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바라보기 2

 


  새끼 제비가 새벽부터 일찌감치 날갯짓을 익히려 한다. 한 번은 날갯짓을 익히다가 그만, 상자에 쏙 들어갔다. 이런저런 짐을 치우다가 종이상자를 몇 섬돌 둘레에 뚜껑 열린 채 두었는데, 새끼 제비 하나가 종이상자에 빠진 채 헤어나오지 못한다. 어째 거기 들어갔니 하고 꺼내 주려 할 무렵 새끼 제비는 서툰 날갯짓 하며 겨우 빠져나온다. 오늘은 샤시문틀에 엉성하게 앉아 어미 제비를 짹짹 불러댄다. 하도 시끄럽게 울어대기에 곁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내가 어미 제비라 하더라도 이런 엉성한 날갯짓에 앉음새라 한다면 무척 싫을 듯하다. 새끼 제비는 새끼 제비대로 어리벙벙한 채 엉성하게 앉고, 어미 제비는 얼른 제대로 앉거나 날아올라 다른 데에 앉으라며 둘레에서 날며 지저귄다. 새끼 제비는 한참 멀뚱멀뚱 고개만 돌리다가 겨우 서툰 날갯짓을 하며 빨랫대에 앉는다.


  그런데 6월 11일 이날까지 새끼 제비 네 마리 가운데 한 마리만 날갯짓을 익히고, 다른 세 마리는 둥지에 앉아 목만 내밀고 구경을 한다. 한 마리만 제대로 가르치려는 뜻일까. 한 마리씩 차근차근 가르치는 매무새일까. 암수 어미 두 제비가 새끼 제비 한 마리를 사이에 두고 이리 날고 저리 날면서 날갯짓을 몸소 보여주면서 가르친다. 앉음새와 깃털핥기도 먼저 보여주며 가르친다. 이 새끼 제비들은 이듬해부터 저희 어미 제비처럼 날렵한 몸매가 되고 익숙한 몸짓이 되어 온 하늘을 싱싱 날아다니겠지. (4345.6.13.물.ㅎㄲㅅㄱ)

 

 

 

 

 

 

 

 

 

 

 

 

 

(곧이어 제비 바라본 셋째와 넷째 이야기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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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6-13 23:22   좋아요 0 | URL
헉... 내가 찍어 올리면서 사진을 다시 보다가...
다섯째 사진에서 '암놈 어미 제비'가
빨랫대에서 어디에 앉았나 하고 보니
아주... 놀랍군요 @.@

우째 조 끈 꼬투리 끝자락에 사뿐히 앉을 수 있담!
 


 책을 왜 읽어야 할까

 


  둘째 아이는 일찍 일어난다. 매우 일찍 일어난다. 첫째 아이를 어떻게 돌보며 살았는가 더듬으면, 첫째 아이는 둘째보다 한 시간 반 즈음 더 일찍 일어났다. 첫째 아이와 살던 곳은 인천 골목집이었고, 이때에는 내가 새벽에 일어나 셈틀을 켜고 글을 쓸라치면 셈틀 불빛이 방 한쪽을 비추어 아이가 일찍 깰밖에 없었으리라 느낀다. 둘째를 낳고 살아가는 시골집은 자그맣지만 칸이 알맞게 나뉘었기에, 옆방에서 셈틀을 켜면 불빛이 조금만 샌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법이라 하지 않는가. 게다가, 일찍 일어나는 둘째는 아주 고맙게 새벽 여섯 시 반이든 아침 일곱 시나 일곱 시 반이든 똥을 한 차례 푸지게 눈다. 이러고 나서 두 시간쯤 뒤 거듭 똥을 푸지게 눈다. 아이 둘과 살아가며 다섯 해째 아침마다 아이들 똥치우기를 하고 똥빨래를 하면서 보낸다. 내 손은 똥을 치우고 빨래하는 손이요, 이 똥내 나는 손으로 글을 쓴다.


  어제 홀로 순천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다녀왔다. 두 아이를 데리고 가려 했으나 옆지기가 둘 다 놓고 가라 했다. 첫째 아이라도 데려가 책방 아이하고 놀게 해도 좋으리라 생각했지만, 두 아이를 떼어놓지 말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첫째 아이를 데려가고 싶었으나, 아침부터 밥을 안 먹고 개구지게 놀며 낮밥조차 제대로 안 먹으려 해서, 집에서 밥을 먹으라 하고 혼자 나왔다. 이리하여 나는 고흥버스역부터 시외버스를 거쳐 책방에 닿고, 다시 시외버스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주 느긋하게 책을 읽는다. 버스역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책 한 권을 읽고, 시외버스로 나가는 길에 책 한 권을 읽으며,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책 한 권을 읽는다. 헌책방에서는 책을 백 권 이백 권 삼백 권 …… 남짓 살피다가는 예순 권 즈음 장만했다.


  아이 둘을 떼어놓고 혼자 나들이를 한 적이 언제였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들과 다니면 아이들 바라보고 챙기느라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다. 아이들과 버스를 타고 돌아다닐 때에 책을 손에 쥘 수 없다. 아이 오줌기저귀를 갈고 똥바지를 빨며 책을 손에 쥘 수 없다. 아이들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책을 손에 쥘 수 없다. 내 손에 빗자루를 들 때에 책을 나란히 들 수 없다. 이불을 털고 말리면서 책을 손에 쥐지 못한다. 아이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진 몇 장 겨우 찍지만, 책을 펼치지 못한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그림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아이들과 살아가며 책을 한 권이나마 기쁘게 펼칠 수 있었을까. 첫째 아이를 불러, 또는 둘째 아이를 무릎에 앉혀, 그림책을 펼친다.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혀 준다고 말하지만, 막상 내가 읽고 싶으니까 그림책을 장만해서 아이들한테 읽힌다. 첫째 아이는 스스로 그림책 하나 골라서 읽기도 한다. 나는 나대로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찬찬히 넘기며 즐긴다.


  그림책을 덮고 아이가 눈 오줌을 치운다. 빨래를 걷고 갠다.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이랑 살을 부비며 논다. 사람들은 책을 왜 읽어야 할까 생각한다. 사람들은 책을 읽어서 무엇이 어떻게 좋아질까 헤아려 본다. 사람들은 책을 보배로 여기는가, 재산으로 삼는가, 자랑거리로 드러내는가, 좋은 벗으로 사귀는가, 반가운 스승으로 모시는가, 재미난 이야기로 느끼는가, 한 번 읽고 덮으면 끝이라 생각하는가.


  책을 책답게 사랑할 수 있으면, 이웃을 이웃답게 사랑할 수 있겠지. 그런데, 사람들이 먹는 쌀은 누가 지었을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뽑을 때에 누구한테 표를 준 흙일꾼’이 지은 쌀을 ‘어떤 성향과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사다가 먹는가. 능금 한 알을 사다 먹는 사람 가운데 이 대목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숲길을 거닐며 나무 한 그루 누가 심었는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마른오징어를 뜯어먹으며, 이 오징어를 손질한 사람 정치빛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며 전철을 타면서, 이 탈거리를 모는 일꾼은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하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까.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이 아이가 앞으로 왼쪽이 될는지 오른쪽이 될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젖을 먹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정치를 하건 문학을 하건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즐겁게 걸어갈 뿐이다. 책은 무엇이고, 책에 담는 생각은 무엇이며, 책으로 빚는 글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책을 왜 읽어야 하고, 책을 읽는 사람은 무엇을 얻으면서 삶을 누리는가.


  두 아이가 서로 얼크러지며 논다. 한놈이 이리 달리면 한놈이 이리 좇는다. 한놈이 이리 뒹굴면 한놈이 이리 뒹군다. 한놈이 흙을 파헤치며 까르르 웃으면 한놈 또한 흙을 파헤치며 깍깍 웃는다. 가장 좋은 책은 내 곁에 있다. 가장 사랑스러운 책은 내 가슴에 품으면서 산다. (4345.6.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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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quoi28 2012-06-13 20:00   좋아요 0 | URL
어릴 때
책 읽어주는 사람 없이 자랐지요
어른이 되어서
내 아이한테 책 읽어주는 엄마가 되었지요
지금은 학교에서 故事媽媽 되어
남의 아이들에게 ppt로 책 읽어주고 있어요
그건, 제가 그림책을 좋아하니까 즐겁게 보여주죠^^

숲노래 2012-06-13 20:07   좋아요 0 | URL
종이로 된 책을 읽어 주는 사람은 없었을는지 모르나,
삶으로 사랑을 들려준 분들은 많았으리라 믿어요.
이 힘이 있기에 오늘처럼 살아갈 수 있겠지요..
 


 시외버스

 


  이리저리 흔들리던 시외버스인데, 갑자기 흔들림이 줄어든다. 순천에서 고흥으로 들어가는 저녁 일곱 시 반 시외버스에는 모두 다섯 사람이 탔는데, 저녁 여덟 시 즈음 되어도 아직 훤한 햇살이 버스 창가로 스며드는 이즈음, 시외버스 모는 일꾼이 등불을 켠다. 시외버스 안이 더 환하게 밝아진다. 아, 시외버스 일꾼인 아저씨는 당신 아들(또는 막내동생)과 같은 아저씨인 내가 시외버스 창가에 앉아 저녁빛에 기대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을 뒷거울로 보고는 내 눈이 다칠까 근심하셨는가 보다(나는 마흔에 가까운 아저씨이고, 시외버스 일꾼은 예순에 가까운 아저씨이다). 고마운 손길, 고마운 마음, 고마운 생각이 천천히 감돈다. 나는 그만 볼펜을 내려놓고 책은 무릎에 올려놓은 채 머리를 걸상에 폭 기댄다. 살작 눈을 감고 쉬기로 한다. 그러나 이윽고 눈을 뜨고 다시 책을 읽는다. 조용히 알맞게 달리는 시외버스 밝은 불빛에 기대어 시집 한 권을 즐겁게 읽는다. (4345.6.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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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비 바라보기 1

 


  빨래를 널다가 제비집을 바라본다. 어미 제비가 날아들어 새끼 제비한테 먹이를 주는구나 싶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데, 어, 이번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꽁지를 뒤로 하며 둥지 밖으로 궁디를 내민 새끼 제비 똥구멍을 부리로 콕콕 찍더니 똥을 잡아당겨 뽑는다. 고양이나 개는 어린 고양이나 어린 개 똥구멍을 핥으며 똥을 누도록 돕는데, 어미 새는 새끼 새가 똥을 잘 눌 수 있도록 잡아당겨 주기도 하는구나. 아직 날갯짓을 못 하고, 조그마한 둥지에 여럿이 옹크려 지내기만 하니까, 아기들 똥누기를 이처럼 거들어야 하는구나. 곰곰이 생각하면, 사람도 어버이가 아기들 똥오줌 누기를 옆에서 거들고, 하나하나 치운다. 아기가 스스로 서며 똥오줌을 가리기 앞서 어버이가 아기들 똥오줌을 신나게 치운다. 똥오줌 잘 누라고 배를 쓰다듬기도 한다. (4345.6.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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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나물꽃 먹기

 


  아이들 외할아버지가 잔뜩 뜯어다 주신 돈나물은 노란 꽃송이가 함초롬히 달렸다. 이렇게 꽃송이 달린 녀석을 먹어도 좋을까 하고 살짝 생각하다가는, 올봄에 자운영꽃을 자운영잎과 함께 맛나게 먹던 일을 떠올린다. 광대나물도 광대나물잎이나 광대나물줄기만 먹지 않고 광대나물꽃까지 나란히 먹었다. 그러니까, 돈나물잎 또한 돈나물꽃이랑 함께 먹으면 될 테지.


  여러 푸성귀를 잘게 썬다. 넓은 통에 담아 버무린다. 작은 접시에 담는다. 아이도 먹고 어른도 먹는다. 풀을 먹고 꽃을 먹는다. 풀을 먹는 내 몸은 풀빛이 되고, 꽃을 먹는 내 마음은 꽃노래가 된다. (4345.6.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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