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실 되감기

 


  옆지기가 첫째 아이 긴양말을 뜨는데, 그만 첫 코에 떴어야 하는 바탕을 안 뜨고 지나치는 바람에 여러 날 애써 떴지만 다 풀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단다. 나라면 어떡했을까. 그냥 모르는 척 끝까지 뜰까? 꼭 해야 하는 첫뜨기를 안 하고 마무리까지 한다면 양말이 어떻게 되려나. 엉망이 되려나. 미운 양말이 되려나.


  글을 쓰다가 어딘가 잘못 적은 대목이 있다면 제아무리 길게 쓴 글이라 하더라도 여러 차례 꼼꼼히 되읽으며 바로잡아야 한다. 어느 때에는 아예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써야 한다. 책을 냈는데 어느 한 곳 잘못 찍힌 데가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고치거나 손질해야 한다. 아니,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헤아려 보자. 모종을 거꾸로 심을 수 있을까. 어린나무로 키워 옮겨심기를 하는데 뒤집어 심어도 될까. 싹이 안 튼 감자를 씨감자로 삼을 수 있을까. 물고기 비늘을 안 벗기고 먹을 수 있을까.


  가야 할 길을 잘못 접어들었다면, 모로 가도 닿는다며 그냥 가도 될까. 잘못 접어든 줄 깨달았으면 제아무리 멀리 걸어왔어도 여태 걸어온 길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도로 걸어가서 제대로 가야 한다. 아이 양말 한 짝을 뜨던 일이면, 어쩌는 수 없이 모두 끌러 처음부터 다시 떠야 할 테지. 차근차근 짚으며 뜨고, 한 코 두 코 살뜰히 헤아리며 뜰 노릇이다. 천천히 짚으며 읽고, 한 줄 두 줄 올바로 생각하며 읽을 노릇이다.


  그나저나, 되감는 실빛이 곱고, 되감는 심부름하는 아이 손빛이 예쁘다. 옆지기 몰래 슬쩍 웃는다. (4345.4.27.쇠.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바람 2012-04-28 13:26   좋아요 0 | URL
긴양말도 뜨신다고요?와 대단하시네요
일상이 참 고와요

숲노래 2012-04-28 15:05   좋아요 0 | URL
그냥 재미나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랍니다~ ^^
 


 책으로 보는 눈 181 : 삶이 곧 시, 책이 바로 사랑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삼인,2012)를 엮은 이흥환 님은 “대개의 전쟁사가 전투 기록, 전략전술사로만 기술된 군사이거나 전쟁의 배경, 원인에만 치중한 정치사이다. 이런 기록은 생명력이 없다. 생명력이 없다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생명력이 없는 기록은 그래서 잊히기 쉽다(16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 대목에 밑줄을 그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죽었다 하더라도 이들 죽은 넋을 기리거나 돌이킬 수 있어야 역사일 텐데, 막상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이 죽었다 하는 싸움터 이야기를 들출 때에 으레 남쪽으로 쳐들어왔다느니 누가 나쁜 놈이라느니 하는 목청만 높이기 일쑤예요. 서울 어느 동네에서 마구 철거를 하며 재개발을 하려 들 때에 그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는데, 정작 이들 슬픈 넋을 기리거나 달래는 몸짓은 없이 법이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하는 목소리가 드높기까지 해요.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인걸요. 사람이 모여 이루어지는 마을인걸요. 사람이 모여 이루어진 마을을 아우른다는 나라인걸요.


  민주와 평화를 바라던 1980년대 어느 날 어느 곳에 몇 천이나 몇 만이라는 숫자가 모였다고 이야기하는 일도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어느 집회나 어느 모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내세우는 일도 썩 반갑지 않습니다.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천이나 만 사람쯤 모여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다문 한 사람이 수요집회를 하더라도 틀림없이 수요집회이고, 이 집회를 몇 분이나 몇 시간에 걸쳐 한다고 적바림할 까닭이 없어요. 한 사람이 모였건 열 사람이 모였건, 모인 사람들 뜻을 살피고, 모인 사람들 삶을 귀기울여 들으며, 모인 사람들 눈망울과 마음결을 함께 읽을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고정희 님 시집 《지리산의 봄》(문학과지성사,1987)을 다시 읽습니다. 오늘밤 이 시집을 다 읽고 덮을 텐데, 고정희 님이 당신 어머님한테 마지막 옷을 입히며 눈물을 적시는 이야기를 담은 시를 읽다가 “당신 칠십 평생 동안에 열린 산과 들의 숨소리가(수의를 입히며)”라는 글줄에 밑줄을 천천히 긋습니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흙을 일구던 늙은 어머니 몸과 마음에 깃들던 멧자락과 들판 내음을 맡을 수 있기에 이렇게 시를 썼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삶이 곧 시요, 시가 바로 삶이겠지요. 삶이 곧 글이며 그림이고 사진일 테지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 바로 삶일 테지요. 사랑이 시로 태어나고, 시가 사랑으로 거듭납니다. 꿈이 글이라는 옷을 입고, 글이 꿈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샘솟습니다.


  일본 전통놀이 ‘카루타’를 삶으로 받아들인 아이들이 나오는 만화책 《치하야후루》(스에츠구 유키 그림) 첫째 권을 읽으면 123쪽에, 카루타 학원 스승이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한테 “100명의 친구가 생겼다고 여기고, 사이좋게 지내라.” 하고 이야기합니다. 놀이나 경기라는 틀을 넘어, 마음으로 사귀는 좋은 벗으로 지내라는 뜻입니다. 대회에서 1등을 하거나 높은 성적을 거둘 생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날마다 웃음꽃으로 어깨동무할 벗하고 삶을 짓는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책읽기는 삶읽기이면서 사랑읽기요 꿈읽기입니다. (4345.4.25.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닐에 싸인 ‘겉속 바뀐’ 만화책

 


  만화책 《치하야후루》 셋째 권을 주문했다. 새책은 비닐에 곱게 싸였다. 즐겁게 뜯어서 읽는다. 그런데 어째 그림결이며 줄거리가 영 딴판이다. 무언가 하고 겉종이를 벗기고 보니, 겉종이는 《치하야후루》이지만 알맹이는 《미드나이트 카페》 둘째 권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배본사에서 잘못했을까. 한꺼번에 나온 여러 가지 만화책을 만들다가 이런 잘못이 생겼을까. 책을 어찌 바꾸어야 하느냐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다른 생각. 아, 이런 잘못은 출판사에 전화해 주어야 하는구나. 왜냐하면, 나 말고 다른 누군가 이렇게 엉뚱한 책을 받아볼 수 있을 테니까. 책을 보내온 곳으로도 ‘잘못된 책’인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여쭈고, 출판사로도 전화해야겠다. (4345.4.25.물.ㅎㄲㅅㄱ)

 

 

.. 아아... 며칠을 기다려야 3권을 읽을 수 있을까 ㅠ.ㅜ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2-04-25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5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고객센터 2012-05-02 12:08   좋아요 0 | URL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이미 1:1고객상담으로 문의주셔서 안내해드린것으로 조회됩니다.이후 상품평이 아닌 이용하시면서 불편하신 점은 1:1 고객상담을 이용해 주시면 됩니다.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2-05-03 06:06   좋아요 0 | URL
어찌 보면 '재미난' 경험이었기에
이런 글도 하나 쓸 수 있었구나 싶어요.
고맙습니다~ ^^
 


 봄꽃을 읽는 책

 


  나는 어릴 적에 봄꽃이라 하면 ‘개나리’와 ‘진달래’라고 배웠습니다. 아니, 내 어릴 적 인천에서 봄에 보는 꽃은 으레 개나리와 진달래로 여겼습니다. 이야기책에서는 봄을 맞이해 ‘할미꽃’이 핀다고 말했습니다. 정작 봄에 할미꽃을 본 해는 서른여덟 해를 살며 몇 차례 되지 않으나, 스무 줄 끄트머리와 서른 줄 첫머리에 할미꽃 봄을 맞이한 적 있습니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제금난 이듬해부터는 서울사람들이 말하는 봄꽃을 느끼는데, 서울사람은 으레 ‘벚꽃’으로 봄을 헤아립니다. 그렇지만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에서 벚나무를 도시 한복판에 심어 봄꽃놀이 즐기던 햇수가 얼마나 되는가요. 참말 이 나라에서 벚꽃을 구경하고 벚꽃잎 흩날리는 밑에서 사진을 찍어야 기쁜 봄맞이라 할 만할까요.


  스무 해나 서른 해쯤 자란 벚나무도 제법 우람합니다. 섬진강 둘레에서 벚꽃잔치를 열기도 하고, 나라 곳곳에서 벚꽃이 예쁜 데가 어디라는 둥 말이 많은데, 봄꽃잔치를 굳이 억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왜냐하면, 봄꽃은 한 가지 꽃나무를 길가에 잔뜩 심어서 즐기는 봉우리가 아니니까요.


  봄꽃은 온 목숨이 고운 햇살을 받아 사랑스럽게 피우는 봉우리입니다. 갖은 꽃이 차례차례 피어나며 갖은 빛깔을 뽐냅니다. 더 짙거나 더 돋보이는 봄꽃은 없습니다. 저마다 아리땁게 입은 꽃잎으로 저마다 향긋한 내음을 베풉니다. 자그마한 들꽃들이 먼저 고개를 내밉니다. 이윽고 산수유와 매화가 봉우리를 터뜨리고, 잇달아 복숭아와 살구와 능금이 봉우리를 터뜨리며, 조팝나무랑 모과나무가 봉우리를 터뜨려요.


  높고 낮은 멧등성이 숲속에 멧벚나무 드문드문 어여쁩니다. 곁에서 아까시나무도 어여쁜 빛을 드러냅니다. 멧벚이나 아까시처럼 하얗거나 발그레한 빛깔은 아니지만, ‘푸른 꽃’을 피우는 나무들 새잎 또한 어여쁩니다. 느티나무 푸른 꽃이 어여쁩니다. 단풍나무 새 잎으로 푸른 물결이 어여쁩니다. 다 다른 나무들 다 다른 잎사귀와 봉우리가 온 들판과 멧자락을 울긋불긋 알록달록 무늬짓습니다.


  날마다 천천히 새 봉우리를 터뜨리는 우리 집 뒤꼍 모과나무를 바라봅니다. 아이들을 안고 꽃 앞에 코를 대어 냄새를 맡도록 합니다. 손가락으로 꽃잎을 한 장씩 쓰다듬으며, 아이 예쁘구나, 하고 소리내어 이야기합니다. 모과꽃에 뒤이어 감꽃이 찾아올 테지요. 이제 막 돋는 새 감잎을 하나씩 따서 옆지기와 아이하고 잘근잘근 씹어서 먹습니다. 감꽃이 피면 감꽃도 몇 송이 따서 먹을 생각입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어여쁜 풀꽃과 나무꽃처럼, 아이들은 언제나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어여쁜 목숨이라고 느낍니다. 한참 바라보다가는 잎사귀를 뜯고, 나무 둘레 풀을 뜯습니다. 아이들을 한참 바라보다가는 내 어린 날 내가 했던 놀이를 하나하나 떠올려 우리 아이들하고 놀자고 생각합니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 《초원의 집》을 읽다가 살며시 덮습니다. 드넓은 들판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담아 멋스러운데, 막상 봄꽃 흐드러지는 이야기라든지, 봄풀 짙푸르다는 이야기는 얼마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은 바람소리를 이녁 글에 담아요. 햇살 소리와 냇물 소리를, 봄흙 소리를, 들짐승 소리를, 들새 소리를, 이녁 어머님과 아버님이 땀흘려 살림을 일구고 집을 지으며 밭을 돌보는 소리를 찬찬히 글로 빚어요. (4345.4.19.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빛나는 꽃송이

 


  새벽에 내린 이슬이 아직 걷히지 않은 아침나절, 아이하고 논둑길을 걷는데, 아이가 “비가 내려서 바지가 젖네.” 하고 말합니다. 아이한테 “비는 안 왔어. 이 물방울은 이슬이야.” 하고 대꾸합니다. 아이는 “이슬이야?” 하고 되묻습니다.


  문득 발걸음 멈춥니다. 이슬방울 알알이 맺힌 들풀을 들여다봅니다. 권정생 할아버지가 쓴 동화 〈하느님의 눈물〉에 나오는 토끼가 떠오릅니다. 〈하느님의 눈물〉에 나오는 토끼는 풀잎을 뜯어먹으려 하다가 풀잎이 바르르 떠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 슬프고 스스로 괴로운 나머지 밥을 먹지 못합니다. 그예 굶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하느님더러 왜 토끼 저는 이슬을 먹고 바람을 마시며 살아가도록 만들지 않았느냐고 하소연을 합니다. 풀잎 하나 건드릴 수 없다고, 아프고 슬프다 하는 토끼 하소연을 듣던 하느님도 토끼마냥 그저 눈물을 흘립니다.


  목숨을 먹는 일은 목숨을 빼앗는 일입니다. 목숨을 먹는 일은 두 목숨이 서로 하나되는 일입니다. 무엇을 먹느냐는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고 얽힙니다. 이웃을 한껏 사랑하고 지구별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밥차림과 밥먹기가 아주 다를밖에 없습니다.


  목숨을 먹는 일은 내 몸과 하나될 좋은 님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고기로 삼으려고 집짐승을 기르며 모질게 굴거나 값싼 사료와 항생제로 살점을 키운다면, 이렇게 키운 고기가 내 몸을 얼마나 살찌우거나 좋게 하겠습니까.


  더없이 마땅한데, 풀을 먹는 사람이라면 풀에 풀약이나 비료나 항생제를 칠 수 없습니다.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가 고스란히 내 몸속에 들어오잖아요. 고기를 먹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가 되어야 옳지 않을까요. 너른 들판에서 너른 햇살과 바람과 비를 먹으며 자라나는 풀이 더 맛나고 싱그러우며 좋은 밥이 되듯, 너른 들판에서 풀을 뜯고 마음껏 달리며 햇살이랑 바람을 누리는 짐승을 잡아 고기로 마련해야 비로소 ‘고기를 먹어도 내 몸을 살리는 고기’가 되리라 느껴요.


  값싸게 먹는 밥은 내 몸을 값싸게 내동댕이칩니다. 더 적은 돈으로 끼니만 얼추 때우면 그만이 될까요. 그러면, 내 품값도 더 값싸게 쳐도 될까요. 나를 일꾼으로 부리는 사람이 내 품값을 값싸게 후려쳐도 좋을까요.


  값싸게 장만해서 읽는 책은 내 마음을 살찌우지 못합니다. 내 마음을 살찌우려고 읽는 책은 값싸게 장만하는 책이 될 수 없습니다. 제값을 알맞게 치러 장만하는 책이어야 하고, 제값을 알맞게 치러 마련한 책꽂이에 즐겁게 꽂아야 합니다.


  새벽에 내린 이슬에 젖은 풀꽃을 아이랑 나란히 바라봅니다. 집으로 돌아와 우리 집 풀도감 꽃도감을 뒤지지만, 이 꽃이름을 알아내지 못합니다. 풀도감 꽃도감을 뒤져 ‘자운영’ 한 가지를 새로 압니다. 이슬 머금은 하얀 꽃송이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옆에 나란히 자라는 옅은보라 꽃송이 이름은 알아냅니다. 자운영은 이름을 알고 나서 더 즐겁게 풀잎을 뜯어서 먹습니다. 아직 봉우리 터뜨리지 않은 줄기를 꺾어 냠냠 씹어 보기도 합니다. 풀잎을 뜯고 몽우리를 따면서 스스럼없습니다. 내 몸으로 스며들어 또다른 내 모습이 될 풀이요 꽃이며 목숨이거든요.


  빛나는 꽃송이를 바라보며 빛나는 내 눈길이 되도록 합니다. 빛나는 풀잎과 몽우리를 고맙게 먹으며 빛나는 내 몸과 마음이 되도록 합니다.


  나 스스로 빛나는 생각을 품을 때에 빛나는 내 삶이 될 테지요. 나 스스로 옆지기랑 아이하고 빛나는 이야기를 나눌 때에 빛나는 내 살림을 꾸릴 테지요.


  사랑을 들려주기에 사랑이 자랍니다. 사랑을 속삭이기에 사랑이 피어납니다. 사랑을 꿈꾸기에 삶이 아름답습니다. (4345.4.17.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