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4.21.


《아우내의 새》

 문정희 글, 난다, 2019.11.20.



해말림 쑥잎을 마시니 불로 덖은 쑥잎하고 확 다른 맛이다. 마땅하겠지요. 불을 써서 물을 확 빼면서 쑥내를 가둔 잎에서는 불맛이 서리겠지. 햇볕하고 바람으로 물을 확 빼면서 쑥내를 품도록 한 잎에서는 볕맛하고 바람맛이 감돌 테고. 해말림으로 쑥잎을 건사하자면 불판 앞에서 땀을 안 빼어도 되지만 훨씬 오래 해를 쬐어 주고 집안에 들이고를 되풀이한다. 시래기를 건사하거나 묵나물을 하는 손길이랄까. 그러고 보면 깊은 멧자락 샘물이나 골짝물을 마실 적에 다른 어느 물도 댈 수 없는 맛이 나는 까닭을 알겠다. 마른 잎이 물바닥에 깃들고 새잎도 물바닥에 깃든다. 물이끼는 다슬기나 물벗이 삭삭 훑어서 치운다. 해랑 바람이 갈마들면서 새랑 풀벌레가 노래해 준다. 이런 샘물이며 골짝물 맛을 어느 페트병 물이나 정수기 물이 따라가랴. 《아우내의 새》는 두 판째 새로 나온 시집이라 한다. 애틋한 발자취를 담았구나 싶으면서 살짝 아쉽다. 더더 스며들어 보면 어떠했을까. 애써 새로 펴내는 만큼 지난날하고 오늘날을 더욱 파고들어서, 시골자락 순이돌이가 어떤 풀을 먹고 어떤 나무를 오르며 놀고 어떤 바람을 마시면서 꿈꾸고 어떤 햇볕을 머금으며 일하고 어떤 숲에서 사이좋게 얼크러지는가를 좀더 헤아려 보았다면 어떠했을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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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4.19.


《2050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글/김재경 옮김, 추수밭, 2020.4.22.



드센 바람일는지 모른다. 시원스런 바람이거나 차가운 바람이거나 반가운 바람일는지 모른다. 바람은 늘 바람으로 불지만, 이 바람을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다 다른 마음이 된다. 봄이 깊어가는데 아직도 찬바람이라면서 툴툴대어도 되겠지. 여태 사람들이 서울바라기로 걸어오면서 망가뜨리거나 더럽힌 바람이 비로소 말끔쓸이를 하려고 불어대는구나 하고 여겨도 되겠지. 아무 생각이 없어도 될 테고, 차분하면서 조용하게 삶자리를 되새겨도 되겠지. 《2050 거주불능 지구》는 2050년쯤 되면 도무지 살 만하지 않을 이 별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엮는다. 굳이 2050년이란 이름을 붙인 뜻이라면, 올해가 2020년이기 때문일 텐데, 1950년이나 1970년에는 바로 2000년이나 2020년쯤 되면 몹시 끔찍한 별이 되고 말리라 걱정한 사람이 있었다. 1900년에는 1950년을 걱정했겠지. 1850년에는 딱히 앞날을 걱정하지 않았으리라. 1900년에 이르기 앞서는 제발 미친 우두머리나 싸울아비나 종살이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흘렀으리라. 스스로 즐겁게 하루를 누릴 적에는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면서 가볍다. 맛집을 찾거나 맛밥을 따지는 흐름이 커지는 모습부터 우리 삶이 하나도 안 즐겁다는 뜻 아닐까? 앞날이 즐거운 꽃나라가 되기를 꿈꾸어 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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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4.18.


《가극 소녀 2》

 사이키 쿠미코 글·그림/김명은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6.30.



우리 몸을 깨끗하게 하고 싶어서 씻는다면, 몸에 두르는 천조각인 옷도 깨끗하게 빨아야겠지. 마땅한 일일 테지만, 어른이란 자리에서 보기에만 마땅할는지 모른다. 아이는 몸이든 옷이든 굳이 씻거나 빨아야 하느냐고 여길 만하다. 갓난아기가 스스로 씻는 일이 없고, 혼자서 옷을 갈아입는 일이 없다. 그저 스스로 몸이 자라면서 구석구석 기운이 뻗을 뿐이다. 《가극 소녀》를 읽다가 생각한다. 일본에는 노래하고 춤으로 삶을 보여주는 마당에 서도록 가르치는 곳이 따로 있을까? 이런 배움터가 있는 나라가 여럿이다. 한국에도 이런 배움터가 있을는지 모르는데, 어른으로서 무엇을 가르칠 만하고, 어린이·푸름이로서 무엇을 배울 만할까? 우리 삶자리는 서로 무엇을 보여주거나 보면서 어우러지는 하루일까? 어느 한 가지를 솜씨있게 해내어 이름이나 돈이나 힘을 거머쥐도록 하려는 배움터일는지, 아니면 어느 한 가지를 깊고 넓게 익혀서 삶을 스스로 짓는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러운 길을 스스로 찾도록 북돋우려는 배움터일는지 생각해 본다. 인문계랑 실업계로 가르는 틀에 어떤 살림길이나 사랑길이 있을까. 교과서하고 졸업장에 진작부터 빠진 고갱이를 들여다보는 물결은 언제쯤 철썩철썩 춤출 만할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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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4.17.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 10》

 준코 카루베 글·그림/김기숙 옮김, 서울문화사, 2000.1.15.



어제 푹 쉬었다고 생각했으나 오늘 영 기운이 안 오른다. 선거 투개표를 지켜본다면서 너무 많은 사람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눈앞에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뭔 잘못을 저지르거나 말썽울 부리지는 않는가 하는 마음으로, 다시 말해 저이가 어떤 잘못·말썽을 일으키면 어떻게 말리거나 알려야 하느냐는 생각으로 지켜보는 일이었으니 기운이 쪽 빠졌구나 싶다. 이른바 ‘나쁜 기운을 쫓아내려는 눈’이니 지친다. 가만 보면 경찰이나 군대라는 곳은 언제나 ‘나쁜 기운’에 매이는 일이다. 국방의무란 이름으로 군대에 가는 젊은 사내는 갓 스물을 넘은 나이인데, 군인 얼굴을 보면 얼마나 늙어 보이는가 모른다. 웃을 수 없고, 웃어서는 안 되는, 즐겁거나 신나서는 안 되는, 억지로 무게잡아야 하는 데에서 있거나 일한다면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목숨을 갉아먹겠네 싶다.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 10》을 새로 읽었다. 이 만화책은 이렇게 열걸음으로 마무리를 지었다가, 이내 뒷이야기를 보태어 더 나온다. 1990년대 첫무렵 일본에서 장애인이 얼마나 따돌림이며 미움을 받는지, 그렇지만 그 틈에서 사랑이란 빛을 찾고 싶은가를 눈물겹게 그렸다. 2020년을 넘어선 이 나라하고 이웃 일본은 얼마나 사랑빛을 찾아나서는 몸짓일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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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4.16.


《편지 받는 딱새》

 권오준 글·김소라 그림, 봄봄, 2019.12.6.



요즘은 들길을 걷는 사람이 아주 띄엄띄엄 있다. 경운기에 짐차에 버스에 택시가 있으니 굳이 들길을 안 걷겠지. 마을길을 걷는 나들이가 조금씩 퍼지면서 골목길을 걷는 사람이 제법 늘었다. 그런데 골목이 밀려 아파트로 바뀌면서 골목을 마을살림으로 받아안을 수 있는 사람은 부쩍 줄었다. 늘 거니는 마을길이 아닌 어쩌다 거니는 자리랄까. 들길이며 숲길도 매한가지라고 느낀다. 시골에서든 서울에서든 곁에 들이며 숲이 넓고 푸르게 우거져 언제라도 푸르며 맑은 바람을 쐬는 이웃이 늘면 얼마나 좋을까. 선거 투개표를 지켜보는 일을 마친 이튿날 아침에 집으로 돌아가며 들길을 걷는다. 고흥에 유채꽃밭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은 없지 싶으니 이 고장에서는 굳이 갈아엎지 않는다. 뭐, 모내기를 할 적에 갈아엎을 테니까. 《편지 받는 딱새》를 큰아이가 마음에 들어 했다. 다만 마음에 들되 자주 들추지는 않는다. 큰아이 스스로 새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새랑 노는 하루를 손수 ‘온누리에 딱 하나만 있는 그림책’으로 빚으니까. 딱새 비둘기 참새 조롱이 제비를 비롯한 뭇새를 아끼는 마음이 퍼지면 좋겠다. 여느 살림자리에서도, 국회의원이 새로 된 이들이 일할 곳에서도, 다같이 새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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