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질을 하는 팔


  여러 날 비가 잇달아 내린다. 해가 나지 않아도 꽤 덥다. 여름에 축축한 기운이 곳곳에 넘치기 때문이지 싶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뛰놀기에 늘 땀투성이로 지낸다. 여러 차례 씻기지만 땀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잠자리에서 한 아이씩 부채질을 해 준다. 어느새 ‘부채질로 나는 철’이 되었구나 싶다. 아이들이 까무룩 잠들면 땀이 덜 돋지만, 작은아이가 자꾸 안 자면서 장난을 치려 하니 작은아이를 자꾸 부채질을 해 주어야 한다. 한 시간쯤 부채질을 하다가 팔도 아프고 졸음까지 밀려든다. 부채질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든다. 작은아이도 저 스스로 알아서 잠들었겠지. 이러다가 번쩍 잠을 깬다. 몇 시인가. 아침인가 밤인가. 아이들 이를 고치러 아침 일찍 읍내로 시외버스를 타러 가야 한다. 아이들 옷과 짐은 미리 꾸렸지만 이것저것 챙겨야 하니 새벽에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허둥지둥 일어나고 보니 밤 열두 시이다. 아직 멀었구나. 낯을 씻고 기지개를 켠 다음 살짝 더 누워야겠다. 4347.7.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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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63] 토끼풀과 나비

―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곳



  어릴 적에 제가 가장 오래 살던 곳은 다섯 층짜리 아파트입니다. 이 아파트에 살기 앞서 인천에서 온갖 골목집을 떠돌았다고 하는데, 주민등록 초본에만 이러한 발자국이 남고, 내 머릿속에는 몇 가지 일을 빼고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릴 적 살던 다섯 층짜리 아파트에는 계단만 있고 연탄으로 불을 땝니다. 겨울을 앞두고 집집마다 연탄을 들이느라 부산해요. 1층집은 1층에 연탄을 두면 되지만 5층집은 5층까지 연탄을 쌓느라 늘 애먹어야 했습니다.


  다섯 층짜리 작은 아파트는 동마다 꽃밭이 퍽 넓게 있습니다. 아파트 넓이만큼 꽃밭이 꼭 있습니다. 꽃밭이 아니어도 빈터에는 흙이 쌓이고 시멘트가 깎여 풀밭이 됩니다. 풀밭이나 흙밭이 된 곳은 우리들 놀이터입니다. 잠자리와 나비를 잡고, 토끼풀을 고르면서 놀았어요.


  시골마을에서 토끼풀은 무척 흔합니다. 논둑이나 밭둑에서도 잘 자라고 빈터에서도 잘 자랍니다. 토끼풀에서 꽃이 피어나면 벌과 나비가 모여듭니다. 흰나비와 노랑나비도 몰려들고, 부전나비와 제비나비도 찾아듭니다.


  집에서도 토끼풀꽃과 나비를 바라봅니다. 대문 바깥 마을 들판에서도 토끼풀꽃과 나비를 만납니다. 가만히 지켜봅니다. 나비는 팔랑팔랑 날다가 살포시 내려앉습니다. 나비가 날갯짓을 그치고 꽃송이에 내려앉을 적에도 소리가 나겠지요? 사람 귀에는 도무지 들리지 않을 만큼 조그마한 소리가 나겠지요?


  나비가 내려앉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어떠할까 생각해 봅니다. 얼마나 그윽할는지, 얼마나 살가우면서 보드라울는지 생각해 봅니다.


  풀꽃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이 느긋합니다. 풀꽃에서 노는 나비를 바라보는 동안 몸이 넉넉합니다. 풀꽃과 함께 내 마음은 푸르게 흐르고, 나비와 함께 내 넋은 가볍게 움직입니다.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란 사랑스러운 곳이 되리라 느낍니다. 즐겁게 마주할 수 있는 곳이란 아름다운 곳이 되겠다고 느낍니다. 따로 꽃밭을 가꾸어도 좋을 테지요. 그러나 풀밭만 있어도 좋습니다. 넓게 꽃밭을 만들어도 재미있을 테지요. 그렇지만 너른 빈터에 풀이 스스로 어깨동무하면서 자라나서 고운 풀내음을 나누어 주면, 풀벌레와 벌나비가 찾아들면서 푸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4347.7.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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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배고파요



  아침에 일어난 두 아이가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버지, 배고파요.” 어느새 두 아이한테 아버지는 ‘밥돌이’가 된다. 그래, 너희는 아버지가 있어야 밥을 먹지. 어젯밤에 불린 누런쌀을 헹군 뒤 냄비에 불을 넣는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된장국을 끓이려 한다. 그런 뒤 무엇을 더 해 볼까.


  어제 월요일(7.7)에는 일산에 가야 했다. 어제 치과 진료 예약이 있었다. 일요일에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뒤, 우리는 몸이 고단해 쉬느라 월요일 치과 진료 예약을 미루기로 했다. 금요일에 맞추어 간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일이 생기면서 수요일, 바로 이튿날에 고흥집에서 길을 나서야 할 듯하다. 나는 오늘 마감글을 여러 꼭지 바지런히 써야 하고, 우체국에 다녀와야 하며,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쁘다.


  아이들아, 우리 아침 맛있게 먹자. 그리고, 아버지가 바쁜 일을 추스르고 챙기느라 너희와 함께 못 놀 수 있지만, 배부른 몸으로 씩씩하고 재미나며 개구지게 뛰놀기를 빌어. 그러고 나서 하룻밤 기쁘게 잔 뒤, 일산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가자. 4347.7.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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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다섯 차례 누고


  네 살 작은아이가 아침부터 똥을 다섯 차례 눈다. 처음 눈 똥과 셋째 눈 똥은 꽤 많다. 둘째와 넷째로 눈 똥은 적었고, 다섯째로 눈 똥은 묽다. 손님이 여럿 찾아와서 여러 날 그야말로 신나게 잠까지 좇으면서 놀더니, 천천히 몸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손님이 모두 돌아가신 뒤에는 천천히 놀고, 천천히 먹다가, 천천히 하품을 하고는 혼자 잠자리로 걸어가서 이불을 스스로 덮고 눕는다. 자면서 왼쪽에 장난감 자동차를 놓는다.

  그러고 보면, 나도 작은아이만 하던 때부터 열 살 언저리까지, 또는 그 뒤로도 잠자리에 장난감을 놓았지 싶다. 꿈에서도 이 장난감하고 함께 놀고 싶다고 생각했지 싶다.

  일곱 살 큰아이는 똥을 한 차례 푸지게 눈다. 더 누지는 않는다. 큰아이도 작은아이와 마찬가지로 가볍게 논다. 가볍게 먹고, 가볍게 말하며, 가볍게 노래한다. 큰아이도 곧 작은아이 곁에 눕겠지. 아버지는 곧 작은아이 곁에 누울 생각이다. 큰아이도 더 버티지 말고 느긋하게 잠자리에 들어 여러 날 마음껏 움직인 몸을 넉넉하게 쉬어 주기를 빈다. 4347.7.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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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죽 찢어진 왼팔



  내 오른손은 사마귀로 뒤덮였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내 왼팔은 손목 언저리부터 어깨에 이르기까지 죽 찢어진 적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몇 학년 무렵인지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국민학교 이학년이나 삼학년 무렵이었지 싶습니다. 그때 동무들은 서로 ‘담력 내기’를 곧잘 했습니다. 그무렵 살던 동네는 5층짜리 아파트가 열다섯 동이 모인 공동주택단지였는데, 모래밭 놀이터가 두 군데 있었고, 공동주택인 아파트에 공동난방을 하면서 나오는 연기를 내뿜는 커다란 굴뚝이 둘 있었어요. 아파트 지킴이 할배가 알아채면 무섭게 다그치며 나무라지만, 우리들은 5층 아파트보다 더 높이 솟은 굴뚝에 붙은 사다리를 타고 몰래 올라가면서 놀곤 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에 전기를 넣으려면 변압기인지 전압기가 있어야 했으니, 이 시설이 놀이터 구석에 있었고, 쇠가시그물로 높게 울타리를 쳤어요. 그런데, 이 쇠가시그물 맨 위쪽은 5센티미터쯤 판이 놓였습니다. 쇠울타리를 버티는 판이었겠지요. 이 판 둘레로 날카롭고 뾰족한 쇠가시그물이 잔뜩 있었는데, 동무들 사이에서 쇠울타리를 잡고 올라가서, 위쪽 5센미터밖에 안 되는 좁다란 판을 걷는 ‘담력 내기’를 하곤 했어요. 거의 모두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놀이터 모래밭으로 펄쩍 뛰어내렸는데, 나는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갈 수 있어!” 하고 외쳤어요.


  어디에서 이런 마음이 솟았을까요. 동무들은 “그럼 해 봐!” 하고 소리쳤고, “얼마든지 하지!” 하면서 척척 쇠울타리를 잡고 올라가서, 좁은 판을 천천히 한 걸음씩 떼면서 걸었습니다. 아주 많이 걸었어요. 동무들은 모두 입을 헤 벌리며 놀랐습니다. 그런데, 아주 많이 걷다가 거의 끝에 다다를 무렵 그만 미끄러졌어요. 미끄러지면서 몸이 흔들렸고, 몸이 흔들리면서 모래밭으로 쿵 떨어졌는데, 쿵 떨어지면서 날카롭고 뾰족한 쇠가시그물에 왼팔이 깊고 길게 찢겼습니다.


  떨어지면서 거의 넋을 잃었지 싶어요. 그래도 죽지는 않았다고 느꼈어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어떠한 모습도 보지 못했어요. 그저 내 둘레로 동무들과 아이들이 몰려들어서 울고 소리치는 모습만 멍하니 보았어요. 그 다음에는 우리 형이 어머니한테서 크게 꾸지람을 듣는 소리와 모습을 멍하니 보았고, 그 다음에는 병원에 드러누운 모습을 보았어요.


  나는 이때 일이 아주 커다랗게 아로새겨졌기에 국민학교 높은학년에서도 중·고등학생 때에도, 나중에도 어머니와 형한테 이 얘기를 하곤 하는데, 아무도 이때 일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나더러 거짓말을 지어서 한다고 말합니다.


  문득 돌아보면, 이무렵부터 나는 ‘내 몸을 떠나서 나를 바라보기’를 할 수 있었는지 몰라요. 내 몸에서 아픈 데를 느끼지 못하면서 나를 보았으니, 내 몸을 떠나서 나를 보았겠지요.


  그동안 잊던 한 가지가 얼마 앞서 생각났는데, 어머니는 나더러 내 왼팔을 쳐다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내 왼팔이 너무 길고 깊게 찢어져서 도무지 꿰맬 수 없다 했어요. 나이가 어려 마취를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어머니가 나한테 했던 말은 “거기 쳐다보지 마. 다 괜찮아. 다 나아.”였지 싶어요. 나는 이 말을 듣고는 깊이 잠들었고, 병원에서 나와 학교를 다시 다닐 적에도 왼팔을 쳐다보지 않으며 지냈습니다. 자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살았어요.


  이렇게 한참 지내다가 왼팔이 찢어졌다는 생각까지 잊던 어느 때, 내 왼팔을 문득 보았는데, 감쪽같이 생채기가 사라졌습니다. 딱히 왼팔에 무엇을 했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어머니가 날마다 소독만 해 주었겠지요. 오십 센티미터 남짓 찢어졌을 텐데, 이 생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생채기는 왜 나한테 왔다가 사라졌을까요.


  내 왼팔이 찢어졌다가 아문 지 서른 해쯤 됩니다. 이제 나는 두 아이와 살아가는 아버지입니다. 아이들이 넘어지거나 부딪혀서 어딘가를 다칠 적에, 피가 나거나 찢어지거나 할 적에, 아이들한테 늘 말합니다. “괜찮아. 다 괜찮아. 다 나아. 그러니 그냥 놀아.” 4347.7.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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