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6.21.


《긴 호흡》

 메리 올리버 글/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2019.12.20.



“Good night”을 “굿 나잇”으로 옮기면 될까, “좋은 밤”으로 옮기면 될까, 아니면 “잘 자”나 “잘 자렴”이나 “꿈 꾸렴”이나 “고요히 자렴”으로 옮기면 될까. 거꾸로 생각하자. “잘 자”라는 한국말을 영어로 어떻게 옮기면 될까? 《긴 호흡》을 마을책집에서 집어들어 읽다가 내려놓는다. 옮김말 탓에 지친다. “창작은 고독을 요한다”는 무슨 소리일까. 영어가 이런 꼴로 생겼는가, 아니면 영어를 한국말로 옮기면 이런 글이 되는가? 한국말도 아니요, 영어도 아니며, 거의 일본 말씨라고 해야 할, 무늬만 한글인 이런 글이 종이에 척척 찍혀서 나와도 좋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옮겼고, 이렇게 엮었으며, 이렇게 내놓았고, 이렇게 책집으로 들어온다. 학교라는 곳은 아이들한테 어떤 살림을 어떤 말씨로 들려주면서 가르치는가? 사회라는 곳은 아이들한테 어떤 사랑을 어떤 글씨로 보여주면서 들려주는가? 다시 생각한다. “외로워야 짓는다”나 “쓸쓸할 적에 쓴다”나 “조용히 짓는다”나 “혼자서 쓴다”나 “지을 적에는 혼자다”나 “쓸 적에는 혼자다” 같은 말마디를 조용히 읊는다. 아마 어떤 분은 혼자여야 쓰겠지. 아니 쓸 적에는 혼자일밖에 없겠지. 곁님이나 아이나 동무가 있으면 수다를 떨어야 하니, 글은 혼자 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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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6.20.


《장날》

 이서지 그림·이윤진 글, 한솔수북, 2008.9.29.



새삼스레 흐리고 가볍게 비. 어제 이불빨래는 잘 말랐고, 곁님이 잘 덮어서 쓴다. 비가 그친 사이에 빨래를 해서 말리고 건사하는 길은 두 아이를 돌보면서 새삼스레 익혔다. 천기저귀만 쓰면서 똥오줌을 가리도록 이끈 살림이었으니 하루라도 기저귀 빨래가 안 나오는 날이 없을 뿐 아니라, 아이들 옷가지도 날마다 숱하게 빨고, 아이들 이불도 며칠마다 빨아야 했지. 날씨는 늘 하늘하고 바람을 읽으면서 살폈다. 언제 마당에 내놓아 해바람을 먹일는지 살피고, 언제 집안으로 걷을까를 헤아렸다. 가만 보면,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아이를 돌보는 길에 배우는 살림’으로 어느덧 슬기롭고 사랑스런 ‘사람’으로 서는구나 싶다. 《장날》이란 그림책을 두고두고 즐겼다. 뒤늦게 알아보았는데, 판이 안 끊기고 사랑받을 수 있으니 고맙다. 그린님은 어릴 적 즐겁게 뛰놀고 어우러진 오랜살림을 곁에서 모두 지켜보았기에, 어른이 되어 이런 그림을 남길 만했으리라. 그림꽃이란 그림솜씨로 펴지 못한다. 손재주가 좋대서 아름답게 그린다거나 사랑스런 그림책을 빚지는 못한다. 신나게 뛰놀던 어린 나날을 바탕으로, 신바람으로 아이를 돌보며 살림을 가꾼 어른으로 하루하루 맞이했다면, 누구나 찬찬히 어여쁜 그림님·글님·이야기님이 되리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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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6.19.


《모두 어디로 갔을까? 1》

 김수정 글·그림, 둘리나라, 2019.12.18.



이틀 비가 그쳤으니 다시 이불빨래. 곁님은 “이불이 마를까?” 하고 물어보는데, 하늘을 보아하니 잘 말라서 저녁에는 자리에 펼 만하지 싶다. 이불을 빨래해서 널고, 틈틈이 뒤집어 고루 햇볕을 머금도록 하다가 생각한다. 빨래틀을 쓴 지 몇 해가 안 되는 우리 살림인데, 마당이 있고 햇볕을 누리는 우리 같은 시골집이 아닌, 웬만한 큰고장 이웃들 아파트살림에서는 기계에 기댈밖에 없고, 옷이며 이불이며 해를 먹이기란 참 힘들겠네. 옷에 해랑 바람을 먹이면 해바람 내음이 밴다. 옷을 기계로 말려서 집에만 두면 해바람 내음이 하나도 안 깃든다. 그래서 아파트 살림을 꾸리는 분들은 그렇게 온갖 가루비누하고 이것저것 건사해야겠구나 싶기도 한데, 해바람 못 누리는 삶이 길면 길수록 다들 몸이 지치고 아프지 않을까? 돌림앓이가 수그러들지 않는 이즈음이라면 이런 집짜임을 확 뜯어고치는 길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 어디로 갔을까?》 첫걸음을 읽는데, 꽤 재미없다. 동화를 써 보시겠다는 김수정 님 마음은 알겠지만, 만화로 그리시면 한결 나았지 싶다. 줄거리가 뒤죽박죽이고, 여러모로 엉성하면서 억지스럽다. 만화에서는 건너뛰어도 될 대목을 동화에서는 다 집어넣어야 하니 참 강파르다. 지쳐서 끝까지 못 읽을 듯하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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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6.18.


《체리와 체리 씨》

 베라 B.윌리엄스 글·그림/최순희 옮김, 느림보, 2004.1.19.



오늘 이 나라는 ‘농협’이란 곳이 서고, ‘농사·농업’을 말하지만,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던 무렵이나 사슬에서 풀려날 즈음까지 ‘여름’이란 낱말은 철뿐 아니라 “열매를 짓는 길”을 가리키는 자리에 함께 썼다. ‘여름지이 ← 농사’요, ‘여름지기 ← 농부·농민’이지. 여름이 왜 여름인가 하면 ‘열’기 때문이다. 열매가 익도록 하늘을 열고, 해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이런 ‘여름·열매’이다. 그러니까 ‘여름지기·열매지기·여름님·열매님’ 같은 이름으로 흙을 가꾸는 일꾼을 가리킬 적에 아이들한테 ‘흙일꾼 살림길’이 어떠한가를 제대로 알려주면서 물려줄 만하리라. 말부터 똑똑히 세울 노릇이다. 유월 여름에 접어든 뒤 날마다 “익으렴 익으렴, 모든 열매야” 하고 노래한다. 열매를 노래하는 이무렵 《체리와 체리 씨》를 새삼스레 읽는다. 이 그림책은 서울내기(도시내기) 어린이가 체리알을 누리는 신나는 하루를 재미나게 보여주는데, 아이는 서울(도시) 한복판에 아름드리 체리밭을 가꾸어 누구나 마음껏 체리알을 누리는 꿈을 들려준다. 그린님이 참 이쁘구나. 엄마 걸상을 다룬 그림책도 상냥한 숨결을 누릴 만했는데, 아직 한국말로 안 나온 이분 여러 그림책을 살펴보고 싶다. 바로 이 여름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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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6.17.


《다자이 오사무 내 마음의 문장들》

 다자이 오사무 글/박성민 옮김, 시와서, 2020.2.20.



여름이 되니 마을 윗샘이며 아랫샘을 치우느라 부산하다. 치워 놓고서 언제 치웠더라 하고 헷갈리고, 마을 앞을 지나 들여다보면 어느새 물이끼가 소복하다. 여름이니 물이끼가 자주 낀다고 할 만하면서도, 여름이니 빨래터하고 더 사귀라는 뜻이라고도 느낀다. 늘 물이 흐르는 이곳은 숲이 베푼 물놀이터이기도 하니까. 빨래터 담벼락에 앉아서, 또 읍내를 다녀오는 길에, 또 집안일을 하다가 쉬며 《다자이 오사무 내 마음의 문장들》을 읽었다. 나는 이이 소설책을 아직 읽은 적은 없는데, 이렇게 소설에서 몇 마디씩 갈래에 따라 가려뽑은 글자락은 꽤 재미나구나 싶다. 한국에서는 일본에서처럼 ‘인간 실격’이란 한자말을 그냥 따라쓰지만, ‘사람이 아니야’라든지 ‘못됐다’라든지 ‘엉터리’라든지 ‘머저리’라든지 ‘바보’라든지 ‘얼간이’로 그때그때 바꾸어 볼 만하다. 왜냐하면 번역이니까. 모든 말은 옮긴다. 모든 말은 삶을 옮긴다. 우리가 저마다 달리 살아가는 하루를 말이라는 생각씨앗으로 옮기니 서로 이야기를 한다. 일본말만 한국말로 옮기지 않는다. 삶을 마음에 옮기고, 이 마음에서 생각으로 옮기다가, 이 생각을 다시 말로 옮긴다. ‘이 한국말’을 ‘저 한국말’로 옮긴다. 서울스러운 말씨를 숲다운 말씨로 옮겨 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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