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작은아이가 혼자 양말 신기


  알맞다 싶은 때가 틀림없이 찾아온다고 느낀다. 재촉하거나 서두를 까닭 없이 즐겁게 기다리면 된다고 느낀다. 네 살을 맞이한 작은아이가 혼자 양말을 안 신으려 하든, 혼자 신을 안 꿰려 하든 가만히 지켜보다가 신기기도 하고 스스로 용을 쓰라고 내버려 두기도 한다. 세 살 적까지는 그대로 두면 울기만 했으나, 네 살이 되고부터는 안 울고 씩씩하게 양말을 꿰려고 참말 용을 쓰곤 한다. 그러나 아직 옳게 꿰지는 못한다. 발에 꿰기만 한다. 그래도 이만 한 모습이 어디인가. 이렇게 발에 양말을 꿰는 모양새가 얼마나 재미있는가. 재미있게 놀듯이 자라는 아이들이다. 4347.6.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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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눈부신 쪽그림 (2014.5.28.)



  나는 그림을 그릴 적에 마음에서 샘솟는 느낌을 그린다. 그리고, 내가 마음으로 이루고 싶은 이야기를 그린다. 스스로 이루고 싶은 이야기는 어느 때라도 그리고, 마음에서 샘솟는 느낌은 ‘내가 그리는 이 그림을 받을 꼭 한 사람’을 가만히 떠올리면서 천천히 그린다. 이 그림이건 저 그림이건 내 손으로 그리지만, 어느 모로 본다면 내 몸이 그리는 그림은 아니지 싶다. 가벼우면서 거침없이 그리고, 온 기운을 듬뿍 쏟아서 그린다. 이 그림을 받을 분들이 즐거워 할 모습보다 나 스스로 흐뭇해 할 모습을 헤아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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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으로 놀 수 있는 아이들



  아이들이기에 알몸으로 놀 수 있을는지 모른다. 오늘날에는 어른이 아무 곳에서나 알몸으로 놀 수는 없겠지. 더더구나 도시에서는. 마을 어귀 빨래터에서 말끔하게 물이끼를 걷은 뒤, 아이들이 스스로 옷을 벗고 논다. 작은아이는 옷이 젖었다면서 벗고, 큰아이는 옷을 적시기 싫다면서 벗는다. 아이들은 알몸으로 놀아도 그리 안 춥다. 개구지게 뛰거나 달리니까. 다만,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삼십 분 즈음 놀다 보면 스스로 춥다고 말한다. 빨래터 물은 여느 물이 아니라 멧골부터 흐르는 매우 차가운 물이기 때문이다. 물다운 물을 온몸으로 누리면서 바람과 풀내음과 물빛을 골고루 맞아들일 수 있으면 언제나 즐겁다. 4347.6.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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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식구가 게우다



  네 식구 먹을 풀물을 짜려고 여러 가지 풀을 뜯는다. 보들보들한 나뭇잎도 뜯고, 이름을 아는 풀과 이름을 모르는 풀을 골고루 뜯는다. 이름을 모르는 풀은 먼저 한두 잎을 뜯어서 천천히 씹은 뒤에 생각한다. 오늘은 이름을 잘 모르는 풀 한 가지를 뜯다가, 막 돋으려는 어린 꽃으로 보건대 ‘자리공’이지 싶은 잎사귀를 몇 섞어서 풀물을 짰다. 날잎으로 먹을 적에는 끝맛이 살짝 시큼하다 싶었으나 이만 하면 먹을 만하다. 풀물로 짜면, 다른 풀과 섞어서 먹으면 어떠할까 궁금했다.


  풀물을 마실 때에는 좋았다. 그런데 세 시간쯤 지난 뒤 아이들도 곁님도 게우고, 나도 게운다. 무엇을 먹든 게우는 일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오늘 새롭게 먹은 자리공잎이 속을 건드려 게웠구나 싶다(내가 뜯은 풀이 자리공잎이 맞다면).


  풀물을 마실 적에는 소금을 함께 먹어야 한다고 곁님이 말한다. 그렇지. 그랬지. 예전에 풀물을 마실 적에 소금을 늘 함께 먹었는데, 한동안 안 먹다가 다시 먹으면서 미처 이 대목을 헤아리지 못했다. 젓가락나물을 먹을 적에도, 하늘타리나 무화과잎을 먹을 적에도, 멸나물잎을 먹을 적에도 없던 비릿함이 올라와 네 식구가 속을 게우니, 넷 모두 고단하다. 큰아이는 씻는방과 마당으로 가서 게웠으나, 작은아이는 이부자리에서 게우느라 베개와 깔개와 이불을 버린다. 작은아이로서는 속에서 올라올 적에 살짝 참았다가 밖에서 게우기 쉽지 않았으리라 느낀다.


  밤 한 시에 작은아이가 문득 일어난다. “나 물 마실래.” 하고 말한다. 이제 속이 가라앉았니? 물을 들이켠 작은아이더러 쉬를 누라 하고는 눕힌다. 보름달이 밝다. 개구리 노래가 그윽하다. 게울 적에 얼마나 띵하고 속이 쓰린지 새삼스레 느낀다. 이런 일을 자주 치르는 곁님은 여느 때에도 얼마나 띵하며 속이 쓰릴까. 나는 게우고 물똥을 누는데, 위아래로 이것저것 내보내니 속이 차분하다. 다 뜻이 있다고 느낀다. 센 풀을 받아들여 몸속에 있던 궂은 것이 제법 밖으로 나왔지 싶다. 4347.6.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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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버스에서 잠든 아이를



  읍내로 저자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으레 두 아이가 잠든다. 신나게 뛰놀고 나서 버스에 타고는 가만히 앉으려니 졸음이 몰리겠지. 아이들은 동백마을 어귀에서 내릴 때까지 좀처럼 잠에서 안 깬다. 안아서 버스를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잘 안 깬다. 그러나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와서 마당을 가로질러 신을 벗기고는 마루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설 무렵 으레 잠을 깬다. 자리에 눕히고 나서 한두 시간 길게 곯아떨어지는 일은 어쩌다 한두 차례쯤 있다. 그저 집에 오기만 해도 기운이 새로 솟을까. 그예 집에 왔기에 다시금 기운을 차려 씩씩하게 뛰놀 수 있을까.


  아이들 옷가지와 양말을 빨래한다. 곁님 옷가지도 빨래한다.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널려고 하는데 빗물이 듣는다. 그래도 모르는 척하고 빨래를 넌다. 비가 그치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조금 뒤 빗줄기가 굵어진다. 부랴부랴 빨래를 걷는다. 집안에 빨래를 옮기고, 다 마른 옷가지를 차곡차곡 갠다. 비야 비야 조금 더 오고 이따가 멎어 주렴. 우리 네 식구 풀물을 짜서 먹을 수 있도록 풀을 뜯게 말야. 4347.6.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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