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그림 좋은 풀순이 (2014.5.15.)



  밤잠을 자야 할 텐데, 큰아이가 안 자고 더 놀겠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놀겠다고 한다.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그리면 안 될까 하고 묻지만, 큰아이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더니 종이와 빛연필을 내민다. “벼리 그려 주세요.” 하고 말한다. 알았어. 너를 그려 줄 테니, 그림을 보고 자자. 한손에는 연필을 쥐고 다른 한손에는 지우개를 쥔 아이를 그린다. 잠옷 바지에 있는 꽃무늬를 알록달록 그린다. 아이가 맑은 별빛을 받으면서 잠들고, 푸른 풀내음을 맡으면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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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5] 딸기를 먹는 손

― 오월에는 들딸기를 따자



  들딸기도 멧딸기도 멍석딸기도 사람이 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들과 숲에서 돋는 딸기는 딸기풀이 스스로 씨앗(열매)을 떨구고 넝쿨을 뻗으면서 퍼집니다. 멧새가 빨간 열매를 따먹고 훨훨 날아 똥을 뽀직 눌 적에 멀리 퍼지기도 합니다. 들쥐나 다람쥐가 갉아먹다가 이곳저곳에서 똥을 뽀직 누면 다른 곳으로 퍼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딸기넝쿨을 걷어냅니다. 사람들은 멧자락을 허물어 길을 내거나 공장을 짓거나 골프장을 닦습니다. 들짐승과 숲짐승은 딸기를 퍼뜨리지만, 사람은 딸기를 없앱니다. 딸기를 먹고 오월을 누리는 들짐승과 숲짐승이 살아갈 터를 없애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은 들딸기나 멧딸기가 없어도 된다고 여깁니다. 비닐집을 세워 농약과 비료를 주면 얼마든지 더 굵은 비닐집딸기를 얻기 때문입니다. 한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고, 이른봄이나 늦가을에까지 딸기를 먹는 사람들이에요. 봄에 꽃이 피고 여름을 앞둔 길목에서 누리는 딸기를 잊는 사람들입니다.


  오뉴월에 딸기를 먹습니다. 첫물 딸기는 몇 줌 안 되지만, 이내 커다란 통을 그득 채울 만큼 됩니다. 며칠 더 지나면 큰 통을 여럿 채울 만큼 쏟아집니다. 들딸기는 사람도 먹고, 새도 먹으며, 개미와 풀벌레도 먹습니다. 들과 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목숨이 오뉴월에 새빨간 딸기를 먹으며 따스한 숨결을 북돋웁니다.


  싱그러운 딸기는 무엇을 먹고 이렇게 자랐을까요. 햇볕을 먹고, 바람을 먹으며, 빗물을 먹습니다. 흙을 먹고, 풀내음을 먹으며, 사람들이 따스하게 내미는 살가운 손길을 먹습니다. 4347.5.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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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딸기를 받으렴



  딸기를 딴다. 앙증맞게 작은 들딸기를 딴다. 한 줌 따고는 아이를 불러 손바닥에 쏟는다. 다시 한 줌 따고는 아이 손바닥에 붓는다. 또 한 줌 따고는 아이 손바닥에 얹는다. 들딸기가 빨갛게 돋은 풀숲을 헤친다. 가시에 찔리고 긁힌다. 아마 예부터 어버이라면 누구나 가시에 찔리고 긁히면서 들딸기나 멧딸기를 땄겠지. 아이들은 어버이가 딴 딸기를 먹으면서 봄맛을 누렸겠지. 아이들은 어버이가 건넨 딸기맛을 보면서 무럭무럭 자랄 테고, 아이들은 새롭게 어른이 되어 저희 아이한테 다시금 딸기를 따서 건넬 테지.


  해마다 딸기밭이 넓게 퍼진다. 해마다 딸기를 더 많이 얻는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어버이가 딸기를 따서 건넨다. 자, 이 딸기를 받으렴. 아이들이 씩씩하게 크면, 곧 아이들 스스로 딸기를 따먹으로 놀겠지. 아이들이 손수 딸기를 따먹을 날이 멀지 않다. 4347.5.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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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아이 그림에 마무리 (2014.5.12.)



  큰아이가 그림을 그린다. 작은아이와 나는 별바라기 놀이를 마당에서 한다. 한참 놀다가 들어오니, 큰아이가 그림 하나를 그린 뒤, 바탕에 무언가 더 그리려다가 그만두고 새로 그림을 더 그린다. 큰아이가 그리다가 그친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대로 둘 수도 있지만 살짝 허전하다. 그래서, 하늘에 구름만 있기보다, 아이가 선 땅에 풀이 푸릇푸릇 돋아 싱그러운 바람이 불기를 바라면서 여러 가지 풀을 그려 넣는다. 풀을 그린 뒤 나무를 그릴까 하다가 꽃을 그리기로 한다. 큰아이가 묻는다. “왜 꽃을 그려? 왜 꽃을 많이 그려?” “벼리 마음에 언제나 꽃내음이 맑게 흐르라고.” 꽃을 다 그리고서 구름에 무늬를 입힌다. 구름에 무늬를 다 입히고는 하늘을 알록달록하게 바른다. 온갖 빛이 골고루 어우러진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바라면서.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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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4] 저녁 자전거를 타려고

― 와 저기 봐



  저녁에 자전거를 타려고 마당에 자전거를 내놓습니다. 저녁 일곱 시가 가까운데 두 아이 모두 잘 생각이 없고 배도 고프지 않습니다. 해는 저쪽으로 넘어갔지만, 자전거마실을 해 볼까 생각합니다. 자전거가 있으니 아이들과 저녁바람을 한 차례 마실 만합니다.


  샛자전거와 수레를 붙인 자전거를 마당에 내놓으니 작은아이가 먼저 알아보면서 좋아합니다. 작은아이는 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손가락을 곧게 뻗습니다. “와, 저기 봐! 제비다!”


  그래, 제비로구나. 제비이지. 날마다 보는 우리 집 제비란다. 새벽 다섯 시에 어김없이 깨어나 재재거리면서 우리를 깨우려 하지. 네 아버지는 제비보다 일찍 일어나니 제비가 새벽에 노래할 적에 시계를 보면서 어쩜 우리 집 제비는 이렇게 날마다 거의 똑같은 때에 일어날까 놀라곤 한단다.


  제비는 이쪽 전깃줄에 앉다가 저쪽 전깃줄로 옮겨 앉습니다. 제비가 날면서 이리저리 앉으니 작은아이도 이쪽으로 손을 뻗고 저쪽으로 손을 뻗습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 따라 “저기에 앉았다! 저기로 갔다!” 하면서 좋아합니다.


  제비는 하루를 마무리지으면서 우리 집 마당을 이리저리 납니다. 해가 아주 넘어가면서 달이 뜨고 별이 돋을 무렵 둥지에 깃들 테지요. 암수 두 마리가 사이좋게 깃을 부비면서 따사롭게 밤잠을 이룰 테지요. 네 살 아이 눈과 가슴에 제비 날갯짓이 또렷하게 드리우는 하루를 천천히 보냅니다. 4347.5.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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