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7.11.


《어느 베를린 달력》

 박소은 글, 정한책방, 2019.8.8.



아직 마감하지 못한 글꾸러미를 어루만진다. 하루하루 마감이 밀리면서 짐이 불어나는 듯한데, 어쩐지 서둘러 매듭짓지 못한다. 마음이 몸한테 말을 건다. “마감을 빨리 끝내서 넘기고 싶니, 온사랑을 실어 두고두고 읽힐 이야기로 엮어서 띄우고 싶니?” 틀림없이 날에 맞출 노릇이면서 온사랑을 실어야겠지. 혼자 책읽고 글쓰며 산다면 마감을 못 맞출 일이 없다. 살림짓고 글결을 여미자니 요일도 주말도 모르며 지내는데, 이런 핑계를 달지 않으면서도 글길이 고르게 나아가고 싶었으나, 한 가지 마감이 안 되니 다른 마감도 줄줄이 밀린다. 《어느 베를린 달력》을 이웃 출판사 대표님이 건네주셨다. “‘이숙의’라고 아나?” 하고 묻기에 “혼자 아이를 낳아 돌보며 학교에서 가르치신 분 아닙니까? ‘삼인’ 출판사에서 《이 여자 이숙의》가 나오기도 했고요. 아름다운 책이었지요.” 하고 얘기하니, “어, 좀 아네? 이 책이 그분 따님이 쓴 책이다. 자, 그럼 네가 읽어 봐라.” 어머니한테서 듬뿍 받은, 아버지는 없었어도 어머니가 온사랑을 그러모아 여민 사랑으로 자란, 그러한 바람결이 물씬 흐르는 ‘베를린살이’ 이야기를 읽는다. 빠른길도 느린길도 아닌, 사람길이란 눈으로 하루하루 살아내려고 하는 발걸음을 차곡차곡 맞아들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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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7.8.


《별일이야, 우리 가족》

 오인숙 글·사진, 컬처북스, 2020.4.28.



2015년에 《서울 염소》란 사진책을 처음 선보인 오인숙 님이 2020년에 《별일이야, 우리 가족》을 선보인다. 지난 다섯 해에 걸쳐 조금씩 거듭난 살림을, 하나씩 돌본 삶을, 꾸준히 추스른 하루를 사진하고 글로 여미어 낸다. 늘 곁에 있는 사람을 그냥그냥 마주할 적하고, 이 곁님을 사진으로 담고 글로도 이야기를 엮을 적에는 사뭇 다르다. 어버이하고 아이 사이도 그렇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이 아이가 누리는 하루를 꾸준히 사진으로 담아 본다면, 이 사진은 ‘우리가 지은 살림’을 두고두고 되새기는 실마리가 된다. 아이랑 어버이가 날마다 ‘나눔글(같이 쓰는 글)’을 몇 줄씩 적어 본다면, 같은 일을 놓고도 다르게 바라보고 느끼며 생각하는 숨결을 한결 짙게 돌아볼 만하다. 사랑으로 바라보려고 하면 다르다. 사랑스레 돌보려는 살림으로 마주하려고 하면 새롭다. 우리 보금자리에 푸르게 우거진 숲이 깃들기를 꿈꾸는 눈길로 어깨동무하려고 하면 즐겁다. 온누리 아줌마가 이녁 아저씨를 사진으로 찍고 글로 써 보면 좋겠다. 아줌마가 손에 사진기를 쥐면 온누리가 차츰 바뀐다. 아줌마가 손에 붓을 쥐면 온누리는 더욱 달라진다. 부엌칼이며 빗자루는 아저씨랑 함께 쥐고, 때로는 오롯이 아저씨한테 맡기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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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7.7.


《우아한 계절》

 나탈리 베로 글·미카엘 카이유 그림/이세진 옮김, 보림, 2020.2.14.



뜬금없이 붙이는 책이름이 영 안 어울리는 어린이책이 많다. 나라밖에서는 책에 그야말로 수수하게 이름을 붙이기 마련이다. 어린이책도 어른책도 그렇다. 이런 책을 우리말로 옮기며 뭔가 부풀리려고 이 말 저 말 끼워넣는데, 이러다 보니 이 나라에서 나오는 숱한 책도 ‘뭔가 사람들 눈에 잘 뜨이도록’ 부풀리는 물결에 휩쓸리곤 한다. 《우아한 계절》을 대전마실을 하며 마을책집에서 장만해서 아이들하고 읽으나, 어쩐지 이래저래 꺼림칙했다. 그림책에 웬 “우아한 계절” 타령이지? 책자취를 보니 “Merveilleuse Nature”란 이름으로 나온 책이다. “놀라운 숲”이란 뜻이다. 글쓴이도 그린이도 ‘숲이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숲이 철마다 다르게 놀랍다’고 말한다. 어린이한테 ‘우아’하고 ‘계절’이 뭐라고 알려주겠는가. 구태여 그런 한자말을 끌어들여야 하는가. “아름다운 철”이라 해도 나쁘지는 않으나, 이 그림책하고는 썩 안 어울린다. 철마다 다를 뿐 아니라 달마다 다르고, 무엇보다 날마다 다르면서 새롭게 빛나는 숲에서 풀꽃나무가 어떻게 얼크러지는가를 수수께끼 그림으로 보여주니, 그저 ‘놀랍다’ 한 마디를 붙일 노릇 아니겠는가. 숲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도 놀랍다. 이 놀라움을 느끼자는 그림책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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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7.9.


《소녀 신선 1》

 효미 글·그림, 애니북스, 2018.8.3.



작은아이가 거들어 책숲 얘기종이 〈삶말 52〉을 수월하게 부친다. “애썼어. 고마워. 네가 도와서 일찍 마쳤네.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에 다녀올까?” 두 아이가 갓난쟁이였던 무렵에는 이 아기를 품에 안고서 한 손으로 느릿느릿 얘기종이를 꾸렸다. 왼손으로는 아기를 토닥이면서 노래를 부르고, 오른손으로는 글월자루에 주소를 적었지. 그때에는 이레가 걸리던 일이 요새는 한두 시간이면 끝. 그야말로 무럭무럭 기운차게 자라는구나. 《소녀 신선》 첫걸음을 읽었다. 두걸음·석걸음이 나란히 있으나 첫걸음부터 읽기로 했고, 첫걸음을 다 읽고서 뒷걸음은 굳이 안 읽기로 한다. 줄거리가 뻔해서. 그림감은 재미나게 잡았구나 싶은데, 이 그림감을 풀어내는 줄거리가 ‘남녀 사이 뻔한 실랑이, 이 실랑이를 둘러싼 실타래’에서 그치고 만다. 더구나 이 실랑이랑 실타래를 질질 끈다. 그런 실랑이·실타래를 안 그려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여기에 너무 매이니 뻔하단 소리이다. 《란마 1/2》이라든지 《경계의 린네》라든지 《이누야샤》 같은 만화를 보면서 줄거리·이야기·그림감을 어떻게 엮으면서 실랑이·실타래를 알맞게 풀어내느냐를 배우길 빈다. 붓질만 잘한대서 만화가 되지 않는다. 붓질에 담는 눈길하고 생각이 빛나야 만화가 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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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하기로

예전보다 퍼센트가 떨어졌지 싶다.

예전에는 이보다 높았지 싶은데.


그러나,

1%도

0.1%도 아닌

0.09%라 하면서

0.0몇 %라는 자리에 있다니

대견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넌 참말 책만 보는 바보야!"라 

해야 할 만할까.


나는 책을 온갖 곳에서 다 사기에

온갖 곳에서 갖은 책을 사느라 쓴 돈을

모조리 따지면,

오롯이 책값으로 돈을 쓴 살림으로,

개인으로서 책을 사서 읽은 살림으로..

아마 0.00이나 0.000몇이 될는지 모른다.


그런데

수집가나 납품책을 다루느라

매출을 늘린 사람을 뺀,

그저 책을 사서 읽은 살림만 놓고 보면

0.0000몇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


그래,

"난 바보다. 책만 사읽어댄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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