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울은 넓고 큽니다. 그러나 시골 논밭과 멧자락과 냇물과 갯벌과 바다는 아주 넓고 매우 큽니다. 서울이나 수도권하고 견줄 수 없이 크고 넓습니다. 이 나라 절반 넘는 사람이 서울과 서울 둘레에서 살아간다 할 만큼 서울과 서울 둘레는 넓고 크기는 한데, 이 나라를 두루 헤아릴 때에는 참으로 좁다란 데에서 복닥거리는 셈입니다. 드넓은 시골이 있기에 좁다란 서울과 서울 둘레에서 돈벌이를 하거나 밥벌이를 할 수 있습니다. 드넓은 시골에 풀이 자라고 나무가 크기에 좁다란 서울과 서울 둘레 사람들은 밥을 먹고 숨을 쉬며 물을 마십니다. 시골 없이 어떤 도시가 있을 수 있을까요. 시골을 모두 없애면 도시는 어떻게 버티거나 견딜까요.


  도시에서 흙을 꽁꽁 짓눌러 괴롭히더라도, 시골에 흙이 있기에 도시사람이 밥을 먹습니다. 도시사람이 책상맡에서 꼼지락거리며 온 나라 시골 흙땅에 시멘트를 퍼부어 갯벌을 메꾸고 냇물을 바꾸며 논밭을 공장이나 아파트로 갈아치우는 한편 멧등성이마다 구멍을 숭숭 뚫습니다. 도시사람이 어마어마하게 쓰는 전기를 대려고 시골마을 깨끗한 데에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짓습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옮기려고 도시까지 멀리멀리 우람한 송전탑을 수없이 세웁니다. 시골이 있어 먹고사는 도시인데, 먹을거리와 마실거리를 시골에서 얻으면서, 시골 흙땅이 더러워지게끔 발전소와 공장과 제철소와 쓰레기매립지와 하수처리장과 골프장과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따위를 끊이지 않고 새로 짓습니다.


  서울하고 아주 먼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해남이 땅끝이라느니 강진이 참 머느니 하지만, 고흥만큼 서울하고 먼 데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서울과 서울 둘레에서 벗어날수록 시외버스 옆으로 펼쳐지는 나무숲과 논밭이 싱그럽습니다. 서울하고 아주 먼 시골이 되니 시외버스에서도 바깥 들바람과 멧바람을 살몃살몃 느낍니다.


  들새가 울고 멧새가 노래합니다. 들새가 들마실을 하고 멧새가 멧마실을 합니다. 두 아이와 두 어버이는 시외버스에서 갤갤거립니다. 시외버스를 내려 택시를 얻어타고 우리 보금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또 갤갤거립니다. 처마에서 제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들어옵니다. 두 아이도 두 어버이도 고단하게 잠자리에 듭니다. 고단하게 아침을 맞습니다. 새벽안개가 온 마을을 덮습니다. 여러 날 비운 살림집 뒤꼍에 수풀이 우거집니다. 우거지는 수풀을 아이들이 예쁘게 누리며 새 아침 새 마음으로 즐거이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5.5.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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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5-08 21:59   좋아요 0 | URL
해남,강진이라 오랫만에 들어보네요.몇년전에 자주 들렸었는데 요즘은 통 가볼일이 없네요.
 


 집안일은 즐거워

 


  집안일은 즐거워. 아침 일찍부터 똥 뽀지작 하며 바지랑 기저귀랑 기저귀싸개랑 한꺼번에 푸진 똥내음 가득 풍기는 둘째 아이 옷가지 빨래하는 집안일은 즐거워. 붕붕 방방 뛰고 놀고 닫고 노래하는 첫째 아이 먹일 밥을 하는 집안일은 즐거워.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집 안팎을 쓸고닦는 집안일은 즐거워. 그러나 나는 아직 집안일 건사를 잘 하지는 못해. 참 더디게, 참 천천히, 참 느릿느릿 하나씩 배우고 깨닫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


  손에서 물이 마를 새 없어. 손에서 일을 놓는 겨를 없어. 눈에서 아이들 모습이 사라지는 적 없어. 눈에서 일거리 놓치는 틈 없어. 숨을 돌리지 못하다 싶도록 복닥이느라 한 달이 어찌 지나고 한 철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깜빡 잊기도 하니, 어느새 감자 심는 때이고, 어느새 감꽃 필락 말락 하는 때로구나.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어른들도 튼튼하게 큰다. 바람은 맑고 햇볕은 따스하며 냇물은 고즈넉하네. 들새와 제비가 마음을 달래 주고, 개구리와 풀벌레가 생각을 어루만져 준다.


  식구들 다 함께 들마실을 나온다. 식구들 나란히 멧마실을 다닌다. 식구들 어깨동무하며 밤하늘 누리며 하루를 마감한다. (4345.5.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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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5-06 11:11   좋아요 0 | URL
늘 집안 일 하기 싫어 툴툴거리는 저를 반성하게 되네요.
들마실 하기 정말 좋은 날씨입니다

숲노래 2012-05-07 06:01   좋아요 0 | URL
그저 즐겁게 마주하셔요~
 


 읽을 만한 책이 있을까

 


  책을 말하는 사람들이 으레 ‘읽을 만한 책’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이 말마디 ‘읽을 만한 책’을 들을 때면 늘 가슴이 답답하다. 온누리에는 ‘읽을 만한’ 책이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찍을 만한’ 사진이나 ‘그릴 만한’ 그림이나 ‘부를 만한’ 노래도 없다고 느낀다. 나로서는 ‘읽을’ 책과 ‘찍을’ 사진과 ‘그릴’ 그림과 ‘부를’ 노래가 있다. ‘먹을 만한’ 밥을 먹으면 혀와 목구멍과 배 모두 아프거나 쓰리다. ‘먹을’ 밥을 먹으면 혀도 목구멍도 배도 모두 즐겁다. ‘살 만한’ 집이라면 이럭저럭 두 다리 뻗고 잘 만하다 여길 테지만, 나로서는 ‘살’ 집에서 살아야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 모두 즐거우면서 환하게 웃음꽃 피운다고 느낀다.


  내 하루는 아름답다. 내 옆지기 하루는 아름답다. 내 아이들 하루는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하루는 ‘지낼 만한’ 하루가 아니라 ‘즐거이 지내며 누리는’ 하루이다. 곧, 우리들은 ‘할 만한’ 일이나 놀이를 하지 않는다. ‘할’ 일과 놀이를 하며 즐기고 누린다.


  더도 덜도 아니라 생각한다. 나한테도 옆지기한테도 아이들한테도, 또 내 좋은 동무와 이웃한테도 ‘읽을 만한 책’이란 썩 도움이 되기 힘들 뿐더러 조금도 사랑이 될 수 없으리라 느낀다. 서로서로 ‘읽을 책’을 기쁘게 손에 쥐고는 ‘누릴 삶’을 예쁘게 건사할 때에 빛나는 하루가 되리라 느낀다.


  그러나 ‘읽어야 하는 책’은 반갑지 않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할 일’을 한다. ‘먹어야 하는 밥’이 아니라 ‘먹을 밥’을 먹는다. 읽을 책을 읽을 뿐이다. 사랑해야만 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날이 아니라, 사랑할 사람을 즐거이 사랑하는 나날이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장만하며 책을 읽고 책을 즐기는 내 삶을 톺아본다. 나는 ‘이럭저럭 읽을 만하다 싶은 책’을 읽으며 즐겁던 적이 한 차례조차 없다. 나는 ‘참말 읽을 책’을 읽을 때라야 비로소 즐겁다고 느낀다.


  읽은 책에 별점을 붙이는 일은 부질없겠지만, 별 다섯 만점에 별 다섯을 붙일 만한 책이어야 나한테 ‘읽을 책’이 되겠지. 누군가는 ‘아니 왜 별 다섯짜리 책만 읽나요? 별 하나짜리 책도 읽을 수 있지 않아요?’ 하고 물을는지 모르는데, 나는 ‘내 하루를 늘 별 다섯짜리 즐겁고 좋은 삶’으로 누리고 싶다. 나는 내 주머니를 털어 장만하려는 책이 별 다섯짜리 즐겁고 좋은 책이기를 바란다. 나는 내 가슴으로 스며들 이야기 깃든 책이라 한다면 노상 별 다섯짜리 예쁘고 해맑은 책이기를 꿈꾼다.


  읽을 책을 읽는다. 읽을 책을 누린다. 읽을 책을 사랑한다. 읽을 책을 말한다. 읽을 책을 나눈다. 읽을 책을 읽어 느낌글 하나 갈무리한다.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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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쉰다

 


  좋은 꽃 바라보며 좋은 넋 샘솟는다고 느낍니다. 고운 님 마주보며 고운 꿈 차오른다고 느낍니다. 맑은 해 올려다보며 맑은 삶 따스하구나 싶습니다. 착한 아이 어깨동무하며 착한 마음 다스리겠지요.

  새로 돋는 풀잎 쓰다듬고 새 생각 북돋웁니다. 온 바람 받아먹고 온 믿음 살찌웁니다. 문득 곰곰이 되뇝니다. 내가 자동차 싱싱 달리는 소리 먼발치 또는 가까이 아침부터 밤까지 들어야 하는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이 소리들은 내 몸과 마음을 온통 휘젓습니다. 냉장고 웅웅거리는 소리라든지 텔레비전 웅성대는 소리라든지 승강기 오르내리는 소리라든지, 갖은 물질문명 끊임없는 소리들에 둘러싸여야 한다면, 이 소리들은 내 몸뚱이와 마음자락을 파고듭니다.


  시골집에서 섬돌에 아이랑 나란히 앉아 후박나무를 바라봅니다. 들새와 멧새와 제비가 지저귀는 노래를 듣습니다. 무논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논밭에서 일하며 주고받는 이야기 아스라하게 듣습니다. 풀잎이 바람에 눕다가 일어섭니다. 나뭇잎이 바람결 따라 파르르 춤춥니다. 햇살은 온 들판에 곱게 내려옵니다. 멧등성이마다 새로 돋은 잎사귀 푸른 빛깔 싱그럽습니다.


  눈이 쉬며 코가 쉽니다. 코가 쉬며 귀가 쉽니다. 귀가 쉬며 손과 입과 몸뚱이가 모두 쉽니다. 마음이 쉽니다. 생각이 쉽니다.

  쉴 수 있기에 책 하나 쥡니다. 쉴 수 있기에 싱긋 웃으며 아이들 껴안고 함께 놉니다. 쉴 수 있기에 옆지기하고 살가이 말을 섞습니다.

  쉴 수 없을 때에 어딘가 막힙니다. 쉴 수 없어 어딘가 막힐 때에 이맛살을 찌푸립니다. 쉴 수 없어 어딘가 막힌 나머지 이맛살을 찌푸리니 자꾸 골을 부리거나 짜증이 피어납니다. 아, 쉬지 못하는 몸이 되어 쉬지 못하는 마음이라면, 이런 몸과 마음으로 읽는 책은 내 삶을 얼마나 살찌우거나 북돋우거나 일으키거나 보듬을 수 있을까요.


  눈을 쉬기에 책을 읽습니다. 눈을 쉬기에 삶을 사랑합니다. 눈을 쉬기에 착하고 맑으며 고운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4345.5.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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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미집

 


  뒤꼍 땅뙈기를 밭으로 일구려고 틈틈이 삽과 쟁기로 파헤치곤 했다. 때때로 아주 커다란 돌덩이를 캐기도 한다. 이때에는 낑낑거리며 들어내고는 나중에 돌울을 쌓으려고 아무렇게나 던져 두곤 했다. 다른 일로 바쁘다가, 내팽개쳐진 돌덩이를 두어 달만에 들어서 돌울을 쌓던 엊그제, 커다란 돌덩이 밑에서 바글거리는 개미떼를 본다. 이 돌덩이 밑에도 개미집, 저 돌덩이 밑에도 개미집. 작은 돌 밑에도 개미집 있고, 조금 큰 돌 밑에도 개미집 있다.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개미집 구멍은 아주 작다. 문득 궁금해서 삽으로 쿡 찍어 ‘개미집 자른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그만둔다. 돌울을 쌓으며 물골을 내려고 하는데, 물골 자리에 있던 돌 밑마다 개미집이 어김없이 있다.


  개미들은 무척 커다란 벌레를 여럿이 들어 옮긴다고는 하나 ‘사람한테는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라 하더라도 여럿 아닌 수백이나 수천이 모여도 들어 옮기지 못한다. 모래로 이룬 언덕이라면 한 알씩 들어 날라 옮긴다 하지만, 한 덩어리 돌덩이나 바위라면 개미가 옮길 재주가 없으리라. 50층 높이쯤 되는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덩이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이런 바위덩이를 수백 수천 수만 사람이 모인들 한꺼번에 짊어지고 옮길 수 있을까.


  네 식구 먹고살자며 밭을 일구고 물골을 낸다. 생각해 보니, 그토록 비가 퍼부었어도 이 돌덩이 밑에 있던 개미집에는 빗물이 스미지 않았으리라 느낀다. 그러면 개미들은 어디로 드나들었을까. 비가 올 적에는 빗물이 스미지 않도록 돌덩이 밑을 흙으로 꽁꽁 틀어막았을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돌을 집어 나른다. 한쪽에 돌울을 쌓는다. 개미들은 집뚜껑을 하루아침에 잃는다. 이른바 ‘미리 알리기’조차 없이 하루아침에 빼앗긴다. 수만이나 수십만에 이르는 개미들이 집을 잃는다. 수만이나 수십만에 이르는 개미들은 하루아침에 새 집을 찾아야 하고 새 보금자리를 지어야 한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이 쓴 《초원의 집》 둘째 권 끝자락 이야기가 떠오른다. 너른 들판에 한 해 꼬박 걸려 알뜰히 짓고 밭까지 일구어 놓은 살림집을 이들 식구는 고스란히 내놓고 새 터로 떠나야 한다. 미국 정부에서 토박이들하고 협정을 맺어 ‘인디언 보호지구’를 마련하면서, 로라네 식구는 집을 하루아침에 잃어야 했단다. 로라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 해 동안 흘린 땀을 서운히 여기지 않는다. 거꾸로 보면, 북중미 토박이는 흰둥이한테 하루아침에 삶터와 일터와 꿈터를 몽땅 빼앗기지 않았는가.


  우리 시골마을조차 ‘4대강 사업’ 끄트머리 가운데 하나인 ‘시골 실개천 시멘트 처바르기’를 한다. 시골마을 논물이 흐르는 냇물 도랑을 뭐 하러 시멘트 들이부으며 ‘관광지 서울 청계천’ 비슷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이루 셀 수 없도록 커다란 돈을 들여 온 나라 물길을 시멘트로 처바른다. 냇물에서 살던 물고기 보금자리가 어떻게 되는지 걱정하지 않는다. 냇물이 보금자리였을 숱한 목숨들 삶과 사랑을 생각하지 않는다. 들새와 물새를 생각하지 않는 건설업이요 경제이며 정치이다. 지율 스님은 도룡뇽 한 마리 때문에 천성산에 뚫으려는 굴을 막으려 했다지만, 도룡뇽 한 마리 때문에 고속철도를 안 놓아야 마땅하다. 도룡뇽 한 마리로 대표하는 뭇목숨을 아끼고 사랑하자면 고속철도는 없어도 된다. 고속도로도, 공항도, 전철도, 학교도, 아파트도, 공장도, 골프장도, 핵발전소도, 화력발전소도, 도룡뇽 한 마리를 비롯해 뭇목숨을 살리고 아끼자면 구태여 안 지어도 된다.


  이틀쯤 지나 개미집 자리를 들여다본다. 개미 한 마리 안 보인다. 모두 잘 옮겼을까. 모두 새 터에 즐겁게 또아리를 틀었을까. 개미들아, 물골은 이곳에만 하나 낼게. 새 물골은 내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 주렴. (4345.4.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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