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71] 종이비행기 잔치

― 삶자리



  마당에서 마음껏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흙으로 된 운동장을 넓게 누리던 예전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오늘날에는 ‘더러’ 흙운동장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아주 빠르게 흙운동장이 사라집니다. 흙운동장에서 놀 수 있는 아이들도 사라지고, 공을 차거나 치는 놀이가 아닌 스스로 온몸을 쓰면서 놀 줄 아는 아이들도 사라집니다.


  종이비행기를 날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연을 날릴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들판이 있어야겠습니다. 아이들이 손수 연을 만들 수 있자면 대나무를 베어서 깎아야 할 테니, 들판 한쪽에는 대나무가 자라야겠고, 아이들이 나무를 타며 놀면 한결 즐거울 테니 들한 다른 한쪽에는 온갖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야겠습니다.


  모든 땅에 남새를 심어 길러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들이 논으로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도시에는 빈터가 있어야 하고, 시골에는 숲과 들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하루 내내 땀을 흘리면서 뛰놀 자리가 있어야 하고, 어른들은 느긋하게 드러누워 쉴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놀 수 있을 때에 일할 수 있어요. 일할 수 있을 때에 놀 수 있어요.


  시골에서 아이들이 자꾸 줄어들지만, 시골에 아이들이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까닭을 시골사람 스스로 깨달아야지 싶습니다. 도시에 아이들이 아주 많지만, 도시에서 아이들이 뛰놀지 못할 뿐 아니라 싱그럽거나 착한 마음으로 자라기 어려운 까닭을 도시사람 스스로 알아차려야지 싶습니다. 삶자리가 놀이터이자 일터가 되지 못한다면, 삶자리가 쉼터이나 만남터이자 이야기터 구실을 하지 못한다면, 아이도 어른도 모두 힘듭니다.


  너른 들이 있어야 씨름도 하고 술래잡기도 합니다. 너른 숲이 있어야 숨바꼭질도 하고 새랑 다람쥐하고 동무가 될 수 있습니다.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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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70] 꽃과 열매

― 한 해가 흐른다



  풀이 돋습니다. 잎이 납니다. 꽃대가 오르고 꽃망울이 터집니다. 꽃이 피었다가 지고 열매가 맺습니다. 열매에는 씨가 깃들어요. 차근차근 흐릅니다. 날이 지나고 달이 가며 철이 바뀝니다.


  스스로 심는 씨앗을 들여다보든, 남이 심은 씨앗을 살펴보든, 풀과 나무를 바라볼 수 있으면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느낍니다. 그러나, 풀과 나무를 바라볼 수 없다면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모릅니다.


  지난해와 올해가 같지 않습니다. 올해와 이듬해가 같지 않습니다. 해마다 다른 빛이요 냄새이며 무늬입니다. 해마다 달라지는 모습이고 삶이며 이야기입니다. 올해에 핀 고들빼기꽃이랑 지난해에 핀 고들빼기꽃은 다릅니다. 올해에 돋는 돌나물하고 이듬해에 돋을 돌나물은 다릅니다.


  ‘우리 집 부추꽃’을 바라봅니다. 하얗게 터지는 꽃망울을 들여다봅니다. 이 아이들은 봄과 여름에 고마운 풀밥이 되었습니다. 가을에는 어여쁜 꽃내음을 베풉니다. 가을이 무르익으면 새까만 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씨앗은 스스로 떨어져 이듬해에 더 넉넉히 자라고, 씨앗을 조금 받아 둘레에 조금씩 뿌리기도 합니다.


  무엇을 얼마나 먹으면 즐거울까요. 무엇을 어떻게 먹으면 기쁠까요. 어떤 꽃잔치를 누리고, 어떤 이야기마당을 누릴 때에 우리 삶이 환하게 피어날까요. 4347.9.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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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구실



  어버이로 살아가는 나날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이 새롭게 물려받으면서 배울 ‘사랑’을 어버이가 먼저 즐겁게 누려서, 이 즐거움을 새롭게 물려주는 데에 ‘어버이 구실’이 있지 않을까. 어버이 스스로 즐거움을 모른다면 아이들한테 즐거움을 보여주거나 물려주거나 가르치지 못한다. 어버이 스스로 웃음을 모른다면 아이들한테 웃음을 보여주거나 물려주거나 가르치지 못한다. 어버이 스스로 사랑을 모른다면? 참말 어버이 스스로 사랑을 모른다면? 4347.9.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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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쓴 글을 이제서야 걸친다.


..


혼자 나서는 길



  서울을 거쳐 인천을 들러 음성에서 아버지를 뵙고는 바로 고흥으로 돌아오는 마실을 떠난다. 아이들과 갈까 하다가 너무 힘든 길이 될까 싶어 혼자 대문 열고 나오는데, 어쩐지 서운하다. 혼자 다니지 않은 지 일곱 해째이니 여러모로 낯설다. 그러나 기운을 내야지. 즐겁게 볼일 마치고 웃으며 돌아가자. 4347.9.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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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익 배달



  고흥에서 음성까지 케익을 나른다. 케익은 음성군 금왕읍 동큐제과에서 산다. 음성에 케익을 사들고 갈 적에는 으레 이곳을 들른다. 아버지한테 일흔한 번째 생일이다. 이제는 초를 꽂기에 많아 숫자초를 쓴다.

  나는 아버지한테 하루 늦은 생일케익을 이틀에 걸쳐 찾아가서 드리고, 아버지는 이녁 아들을 청주까지 태워 주신다. 어머니가 싸 주신 굴비꾸러미를 들고 고흥으로 돌아가자. 모두 나를 기다를 테지. 아버지도 천천히 잘 들어가시겠지. 4347.9.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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