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전기세 (고흥 화력발전소를 반대하며)

 


  포스코 회사가 꾸리는 광양제철소와 포항제철소에서 쓰는 전기 가운데 70%를 스스로 만들지만, 나머지 30% 전기세로 낸다고 합니다. 포스코에서 바깥으로 널리 밝히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고 하지만, 지난 2011년에 포스코가 전기세로 쓴 돈은 2700억 원이라느니 5200억 원이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전력에서 포스코한테 ‘원가’로 전기를 대 주었기에 퍽 값싸게(?) 전기를 썼고, 제대로 전기세를 셈했으면 6000억 원은 내야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곧 전기세가 다시 오른다 해서 포스코는 330억 원인지 수백 억 원인지를 전기세로 더 낸다고 합니다.


  나는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네 식구 살림을 꾸리기는 하는데, 한 달 전기값으로 1만 원을 넘긴 적이 없습니다. 나 혼자 살던 때에는 전기값을 두 달이나 석 달에 한 번씩 내곤 했습니다. 나 혼자 살던 때에는 ‘고지서를 낼 만큼 전기를 쓰지 않’아서 두 달이나 석 달에 한 번 고지서가 나왔어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네 식구 전기값은 참 적습니다. 우리 이웃집 또한 전기를 참 적게 씁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전기를 펑펑 쓸 사람은 없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기가 모자라다며 아우성을 칠 때에, ‘도시에 발전소를 새로 지어야겠다’고 말하는 일이란 없어요. 언제나 바람 맑고 햇볕 좋고 물 시원한 시골에 발전소를 짓겠다 합니다. 시골에 발전소를 짓고는 우람한 송전탑을 길디길게 도시까지 잇겠다고 해요. 발전소와 송전탑이 시골마을을 어떻게 어지럽히고 얼마나 더럽히는가를 헤아리는 이가 드물어요.


  전기를 많이 써서 전기가 모자란 데는 도시인데, 왜 시골에 발전소를 지으려 할까요. 시골이 땅값이 싸고 발전소 반대할 사람 숫자가 적어서? 시골 어르신들은 땅 팔아 아이들한테 물려줄 생각을 하니까, 시골에 땅 사들여 발전소 짓기 좋아서?


  전기가 모자라다면 온 나라에 구석구석 있는 고속도로나 고속철도 지붕을 햇볕전지판으로 대고는 전기를 얻어도 될 텐데, 막상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찻길 지붕을 햇볕전지판으로 마련하면 도시에서 쓸 전기를 꽤 넉넉히 얻을 뿐 아니라, 도시 건물을 덥히거나 식힐 기운을 얻을 수 있겠지만, 정작 이렇게 생각을 하며 시설을 마련하는 일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지하자원만 쓰려 해요. 오직 시골에 발전소를 지어 시골을 망가뜨리려 해요.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아가며 바보가 돼요. 사람들은 도시에서 일을 하며 사랑을 스스로 버려요. (4345.6.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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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6-05 02:05   좋아요 0 | URL
국내 전기료가 싸니 전기값 귀한줄을 모르고 펑펑 쓰는것이 사실인것 같습니다.어디에 쓰인 말처럼 전기는 국산이지만 그 원재료는 수입산이니 아껴야 되는데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자꾸 까먹는것 같습니다.

숲노래 2012-06-05 07:28   좋아요 0 | URL
전기를 만들며 자연과 시골을 온통 망가뜨릴 뿐 아니라, 도시에서는 도시 터전을 마구 허무는 모습을 본다면, '값이 싸다'고 할 수 없어요.

어쩌면, '체감 온도'로는 싸다고 여기기에, 지구별을 마구 망가뜨리는 전기일 수 있겠지요

책읽는나무 2012-06-05 07:32   좋아요 0 | URL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안그래도 시골엔 항상 사람보다도 그러한 것들로 넘쳐나는 것같습니다.
무언가를 짓게 해준다면 보상을 해주겠다라고 하지만..ㅠ
전기를 아껴써야겠다는 생각을 또 해보네요.
전 한 달 전기세를 3만원을 넘기지말자라고 생활하고 있는데,님은 만 원을 넘기지 않으신다니...ㅡ.ㅡ;;
갑자기 진주님의 전기세에 관한 페이퍼가 생각나네요.
나부터 전기를 좀 더아껴야 할 듯.^^

숲노래 2012-06-05 07:58   좋아요 0 | URL
전기를 아끼는 일은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집에서 어떤 물건을 어떻게 건사하느냐를 살펴볼 수 있으면 돼요.

전기 아끼는 일에 앞서,
'전자파 문제'를 잘 헤아려 보셔요.

전자파가 사람한테 매우 나쁘거든요...
 


 책으로 보는 눈 183 : 책에 담는 이야기

 

 

  스웨덴 할머니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남긴 보배와 같은 이야기책 가운데 《그리운 순난앵》(열린어린이,2010)이 있습니다. 순난앵 이야기가 애틋해 여러 차례 읽었고, 따로 그림책으로 나온 판은 아이한테 곧잘 읽어 주었습니다. 순난앵마을 작은 아이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그마한 아이가 “오빠, 내 발이 그러는데, 보드라운 모래랑 푹신푹신한 잔디가 너무 좋대(26쪽).” 하고 읊는 대목이 있습니다. 나는 이 글월에 밑줄을 천천히 긋고는 오래도록 곱씹습니다. 나도 맨발로 보드라운 흙을 밟고 보드라운 가랑잎을 밟을 때에 참말 좋습니다. 내 발가락과 발바닥이 좋아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일본사람 콘노 키타 님이 그리는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대원씨아이,2012) 셋째 권을 읽다가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깜짝 놀랄 만큼 많은 걸 깨닫게 돼요. 난 사소한 일에도 짜증내고 화내고 언성을 높이는 아직 부족하고 못난 엄마지만, 마음은 언제까지나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위로 뻗어 나가고 싶어요(58쪽).” 하고 흐르는 대목을 두고두고 되읽습니다. 만화책이라 차마 밑줄을 긋지는 못합니다. 그저 곰곰이 되씹습니다. 나 또한 우리 아이들을 날마다 바라보면서 날마다 깜짝 놀랍니다. 맑은 넋을 헤아리고 고운 꿈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꾸로 아이들이 어버이인 나를 바라볼 때에 어떤 넋과 꿈을 돌아볼 만한가 하고 되뇝니다. 나 스스로 고운 넋과 맑은 꿈으로 살아가면서 아이들 또한 즐겁게 좋은 이야기 물려받을 수 있어야 기쁜 하루가 되리라 느낍니다.


  책에 담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내가 아이들하고 누리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아로새기는 내 좋은 이웃들 삶을 생각합니다. 내가 아이들하고 늘 어울리며 새롭게 되새기는 삶을 생각합니다.


  어떤 책을 읽을 때에 기쁠까요. 어떤 삶을 일굴 때에 기쁠까요. 어떤 책을 장만해서 읽고 책꽂이에 곱게 꽂으면 즐거울까요. 어떤 삶을 누리면서 아이들과 이야기꽃 피울 때에 즐거울까요.


  모든 길은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부터 ‘책에 길이 있다’고 말했겠지요. 내 마음속에 길이 있기에, 책을 읽는 동안 ‘아하, 오늘 내 삶이 바로 내가 찾던 길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그래, 오늘 내가 즐겁게 누리는 삶이 내가 찾던 길이네’ 하고 알아챕니다.


  마음으로 읽을 때에 비로소 책입니다. 마음으로 읽을 때에 비로소 삶입니다. 사랑도 믿음도 꿈도 이야기도 모두 마음으로 읽습니다. 책이든 신문이든 지식을 얻자며 읽을 수 없습니다. 붙잡는다 싶으면 가루처럼 바스라지는 지식은 붙잡을 수 없거니와, 어떠한 책도 지식을 담지 못합니다. 지식으로 보이는 헛것을 담으려 할 뿐입니다. 어떠한 책도 사랑을 담습니다. 오래도록 따숩게 돌아보면서 껴안을 사랑을 담습니다. 글을 쓰는 이부터 스스로 즐겁고, 글을 읽는 이까지 모두 즐거울, 가장 빛나는 사랑을 담는 책입니다. 애써 책을 읽으면서 내 씩씩하고 어엿한 길을 찾고 싶은 사람이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내 하루를 씩씩하고 어엿하게 돌보면서 아끼고픈 사랑을 빛내는 사람입니다. (4345.6.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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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이 쓴 글을 읽기

 


  남이 쓴 글을 읽는 일이란, 남이 살아가는 나날을 읽는 일입니다. 글읽기란 언제나 삶읽기입니다. 왜냐하면, 글쓰기란 늘 삶쓰기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읽는 ‘남이 쓴 글’은 ‘남이 스스로 살아낸 나날을 쓴 글’이에요. 나는 언제나 ‘내 둘레 누군가 살아낸 나날에 하나하나 아로새겨진 글’을 읽습니다.


  나는 글을 읽으며 삶을 헤아립니다. 내 둘레 좋은 벗님들이 즐겁게 살아가기를 꿈꾸며 글을 읽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는 좋은 사랑을 글에 담뿍 싣기를 바랍니다.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으며 나 또한 기쁩니다. 힘겨이 살아내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다가 나 또한 기운이 빠집니다. 때때로 내 작은 손길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으면, 댓글이나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이책을 손에 쥐어 읽는다면, 나로서는 그분한테 아무런 쪽글을 남기지 못해요. 이리하여, 내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느낌글 쓰기입니다. 어느 누리책방 한 군데에 꾸준하게 느낌글을 올린다면, ‘내가 읽은 책을 쓴 아무개’ 님이 내 느낌글을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그분 책을 읽으며 받은 좋은 느낌, 서운한 느낌, 기쁜 느낌, 아쉬운 느낌, 모든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밝힙니다. 서로 좋은 지구별 삶을 함께 누리자는 생각을 나누려 합니다.

 

 ○ ○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습니다. 내가 쓴 글을 읽는 어느 누군가라 한다면 그이는 ‘내 겉모습’이 아니라 ‘내 삶’을 읽는 셈입니다. 내가 쓴 글에서 내 겉모습만 훑으려 한다면, ‘내 글 읽는 이’는 내 삶을 살피지 못하고 맙니다. 삶을 읽지 못하고 말투에만 목을 매달거나 말꼬리만 붙잡는다면, 서로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나는 어느 누가 쓴 글을 읽건, 그이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틀린 대목’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이가 ‘잘못되거나 어그러지거나 어긋나거나 엉뚱한 말투로 쓴 대목’을 굳이 바로잡아 주지 않습니다. 어느 대목 하나 좀 지나쳐서, 이 하나만은 잘 헤아리기를 바랄 때에만 슬쩍 밝힐 뿐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삶’을 즐거이 이야기하면서 ‘넋’을 북돋우고 싶거든요. 글 한 줄로 서로 좋은 꿈과 사랑을 주고받고 싶거든요.


  나는 내가 쓴 글을 나 스스로 되새겨 읽습니다. 내 삶을 찬찬히 되새깁니다. 나는 남이 쓴 글을 내 삶에 맞추어 아로새겨 읽습니다. 멀리 있어도 한마음입니다. 가까이 있으면 말없이 마주보아도 좋습니다. 오늘도 새벽 다섯 시 제비 노랫소리를 들으며 새 하루 맞이합니다. 한결같이 기쁘며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4345.6.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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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제비 주둥이

 


  어린 새끼들이 어미한테서 먹이를 받아먹을 때에 으레 째액 째액 소리를 지른다고 생각했다. 왜일까.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라 하면서 새들 한삶을 보여줄 때에 으레 새끼들이 입을 쩍 벌리며 째액 째액 소리를 내는 모습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일까.


  우리 집 처마 밑에서 살아가는 제비 식구는 퍽 조용하다. 아니, 어미들은 새끼들한테 먹이를 물어다 나르느라 부산을 떨며 새벽 다섯 시 무렵이면 일어나 신나게 노래하는데, 새끼들 노래하는 소리는 좀처럼 못 듣는다. 암수 제비가 날마다 바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모습을 보자면 틀림없이 새끼가 있을 듯한데, 어인 일인지 새끼들 소리는 잘 안 들려 궁금하게 여긴 지 퍽 되었다. 이러던 엊그제 여느 날과 똑같이 제비집을 올려다보며 사진 몇 장을 찍었는데, 이듬날 새벽 사진을 갈무리하며 크게 키워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란다. 나도 모르는 사이, 새끼 주둥이가 사진에 담겼다.


  고흥 읍내에 나가면, 버스역 어귀에 제비집이 있다. 읍내 아기옷 파는 가게 해가림천 안쪽에도 제비집이 있다. 읍내에도 곳곳에 제비집이 있다. 시골마을은 어디에나 제비집이 있다. 우리 마을 어느 집에는 제비집이 두셋 있는 데도 있다. 이 가운데 읍내 버스역 제비집은 안쪽 살림이 훤히 보인다. 읍내 버스역 제비집에는 너덧 마리쯤 되는 새끼 제비가 주둥이를 쩍쩍 벌리며 어미를 기다린다. 어미는 쉴새없이 먹이를 물어다 나른다. 읍내는 도시와 같은 곳이라 먹이가 어디에 있을까 걱정할 만하지만, 고흥 읍내에서는 제비 날갯짓이라 한다면 1분만 날아도 들판이나 멧등성이가 나오고 냇물도 있으니, 어렵잖이 먹이를 물어다 나를 만하리라 생각한다.


  그나저나, 읍내 버스역에서 본 제비집 새끼들은 ‘째액 째액 꺄악 꺄악’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그저 입만 쩍쩍 벌리며 먹이 넣어 주기를 기다리고 바란다.


  날마다 새삼스레 들여다보고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새끼 제비들은 날마다 무럭무럭 자랄 테고, 이윽고 날갯짓 익힌다며 새삼스레 부산을 떨 테지. 날갯짓을 익히다가 섬돌에 톡 떨어지는 녀석도 있을까. 자그마한 둥지에서 날갯짓 익히는 나날은 얼마쯤 보낼까. 제법 자란 새끼 제비는 어떤 모습일까. 하나하나 기다리고 꿈꾼다. 이 모습 저 모습 즐겁게 올려다보고 바라보며 쳐다본다. 우리 집에서 태어난 새끼 제비는 가을날 더 따순 남쪽 나라로 힘차게 날아갈 수 있겠지. 그리고 다음해에 즐겁게 우리 집에 찾아올 수 있겠지. (4345.5.3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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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5-30 10:36   좋아요 0 | URL
저도 얼마 전에 제비랑 제비집을 봤어요. 입을 크게 벌리는 새끼 제비도 보고. 제비는 집을 참 잘 지어요~

숲노래 2012-05-31 00:00   좋아요 0 | URL
오오~ 그렇군요~
제비를 바라보는 사람한테는
한 해 즐거운 사랑이
가득하리라 믿어요~

2012-05-30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2-05-31 00:03   좋아요 0 | URL
어떤 말을 누군가한테 할 때에는
그 말은 바로 '나한테 하는 말'이라고 느껴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하지만,
가는 말은 고스란히 나한테 오는 말이에요.

그래서 남을 아끼려고 애쓰거나
남을 사랑하는 말을 하며 살아간다면
곧바로 나를 아끼려고 애쓰거나
나를 사랑하는 삶이라고 느껴요.

남을 비아냥거리거나 남을 해코지하는 말이라면
바로 나 스스로를 비아냥거리거나 해코지하는 셈이 될 테지요.

익명으로 쓰는 글이란
곧 어떤 줄거리를 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스스로 떳떳하고 아름답다면
스스로를 떳떳하고 아름다이 밝히는
줄거리 담는 글을 남기겠지요.

익명이거나 아니거나는 대수롭지 않아요.
왜냐하면, '내가 그 사람 이름을 모른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그 사람 스스로를 알잖아요.

아무쪼록, 언제나 좋은 삶 마음껏 누리는
좋은 사랑을
사람들 누구나 기쁘게 주고받을 수 있기를 빌어요.
 

 

 뻐꾸기 노랫소리 들어

 


  이웃집 마늘밭 일손을 한창 거들다가 살짝 쉴 무렵, 다섯 살 아이가 마늘밭 한복판에 가만히 서서 두 손을 귀에 대고 귀를 기울입니다. 우리 집에 있을 때보다 뻐꾸기 소리가 한결 잘 들립니다. 이웃집 마늘밭 건너 건너가 우리 집인데, 이웃집 마늘밭은 우리 집보다 건너 건너 멧등성이와 가깝기 때문일까요.


  다섯 살 아이는 뻐꾸기 노랫소리를 ‘꺼꾹 꺼꾹’으로 듣습니다. “꺼꾹 꺼꾹 노래해요.” “저쪽 산에 있어.” “어디?” “저어쪽.” “왜 저쪽에 있어요.” “뻐꾸기는 저쪽 산에 집이 있으니까.”


  마늘밭 가장자리에 두었던 사진기를 들어 사진 몇 장 찍는다. 마늘밭 일을 거들다 보면 먼지가 많이 일어 사진기에도 먼지가 많이 스며든다. 천으로 덮었으나, 이렇게 한들 먼지를 꽤 먹겠지. 할머니들은 마늘밭 먼지가 대단해 당신들이 긴옷을 입고 수건을 둘러도 집에 가서 씻을 때에 새까맣다고 말씀한다. 마늘밭에 아이 데려오지 말라 말씀한다. 아이 손에 먼지나 흙 묻는다고 손사래친다.


  그렇지만, 아이는 집에서든 밖에서든 마음껏 흙을 만지고 뒹군다. 마늘밭 먼지라고 대수롭지 않다. 옷은 갈아입히면 되고 손발과 몸은 씻으면 된다. 아이는 음성 할머니가 새로 마련해 준 흰치마를 팔랑팔랑 나부끼며 마늘밭을 이리 달리고 저리 뛰며 논다. 이동안 뻐꾸기는 꾸준히 노래하며 땀을 식혀 준다. (4345.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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