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위험할까



  일곱 살 사름벼리는 높은 데에 잘 올라간다. 아마 나도 곁님도 어릴 적에 높은 데에 곧잘 올라가며 놀았으리라 생각한다. 무섭다는 생각도 없이 척척 올라간다. 떨어지면 다친다는 생각이 없이 올라간다. 아슬아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재미있고, 바람맛이 새롭다고 느낀다.


  둘레에서는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느냐’ 하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도 안 위험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위험하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사름벼리가 돌쟁이일 무렵 아버지 사진기를 목에 걸거나 두 손에 쥐고 놀 적에도 ‘위험하다 느낀 적이 없’다. 아이는 아버지 사진기를 안 떨어뜨리고 잘 놀았다. 둘레에서는 ‘비싼 사진기 깨질라 위험하다고 걱정’해 주지만, ‘그런 걱정이 걱정을 낳으니, 걱정을 하지 말고 즐겁게 지켜보거나 고개를 돌려 주십사’ 하고 말했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기를 바란다면 아이들이 즐겁게 논다. 아이들이 씩씩하게 뛰놀기를 바란다면 아이들은 씩씩하게 뛰논다. 어버이가 바라보는 대로 아이들은 무럭무럭 큰다. 어버이가 사랑하는 대로 아이들은 야무지게 자란다. 어버이가 따사롭게 어루만지고 보듬는 결대로 아이들은 맑고 밝게 꿈을 꾼다. 4347.8.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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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4] 빛읽기 (윤 일병 죽음을 생각하며)

― 삶이 빛이 되도록 꿈을 꿉니다



  미국은 틈만 나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어 미사일과 폭탄을 쏟아붓고 사람을 죽입니다. 이런 전쟁놀이를 지켜보면서 ‘폭력은 이제 그만!’ 하고 외치는 사람이 있고, ‘평화를 지키는 군대!’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을까요?


  사람들이 죽습니다. 나이가 들어 죽기도 하지만, 자동차에 치여서 죽기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기도 합니다. 오늘날 지구별에서는 전쟁 때문에 죽는 사람보다 자동차에 치여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입시지옥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대단히 많아요. 이와 함께, 한국에서는 군대에서 죽는 젊은이가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입시지옥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죽는 아이들 이야기하고 군대에서 웃사람한테 얻어맞아서 죽는 젊은이들 이야기는 도무지 알려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바깥에 이 이야기를 퍼뜨려야 알려집니다. 끔찍하게 죽은 아이들이어야 비로소 신문이나 방송에 나옵니다.


  나는 군대에서 내 웃사람한테 얼마나 얻어맞으면서 지냈는지 돌아봅니다. 내 ‘웃사람’이라는 이들은 나를 비롯해 ‘아랫사람’을 얼마나 자주 많이 두들겨패거나 괴롭혔는지 돌아봅니다. 훈련소에서도, 훈련소를 마치고 들어가는 자대에서도, 언제나 주먹다짐과 욕지꺼리와 얼차려입니다. 하루에 적어도 한 차례씩 맞거나 욕을 듣거나 얼차려를 안 받고 지나가는 일이란 없다고 할 만합니다. 군대에서 가장 자주 들으면서 가장 듣기 싫던 낱말은 ‘집합’입니다. 모이라는 뜻으로 쓰는 이 한자말이 누군가 입에서 살그마니 터져나오면, 맞고 뺑뺑이를 돌면서 허우적거려야 합니다. 처음 군대에 발을 들여놓는 날부터 군대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전역날까지, 누구라도 군대에서는 주먹다짐과 욕지꺼리와 얼차려에 시달립니다.


  어리거나 늙다고 하는 나이란 없다고 느껴요. 나이가 많다고 훌륭하거나 슬기롭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이가 적다고 안 훌륭하거나 안 슬기롭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참말 언제 어디에서나 꽃을 봅니다. 꽃밭에 있으면서도 꽃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꽃을 헤아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군부대에서도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꿈을 건사하는 사람은 주먹질이나 욕지꺼리나 얼차려를 시키지 않습니다. 여느 사회에서도 아름다운 삶이나 사랑이나 꿈을 안 건사하는 사람은 여느 사회에서도 으레 주먹질을 하거나 욕지꺼리를 일삼거나 남을 해코지하는 짓을 일삼습니다.


  나는 군대라는 곳에 늦게도 이르게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대학교라는 곳이 사람을 사람답게 가르치는 배움터가 아니로구나 하고 느껴서 일찌감치 ‘군 입대 희망서’를 내기는 했는데, 내가 ‘군 입대 희망서’를 낼 즈음에는 군대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드물었는지, 참말 아주 빨리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군대에 들어가 보니 나와 나이가 같으면서 웃자리(고참)에 있는 사람은 딱 하나였습니다. 나로서는 숨을 돌릴 만한 일일 텐데, 나보다 어리면서 웃자리에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서 아랫자리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1995년 11월에 군대에 들어가서 상병 6호봉이 될 때까지, 나는 늘 맞는 쪽과 욕지꺼리 듣는 쪽과 얼차려를 받는 쪽에 있었습니다. 상병 6호봉이 된 어느 날, 상병 4호봉이면서 나와 나이가 같은 아랫자리 아이가 ‘계급이 좀 높아졌다’면서 그 아이가 맡을 사역과 경계근무를 이등병한테 떠넘긴 일을 알아차립니다. 나는 그길로 소대에서 이럭저럭 높은 자리에 있는 그 아이한테 찾아가 말 한 마디 없이 그 아이를 군홧발로 10분쯤 밟았습니다. 병장 4호봉이던 어느 날, 병장 1호봉이면서 나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린 아이가 사역과 경계근무를 일병한테 떠넘긴 일을 알아채고는, 이 아이 후임병과 선임병이 있는 자리에서 얻드려뻗쳐를 시키고 배를 군홧발로 걷어찼습니다. 아파서 쓰러진 아이를 다시 일으켜서 엎드려뻗쳐를 시키고는 끝없이 배를 걷어찼습니다. 얼마 뒤 다른 병장 2호봉 아이를 또 군홧발로 내무반에서 밟았습니다. 이 아이도 똑같은 짓을 했습니다. 딱 세 차례, 군대에서 내 아랫자리 아이를 두들겨팼습니다. 그때 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주먹다짐을 했을까, 왜 다른 군인들과 똑같이 욕지꺼리를 퍼부었을까 하고 돌아보면, 보드라운 말씨와 얼차려가 없이는 말귀를 듣지 않는 군대 얼거리였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는 평화가 깃들지 않습니다. 군대에서는 오직 주먹다짐과 신분과 위계질서와 욕지꺼리로 모든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전역을 할 즈음, 나보다 두 살 위이자 여섯 달 아래인 아랫자리 아이가 병장 계급장을 달 무렵까지 군대에서 ‘거친 욕지꺼리’도 ‘누군가를 주먹이나 군홧발로 때린 일’도 없는 줄 알아차립니다. 전역을 며칠 앞두고 그 아이를 불렀습니다. 나한테 거수경례를 하는 아이한테 “아이고, 며칠 뒤면 전역하는 사람한테 무슨 경례를 해. 밖에 나가면 내가 당신한테 형이라고 해야 할 텐데. 밖에 나가서 길에서 마주치면 형이라고 할 테니, 그때에는 나한테 말 놓아요.” 하고 말한 뒤, “그나저나 어떻게 ○ 병장은 욕 한 마디도 안 하고 때리지도 않고 얼차려도 안 시킬 수 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이이는 “내가 싫어서 그렇지요. 다 귀엽고 착한 아이들인데 말로 해야지요. 말로 안 되면 그냥 내가 하면 되고요.” 하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늘 160명이 넘는 중대원이 복닥거리는 강원도 양구 비무장지대 멧골짝 부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겪었는데, 스스로 ‘나다움’을 지키려는 사람을 꼭 하나 만난 셈입니다. 참말 이 사람은 늘 눈에 뜨였습니다. 나이가 많으면서 몸이 꽤 여려, 무엇을 하든 으레 뒤처지거나 어설펐는데, 그래도 말없이 땀만 흘리면서 끝까지 견디곤 했어요. 저보다 못 하는 후임병한테도 퍽 살갑고 부드럽게 타이를 줄 알았습니다. 참 멋지구나 싶어 이녁한테 휴가증을 하나 선물로 주었습니다. 나는 군대에서 내 몫으로 나온 휴가를 보름치 안 써서, 전역할 때까지 보름치 휴가증이 남았고, 이 가운에 이레치를 이녁한테 건넸어요.


  1997년 12월 31일 새벽에 펑펑 쏟아지는 눈밭을 헤치며 멧골짝에서 전역을 하고 군대를 떠나는 길에 내내 이녁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바보처럼 세 차례 주먹다짐을 했고 툭하면 욕지꺼리를 내뱉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내 거친 말 때문에 마음이 다쳤을까 하고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많은 아이들은 주먹다짐과 거친 말을 대물림해요. 받은 만큼 물려주거나 받은 것보다 더 크게 물려줍니다. 모두 그뿐입니다. 쳇바퀴를 돕니다. 이런 바보짓 쳇바퀴를 거스르는 빛이 하나 있었지요. 그때 그 사람은 오늘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이름도 성도 잊었습니다. 그 사람이 보여준 눈빛과 몸빛만 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평화로운 곳에 있어도 마음을 평화롭게 건사하지 않으면 평화롭지 않습니다. 전쟁터에 있어도 마음을 평화롭게 다스리면 평화롭습니다. 남이 나를 사랑해 주기도 할 테지만, 내가 스스로 나를 사랑할 때에 사랑이 태어납니다.


  아이들을 군대에 안 보내려면, 군대를 이 나라에서 없애면 될 테지요. 전쟁훈련과 살인훈련을 시키는 군대가 이 나라에서 사라져야, 이 땅에 평화가 싹틀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군대를 없애더라도 우리 마음자리에 사랑스러운 평화가 먼저 자라야 합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믿고 아끼면서, 내 이웃과 동무를 함께 믿고 아낄 수 있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꽃에서 흐르는 냄새와 빛을 누릴 때에, 꽃밭이 아닌 눈밭에 있을 때에도 꽃내음과 꽃빛을 떠올리면서 즐겁게 웃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군대 조직’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 아이들은 군대에 가지 않은 몸이어도 학교에서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힙니다. 군대에서도 폭력이 이루어지지만 학교에서도 똑같습니다. 회사라고 다르지 않아요. 마을에서도 똑같아요. 군대에 있기에 사람이 더 바보처럼 주먹다짐을 하지 않아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도 가슴 아픈 주먹다짐이 벌어집니다. 마을에서도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는 해롱거리면서 싸움을 벌입니다. 서로 밟고 일어서려고, 서로 더 잇속을 챙기려고 괴롭히거나 윽박지릅니다.


  입시경쟁과 시험지옥을 없애지 않고서는 학교폭력과 청소년자살을 막을 수 없습니다. 취업경쟁과 경제개발을 없애지 않고서는 사회차별과 온갖 불평등을 뿌리뽑지 못합니다.


  학교와 회사와 군대와 감옥은 너무 얄궂게 서로 닮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와 회사와 군대와 감옥은 사람들 스스로 바보스러운 쳇바퀴에 갇히도록 내몹니다.


  사랑에 눈을 뜨지 않고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삶을 바로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빛을 읽으면서 품고 아끼며 보살필 때에 비로소 모든 실타래를 풀면서 잘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4347.8.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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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 전화하고 나서



  팔월 팔일은 아이들 이를 고치러 치과에 가야 하던 날이다. 두 차례 진료를 받았고 두 차례 진료가 더 남았다. 그런데, 앞서 진료를 받을 적에 치른 카드값을 아직 내지 못한 터라, 이번 치료는 미루기로 한다. 치과에 갈 돈부터 모아야 한다. 요 며칠 몸이나 마음이 힘든 까닭은 이 때문이었을까. 아이들과 한식구로 지낸 지 일곱 해째인데 아직 살림을 제대로 펴지 못한다. 살림을 펴지 못했어도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즐거움을 언제나 누린다고 느끼는데, 앞으로는 살림도 펼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큰아이는 씻긴 뒤 밥을 먹이고 재웠으나, 작은아이는 이른저녁에 곯아떨어진 바람에 씻기지도 밥을 먹이지도 못했다. 밤이나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칭얼댈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 광에서 태어난 어린 들고양이 세 마리가 이 밤에 마당에 나와 신나게 뛰어논다. 섬돌에 놓은 아이들 신을 만지거나 깨물기도 하면서 노네. 4347.8.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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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어머니 돌아오는 날



  곁님이 미국으로 람타공부를 하러 떠난 지 며칠쯤 지났는지 잘 모르겠다. 곁님이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집이랑 도서관을 치우자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곁님이 보름쯤 일찍 돌아오는 바람에 어설프게 치운 채 맞이한다. 그래도 이럭저럭 치우고 갈무리를 했으니, 앞으로 차근차근 더 치우고 갈무리를 하면 한결 말끔한 살림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제쯤 소금이 떨어졌다. 소금을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비가 그치지 않아 마실을 못 간다. 오늘 아침에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오락가락하면서 빗줄기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아이들한테 영화를 하나 틀어 주고 혼자 빗길을 자전거로 달려서 면소재지에 다녀와야 할까.


  곁님이 군내버스를 타고 마을 어귀에서 내리면, 아이들은 깜짝 놀라겠지. 서로 어떤 얼굴이 될까. 스무 날 만짓만에 만나는 어머니를 아이들은 어떻게 맞이해 줄까. 4347.8.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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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68] 왜 시골에 왔느냐 하면

―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보려고



  엊그제부터 면사무소에서 방송을 합니다. 태풍이 올라오니 모두들 집단속과 문단속을 잘 하랍니다. 바람에 날아가는 것 없도록 하라는 얘기가 흐르고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얘기가 떠돕니다. 오늘도 새벽부터 마을 이장님이 방송을 하고, 면사무소에서 두어 차례 더 방송을 합니다. 참말 태풍이 걱정스럽기는 걱정스러운가 봅니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는 태풍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태풍은 한 해에 한두 차례쯤 이 나라를 지나가야 한다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풀도 나무도 드센 바람을 한두 차례쯤 맞으면서 한결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더욱 씩씩하게 줄기와 가지를 뻗거든요.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가 몇 해만 살다가 꺾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집 후박나무와 초피나무를 비롯해 감나무도 모과나무도 살구나무도 복숭아나무도 매화나무도 탱자나무도, 모두모두 천 해쯤 너끈히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나무 한 그루가 천 해쯤 살아가자면, 드센 비바람을 해마다 한두 차례 맞이하면서 더욱 튼튼하면서 야무진 넋이 되어야 한다고 느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줄기가 짧고 알곡이 많이 달리는 나락’을 심습니다. 유전자를 건드린 나락입니다. 농협에서는 이런 나락을 ‘개량종’이라 말하지만, 이 볍씨는 개량종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골 할매와 할배가 ‘개량종 나락 볍씨’를 거두어 이듬해에 다시 심으면 제대로 자라지 않거든요. 해마다 농협에서 볍씨를 새로 사다가 심어야 비로소 알곡을 맺습니다.


  ‘개량종’이라면 씨앗을 받아서 갈무리한 뒤 이듬해에 다시 심어서 거둘 수 있어야 합니다. 유전자를 건드린 씨앗은 한 번 심으면 새로운 씨앗을 받아서 갈무리하지 못해요.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걱정할 일은, 온 나라 들판에서 자라는 나락이 ‘유전자 건드린 씨앗’인 대목이어야지 싶습니다. 우리가 걱정할 일이라면, 유전자 건드린 씨앗이 자라는 들에다가 농약을 엄청나게 많이 치는 모습이어야지 싶습니다. 태풍은 한 차례 휘몰아치다가 지나가요. 그렇지만 유전자를 건드린 나락은 우리 몸을 아프게 하고 땅을 망가뜨립니다. 들에 뿌리는 농약은 우리 몸으로 스며들 뿐 아니라, 땅을 무너뜨립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시골에서 살고 싶기에 시골로 와서 살아가면서, 도서관을 꾸리고 글을 써서 책을 내놓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까닭을 들자면 여럿 있을 텐데, 맨 첫째로 꼽는 까닭은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보고 싶다’입니다. 내 마음을 파랗게 물들이고 싶습니다. 내 넋을 파랗게 밝히고 싶습니다. 내 사랑을 파랗게 가꾸고 싶습니다. 내 가슴속에 파란 별이 자라도록 돌보고 싶습니다. 4347.8.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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