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문명은 시멘트 틈바구니처럼

 


  우리 집 뒷간 앞쪽에 조그맣게 구멍이 났다. 예전부터 이곳에서 살던 분이 흙마당에 시멘트를 넓게 발랐고, 시멘트마당 끝자락은 오랜 나날 비와 발걸음과 햇살에 바래고 닳으며 구멍이 난 데가 더러 있다.


  겨우내 구멍난 자리를 들여다볼 일이 없이 지낸다. 봄을 맞이해 들판에 푸른 물결 넘실거리려 할 무렵, 뒷간 앞 구멍에도 무언가 꼼틀거리는 빛깔이 보인다. 무얼까. 가까이 다가선다. 쪼그려앉아 바라본다. 제비꽃 세 송이 곱게 피었다. 어쩜 제비꽃 씨앗은 여기까지 퍼졌니. 다른 꽃들도 씨앗을 날려 여기에 깃들 만한데, 다른 들꽃은 아직 예까지 오지는 못하고 너희만 이곳에 깃들었니.


  고흥과 가까운 순천시로 나들이를 하며 거님길을 거닐다 보면, 시멘트돌로 깐 거님길 사이사이에서 풀이 비죽비죽 돋거나 민들레나 몇 가지 들꽃이 고개를 내미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작은 들꽃과 들풀은 그야말로 작은 틈이 있으면 즐거이 뿌리를 내리고 기쁘게 줄기를 올리며 예쁘게 꽃송이를 피운다. 누가 바라보아 주어야 예쁘게 피우는 꽃송이가 아니다. 스스로 즐겁게 피우는 꽃송이요, 스스로 환하게 누리는 꽃송이라고 느낀다.


  도시문명은 시멘트와 같다고 느낀다. 그 어떤 다른 것도 끼어들지 못하도록 꽁꽁 발라 버린다. 숨 한 번 틀 수 없도록 꽉 틀어막는다. 그런데 이 시멘트 문명은 얼마 가지 못한다. 백 해는커녕 쉰 해조차 버티지 못한다. 남녘땅 서울 한강 둘레를 가로막은 시멘트 둑은 앞으로 몇 해를 버틸 수 있을까. 흙땅을 파고들어 시멘트를 들이부은 다음 지은 아파트는 몇 해나 버틸 수 있는가. 아스팔트로 길게 닦은 길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으려나.


  시멘트를 부은 땅에서는 아무 목숨이 살아날 수 없는데, 사람들은 집을 짓는다며 시멘트를 들이붓는다. 시멘트로 벽을 세우고 시멘트로 지붕을 얹는다. 사람이 살아갈 터를 헤아리기보다는 전기전자제품과 자가용을 걱정없이 둘 만한 자리로 꾸민다. 사람이 살아가는 집이지만 사람보다는 물질문명을 살핀다. 사람이 살아갈 나날이지만 물질문명을 건사할 뿐이다.


  촉촉히 내리는 봄비가 뒷간 앞 작은 구멍 작은 제비꽃 꽃망울과 잎사귀로도 떨어진다. 빗소리를 듣는다. 빗소리 가득하니 개구리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빗줄기 듣는 날에도 들새와 멧새는 논자락과 밭자락을 돌며 먹이를 찾는다. 봄을 맞이해 깨어난 개구리와 맹꽁이는 뭇새한테 좋은 봄밥이 되어 준다. (4345.4.10.불.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2-04-11 00:30   좋아요 0 | URL
제비꽃을 사진을 통해 먼저 보게 되는군요.
저는 제비꽃을 정말 좋아해요. 이 꽃을 보면 봄이 왔구나 하고 알게 되니까요.

숲노래 2012-04-11 06:01   좋아요 0 | URL
봄이 무르익을 때에 제비꽃이 피고,
봄이 따스할 때에 민들레가 피는구나 싶어요
 


 책꽂이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는 따로 없다. 다만, 나무 가운데에는 책꽂이로 짜면 더없이 어울리면서 한껏 빛나는 나무가 있다. 책꽂이로 짜면 잘 어울리는 나무를 베어 알맞게 칸을 질러 세우면 오래도록 향긋한 내음을 나누어 준다. 잘 짠 나무 책꽂이는 열 해나 스무 해 아닌 백 해나 이백 해가 흘러도 튼튼하게 책을 건사한다.


  좋은 책꽂이와 나쁜 책꽂이는 따로 있다. 더 비싸다 해서 더 좋은 책꽂이가 되지는 않는다. 나무조각이나 나무부스러기를 뭉쳐서 본드로 굳힌 판대기로 만든 책꽂이는 나쁜 책꽂이라 할 만하다. 칼라박스라 하는 책꽂이도 책꽂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다.


  나무로 짠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면 책상에서 슬몃슬몃 피어오르는 나무내음과 책종이에서 묻어나는 나무내음을 함께 느낀다. 나무걸상에 앉았으면 나무걸상 내음은 온몸을 감싸고 돈다. 책을 들고 들판으로 나와 풀숲에 앉아 나무 그늘 밑에 앉으면, 풀내음과 나무내음이 싱그러이 감돈다. 나무가 나누어 준 목숨으로 빚은 책이란 바로 나무가 새숨을 베푸는 곳에서 읽을 때에 가장 아름다이 받아들이며 가장 즐거이 누릴 수 있다고 깨닫는다.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은 오래오래 간다.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흙과 나무가 베푸는 먹을거리를 누리면서 튼튼하고 즐겁게 하루를 누린다.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을 허물어야 하면, 나무는 좋은 땔감으로 마무리되고 흙은 기름진 흙으로 돌아간다. 새 나무와 새 흙은 다시금 오래오래 잇는 좋은 보금자리가 되어 사람들 삶을 넉넉하게 북돋운다.


  목숨이 목숨을 낳고, 목숨이 목숨을 읽는다. 목숨이 목숨을 아끼고, 목숨이 목숨으로 살아낸다. (4345.4.9.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ㄱ. 그림책을 헤아린다
 그림책이란
 그림책을 누가 읽을까
 그림책을 누가 만들까
 그림책을 읽는 어른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린이
 그림책에 담는 이야기
 그림책이 태어나는 밑바탕

 

ㄴ. 어린이 삶을 생각한다

ㄷ. 그림쟁이 넋을 돌아본다

ㄹ. 옛날 한국 그림책

 

그림책을 헤아린다
― 그림책이란

 


  그림책은 그림으로 이룬 책입니다. 오늘날 ‘그림책’이라 말하면, 으레 어린이한테 읽히려고 빚은 책으로 여깁니다. 2000년대로 접어들기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그림책’이라는 낱말을 꺼내기 수월하지 않았고, 이러한 낱말을 받아들이는 어른이 썩 많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에도 그림책이 나왔고, 한국에서도 그림책을 그리는 어른이 있었지만 아직 몇 분 되지 않았으며, 제대로 읽히기 몹시 힘들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으레 ‘글로만 엮고 그림은 사이사이 곁들이는’ 동화책만 읽히면 된다고 여겨 버릇했거든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이들한테 동화책 읽히는 일도 아이들로서는 고맙게 여길 만했습니다. 1980년대나 1970년대에는 아이들 책이라 하면 흔히 ‘전집’만 생각했으니까요. 더욱이, 1970년대나 1960년대를 헤아리자면, 집안에 전집을 들여놓을 만한 살림이 되는 아이가 매우 적었어요. 돌이키면, 1960년대나 1950년대에는 아이들한테 ‘책을 읽힌다’는 일부터 꿈꾸기 어려웠구나 싶어요. 이무렵에는 ‘교과서 한 권 사 주기’조차 만만하지 않다고 여기던 살림이기 일쑤였어요.


  곧, 한국땅에서 아이들이 그림책을 누린 때는 2000년대부터라 할 만합니다. 1980년대까지는 거의 아무런 싹이 없었고, 1990년대에 비로소 싹이 조금씩 움트며 2000년대에 줄기가 부쩍 올랐다 할 만합니다.


  오늘날 둘레를 살피면 큰 책방에서 가장 널따랗게 자리를 얻는 데는 ‘교과서·참고서’ 다음으로 ‘어린이책’ 칸입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교과서와 참고서 자리가 가장 널따랗기 때문에 무척 슬프지만, 입시지옥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어찌할 길 없으리라 느낍니다. 아무튼, 어린이책 칸 가운데에서는 그림책이 가장 널따랗게 자리를 얻습니다. 그림책이 싹을 트고 줄기를 높이 올린 지 고작 스무 해가 안 된 한국 책마을이라 할 만한데, 그림책 마당은 아주 빨리 매우 넓게 퍼집니다.


  한국과 이웃한 일본은 그림책 마당이 꽤 일찍부터 열렸고, 몹시 넓고 깊게 뿌리내렸습니다. 일본만 돌아보더라도 ‘어린이책 전문서점’이 튼튼할 뿐 아니라, 어린이책을 빚는 크고작은 출판사가 아주 많습니다. 한국 출판사에서 내놓는 그림책 가운데 적잖은 부피를 일본 그림책이 차지합니다. 이와 함께 미국과 유럽 같은 서양 또한 그림책 뿌리가 깊으며 그림책 마당이 넓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해마다 ‘좋은 그림책’을 뽑아서 상을 주기도 하며, 이렇게 상을 받는 그림책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고 읽혀요.


  한국에서도 여러 해 앞서부터 ‘좋은 그림책’을 뽑아서 상을 주는 제도가 생깁니다. 아쉽다면 출판사마다 제가끔 마련한 상이기에 더 넓고 깊게 헤아리지는 못합니다. 출판사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못해요. 어린이책을 아끼고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어른과 어린이 모두)이 모여 해마다 새로 나오는 그림책 가운데 몇 가지를 손꼽으면서 북돋우는 자리가 있으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하지만, 한국에서 이만 한 밑바탕이 서자면 더 기다려야 걸맞다 싶기도 합니다. 너무 일찍, 또는 섣불리, ‘좋은 그림책 북돋우는 자리’만 마련할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어른과 어린이 스스로 ‘그림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짚고 살펴야 한다고 느껴요.


  다시 이야기하지만, 그림책은 그림으로 이룬 책입니다. 만화책은 만화로 이룬 책일 테고, 글책은 글로 이룬 책일 테지요. 사진은 사진으로 이룬 책이 될 테고요. 그런데 그림책이든 만화책이든 글책이든 사진책이든, 이 가운데 ‘어린이부터 즐겁게 보도록’ 헤아리며 엮는 책은 오직 그림책 하나입니다.


  그림책 가운데에는 ‘어른이 함께 읽는’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그림책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를 뺀 어른만 읽는’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그림책은 따로 없어요. ‘푸름이(청소년)가 읽는’ 그림책 또한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아니, 아직 한국에는 ‘푸름이 그림책’은 없다 할 수 있겠지요. 푸름이 문학조차 제대로 서지 못하거든요.


  만화책은 아이들도 즐겨 읽는다지만, 푸름이 즈음부터 읽을 수 있는 만화가 따로 있고, 어린이부터 읽을 만한 만화가 따로 있으며, 열아홉 살 넘은 나이부터 읽는 만화가 따로 있어요. 만화책은 금이 아주 또렷합니다. 글책과 사진책도 엇비슷해요. 읽히는 나이를 또렷하게 갈라 내놓습니다.


  그림책은 오직 어린이를 헤아리며 빚습니다. 더군다나, 그림책은 어린이를 ‘갓난쟁이’부터 열서너 살 나이까지 촘촘히 살피며 빚습니다. 세 살 아이까지 즐길 그림책, 다섯 살 아이까지 즐길 그림책, 일고여덟 살까지 즐길 그림책, 열 살까지 즐길 그림책, 열두어 살까지 즐길 그림책, 으레 이처럼 눈높이를 가누면서 엮어요. 그림책 겉이나 간기 자리를 살피면, 어느 나이 아이들한테 읽히면 좋은가 하고 밝히곤 해요.


  저도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에 그림책을 참 많이 장만해서 읽히고 읽습니다만, 아이들과 살아가며 그림책을 읽히고 읽다 보면, ‘아이 나이에 따라 가른 눈높이’는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갓난쟁이부터 세 살 아이한테까지 읽힐 만한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다섯 살 어린이한테도 즐겁기 마련이고, 열 살 어린이나 스무 살 젊은이도 즐겁게 읽을 수 있어요. 일고여덟 살이나 열두어 살 어린이한테 걸맞도록 엮었다는 그림책이라지만, 두 살이나 세 살 아이가 재미나게 읽기도 합니다. 다만, 두어 살 아이가 그림책을 읽는다 할 때에는 ‘글을 읽지’는 않아요. ‘그림을 읽’어요.


  그러니까, 그림책이란 “그림을 읽는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글책은 글을 읽는 책이고, 사진은 사진을 읽는 책입니다.


  그림책은 그림을 읽는 책인데, 그림책에서 읽는 ‘그림’이란, 사람이 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갈무리해서 나누려 하는 넋입니다. 그림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는 책인 만큼, 열 살이든 서른 살이든 쉰 살이든 쉽고 즐거이 읽을 수 있는데, 누구보다 가장 어린 나이일 어린이가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쉽고 즐거이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책인 셈입니다.


  그림으로 담는 이야기는 모두 “지구별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수학 원리를 알려주든, 과학 지식을 보여주든, 이웃사랑이나 꿈나라를 들려주든, 모든 이야기는 “사람 삶”이라는 데에 눈길을 맞춥니다. 어린이가 어버이 사랑을 차근차근 받으면서 아름다운 넋으로 씩씩하고 착하게 설 수 있도록 “사람 삶”을 슬기롭고 예쁘게 보여주는 그림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삶”을 생각하도록 이끄는 그림책이란 ‘현실을 보여주는’ 책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오늘 바라보는 이곳 모습을 고스란히 담는 그림책이 아니라, 어린이가 하루하루 새롭게 자라나면서 누리는 한삶을 언제나 즐겁고 아리땁게 스스로 사랑하도록 돕는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에서 대수롭게 살필 대목은 ‘현실이냐 판타지이냐’가 아닙니다. ‘교훈이냐 재미이냐’가 아닙니다. ‘철학이냐 과학이냐’가 아닙니다. ‘정보냐 지식이냐’가 아닙니다. ‘예쁜 그림이냐 멋진 그림이냐’가 아닙니다. 그림책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며 맺는 아름다운 삶을 사랑스레 보여줄 수 있을 때에 그림책이라는 이름이 걸맞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사랑스레 보여주는 그림책”은 어느 한 갈래에 따로 매이지 않습니다. 그림책은 아이들한테 좋은 가르침이 될 수 있고, 신나는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깊은 생각이나 슬기로운 꿈이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일구거나 빚는 힘을 북돋울 수 있습니다. 어떤 그림 솜씨를 뽐낸 작품이라 해서 아이들이 즐겁게 맞아들일 그림책이 되지 않아요. 어버이가 아이한테 대단한 밥 솜씨를 뽐내어 밥을 차려 준다고 아이들이 맛나게 먹지 않아요. 아이들은 어버이 사랑이 담긴 밥을 맛나게 먹어요. 아이들은 비싸게 치른 밥이라서 더 맛나게 먹지 않아요. 아이들은 값싸게 차린 밥이라서 더 맛없게 여기지 않아요. 아이들은 사랑 담은 좋은 밥을 맛나게 먹어요. 아이들은 사랑 담은 좋은 그림책을 오래도록 수없이 되풀이해서 읽으며 “사람이 살아가는 사랑”을 시나브로 익혀요.


  또 한 번 이야기하지만, 그림책은 그림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림 하나로 온 넋과 꿈과 사랑과 믿음과 삶과 말을 보여줍니다. 쪽수가 제법 되는 그림책이 더러 있으나, 웬만한 그림책은 쪽수가 퍽 적습니다. 그림 한 장에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담거든요. 그림 하나에 짙고 깊은 이야기를 알알이 싣거든요.


  훌렁훌렁 넘길 때에는 그림책을 읽지 못합니다. 꽃 한 송이를 오래도록 들여다볼 줄 알고, 풀 한 포기를 날마다 새롭게 들여다볼 줄 아는 어린이 매무새처럼, 그림책 그림 한 칸은 오래오래 차근차근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맛과 멋을 알아챈다 할 만합니다.
 (4345.4.7.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사랑 손바닥책

 


  손바닥책 담은 상자를 끌른다. 열 차례 남짓 살림집을 옮기면서 손바닥책을 꾸리는 일이 퍽 힘들었다. 처음에는 끈으로 묶어서 날랐는데, 책짐 나르기를 거들던 사람들은 으레 책뭉치를 밟거나 던진다. 처음부터 책뭉치를 밟거나 던지는 사람도 있으나, 일이 하도 힘들어 나중에 가서야 밟거나 던지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책뭉치를 밟거나 던질 수 없다. 밟거나 던질 책뭉치라 한다면, 처음부터 이들을 건사하지 않을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숱하게 살림집 옮기며 어느 책보다 손바닥책이 크게 다쳤다. 더 작아서 더 아껴야 할 책이요, 더 가벼워 더 잘 다치는 책이기에, 손바닥책이 찢어지거나 눌린 모습을 볼라치면 눈물이 난다. 상자에 구겨지지 않게 손바닥책을 챙겼는데, 책짐을 나르던 일꾼들은 책뭉치뿐 아니라 책상자마저 휙휙 던졌다. 책상자를 그리 던질 줄 모르던 나로서는 깜짝 놀라지만, 예닐곱 시간 등짐을 져서 날라야 하니, 기운이 빠져 어쩌는 수 없겠지 하고 받아들였다. 어느덧 여섯 달 되었나. 이제 아련한 옛일처럼 느끼는데, 손바닥책 담은 상자를 끌러 한쪽으로 눌린 책 모습을 보니, 누구를 탓할 수 없고, 그저 안쓰러이 쓰다듬을밖에 없구나 싶다.


  새로 얻은 커다란 책꽂이에 손바닥책을 차근차근 꽂는다. 제자리를 잡는 책들이 기지개를 켠다. 하루 한두 시간 짬을 내기에 빠듯하지만, 이동안 바지런히 책상자를 끌르자고 다짐한다. 어린 두 아이를 보살피는 사이사이 더 넉넉히 품을 못 들여 아쉽다 여길 수 없다. 어린 두 아이를 옆지기가 홀로 맡는 한두 시간을 며칠에 한 번씩 얻을 수 있는 일을 고맙게 여길 노릇이다.


  신구문고, 정음문고, 을유문고, 박영문고, 중앙문고, 전파과학문고, …… 그저 꽂기만 한다. 이 손바닥책들은 같은 크기에 같은 모양새요, 번호가 차곡차곡 붙는다. 아직 번호까지 맞추어 갈무리할 틈은 없다. 상자에서 벗어나 숨통을 트도록 할 뿐인데, 이렇게 해 주기만 해도 마음이 뿌듯하고 좋다. 사랑스러운 책도, 사랑스러운 살붙이도, 사랑스러운 벗님도, 모두모두 스스로 울타리를 걷어내어 씩씩하고 맑게 살아가면 참으로 기쁘겠구나 하고 느낀다. 스스로 좋게 품는 마음으로 스스로 좋게 누리는 삶이 되리라 믿는다. (4345.4.2.달.ㅎㄲㅅㄱ)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2-04-03 10:59   좋아요 0 | URL
손바닥책이 문고판 책을 말씀하시는건가요?
저도 30년 가까이 된 손바닥 책이 저 안켠에 있는데, 계속 가지고 있게 될거 같아요.
어릴적 몇번씩 탐독했던 책이라서 소중하거든요. 참 많이 가지고 계시네요.
정갈하게 꽂힌 모습이, 좋습니다.

숲노래 2012-04-03 16:11   좋아요 0 | URL
다 꽂아 놓고 오래오래 즐기려고요.
'문고본'이나 '문고판' 모두 일본사람이 지은 말이에요.
저는 한국사람답게 새로 이름을 빚어 이렇게 말합니다~

카스피 2012-04-03 18:00   좋아요 0 | URL
손바닥 책이라 참 정겨운 말이네요.된장님 말씀처럼 문고본은 일본 사람들이 지은 말이지요.워낙 서구의 지식 습득에 열중했던 일본인들은 책 가격을 줄이면서도 내용은 그대로 들어갈수 있는 손바닥 책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정말 축소지향의 일본이이지요.
그나저나 신구문고, 정음문고, 을유문고, 박영문고, 중앙문고, 전파과학문고 참 오랫만에 들어 보는 이름들이네요.저도 예전에 많이 있었으나 이사 몇번에 어디로 다들 사라졌는지... ㅜ.ㅜ
저런 문고본은 이젠 헌책방에서도 자주 보기 힘들더군요.

숲노래 2012-04-04 07:31   좋아요 0 | URL
사는 사람이 그닥 안 많으니
헌책방에서도 드문드문 들어와요
 


 뒷간에서 똥을 눌 때에

 


  뒷간에서 똥을 눌 때에 으레 문을 살짝 연다. 똥을 누는 사이 눈으로는 들판이나 멧자락을 바라보면 마음이 푸근하다. 예부터 한겨레 살림집은 똥 누는 자리를 집 바깥에 두었다. 아직 여느 시골집은 똥 누는 데가 으레 집 바깥에 있다. 집 안쪽에 똥오줌 누는 곳이 함께 있는 일은 그리 좋지 않다고 느낀다. 도시에서는 똥오줌을 누면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무엇을 보거나 느낄 수 있을까. 눈은 어떻게 쉬고 귀는 어떻게 열며 마음은 어떻게 가다듬을 수 있을까. 우리 집 뒤꼍에서 한창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를 바라본다. 들새와 멧새가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어제와 그제 바람이 그토록 모질더니, 오늘은 바람이 아주 조용하다. 세 식구는 아직 꿈결이다. 호젓한 아침을 맞이하면서 따순 햇살을 듬뿍 맞는다. (4345.4.2.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