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이 있는 양반



  스무 해 앞서 으레 듣던 말을 떠올립니다. 그무렵 내 글을 읽던 이들은 ‘나이도 어린’이나 ‘나이가 어린’과 같은 말을 참 흔하게 썼습니다. 이런 말은 마흔 살이 될 무렵까지 자주 들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적마다 왜 이렇게 나이를 따지려 하나 알쏭달쏭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려면 ‘이야기’를 보아야지, 왜 자꾸 ‘나이’를 보려 하나 싶어 쓸쓸했습니다. 나이를 들추려는 사람하고는 아무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이야기가 아닌 나이를 보니까요. 이야기가 아닌 나이를 생각하니까요.


  어떤 이는 나이조차 아닌 ‘학번’을 묻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졸입니다. 학번이란 무엇인가요?” 하고 되묻는데, 이렇게 되물어도 “그래도 학번으로 치면 뭔지 알지 않느냐?” 하면서 끝까지 ‘나이 아닌 학번’으로 사람을 따지거나 재려는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그래, 참다못해 “저는 토끼띠입니다.” 하고 말했더니, 띠로 나이를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도 많더군요.


  글을 쓰려면 어느 만큼 나이를 먹어야 할까요? 어떤 글을 쓸 만한 사람은 어느 만한 나이를 먹은 사람뿐일까요?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사람을 안 뒤에는, 내 글을 놓고 ‘나이’를 들먹이는 사람한테 “모차르트가 지은 노래를 들으면서, 모차르트가 몇 살에 이 노래를 지었는지를 따질 생각이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노래가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빛을 느낄 노릇이고, 노래가 사랑스러우면 사랑스러운 숨결을 느낄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으면 엉뚱하게 “네가 모차르트인 줄 아니?” 하고 되묻는 사람이 퍽 많았습니다.


  세계대회에서 1위를 거머쥐는 운동선수는 나이가 어리거나 젊기에 1위를 거머쥐지 않습니다. 스스로 솜씨를 쌓고 재주를 키웠기 때문에 1위를 거머쥡니다. 무척 어린 나이에 테니스 대회나 골프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하고, 무척 늙은 나이에 테니스이건 수영이건 골프이건 1위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그뿐입니다. 스스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몸과 마음을 하나로 다스리면서, 스스로 나아갈 길을 걸어가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나는 어느새 마흔 살 나이로 접어듭니다. 마흔 살이 지나니, 이제 내 글을 읽으면서 ‘나이도 어린’이나 ‘나이가 어린’이나 ‘나이가 젊은’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부쩍 줄어듭니다. 아니, 이제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싶습니다. 그리고, 예전과 달리 ‘나이 있는 양반’이라든지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든지 ‘나이를 먹은 어른’이라든지 ‘나이도 먹고 애도 있는 양반’과 같은 말을 듣습니다.


  이 나이를 먹고 다시금 ‘나이’ 소리를 들으니 헤헤 하고 웃음이 납니다. 히히 하고 웃음이 터집니다. 내 나이가 어리다 할 적에는, 또 내 나이가 많다 할 적에는, 나는 내 이웃한테 어떤 모습인 셈일까 궁금합니다. 나이가 어리면 ‘이렇게 해야’ 하고, 나이가 있으면 ‘저렇게 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나이가 어려도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사람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안 깨달은 사람은 안 깨달은 사람입니다. 나이가 어려도 참거짓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바라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참거짓을 가릴 줄 모르는 사람은 가릴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은 서로 나이를 묻지 않습니다. 어른이라는 사람들만 자꾸 이웃과 동무한테, 또 아이들한테까지 나이를 묻습니다. 이러다 보니, ‘나이를 안 묻고 살던 아이들’조차 동무끼리 나이를 따지면서 누가 오빠이니 언니이니 누나이니 동생이니 하고 자꾸 금을 긋고 맙니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스 떨어지다


  아이들과 먹을 낮밥을 한창 하는데, 갑자기 가스불이 꺼진다. 뭔가 하고 다시 켜지만 안 켜진다. 아차 벌써 다 썼나 하고 생각하며 살펴보니 참말 가스가 다 떨어졌다. 생각보다 가스가 빨리 떨어지는구나 싶다. 전화번호부를 뒤져 면소재지 가스집에 전화를 건다. 언제쯤 올 지는 알 수 없다. 광에서 버너를 꺼낸다. 끓이던 국을 마저 끓인다. 비는 하염없이 쏟아진다. 사흘 동안 해가 나고 하루쯤 비가 온다면, 닷새나 엿새쯤 해가 쨍쨍 내리쬔 뒤 하루쯤 비가 온다면, 이만 한 비면 딱 좋으리라 생각한다. 너덧새에 하루 비가 내리는 날씨가 숲에도 들에도 가장 즐거우리라. 빗소리를 들으며 밥을 짓는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살이 일기 64] 우리 집 딱새 두 마리

― 노래이웃



  우리 집에서 살듯이 지내는 딱새가 두 마리 있습니다. 처음에는 마당을 가로지르면서 다니지 않았으나 며칠 앞서부터 마당이고 섬돌이고 아무렇지 않게 뾰롱뾰롱 날아앉거나 콩콩콩 뛰어서 다닙니다. 한 마리인가 했으나 두 마리입니다. 한 마리는 수컷일 텐데, 다른 한 마리는 암컷일까요. 새끼를 까면서 모두 떠나고 빈 제비집에 깃들려나 궁금합니다. 후박나무에 둥지를 지었을까요, 풀숲에서 지내려나요.


  제비가 떠나고 없는 우리 집에 딱새가 날마다 노래를 베풉니다. 고마우면서 반갑고 사랑스러운 이웃입니다. 딱새는 노래이웃입니다. 딱새 두 마리는 노래동무입니다. 날마다 고운 빛으로 노래하면서 시골집에 밝은 기운을 나누어 줍니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를 가는 소리


  두 아이 이를 고치면서 ‘이 가는 소리’를 다스리려고 애쓴다. 치과에 가기 앞서까지 큰아이 ‘이를 가는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아이가 고단할 적에 이를 가는구나 하고만 여겼다. 이제는 아이가 이를 갈 적마다 곧바로 잠에서 깨어 아이 볼을 토닥이면서 “이는 예쁘게 그대로.” 하고 말한다. 밤마다 열 차례 즈음 잠에서 깨어 이렇게 이 말을 읊는다. 간밤에는 얼추 십 분이나 이십 분마다 깨어 이 말을 읊었지 싶다. 도무지 잘 수 없어 부시시 일어나니 새벽 세 시. 그래도 다섯 시간은 누웠네. 재미있다면, 도무지 자다 깨다 하기 힘들어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 뒤 두 시간 동안 큰아이가 이를 갈지 않는다.

  큰아이가 아직 갓난쟁이였을 적에는 삼십 분마다 기저귀를 갈았다. 작은아이는 큰아이와 달리 밤오줌을 자주 누지 않았다. 작은아이는 한두 시간에 한 차례 기저귀를 갈면 되었다. 큰아이가 이를 언제쯤 갈지 않을까 헤아려 본다. 큰아이가 스스로 이를 예쁘게 그대로 두면서 새근새근 잠을 폭 들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4347.7.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버지 그림놀이] 별 그리기 (2013.12.20.)



  사름벼리가 여섯 살이던 지난 십이월에 파란 별을 커다란 종이에 그야말로 큼직하게 그리며 논 적이 있다. 그림 한 장에 파란 별을 하나씩만 그린다. 그래서 이 별 그림을 보다가,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 둘레에 덧그림을 붙여 보았다. 커다란 별 둘레에 작은 별이 반짝이고, 동그란 해(또 다른 별)가 무지개꼬리를 달고 훨훨 날아가는 그림을 그렸다. 해와 같은 동그란 무지개별은 억새밭을 가로지르고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이 무지개별은 언제나 우리 가슴에 드리우겠지. 오랜만에 두 아이와 함께 대만 영화 〈로빙화〉를 보았다. 언제 다시 보아도 참으로 가슴이 짠하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