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5.


《연필로 쓰기》

 김훈 글, 문학동네, 2019.3.27.



풀을 벤다. 낫으로 석석 베어 눕힌다. 훑어서 먹지 않은 들풀은 낫으로 눕혀 새흙으로 돌아가라고 속삭인다. 너희가 싱그러이 자라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고 노래한다. 맨발에 맨손으로 우리 집 뒤꼍 풀밭을 누리면서 해를 보고 바람을 먹는다. 발가락에 닿는 풀잎이 산뜻하고, 손가락을 스치는 풀포기가 새롭다. 김훈이란 분은 《연필로 쓰기》라는 책을 써냈는데, 집에서건 마실을 다니건 언제나 연필꾸러미를 잔뜩 챙기는 사람으로서 돌아본다면, 난 “연필로 쓴다”고 말하지 않는다. 난 이렇게 말한다. “저는 낫으로 씁니다. 저는 자전거로 씁니다. 저는 아이들이랑 놀면서 씁니다. 저는 똥오줌기저귀를 신나게 손빨래를 하는 살림돌이로서 씁니다. 저는 바지랑대를 세우고 햇볕을 먹는 맨발로 씁니다. 저는 눈물로 쓰고 춤으로 씁니다. 저는 별빛으로 쓰고 꽃내음으로 씁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이 별을 사랑으로 보듬고 싶은 숲이 노래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김훈 님이 쓴 글이 나쁘거나 엉성할 일이 없다. 다만, 나쁘지 않고 엉성하지 않으니 외려 싱겁다. 글솜씨가 보이되, 솜씨에 담을 포근한 숨결은 좀처럼 못 본다. 그렇다고 김훈이란 분이 낫질을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남한테 바랄 일 없다. 내가 오늘 낫질로 글쓰기를 하면 될 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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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9 0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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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9 02: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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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4.


《호튼》

 닥터 수스 글·그림/김서정 옮김, 대교출판, 2008.4.25.



둘레에서 흔히 말하기를, 이제 우리 집 두 아이가 제법 커서 굳이 아버지랑 저자마실이나 바깥마실을 안 다닌다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냄새를 참 잘 느낀다. 풀냄새나 꽃냄새뿐 아니라 매캐한 냄새나 플라스틱 냄새도 바로 느낀다. 시골이라 해도 시골버스는 서울에서 다니는 버스하고 같다. 또 읍내만 해도 갖은 화학물질이 춤춘다. “아이고, 그러면 어떻게 삽니까?” 하고 묻는 분이 제법 있다만, ‘그러니까 큰고장에 안 살고 시골에 살’며, 앞으로는 ‘숲으로 깃들려’고 생각한다. 책숲 얘기종이인 〈삶말 50〉을 부치려고 읍내를 다녀온다. 갓꽃이 이제 끝물이라 바지런히 훑는다. 이레쯤 뒤에는 갓꽃을 더 훑지 못하겠지. 올해 누릴 갓꽃 끓인 물을 생각하며 즐겁게 손을 놀린다. 한글판으로 나온 《호튼》을, 또 영어판으로 진작에 나온 이 그림책을, 또 이 그림책을 바탕으로 나온 만화영화를, 하나하나 생각한다. 모처럼 만화영화를 다시 보고 그림책을 새로 펼쳐서 헤아리니, 그림책도 영화도 훌륭하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이 별에서 스스로 어떤 숨빛이 되어 이웃을 사귀느냐 하는 이야기를 놀랍도록 고운 사랑으로 풀어냈다. 지구도 별이고, 사람도 별이고, 풀벌레도 별이고, 꽃씨도 먼지도 다 별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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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3.


《트로이메라이》

 시마다 토라노스케 글·그림/박지선 옮김, 중앙북스, 2009.10.21.



비하고 바람이 시원스럽다. 올해는 비바람이 한결 새삼스럽다. 여태까지 찾아든 봄비나 봄바람하고 대면 꽤 기운찬데, 그야말로 말끔질을 하는구나 싶다. 사람이 더럽히거나 망가뜨린 곳을 찬찬히 보듬으면서 앞으로 이 별을 어떻게 돌보려 하느냐고 묻는 셈이지 싶다. 오늘은 이렇게 보살펴 줄 텐데 사람은 이 별을 얼마나 사랑하겠느냐고 조용히 물어본다고 느낀다. 《트로이메라이》를 읽었다. 나무 한 그루에서 태어난 피아노하고 얽힌 숨결을 다룬다. 그래, 피아노는 나무이다. 나무 아닌 톱니도 깃들지만, 피아노가 피아노답게 소리를 울리려면 나무가 바탕이 된다. 바이올린도 그렇지. 북이나 장구도 매한가지이겠지. 우리가 손으로 타거나 켜거나 치거나 부는 모든 세간에는 어떠한 바람을 숨결로 불어넣을까? 피아노를 치거나 들을 적에 나무가 숲에서 바람을 타면서 흐르는 결을 느낄 만한가? 연필이란 이름인 글살림도 그렇다. 겉으로는 연필이지만 속내는 나무이다. 돌 더하기 나무가 연필이다. 우리는 연필을 쥐어 글을 쓰면서 얼마나 나무다움이나 돌다움, 다시 말해 숲다움을 담아내는가? 나무이며 숲을, 바로 이 별을, 사람이 사이좋게 사랑하는 살림을 글 한 자락으로 옮기는 눈빛을 어느 만큼 헤아리는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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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2.


《도서관 여행하는 법》

 임윤희 글, 유유, 2019.5.4.



‘도서관은 뭘 해야 할까. 어떻게 되어야 도서관다울까. 책은 뭘까. 한국에 어떤 도서관이 있고, 도서관법이란 어떤 짜임새일까.’ 도서관을 다루려는 책이 이 여러 가지를 모두 짚어야 한다고는 여기지 않지만, 이 다섯 가지를 먼저 슬기롭고 사랑스레 풀어내는 눈빛이면서 글을 써 본다면 모두 달라질 만하리라 본다. 《도서관 여행하는 법》이 처음 나오던 때부터 눈여겨보았으나 이내 내려놓았다. 책집마실을 다닐 적에 으레 보이기에 다시 집어들어 펼치지만 또 내려놓았다. 도서관을 놓고 글을 쓰는 분한테 이 다섯 가지를 어떻게 알거나 생각하거나 바라보는가를 묻고 싶은데, 막상 이 다섯 가지를 조금이나마 풀어낸다든지 제대로 짚는 분은 아직 없지 싶다. ‘나들이(여행)’가 나쁠 일이 없다. 나도 나들이를 다니는걸. 그러나 도서관을 놓고 본다면 ‘도서관 나들이’가 아닌 ‘도서관 짓기’를 몸소 해보거나, ‘도서관 짓기를 하는 이웃’을 사귀어 보고서 글을 쓰기를 바란다. 구경만 해서야 뭘 알까. 책들임만 한대서 도서관이 되지 않고, 책을 이래저래 알려준대서 도서관지기가 되지 않는다. 내가 ‘도서관’이란 곳을 굳이 ‘책숲’이란 이름으로 고쳐서 말하는 뜻이 있다. 책·건물·사서자격증만으로는 도서관이 되지 않는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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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1.


《프쉬케》

 신일숙 글·그림, 학산문화사, 2010.11.25.



달이 바뀌면 이 새로운 달에 어떤 삶을 즐거이 그릴까 하고 생각한다. 날이 바뀔 적에도 새벽나절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앞서 오늘 이 새로운 삶을 어떻게 누리면서 꿈을 사랑으로 지을까 하고 생각한다. 지으려는 생각이 없이 하루를 맞이하면 휘둘리는 물결이다. 지으려는 생각으로 하루를 마주하면 가볍게 헤엄치듯 부드러이 가르는 물살이다. 밥을 차려 놓고서 만화책 《프쉬케》를 편다. 예전에는 귓등으로도 안 들어오던 말이나 이야기가 새록새록 스며들 때가 있으니, 신일숙 님 묵은 만화책이 이 대목을 살살 건드린다. ‘얼’을 가리키고 ‘궁금해 하는 마음’을 나타내며, ‘숨’이면서 ‘하늬바람’을 보여준다는 그리스말 ‘프쉬케’라지. 하나하나 따지면서 엮고 보니, 다 다른 낱말이면서 다 같은 말씨로구나 싶다. 짤막하게 갈무리한 만화책 한 자락이지만 ‘프쉬케 + 에로스’를 우리(한국사람) 나름대로 살뜰히 풀어내었다고 본다. 만화를 그리는 분은 언제나 글하고 그림을 같이 다뤄야 하기에, 줄거리를 깊고 넓게 파고들어 글·그림을 제대로 엮으려고 하는 분들은 이 별에 얽힌 수수께끼를 매끄러우면서 상냥하게 다루는구나 싶다. 봄이기에 보고, 보기에 배운다. 배우면서 삶을 이루고, 삶을 이루니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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