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25.


《행복한 사자》

 루이제 파쇼 글·로저 뒤바젱 그림/지혜연 옮김, 시공주니어, 1997.6.18.



어린 초피나무를 옮겨심으니 초피냄새가 엄청나게 퍼진다. 아무리 작아도 넌 틀림없이 나무야. 게다가 초피나무인걸.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면서 볕이 잘 드는 자리로 옮겼는데, 손에도 몸에도 초피내음이 물씬 밴다. 저를 눈여겨보고 햇볕하고 놀도록 옮겨서 기쁘다는 눈치이다. 순천 〈도그책방〉에서 장만한 《행복한 사자》를 피아노 곁에 한참 둔다. 오래된 그림책이지 싶은데 이야기가 알뜰하다. 사자를 비롯한 들짐승이나 숲짐승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 적에 즐거울까? 누가 저를 때리거나 치거나 죽일 걱정이 없이 날마다 넉넉히 밥을 누린다면 즐거운가? 저를 보겠다면서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려서 사진을 찍거나 손을 흔들면 즐거운가? 그런데 쇠기둥이 촘촘히 박힌 짐승우리(동물원)가 아닌, 바깥으로 사자가 어슬렁 나와서 ‘사자나라 말’로 사람들을 부른다면? 이때에도 사람들은 사자를 구경하거나 좋아한다고 얘기하려나? 사슬터에서는 어느 누구도 즐겁거나 홀가분하지 않다. 이곳에 있든 저곳에 있든 모두 마음으로 마주하는 동무로 사귈 적에 비로소 기쁘게 웃음짓고 즐거이 노래할 만하다. 나라에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들이밀려고 용쓴다. 바보같다. 돌림앓이가 아니어도 왜 사슬터로 몰아붙일까? 아이들은 삶을 누려야 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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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24.


《어린 당나귀 곁에서》

 김사인 글, 창비, 2015.1.15.



나는 한국외대를 다섯 학기 다니고 그만두었다. 이때에 참 미친놈이다 싶은 강사나 교수가 여럿 있었다. 턱도 없이 성추행 말을 일삼는 이가 있고, 그런 말이 대단하다고 여기며 문학스럽다고 여기는 이가 있으며, 옆구리에 여대생을 끼고 히죽거리며 돌아다니는 이가 있더라. 옆구리에 여대생을 끼고 히죽거리며 돌아다니던 이는 시내버스하고 길에서 마주쳤는데 모르는 척 달아나더군. 대학교수가 된 분이 쓴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읽는데 “긴 머리 가시내를 하나 뒤에 싣고 말이지 / 야마하 150 / 부다당 들이밟으며 쌍. / 탑동 바닷가나 한바탕 내달렸으면 싶은 거지(62쪽/8월)” 같은 시가 끝없이 흐른다.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는 길에 이런 글을 읽다가 창밖으로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이 정갈한 시골자락을 더럽힐까 싶어 차마 내던지지 않았다. 이런 시를 써야 대학교수이고 시인인가 보다. 이렇게 시를 써야 문학스럽고 자랑스러우며, 책으로 꾸며서 내주는가 보다. 이렇게 시를 써야 문학상을 받고, 이곳저곳에서 서로 치켜세우는가 보다. 그렇지만 교수 시인한테 한 마디를 들려주고 싶다. 그냥 쓰레기 같은데요? 시라는 무늬를 입힌 쓰레기 아닌가요? 철없는 시집에 추천글을 쓴 문학평론가 대학교수란 그 나물에 그 밥이겠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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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23.


《지역에 살다, 책에 산다》

 책마을해리 엮음, 기역, 2019.5.9.



아이들 옷을 몇 벌 새로 장만하려고 순천에 다녀온 길에 마을책집 〈도그책방〉에 들렀고, 《지역에 살다, 책에 산다》를 장만했다. ‘책마을해리’에서 엮은 책이고 전라도를 바탕으로 여러 고장 책터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서 갈무리했구나 싶은데, 뭔가 알맹이가 될 말이 나오려니 하다가 안 나오는구나 싶다. 마을에서 살며 책으로 살아가는 여러 사람을 만났다면, ‘마을책’이라는 대목을 깊이 파고들거나 넓게 돌아보면 좋을 텐데, 너무 서둘러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 싶고, 뭔가 목소리를 덜 담거나 빠뜨렸지 싶다. 이른바 만나보기를 해서 이야기를 들었으면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싣는 쪽이 낫다. 덜고 뺄 까닭은 없다. 먼발치에서 사뿐사뿐 마실하며 찾아가는 책터라면, 먼발치에서 그곳까지 마실하는 이야기를 담으면 된다. 그런데 어디에서 어디로 가든, 자가용 아닌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나 두 다리로 찾아가 보기를 바란다. 어떤 탈거리로 찾아가느냐에 따라 대단히 다르니까. ‘마을’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책터가 깃든 마을부터 느낄 노릇이요, 이 마을을 둘러싼 ‘책이 된 나무가 자라는 숲’이 어떻게 어우러지는가를 생각할 일이라고 본다. 모두 마을을 바라본다. 오늘 이 마을을 본다. 아이랑 어른이 어깨동무를 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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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22.


《엄마, 잠깐만!》

 앙트아네트 포티스 글·그림/노경실 옮김, 한솔수북, 2015.7.30.



이웃집 닭이 우리 집에 어떻게 들어왔을까. 마당에 불쑥 나타난 닭은 달아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다. 이웃집 닭우리는 이곳저곳이 다 막혀서 빛도 잘 들지 않고, 닭이 바깥을 볼 수 없으며, 날거나 걸을 만한 틈이 없다. 작고 어두운 곳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처음으로 본 바깥에, 또 처음으로 본 사람에, 스스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모른다고 느꼈다. 살며시 다가가서 쪼그려앉은 다음 등을 쓰다듬으니 가볍게 놀라면서도 손길을 반기네. 천바구니로 감싸서 안고는 마을을 몇 바퀴 돌았지만 이웃집 분들은 안 보인다. 저녁까지 우리 집에서 돌보다가 상자에 들어가도록 해서 이웃집으로 옮겨 주었다. 《엄마, 잠깐만!》을 가만히 읽어 본다. 아이 손을 잡고 바지런히 길을 나서는 어머니를, 또는 어머니 손을 잡고 느긋이 둘레를 살피는 아이를 다룬다. 둘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 어머니는 바쁘게 여러 곳을 살피고, 아이는 느긋이 여러 곳을 돌아본다. 둘 가운데 어느 쪽이 옳지 않다. 서둘러도, 천천히 가도 좋다. 아이가 어머니 말을 들으면서 함께 가듯, 어머니도 아이 말을 들으면서 같이 간다면, 서로서로 이야기가 흐르는 나들잇길이 된다면 참으로 즐겁겠지. 이야기가 흐르지 않는다면 캄캄히 갇힌 곳에 있는 셈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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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21.


《심호흡의 필요》

 오사다 히로시 글/박성민 옮김, 시와서, 2020.5.20.



우체국에 들를 일에, 곁님이 마실 커피를 장만하러 읍내에 가는 시골버스를 타고 가는데, 이웃 면소재지를 지날 적에 그곳 중학생이 우르르 탄다. 얼마나 시끄럽고 까부는지.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이렇게 우르르 몰려서 까불까. 여럿이 뭉쳤다는 생각에 까부는구나 싶은데 혼자 있다면 이렇게 못 하겠지. 혼자서 까부는 중·고등학생은 못 봤다. 학교란 무엇을 하는 곳일까. 학교를 왜 다닐까. 앞으로 학교는 어떻게 될까. 이제 석 달인데 아직 나라는 ‘입시’ 빼고는 배움길을 헤아리지 못한다. 전남뿐 아니라 여러 고장 교육청도 배움길하고 살림길을 아우르는 슬기로운 눈빛을 못 보여준다. 《심호흡의 필요》를 버스로 오가는 길에 읽었다. 학교에서 입시를 뺀다면, 어린이·푸름이한테 입시 아닌 길을 가르친다면, 무슨 이야기를 펼 만한가를 이제부터라도 숨을 고르면서 처음부터 새로 살펴야지 싶다. 까불쟁이로 굴다가 스무 살 무렵 큰고장으로 나가면 그만인 학교교육을 그대로 이을 터전일까. 스스로 생각하는 마음을 추스르면서 오늘을 새로 돌보는 눈망울이 되도록 하려는 터전이 될까. 이 시골에서 시골 어린이·푸름이더러 마늘밭 일손을 거들도록 하고, 찔레꽃을 따먹도록 하면 좋겠는데. 요즈막에 더더욱.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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