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따뜻해 (2014.7.12.)


  나들이를 간 집에 일곱 살 아이가 있다. 일곱 살 아이가 쓰는 크레파스와 종이를 빌려서 그림을 한 장 그려 본다. 일곱 살 아이는 어머니와 놀이터에 갔고, 집에는 여섯 살 동생과 아버지가 있다. 여섯 살 동생을 넓은 그림종이에 먼저 넣고 구름에 앉힌다. 아이가 앉은 구름은 커다란 나뭇잎이 받쳐 준다. 따뜻한 빛이 옆에서 퍼지고, 무지개 비가 내린다. 날마다 서로서로 따뜻한 말과 넋으로 아름다운 삶이 이루어지기를 빈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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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도시락



  일산 할머니한테서 받은 도시락을 고흥집에 와서 비로소 끌른다. 시외버스에서 먹일까 하다가 그만둔다. 시외버스에서는 고속도로 쉼터에서 장만한 마실거리와 호두과자만 먹인다. 과자 몇 점 집어먹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시외버스에서 그동안 많이 시달려 본 탓인지 좀처럼 이것저것 먹을 생각을 않는다. 처음에는 큰아이가 아버지 어깨와 무릎에 기대어 잠들고, 나중에는 작은아이가 아버지 어깨와 무릎에 기대어 잠든다.


  순천에서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고흥으로 들어올 적에는 둘 모두 기운이 났는지, 한 시간 내내 웃고 떠드느라 법석을 떤다. 군내버스를 타고 마을 어귀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오니, 큰아이는 맨 먼저 만화책을 찾는다. 작은아이는 맨 먼저 ‘집에 있는 장난감 자동차’를 찾는다. 나는 맨 먼저 마당 후박나무한테 인사하고 빨랫대를 닦은 뒤 집안 바닥을 마른걸레로 훔친다. 일산에서 빨았으나 덜 마른 아이들 옷가지를 마당에 널고, 나부터 씻은 뒤 내 옷가지를 빨래해서 넌다. 아이들은 씻을 생각이 없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은 시외버스에서 내내 ‘춥다’고만 했고, 아이들을 챙기고 짐을 짊어지느라 땀을 흘린 사람은 나 혼자이다.


  집에 닿은 뒤 ‘시골물’을 한 잔씩 마시도록 한다. 나는 석 잔 마신다. 아이들이 저마다 놀면서 한 시간쯤 지나니, 작은아이가 먼저 “배고파요.” 하고 말한다. 큰아이한테 묻는다. “벼리야, 너도 배고프니?” “응.” “그러면, 먹자.”


  일산 할머니가 마련해 준 도시락을 꺼낸다. 나도 끼어서 먹을까 하다가, 나까지 먹으면 밥이 모자라니, 아이들만 먹인다. 4347.7.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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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일곱 자리


  전철 일곱 자리를 앉는다. 일산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외삼촌과 곁님과 두 아이까지 있으니 일곱 자리를 통째로 차지한다. 이야, 함께 움직이니 큰식구로구나. 혼례잔치에 가는 길이 재미나다. 아이들 데리고 전철을 타며 이렇게 홀가분하기는 처음이다. 4347.7.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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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이모 이모부와 (2014.7.11.)



  이모랑 이모부하고 만나서 노는 즐거움을 누리는 사름벼리와 산들보라를 바라본다.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모부 품에 안긴 사름벼리를 먼저 그린다. 그러고 나서 이모 곁에서 노는 산들보라를 그린다. 네 사람이 사랑스럽게 어우러지는 빛을 그린다. 연필로 슥슥 한달음에 그린다. 네 사람이 앞으로도 사랑스레 어우러지면서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삶을 가꿀 수 있기를 빈다. 아이들이 이웃과 동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잘 다스리기를 빈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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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내음



  새벽에 잠을 깬다. 큰아이가 뒹굴면서 내 허벅지에 제 허벅지를 척 올리더니 아버지를 안는다. 뒤척거리는구나 하고 느끼다가 곧 끄응 소리가 나고, 허벅지부터 땀이 송송 솟아 덥다. 팔을 뻗어 부채를 찾는다. 부채질을 하면서 큰아이 몸을 옆으로 살살 옮긴다. 큰아이한테 부채질을 해 준다. 한동안 부채질을 하다가 잠들다가 다시 깨다가 부채질을 하다가 천천히 일어난다. 새벽 네 시. 몸이 끈적끈적하다. 생각해 보니, 어제 아이들을 다 씻겼으나 막상 나 혼자 안 씻었다. 땀에 전 아이들 옷을 모두 빨았지만, 땀에 전 내 옷은 안 빨았다. 아이들이 개구지게 놀다가 까무룩 곯아떨어지면 못 씻긴 채 재우기도 하는데, 외려 나 혼자 안 씻고 땀에 전 옷차림으로 곯아떨어졌다.


  아이를 늘 안으면서 지내는 어버이라면 아이 못지않게 어버이도 잘 씻어야 한다. 아이를 늘 돌보면서 지내는 어버이라면 아이 못지않게 어버이도 잘 먹어야 한다.


  새벽 여섯 시까지 글을 쓴다. 이러고 나서 씻는다. 민소매 웃옷을 빨래한다. 오늘 아이들은 언제쯤 일어날까. 그제는 여섯 시 즈음 일어났고, 어제는 여덟 시 즈음 일어났는데, 오늘은 몇 시쯤 눈을 뜰까. 일산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나들이를 와서 개구지게 뛰노는 아이들이 넉넉히 자기를 빈다. 느긋하게 꿈나라를 누린 뒤, 오늘 하루 새롭게 맞이하면서 뛰놀 기운을 되찾기를 빈다. 여름에는 자주 씻고 씻기면서 땀내음을 훌훌 날려보내야겠다. 4347.7.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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