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가서 발을 담갔다

 


  집에서 면소재지까지 네 식구 군내버스를 타고 2200원. 면소재지에서 택시를 타고 발포 바닷가로 5000원. 세 시간 동안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발포 바닷가 귀퉁이에는 ‘다도해 국립공원’이라는 푯말이 선다. 국립공원 바닷가이지만, 이곳에 와서 고기를 굽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쓰레기를 도로 가져가지 않는다. 이곳에 그냥 버리고 간다. 이 모습을 바라본 도시 손님은 ‘바닷가도 작으면서 왜 이리 더럽느냐’ 하고 말한다. 시골 바닷가가 더러워진 모습이 아니라, 도시사람이 쓰레기를 버려 더럽혀 놓은 손길을 못 느끼는 일이 안쓰럽다.


  이곳 바닷물에 발을 담그면서 논다. 내 발은 태평양 끝자락에 선다. 아이도 옆지기도 모두 바닷물에 발을 담그면서 태평양 끝자락에서 논다. 태평양은 지구를 덮은 바닷물 가운데 하나. 우리들은 바다를 느끼면서 지구를 느끼고, 지구를 느끼면서 내 목숨이 싱그럽게 살아서 펄떡인다고 느낀다.


  바다에 가서 발을 담그고는 다시 택시를 불러 집까지 돌아온다. 8000원. 고작 15000원에 이르는 적은 돈으로 바다와 태평양과 지구와 나를 느끼며 하루를 누렸다. 작은 시집 하나 가방에 넣어 바다로 왔는데, 작은 시집을 꺼낼 일은 없었다. (4345.6.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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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6-26 09:32   좋아요 0 | URL
와 너무 시원해 보여요 아이들이 좋아했겠어요 요즘은 정말 여름 날씨라서~
바다가 그리운 나날이죠

숲노래 2012-06-26 13:50   좋아요 0 | URL
예전에 갈 적에는 '조금 바가지 택시삯'을 치렀는데,
어제는 '착한 택시삯'을 치를 수 있어서,
앞으로 이 택시 기사님한테만 전화해서
면부터 즐겁게 나들이 하려고 해요.

아이들이 더 크면, 아마 다섯 해쯤 뒤가 되리라 보는데,
그때에는 온 식구가 자전거를 끌고 갈는지 모르고요 ^^;;;

개인주의 2012-06-26 12:35   좋아요 0 | URL
가만 있기만 해도 좋을텐데
저런 곳에서 꼭 고기를 먹어야 하는건지 모르겠어요.

숲노래 2012-06-26 13:49   좋아요 0 | URL
고흥은... 바닷가 둘레에 '식당'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아예 없지는 않은데, 다들 자가용 몰고 오니까, 자가용 몰고 조금 가서 구워 먹어도 되련만, 굳이 그릴이나 석쇠나 숯까지 챙겨서 바닷가에서 구워 먹고는 그 쓰레기와 찌꺼기를 고스란히 두고, 또 봉지까지 그대로 가는 이들이 꼭 있어요.

마을 젊은이도 어르신도, 한창 바쁜 일철이라, 바닷가에서 이렇게 더럽히고 가더라도 누가 지켜보거나 말리지도 못한답니다. 국립공원에서는 '취사 금지'인 줄조차 생각하지 않으니 어쩌겠어요...
 


 쓰고 싶은 느낌글

 


  오늘 새벽 드디어 《아나스타시아》 다섯째 권 느낌글을 마무리짓는다. 고작 한 시간이 안 되어 한달음에 적어 내린다. 더없이 마땅한 노릇인데, 내 마음이 맑을 때에는 느낌글 한 꼭지이든 두 꼭지이든 아주 빠르게 쓸 수 있다. 원고지로 치면 스무 장쯤 될 글을 삼십 분 사이에 쓸 수 있고, 원고지로 칠 때에 쉰 장쯤 될 글을 고작 한 시간 동안 쓸 수 있다. 왜냐하면, 마음이 맑으면 생각이 열리고, 생각이 열리면 사랑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니까.


  쓰고 싶은 느낌글이 있을 때에는 무엇보다 내 삶을 착하면서 곱게 돌보아야 한다. 읽고 싶은 책이 있을 적에는 언제나 내 삶을 참다우면서 즐겁게 보살펴야 한다. 참답고 즐겁게 읽은 책을 착하면서 곱게 느낌글로 담는다. 나와 내 살붙이가 먹을 밥을 내 땅뙈기에서 짓는다고 생각해 보라. 나는 가장 좋은 사랑과 꿈을 내 땅뙈기에 실어 가장 슬기로운 땀을 흘려야 할 노릇이다. 아무렇게나 읽을 책은 없다. 서평단이 된다거나 거저로 보내 온 책을 읽는대서 느낌글을 척척 써 주지 않는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와 즐겁게 읽은 다음, 내 사랑이 샘솟으며 기쁘게 쓸 때에라야 비로소 느낌글이 된다. (4345.6.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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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손

 


  뒤꼍에 묵히는 땅 가운데 두 평 즈음 쓰레기를 캐고 돌을 고른 자리는 갖가지 풀이 신나게 자랐다. 한동안 손을 못 대고 지내다가 어제 비로소 아픈 몸을 이끌고 풀을 뽑고 잔돌을 촘촘히 고른다. 작은 고랑을 짓고 손가락 구멍을 낸다. 첫째 아이 손바닥에 씨앗을 톡톡 올린다. 마무리 씨앗심기는 아이 몫. 씨앗을 올린 한손과 씨앗을 집는 다른 한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이는 예쁜 일을 예쁜 손으로 해낸다. 땅을 일구기까지 어버이가 품을 퍽 많이 들여야 하나, 바로 이렇게 씨앗을 심는 손을 바라볼 수 있다는 보람이 있으니 즐겁다. 아이 손바닥을 거쳐 좋은 기운이 땅으로 스며들었으리라 믿는다. (4345.6.2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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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앓고 난 뒤

 


  앓은 지 엿새가 지난다. 둘째도 첫째도 나도 몸이 아직 제자리를 찾지 않는다. 다만, 처음 앓던 날보다는 조금 수월하기는 하다. 처음 앓던 날과 이튿날과 다음날 또 그 이듬날까지 무엇 하나 할 수 없도록 온몸이 아파 말조차 나오지 않으며 괴로웠다면, 엿새째 되는 오늘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이 어지러우며 몸이 휑뎅그렁하지만, 한두 시간이나마 잠이 들기는 했다. 지난 닷새 동안 한잠조차 잘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지난 닷새 동안 한잠도 안 자려 했는지 모른다. 스스로 왜 아파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면서, 잠자리에서까지 나 스스로와 싸우는 나날이었으리라 느낀다. 내가 심은 슬픈 미움싹이나 바보싹이랑 싸우는 나날이요, 내가 뿌린 궂은 생각싹을 맑고 밝게 다스리려고 용쓰는 나날이었다고 느낀다.


  내가 모르게 생기거나 일어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 꿈속에서 나 스스로 자꾸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움직이려 애쓴다. 내 꿈을 나 스스로 빚으려고 용쓴다. 내 꿈이 아무렇게나 흐르지 않도록 다스리려 힘쓴다.


  얼마쯤 걸릴까. 얼마쯤 걸려야 아픈 몸을 추스르면서 아픈 생각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을 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말문을 예쁘게 틀 수 있으리라. 스스로 생각을 빚을 수 있을 때에 바야흐로 책 한 줄 읽더라도 깊고 너른 꿈누리를 펼칠 수 있으리라. 아이들은 앓고 나면 무럭무럭 자란다는데, 첫째 아이도 여러 날 앓으면서 부쩍 자라곤 했는데, 두 아이 모두 한결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라나려고 앓을 테지. 나 또한 두 아이 어버이라 하지만 아직 철이 덜 든 어른이기에, 훨씬 예쁘며 한껏 푸른 빛을 뿜고자 여러 날 앓으며 새롭게 자라야 하는가 보다. (4345.6.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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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구름 지나가는 하늘

 


  비구름 지나가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비구름은 천천히 내 오른쪽으로 지나갑니다. 내가 올려다보는 하늘 왼쪽은 저 멀디먼 북녘이요, 내가 올려다보는 하늘 오른쪽은 새삼스레 멀디먼 남녘, 곧 태평양입니다. 비구름이 태평양으로 가는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는, 우리 집에서 칠 킬로미터를 나가면 맞이하는 바다가 태평양 끝자락이네 하고 느낍니다.


  새들 노랫소리 울리는 숲속 바람이 마당을 스치며 집안으로 살포시 깃듭니다. 첫째 아이가 먼저 잠을 깨어 일어납니다. 같이 마당에 내려서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눈이 부시게 파랗습니다. 아침 여덟 시 햇살인데 눈을 바로 뜰 수 없습니다. 좋은 하늘이기에 햇살은 짙게 드리웁니다. 나를 살찌우는 모든 밥과 꿈과 이야기는 바로 이 햇살 한 줄기에서 비롯하겠지요. (4345.6.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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