사람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한 군데 두 군데 잘잘못을 짚는 가운데 ‘잘못 쓰셨나요, 제가 잘못 보았나요?’ 하고 여쭙는 일이 좀더 반갑다. 나는, 그분이 몇 군데 잘못 찍힌 채 책이 나오도록 했다고 해서 꾸짖을 마음이 아니다. 이 좋은 책을 애써 엮어 내면서 몇 군데에서 아쉬운 대목이 드러나고 말았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보고 말할 때와, 전화기로 목소리만 주고받으면서 말할 때, 그리고 써 놓은 글을 읽을 때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나로서는 아무런 ‘싫은 마음’이나 ‘미운 마음’이 없이 수수하게 적어내려간 글을, 엉뚱하게도 ‘내가 아주 싫어하고 못마땅해서 그런 글을 쓰는 줄’ 생각하며 읽기도 한다. 너무 뜻밖이기도 하고 어이가 없는데, 거꾸로 생각하면 내가 글을 제대로 못 써서, 읽는 사람도 제대로 못 읽은 셈이 아니겠느냐면서 속을 다스린다. 앞으로는 엉뚱하게 읽어 주는 일이 없도록. 그러나 애쓰고 또 애를 써도, 어느 한 사람을 외곬로 바라보거나 비뚤어진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내가 아무리 좋고 반가운 느낌으로 글을 쓴다고 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화를 건다. 내 돈 들여서 읽은 책을 내 돈 들여서 전화를 걸어 내 시간을 보내면서 알려준다. 그러면서 나한테 돌아오는 값은 하나도 없다. 나중에 2쇄를 찍으면, 고친 대목을 바로잡아서 알려주겠다는 소리도 없다. 이런 뒷손질을 알려주십사 하고 전화를 하지는 않으나, 내 사는 곳을 물으며 도서목록이라도 보내주겠다고 하는 분은 거의 없다(딱 한 번 있었으나 손사래를 쳤다).

 출판사로 전화를 거는 까닭은, 내가 책을 읽으면서 못 헤아린 대목이나 알아채기 어려운 대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고맙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주머니를 기꺼이 털도록 해 준 책이며, 내 시간을 넉넉히 쓰면서 가까이하도록 해 준 책이다. 그러면서 내 생각이나 넋이 좋은 쪽으로 많이 거듭나기도 하고 새로워지기도 한다. 세상을 좀더 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도 되고, 우리 둘레를 좀더 깊이깊이 돌아볼 수 있도록 이끌기도 했다. 그래서, 이만큼 얻은 보람과 기쁨이 있어서, 전화삯 얼마쯤 들인다고 해도, 다른 일을 잠깐 미뤄 두고 이곳저곳 잘잘못을 알려준다고 해도, 나로서는 또다른 기쁨과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오늘 아침, ㅎ출판사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잘잘못을 알려주고 나서, 문득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다 읽고서 참 좋았는데, 이 책이 2쇄를 찍을 수 있을까 없을까 걱정이 되어서, 2쇄를 못 찍게 되더라도 출판사에는 알려주고 싶어서 전화를 했습니다.”

 웬만큼 껍데기를 씌워서 내놓으면 어느 만큼 잘 팔린다고 하는 어린이책이요, 이름난 출판사 딱지를 받고 세상에 나오면 기본 부수가 나간다고 하는 어린이책이다. 그러나 이런 어린이책 가운데에서 눈길 한 번 제대로 못 받으면서 조용히 사라지는 책이 제법 많다. 우리 세상을 속깊이 들여다보는 책, 우리 삶터를 찬찬히 헤아리는 책, 우리 땅에 전쟁이 아닌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책, 우리 사회가 푸대접이나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아니라 고르게 아름다울 수 있도록 꿈꾸는, 그러니까 평등과 인권을 바라는 책이 좀처럼 안 팔린다. 어렵게 배앓이를 하고 나온 책임에도 언론 눈길조차 못 받기도 하고, 언론 눈길은 제법 받아도 독자 사랑을 못 받기 일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평화와 평등과 사랑과 믿음을 알알이 담고 있는 책 가운데, 우리와 일본 사이 문제를 다루면 어느 만큼 팔린다. 이 평화와 평등과 사랑과 믿음이 제3세계, 중남미, 아프리카 쪽으로 가면 그냥 안 팔린다. 유럽 작가가 쓴 책은 곧잘 팔리는데, 제3세계나 중남미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쓴 책은 잘 안 팔린다. 모든 책이 이러하지는 않으나, 우리 흐름이 얼추 이러하다. 몽골과 티벳과 인도로 성지순례와 명상순례나 관광여행으로는 나다니지만, 몽골이 어떤 문화와 역사가 있는지, 티벳이 어떤 아픔과 고달픔으로 시달리면서 식민지보다도 못하게 무너지고 있는지, 인도 계급과 사회가 이 나라를 어떻게 휘어잡고 있는지를 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이러한 흐름과 얼거리를 보려는 사람이었으면, 나라밖 나들이를 나서기 앞서 이 나라 삶과 삶터 이야기를 다룬 책을 알뜰히 챙겨서 읽었을 테며, 이런 이야기 다룬 책이 쉬 판이 끊어지거나 책방 책꽂이에서 사라지는 일이란 없었으리라 본다. 전국 곳곳에 있는 도서관 책시렁에도 차곡차곡 꽂혀 있으면서 두루 읽힐 수 있었으리라 본다.

 지난 8월 2일에 처음 손에 쥐었으나, 그달 16일에 아이를 낳으면서 손에서 멀어졌고, 아기 돌보기와 옆지기 챙기기가 조금 수월해지는 가운데 다시 손에 쥐면서 부지런히 읽던 책, 《잃어버린 소년들》을 지난 10월 9일 밤에 다 넘기고 덮었다. 엿새쯤 속으로 삭이면서 느낌글 하나를 엮어냈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책을 어루만지고 가슴에 안고 살며시 쓰다듬은 다음, 내 책꽂이 한켠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두려고 한다.

 나 혼자만 좋게 느끼고, 나 혼자만 즐겁게 읽고, 나 혼자만 눈물콧물 질질 흘리면서 읽던 책이었어도, 이 책은 나 하나 살가운 읽는이를 만나서 기뻐해 줄 수 있을까. 아무렴. 내가 좀 모자라거나 어수룩하거나 어줍잖은 읽은이였다고 해도, 살포시 집어들고 즐거이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을 얻었으니, 나와 책 하나는 반갑게 만난 셈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 하나를 사랑해 주었기에, 먼 뒷날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열 살쯤 되는 나이에, “얘야, 네가 엄마 배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던 때 아빠가 너를 품에 안고 이 책을 하나하나 읽어 주면서 눈물을 흘렸단다.” 하고 손때 짙게 묻은 책을 건네어 줄 수 있다. (4341.10.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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