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8.29.


《사다리 타기》

 다니카와 슌타로 글·모토나가 사다마사 그림·나카쓰지 에쓰코 엮음/한나리 옮김, 대원키즈, 2017.8.20.



자전거를 달려 면소재지를 다녀올 적마다 고샅 한켠에서 돋는 봉숭아를 보았다. 처음에는 누가 심으셨겠지만, 이내 봉숭아씨가 제힘으로 퍼져서 길가에 줄줄이 돋는구나 싶더라. 무엇보다도 개미가 꽃씨를 잘 심는다. 골목 귀퉁이나 가장자리나 돌틈에 피는 제비꽃은, 또 숱한 들꽃은 개미가 꽃씨를 물어 나르다가 놓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지. 지난해까지는 면소재지 봉숭아를 지나쳤는데, 올해에는 작은아이하고 씨주머니를 조금 훑는다. 작은아이는 집으로 돌아와 마당 곳곳에 씨를 뿌렸단다. 나도 이 씨앗을 돌틈에 슬슬 놓아 볼까 생각한다. 《사다리 타기》는 종이에 작대기를 죽죽 그어서 ‘사다리’를 이루면서, 이 사다리 끝에 그림을 그려서 어디로 이어가는가 하는 놀이를 다루는 그림책이다. 수수하지만 오랜 놀이인데, 요즈음 어린이도 이 놀이를 즐길까? 종이판 “사다리 타기”는 붓끝을 따라 이리저리 춤춘다. 나무 곁에 세우는 “사다리 타기”는 키가 껑충 자라면서 한결 멀리 높이 내다보는 길이 된다. 이제 슬슬 여름이 저무는 길목인데, 무화과나무 곁에서 사다리를 탈 날이 되겠구나. 모과나무 곁에서 모과알 따는 사다리도 탈 테고. 사다리를 밟고서 나무줄기 높은 데로 옮겨서면 나무가 한들한들 춤추면서 반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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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8.27.


《Mr. Rainbow 2》

 송채성 글·그림, 시공사, 2004.6.30.



지하철이 다니는 고장에서는 지하철을 그냥 탈 수 있는 나이를 예순다섯에서 일흔으로 올리려고 한단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피식 웃긴다. 시골에서는 여든이나 아흔이어도 시골버스를 탈 적에 언제나 삯을 치르거든. 지하철이 다니는 서울에서 살기만 하면서도 길삯을 치르지 않는다면, 이는 어르신을 섬기는 일인가? 이른바 ‘노인복지’인가? 그러면 하루에 몇 판 안 지나가는 시골버스 하나만 있는 고장에서는 어떤 ‘노인복지’가 있는가? 시골은 큰고장에 대면 택시삯도 훨씬 비싸다. 시골 할매하고 할배는 여태까지 길삯을 꼬박꼬박 내면서 살았다. 서울에서 ‘전철 그냥타기 나이’를 일흔으로 올리든 여든으로 올리든 아무것도 아니다. 여태 거저로 잘 누려 왔으니 앞으로는 좀 이웃을 헤아릴 노릇이라고 본다. 아니, 이제부터는 서울 할매 할배도 길삯을 내고 타면 좋겠다. 《Mr. Rainbow 2》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무지개라는 길을 가는, 아니 무지개라기보다는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꿈을 바라보는 줄거리를 다룬다. 우리나라에서 이 줄거리를 부드러우면서도 익살맞게, 또 웅숭깊이 다룬 매우 드문 만화였는데, 송채성 님은 일찍 하늘나라 별이 되었지. 별빛으로 반짝이는 그곳에서는 포근한 마음이시기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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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8.26.


《둥둥 둥둥둥》

 가브리엘 벵상 글·그림/햇살과나무꾼 옮김, 황금여우, 2015.1.25.



아침에는 선선하다가 이윽고 센바람. 그리고 바람이 걷히고 해. 이러다가 다시 센바람. 바야흐로 큰비. 마당에서 비놀이를 한다. 작은아이하고 둘이 비놀이를 누린다. 벼락처럼 쏟아지는 비에 몸을 맡기면 두두두두 북소리가 난다. 마당에 닿는 비가 물방울로 북을 치고, 등이며 머리이며 손발에 닿는 비가 물줄기로 북을 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온몸이 젖는다. 두 팔을 들고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하고 다른 빗물. 빗물하고 다른 바람. 이 비바람이 찾아들어 땅이며 몸을 어루만진다. 《둥둥 둥둥둥》을 펴면 북을 치고 싶다. 북을 치다 보면 《둥둥 둥둥둥》이 떠오른다. 채를 쥐고서 북을 칠 수 있고, 손바닥으로 우리 배를 북으로 삼아도 좋다. 마룻바닥이나 책상을 두들겨도 되고, 땅바닥이나 담벼락을 두들겨도 신난다. 흐르는 바람을 치는 바람북은 어떨까? 밤에 떨어지는 별빛을 톡톡 치는 별북은 어떨까? 멧자락에 앉아서 쉬는 구름을 통통 치는 구름북도 재미있겠지. 무엇이든 친다. 벼락이 치듯 북을 친다. 언제나 친다. 빗금을 치듯 말 한 마디마다 노랫가락을 슬슬 친다. 가브리엘 벵상 님 그림꾸러미를 곱게 여미어 펴낸 출판사가 반갑다. 그림으로 엮는 이야기는 이렇게 지을 수 있으면 된다. 이 나라 그림님이 좀 배우면 좋겠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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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8.25.


《머나먼 여행》

 에런 베커 그림, 웅진주니어, 2014.11.3.



저녁이 깊자 벼락이 친다. 아주 멀리서 친다. 부엌 창밖으로 내다보는데 반짝반짝하면서 아뭇소리가 없다. 소리 없는 벼락이란 참으로 멀다는 뜻이다. 돌개바람이 온다지. 요즈음 나라에서는 돌개바람이 온다고 하면 이런 걱정 저런 끌탕을 늘어놓기만 하는데, 큰비이든 큰바람이든 왜 찾아오는가를 생각하거나 제대로 짚는 적이 없구나 싶다. 예부터 이 땅은 때때로 큰비나 큰바람이 찾아들면서 자질구레한 것을 쓸어냈다. 나락이든 남새이든 비바람을 너끈히 이겨내었다. 오늘날 과일밭을 들여다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난날에는 나무가 스스로 자라는 결을 살펴 사다리를 놓거나 나무를 타서 열매를 땄으나, 오늘날에는 쇠줄로 나무를 친친 동여매고 가지를 모질게 쳐서 난장이로 억누른다. 열매만 굵게 달리도록 한다. 가벼운 바람에도 열매가 떨어지지만, 나무는 죽도록 앓으면서 눈물을 짓는다. 《머나먼 여행》은 빨간 빛깔을 그리는 붓 하나로 마음껏 나들이를 다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재미있구나 싶으면서도 아이가 다니는 곳은 하나같이 큰고장이다. 숲이라든지 별이라든지 하늘 너머는 생각을 못한다. 생각하는 대로 갈 테지. 생각이 닿지 않으면 어디로도 못 갈 뿐 아니라 아무것도 새롭게 이루지 못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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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8.24.


《가장 가까이 있는 말로·흙에 도달하는 것들》

 이은경·정나란 글, 2019.3.29.



전주에서 우리 책숲으로 찾아온 손님은 고등학교에서 우리말(또는 국어)을 가르친다고 한다. 전주 손님이 스스로 밝히기도 하지만, ‘국어 교사’는 ‘국어 시험을 잘 치르도록 이끄는 구실’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쓰는 말로 푸름이 스스로 생각을 새롭게 가꾸며 활짝 피어나는 길로 나아가도록 이바지하는 몫’이 되려면 입시지옥을 걷어치워야 한다. 나라에서는 고등학교 무상교육으로 나아가려고 하던데,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아직도 안 헤아린다. 아니, 이제는 학교가 거의 부질없는 판이 되어도 입시라는 틀을 안 버린다. 종살이·톱니바퀴에 얽매어 놓는 학교교육을 ‘그냥 누리도록’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사람다운 길을 이야기하고 누리는 배움터가 아니기에 ‘어른 말썽질을 흉내내는 어린이·푸름이 말썽질’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가까이 있는 말로·흙에 도달하는 것들》은 광주에 있는 마을책집 〈검은책방흰책방〉에서 내놓은 시집이다. 두 가지 시집을 하나로 묶었다. 재미있으면서도 말이 안 쉽다. 학교도 사회도 문학도 이 나라 모든 곳도, ‘말이 씨가 된다’는 뜻을 얄궂게 뒤틀거나 아예 모르는 채 쳇바퀴이지 싶다. 말이 살아야 생각이 살고, 말이 굴레에 갇혀 딱딱하면 생각도 굴레에 갇혀 딱딱하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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