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혼자 쉬하기


  일곱 살 사름벼리는 오늘 기차에서 처음으로 혼자 쉬를 누고 온다. 동생은 까무룩 잠들어 아버지 무릎에 누웠다. 아버지가 뒷간까지 함께 가서 문을 열어 줄 수 없다. 벼리야, 저기에 혼자 다녀올 수 있겠니, 응, 그래 다녀와 보렴. 참말 혼자 뒷간으로 가고 무거운 문을 힘껏 민다. 잘했어. 너는 앞으로 아주 많은 일을 혼자 하겠구나. 4347.6.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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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한테 묻다



  두 아이를 데리고 인천에 나들이를 온다. 두 아이는 일산부터 인천까지 가는 긴 전철길을 잘 견디어 준다. 그러나, 견딘다기보다는 잘 왔다. 나 스스로 아이들이 ‘견딘다’고 여기지 않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여러 님들 가운데 하나인 큰아버지한테 가는 줄 알고 씩씩하게 기운을 내 주었다.


  큰아버지는 이녁 집에 있는 텔레비전을 켜 줄 뿐 아니라, 감귤주스도 그득 따라서 준다. 우리 집에서는 도무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재미있는 숨결인지, 감귤주스를 한 잔만 마시고 그 뒤부터는 물만 찾는다. 달콤하며 시큰한 주스보다는 목마름을 풀어 주는 물을 좋아한달까.


  너무 마땅하게도, 아이들한테는 아무것도 억지로 집어넣을 수 없다. 아이들은 언제라도 제 마음을 환히 드러내기 마련이다. 내가 아이들을 다그친들, 둘레에서 아이들을 다그친들, 아이들이 정작 하고픈 무언가 있다면 언제라도 터뜨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바깥마실을 나올 적에, 아이들한테 물만 먹이지 않는다. 집에서도 물만 먹이지는 않는다. 언제나 아이들한테 찬찬히 말로 알려준다. 물은 무엇이고 다른 마실거리는 무엇인지 알려준다. 사이다나 콜라를 얻어서 마실 적에는 반드시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알리라고 말한다. 마시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제대로 마시면서, 어떤 마실거리이든 너희 몸에 사랑스러운 빛이 되도록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들 큰아버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와 똑같다’고,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어느 모로 보더라도 나와 똑같다고 말한다. 나도 잘 알던 대목이지만, 옆에서 우리 형이 이렇게 말하니, 참말 더는 어찌할 길이 없는 노릇이다. 그래, 너희도 아버지도 언제나 예쁜 사람으로 살아야지. 너희도 아버지도 살가우며 사랑스러운 넋으로 언제나 새 하루를 맞이해야지. 4347.6.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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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발바닥 주무르기



  하루 내내 실컷 뛰논 아이들 발바닥을 주무른다. 처음에는 머리를 주무른다. 머리를 살살 앞뒤 골고루 주무르고는 얼굴로 내려오고 어깨와 가슴과 옆구리를 거쳐 엉덩이와 허벅지와 무릎과 종아리를 지나 발목과 발바닥을 주무른다. 이렇게 주무르고는 팔뚝과 팔꿈치와 팔등과 손가락까지 찬찬히 주무른다. 아이들 몸을 주무르고 보면, 아이들은 굳이 안 주물러도 잠자리에 눕는 때에 ‘하루 동안 쌓인 고단함’이 모두 풀리는구나 하고 느낀다. 이렇게 느끼면서 구태여 아이들 몸을 주무르는 까닭은 한결 씩씩하고 튼튼히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저희 몸을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자랄 텐데, 아이들 곁에 어버이가 언제나 있고, 앞으로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숱한 동무와 이웃이 곁에 있는 줄 살뜰히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얼핏 잠들려는 아이는 발바닥을 주무르면 피식 웃는다. 간지럽구나. 까무룩 잠든 아이는 발바닥뿐 아니라 발가락을 주무르더라도 새근새근 숨을 고른다. 우리 어머니가 내 몸을 주물러 주던 먼먼 어린 날을 가만히 돌아본다.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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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치과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다녀온다. 두 아이는 첫 치료를 받는다. 썩은 곳을 긁어내고 쇠붙이를 덮는다. 작은아이는 이를 고치는 동안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고, 이내 코를 살짝 골면서 잔다. 네 살 아이는 저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기에 가만히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을까. 이를 거의 다 고칠 무렵 다시 눈을 뜬다. 잠에서 깨어났는데 아직 치료가 안 끝나니 아이 가슴이 빠르게 뛴다. 왼손을 아이 가슴에 대고 오른손으로 아이 이마를 쓸어넘긴다. 곁님이 말한 대로 ‘파란 거미줄’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네 이는 튼튼해. 네 몸은 튼튼해.’와 같은 말을 아이 마음에 심는다. 일곱 살 큰아이는 곁님이 곁에서 지켜보고 돌보면서 첫 치료를 마친다. 둘 모두 씩씩하게 첫 치료를 받는다. 이날 치료값은 47만 원. 앞으로 세 차례 더 치료를 받아야 하니 돈이 더 들 테지.


  힘이 많이 빠진 아이들을 달래며 치과에서 나온다. 나도 꽤 어릴 적에 치과에서 이를 고쳤다. 썩은 데를 갉아내고 쇠붙이를 이에 심었다. 그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되새겨 본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에 헤아리지 않던 한 가지를 새롭게 헤아려 본다. 우리 어머니는 나와 형 이를 고치느라 치료값을 톡톡히 치르면서 살림을 어떻게 꾸리셨을까. 꽤 목돈을 들여야 했을 텐데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코가 무척 안 좋아서 치과뿐 아니라 이비인후과도 거의 날마다 다니곤 했다. 우리 어머니는 이녁 작은아이(나)를 날마다 병원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치료값을 어떻게 대면서 살림을 꾸리셨을까.


  어린 나는 ‘돈 걱정’이나 ‘돈 생각’을 한 일이 없다고 느낀다. 어제 치과에서 첫 치료를 받은 두 아이도 ‘돈 걱정’이나 ‘돈 생각’을 할 일이 없으리라 느낀다.


  오직 한 가지에만 마음을 쏟기로 한다. ‘이 튼튼 몸 튼튼’ 한 마디를 아이들한테 들려준다. 나도 스스로 이 말을 곱씹는다. 길을 거닐며, 저녁에 자면서, 아이들 이불깃을 여미며, 하루 내내 뛰논 아이들 옷가지를 빨며, 지난 하루 이야기를 글로 갈무리하면서, 이 말을 자꾸자꾸 되새긴다.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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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두 분



  일곱 살 사름벼리가 이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왜 두 분인가를 깨우쳤다. 바로 어제, 2014년 6월 15일 저녁이다. 그렇구나, 이렇게 스스로 깨우치는구나 하고, 어버이인 나도 새롭게 깨닫는다. 우리 큰아이가 더 빨리 깨우칠 수도 있었지만, 굳이 서두르지 않았다. 아이가 스스로 궁금해 하면서 스스로 실마리를 풀기를 바랐다. 이리하여, 엊저녁 사름벼리는 곁님과 나한테 “어머니, 할머니는 어머니한테 어머니야? 그럼 할아버지는 어머니한테 아버지야?” 하고 물었다. 그러고는 나한테도 똑같이 물었다.


  생각해 보면, 아이가 이렇게 묻기를 기다렸다고 할 만하다. 나도 곁님도 아이가 스스로 이러한 말을 할 수 있기를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여러모로 건드려 주었구나 싶다.


  벼리야, 보라야.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두 분이란다. 그러면 왜 두 분일까? 어머니와 아버지, 이렇게 해서 어버이가 두 사람이지? 왜 두 사람일까? 너는 몸과 마음, 이렇게 두 가지로 이루어졌어. 이 두 가지는 무엇일까? 하늘과 땅은 왜 함께 있을까. 아이와 어른은 왜 함께 있을까? 오늘날 사회에서는 ‘아이’와 ‘어른’ 사이에 ‘푸름이(청소년)’를 억지로 넣었지만, 굳이 안 넣어도 돼. 왜냐하면, 부러 둘로 나눈 까닭이 있거든. 둘은 늘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는 늘 하나이면서 둘이야. 왜 그럴까? 너는 앞으로 너 스스로 이 이야기를 즐겁게 깨달으면서 빛나는 슬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4347.6.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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