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진기

 


  살아온 오늘 하루를 글로 적바림하고 사진으로 찍어 책으로 묶는다. 그러나, 책으로 담기는 글이나 사진이 되지 않더라도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 아로새긴다. 맨 먼저 내 마음속에 아로새기기 때문에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내 마음속에 아로새기는 이야기가 없다면, 글도 사진도 그림도 태어나지 않는다.


  이야기를 읽으려고 책을 읽는다. 이야기를 갈무리하려고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다. 내 마음을 읽기에 종이로 묶은 책을 애써 손에 쥐지 않아도 된다. 내 마음을 착하게 아로새기면서 참다이 보살필 때에는 글을 안 쓰고 사진을 안 찍어도 언제나 환하고 또렷하게 내 오늘 하루 이야기를 그릴 수 있다. (4345.7.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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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이라는 이름

 


  정부통계로는 2011년에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91.1퍼센트라던가 하는데, 나는 이 숫자가 그다지 놀랍다고 느끼지 않는다. 진작부터 시골사람 숫자는 아주 줄었다고 느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랍다 싶은 대목은 왜 아직도 도시사람 숫자가 91퍼센트밖에 안 되나였다. 이제 한국에서 도시사람은 99퍼센트나 99.9퍼센트라고 해도 맞지 않을까.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온 우리 식구는 그예 시골사람이다. 시골로 주소와 주민등록을 옮기고 ‘내 집’을 마련하면서 마을 어르신들 말씀을 듣는데, 또 앞으로 몇 차례 더 나가야 끝나는 민방위훈련을 나가며 이런저런 말을 듣는데, 막상 도시에서 살지만 주소와 주민등록은 시골로 둔 사람이 꽤 있다. 더욱이, 대학생으로 지내는 젊은이는 주소나 주민등록은 시골이라지만, 살아가기로는 도시에서 살아간다. 이래저래 따지면, 참말 시골에서 살아가는 ‘시골사람’은 매우 적다. 군대에 간 사내들 빼고, 부재자투표를 하는 사람은 모두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지만, 인구통계에서는 시골사람 숫자로 잡히는’ 셈 아닌가.


  우리 마을 이웃집에 여름휴가로 찾아온 분들이 있다. 그 집 아들이 고흥사람으로 고흥에서 나고 자랐으나, 이제 서울에서 혼인하고 아이 둘을 낳아 살아간다. 올해에 경기도 의정부인가 집을 옮겨 지내신다고 들었는데, 이제 이분들은 시골사람 아닌 도시사람이다. 명절이나 휴가나 제사 때를 맞이해 시골로 찾아오지만, 말 그대로 ‘시골 나들이’를 할 뿐, 시골에서 일을 하거나 살지 않는다. 이 집 첫째 아이하고 우리 집 첫째 아이랑 동갑이라, 둘을 내 자전거수레에 함께 태우고 면소재지까지 한 바퀴 도는데, 수레에 앉아 둘이 조잘거리다가 이웃집 아이가 문득 읊는 ‘시골’이라는 낱말이 퍽 낯설다고 느낀다. 그래, 이 아이는 도시 아이야. 우리 아이는 시골 아이야.


  그런데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군이나 읍이나 면이라 해서 모두 시골이 되지는 않는다고 느낀다. 군에서 읍내나 면내는 도시하고 똑같다. 읍내와 면내는 도시를 닮으려 한다. 읍내와 면내에서 일하는 분들은 도시에서 일하는 모습하고 똑같다. 곧, 시골로 치는 군·읍·면이라 하지만, 흙을 일구거나 고기를 잡는 시골마을에 깃들어 살아가지 않는다면 ‘시골사람’이라 할 수 없겠구나 싶다. 읍내 피자집이나 통닭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시골사람인가? 면내 동사무소 아저씨와 면내 우체국 아줌마는 시골사람인가? 읍내 고등학교 교사는 시골사람인가? 면내 초등학교 교사는 시골사람인가?


  99.9퍼센트, 또는 99.99퍼센트는 도시나 ‘도시가 된 땅’에서 살아간달 수 있다. 도시나 ‘도시가 된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도시사람’, 곧 ‘시민’이라 할 수 있다.


  도시사람과 시골사람을 나란히 놓고서, 누가 좋거나 누가 아름답다거나 하며 가리거나 따질 수 없다. 다만, 오늘날 이 나라 목소리를 곰곰이 살피자면, 99.9퍼센트나 99.99퍼센트는 참말 ‘도시사람 목소리’일 뿐이라고 느낀다. 아니, 99.999퍼센트나 99.9999퍼센트는 온통 ‘도시사람 목소리’로 가득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바야흐로 ‘시골’이라는 이름은 으레 등 굽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떠올리는 모습이 되고 보니, 우리 식구 같은 시골사람으로서는 ‘시골’이라는 낱말을 누군가 입에 올리면 귀가 참 간지럽다. 시골이 뭔데. (4345.7.1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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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부는 들판

 


  바람 부는 들판 사이를 자전거로 달린다. 바람은 논자락 볏포기를 이리저리 눕힌다. 바람은 논둑 들풀을 이리저리 눕힌다. 볏포기와 들풀은 이리저리 눕지만, 바람이 잠들면 다시 꼿꼿하게 선다. 바람이 오래오래 불면 볏포기와 들풀은 그저 누워 버리는구나 싶지만, 바람이 잠들고 햇살이 방긋거리면 볏포기와 들풀은 모두 해를 바라보며 씩씩하게 선다.


  자전거를 세운다. 아이들을 불러 들판을 함께 바라본다. 볏포기를 눕히는 바람을 느낀다. 아이들은 바람과 들판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서로 고개를 맞대고 사르르 잠든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은 바람을 시원하게 쐰다. 한동안 이대로 있다가 다시 자전거 발판을 씩씩하게 밟으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간다. (4345.7.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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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줄과 제비

 


  어미 제비가 빨래줄에 앉는다. 새끼들을 한참 먹여 키울 적에도 빨래줄에 앉아 둥지를 바라보고, 새끼들을 모두 키워 스스로 날갯짓하며 날아다니도록 이끈 뒤에도 곧잘 옛 둥지 있는 집으로 찾아와 빨래줄에 앉는다. 새끼 제비는 저희가 태어난 둥지로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어미 제비만큼은 저희 새끼를 낳아 키운 둥지 있는 곳으로 날마다 한두 차례쯤 찾아와 빨래줄이나 전기줄에 앉아 한동안 옛 둥지를 바라본다.


  둘째 아이 기저귀를 넌 빨래줄 한복판에 어미 제비가 앉는다. 마침 기저귀 위에 앉는다. 제비로서는 기저귀인지 무언지 알 턱이 없을 수 있고, 굳이 알 까닭이 없겠지. 처음에는 나한테 등을 보이며 앉더니, 이내 머리를 보이며 앉는다. 이러다가 다시 등을 보이며 돌려 앉는다.


  맑은 햇살과 맑은 날갯짓과 맑은 빨래가 얼크러진다. 내 눈을 맑게 틔우고 내 마음을 맑게 다스린다. 나한테는 제비와 같은 날개가 없어 제비와 같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으나, 제비를 바라보면서 제비가 날아다니며 바라보았을 이 땅 모습을 가만히 머리로 그린다. (4345.7.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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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없다

 


  1
  신문사와 방송사와 출판사는 거의 몽땅 서울에 몰린다. 이들 서울에 거의 몽땅 몰린 신문사와 방송사와 출판사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서울이나 서울 언저리에서 찾아서 채운다. 서울 바깥으로 이야기를 찾아 나들이를 다닌다거나 서울하고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이야기를 느끼려는 마실을 다니는 일은 몹시 드물다. 때때로 비행기를 타고 머나먼 나라밖으로 다니기는 하지만, 정작 한국땅 골골샅샅, 아니 한국땅 이웃마을을 즐거이 찾아다니는 일이 매우 드물다. 이웃마을은 맛집이나 멋집이 아니다. 이웃마을은 관광지나 여행지가 아니다. 이웃마을은 사랑스레 꿈꾸는 사람들 좋은 터전이다.


  생각해 본다. 신문사가 서울 아닌 충청도 옥천에 있다면, 방송사가 서울 아닌 전라도 구례에 있다면, 출판사가 서울 아닌 강원도 고성에 있다면, 이들 신문사와 방송사와 출판사는 이야기를 찾아 어디로 다닐까. 이들 신문사와 방송사와 출판사 일꾼은 어떤 이웃을 사귀면서 어떤 마음을 나누려 할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린 서울에서 넘쳐나는 이야기는 어떤 꿈이나 사랑을 보여준다 할 만한가.

 


  2
  신문사 기자나 방송사 기자는 국회의사당 같은 데에서 하루 내내 정치꾼을 지켜보곤 한다. 신문이나 방송을 채우는 이야기를 정치꾼 말 한 마디로 담곤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신문사 기자 가운데 시골마을 모내기 이야기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만히 지켜보거나 함께하면서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담은 적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시골마을 김매기나 가을걷이 이야기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함께하면서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실은 적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기자들은 법원에서 무슨 이야기를 찾으려 할까. 기자들은 큰회사 대표한테서 무슨 이야기를 들으려 할까. 기자들은 주식시세표와 방송편성표에서 어떤 이야기를 얻으려 할까. 기자들은 경기장과 길거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느끼려 할까.


  나무한테서 이야기를 듣는 기자는 나올 수 없는가. 풀이랑 이야기를 주고받는 기자는 태어날 수 없는가. 꽃하고 무지개하고 구름하고 바다하고 냇물하고 벌레하고 들새하고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기자는 있을 수 없는가.

 


  3
  서울에는 사람이 많다. 서울에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많고 어떤 이야기가 많을까. 서울에 많은 사람과 이야기에는 어떤 사랑이 어떤 꿈결과 숨결로 있을까. 서울에는 무엇이 있을까. 숲이 없는 서울에는 무엇이 있을까. 들이 없는 서울에는, 멧자락과 바다와 구름과 별이 없는 서울에는, 해와 무지개와 새와 개구리가 없는 서울에는 무엇이 있을까. (4345.7.1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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