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4.15.


《빨간 벽》

 브리타 테켄트럽 글·그림/김서정 옮김, 봄봄, 2018.11.2.



도화면에 있는 도화초등학교에 아침 일찍 간다. 이곳에서 투표참관인 노릇을 하기로 했다. 시골 투표소는 한갓지다. 고흥군은 나라에서 버금으로 투표를 많이 했다는데, 하루 동안 이곳을 찾아온 사람은 오백이 조금 넘는다. 저녁 여섯 시에 투표꾸러미를 닫고서 읍내 체육관으로 간다. 고흥군을 통틀어도 고작 사오만일 뿐인 투표종이. 늦도록 개표참관인 노릇까지 한다. 고흥처럼 작은 시골은 투표도 개표도 일찍 끝난다. 이렇게 작은 고장인데 공무원은 자꾸 늘고, 삽질로 돈을 뿌리는 행정·정책만 줄잇는다. 군수도 국회의원도 매한가지이다. 책상맡에 놓고서 아이들하고 소리내어 읽는 그림책 《빨간 벽》을 떠올린다. 우리 삶자리에는 어떤 담벼락이 높다라니 있을까? 우리 마음에는 어떤 울타리가 단단하게 얽혔을까? 아름다울 길이란, 즐겁게 손을 잡으면서 웃음꽃이 될 길이란, 사람하고 숲이 하나가 되어 푸르게 노래할 길이란, 까마득히 먼 나라에만 있을까? 경찰·군대뿐 아니라, 군수·국회의원에다가 공무원·대통령 모두 없이 조용한 나라일 수 있다면, 손수 살림을 짓고 스스로 삶을 사랑하면서 풀꽃나무하고 이야기를 하는 마음이 피어날 수 있다면, 이제 전쟁무기 사들이는 짓은 멈출 수 있다면 …….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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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4.14.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

 김수영 글, 창작과비평사, 1996.2.28.



1996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참 모른다. 1995년 11월에 군대에 들어간 뒤로 바깥일은 깜깜이가 되었다. 지오피란 데에 들어갔다 나오느라 여덟 달, 지오피에서 나오고는 한 해 남짓, 그냥 바깥으로 안 나오고 조용히 박혀 살았다. 나한테 주어진 휴가란 몫을 가녀린 벗한테 슬쩍 잘라서 주곤 했다. 일부러 휴가를 남한테 주고서 안 나가는데 이를 알아챈 사람은 한둘뿐이었다. 1998년에 바깥으로 나오고서야 아이엠에프도 알았고, 대통령이 바뀐 물결도 느꼈고, 김영삼이란 이가 어떤 짓을 일삼았는지도 들었다. 1990년대에 강원도 양구에 있던 군대에 들어온 신문은 ‘국방일보·조선일보·스포츠서울’이었다. 이 세 가지에 둘러싸이면 깜깜이가 되는구나 하고 뼛속으로 느꼈다.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이란 시집을 쓴 분은 1992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붙었다고 한다. ‘ㅈㅈㄷ’이라는 신문에서 신춘문예를 뽑는다. 글로 삶을 밝히거나 노래하고 싶다면, 굳이 이런 신문에 글을 보내어 뽑혀야 할까? 이런 신문 신춘문예 심사를 맡는 이는 무슨 생각일까? 내로라하는 숱한 시인이 ‘ㅈㅈㄷ 신춘문예’를 내세우고, 이런 길을 거쳐 창비·문지·문학동네·민음사에서 시집을 낸다. 로빈슨 크루소는 이런 나라가 있는 줄 알기나 할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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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4.13.


《세상에, 엄마와 인도 여행이라니!》

 윤선영 글·사진, 북로그컴퍼니, 2017.12.20.



우리 집 울타리 너머에서 밭을 일구는 마을 분이 ‘새쫓이 비닐줄’을 얼기설기 매달았다. 새를 쫓으려는 비닐줄이란, 말 그대로 새가 싫다는 뜻이리라. 새가 날벌레에 풀벌레를 얼마나 많이 잡아먹는가를 하나도 헤아리지 않겠다는 소리이며,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조금도 반기지 않겠다는 마음일 테지. 가만 보면 자동차만 씽씽 달리는 찻길을 놓는 사람도 ‘새나 숲을 모두 생각조차 안 한’ 몸짓이리라. 숲을 밀어내어 아파트를 세우는 사람도 ‘아름답게 어우러질 삶’은 바라보지 않는 몸짓일 테고. 《세상에, 엄마와 인도 여행이라니!》를 시골버스에서 읽는다. 이제 창문을 열고서 바깥바람을 쐰다. 창문바람이 상큼한 사월이다. 책쓴님은 ‘어머니가 인도를 가 보고 싶다’고 말할 줄 몰랐단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어머니가 ‘그냥 한국말을 쓰면’서도 인도사람하고 마음이 잘 맞는 모습에 놀랐단다. 어머니하고 딸이 나서는 마실길에서 새삼스러이 사랑을 느끼며 배우겠지. 아버지랑 아들이, 어머니랑 아들이, 아버지랑 딸이, 서로 맞물리고 얽히는 마음하고 삶을 새롭게 마주하면서 천천히 걷고 온누리를 돌아본다면, 그야말로 한결 튼튼하고 의젓한 어른으로 오늘을 맞이하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유채꽃밭 한복판을 걸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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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4.12.


《실크로드》

 수잔 휫필드 엮음/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2019.11.1.



조용히 봄볕을 누리며 빨래를 한다. 이제 30분 만에 빨래가 다 마르는 날씨이다. 볕이 참으로 좋다. 이 좋은 볕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동강면에 사는 이웃님이 전화를 한다. 다가오는 선거날 ‘투표참관인 + 개표참관인’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전라도 시골자락에서 참관인은 집권정당 사람 빼고는 없기 일쑤이다. 야당 사람이건 작은 정당 사람이건 없는 셈이라, 정의당 이름으로 참관인에 나서기로 한다. 여섯 시간씩 자리를 지키는 일이란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하루 열두 시간을 빼자면 그만큼 사전짓기란 일을 하루몫만큼 못하는 셈이겠지. 《실크로드》를 편다. 책상맡에 놓은 지 다섯 달쯤 된다. 보고 다시 보아도 놀랍다. 이만 한 책이 한국말로 나올 수 있는 대목은 그저 놀랄 뿐이다. 서양사람은 그들 살림자리가 어떤 길을 걸었는가를 놓고 곰곰이 생각하고 짚으면서 이야기로 엮는다. 이 나라에서는 우리 살림자리가 어떤 길을 걸었는가를 놓고 무엇을 밝히거나 따지면서 이야기로 엮을까? ‘조선왕조’가 아닌 ‘조선 시골사람’이나 ‘고려 숲사람’이나 ‘백제 바닷마을 사람’이나 ‘고구려 멧골사람’ 이야기를 어느 만큼 헤아릴까? 일본사람이 빚은 한자말로는 ‘문명’이지만, 수수한 한국말로는 ‘살림’이요 ‘길’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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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4.11.


《그네》

 문동만 글, 창비, 2008.5.27.



표 하나로 나라를 바꾸는 물결을 일으키기도 한다. 씨앗 한 톨로 마을을 바꾸는 기운을 퍼뜨리기도 한다. 해마다 조금씩 퍼지는 흰민들레를 바라본다. 그야말로 더디더디 늘어나지만 꾸준하게 이곳저곳으로 퍼진다. 하얀 꽃송이는 도드라지기에 퍼뜨리기 쉽다면, 꽃받침이 위로 붙은 노란민들레는 꽃송이를 하나하나 살피지 않고서야 텃민들레인지 아닌지 가리기 어렵다만, 어느덧 열 해째 노란빛 텃민들레도 곳곳에 씨앗을 묻으며 늘린다. 노랑이는 하양이만큼 잘 퍼지지는 않네. 《그네》라는 시집을 읽다가 한숨이 꽤 나왔다. 시를 쓰려면 술을 거나하게 마셔야 할까, 아니면 거나하게 술을 마셔야 시를 쓸 수 있을까. 술이 나쁘다거나 좋다고 느끼지 않는다. 누구나 알맞게 즐기면서 하루를 노래할 만하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거나하게 해롱대는 이야기를 자꾸 옮긴다면, 시를 읽는 셈인지 혀 꼬부라진 소리를 듣는 셈인지 아리송하다. 술 이야기를 시로도 쓸 수 있겠지만 ‘거나해서 비틀거리고 혀가 꼬부라진’ 소리는 따분하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다른 사람은 입을 다물라 하면서 쩌렁쩌렁 혼자 떠드는 듯한, 거나쟁이라는 하루는 무엇이 즐겁거나 아름다울까. 술병은 내려놓고 풀씨를 쥐기를 빈다. 술잔을 치우고 나뭇잎을 쓰다듬기를 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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