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9.10.


《구름빵》

 백희나 꾸밈·김향수 빛그림, 한솔수북, 2004.10.20.



그림책 《구름빵》을 처음 보던 때를 떠올린다. 나는 ‘집’을 아리송하게 꾸몄다고 느꼈고, 슬레트지붕에 붉은벽돌에 일제강점기 창틀인 집에 살면서 사무직 회사원인 아버지가 나오는 대목이 알쏭하다고 느꼈으며, 2004년인데에도 ‘엄마 = 집안일, 아빠 = 바깥일’로 가르는 얼개가 못마땅했다. 곁님은 ‘빵굽기’랑 ‘부엌·마루 얼개’를 둘러싸고서 틀리거나 얄궂은 대목을 자꾸자꾸 짚었다. 아이들하고 이 그림책을 함께 보면서 ‘하늘을 나는’ 모습 하나만 마음에 들 뿐, 억지스럽고 엉성하구나 싶어 이내 책시렁으로 밀어두었고 굳이 더 들추지 않았다. 생각날개도 살림꽃도 이야기밭도 여러모로 모자라구나 싶었다. 둘레에서 이 그림책을 많이 읽더라도 ‘엉성하거나 아리송하거나 틀린’ 대목이 수두룩하다면 나로서는 아이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밖에 없다.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처럼 사랑스러운 꿈이라든지, 《칠기공주》처럼 아름다운 눈물이라든지, 《닭들이 이상해》처럼 슬기로운 노래가 흐르는 그림책을 아이하고 나누고 싶다. 백희나 님은 ‘저작물개발용역’ 계약을 했으면서 자꾸 ‘저작권’ 이야기만 언론에 흘린다. 왜 그러실까? 손수 출판사를 차리셨어도 ‘책짓기’에 얼마나 많이 손이 가는가를 아직 모르시나?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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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9.6.


《위반하는 글쓰기》

 강창래 글, 북바이북, 2020.6.5.



며칠 앞서 순천마실을 하는 길에 마을책집에 들러 《위반하는 글쓰기》를 읽었다. 글쓴이는 ‘글쓰기 비법으로 일컬어지는 소문을 점검하여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다’고, 또 ‘우리말에 대한 오해’를 풀겠다는데 ‘우리말을 잘못 아는’ 사람은 외려 이녁 같다. ‘글쓰기 비법’이란 아예 없다. 누구이든 학교·학원을 다니면 글이 망가진다. 누구라도 강의·수업을 들으면 글이 엉터리가 된다. 누구라도 책으로 배워서 글을 쓰면 겉멋으로 기운다. 저마다 달리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눈빛으로 스스럼없이 쓰면 될 글이다. 말을 옮기는 글이다. 말이란 우리 생각이다. 생각이란 우리 삶을 스스로 짓겠다는 꿈에서 자라나는 씨앗이다. 그러니까 다 다른 우리가 다 다르게 살아가는 결을 스스로 사랑하면서 바라보는 그대로 옮기면 글쓰기가 꽃핀다. 《위반하는 글쓰기》를 쓴 분은 ‘일제강점기부터 길들었고 학교·사회·인문에서 두루 쓰는 말씨라면 그냥 써도 된다’고 여기던데, 그냥 ‘글쓴이 이녁이 익숙하니 안 바로잡고 싶을 뿐’이로구나 싶다. 글쓴이 스스로 ‘비법 바로잡기’를 쓰면서, 그대 스스로는 낡은 틀을 붙잡는다. ‘오랜 수수한 말’인 ‘수저’가 한자말이라 하기에 한참 웃었다. ‘수저’가 뭔 얼어죽을 한자말인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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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9.5.


《고양이가 서쪽으로 향하면 1》

 우루시바라 유키/정은서 옮김, 대원씨아이, 2020.8.31.



책숲에 찾아온 분이 고흥하고 얽힌 여러 가지를 알아보신다고 한다. 고흥군립도서관이나 고흥문화원에 없는 몇 가지 책하고 고흥 시골버스에서 쓰던 버스표라든지 이모저모 보여준다. 구태여 ‘문화·역사·설화’ 같은 이름은 안 쓰면 좋겠다. 그저 ‘이야기’이다. 일제강점기나 조선 무렵 이야기도 있을 테고, 백제 무렵 이야기가 있을 테며, 따로 나라란 울타리가 아니던 아스라한 지난날 이야기가 있을 테지. 책으로 남거나 책으로 묶은 줄거리만 찾는다면 어느 고장에서든 그곳이 걸어온 길을 못 읽는다. 호미나 낫을 언제부터 썼을까? 호미하고 낫이 얽힌 자취를 낱낱이 밝힌 글은 얼마나 될까? 살림으로 누리면서 마음으로 나누려는 눈빛일 적에 비로소 ‘마을살림(지역 문화)’을 들여다보겠지. 낮에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 갈 적에 천등산 골짜기를 다녀온다. 촤랑촤랑 우렁차게 소리내는 골짝물을 첨벙첨벙 밟으며 낯을 씻으니 시원하다. 《고양이가 서쪽으로 향하면 1》를 반갑게 읽고 큰아이한테 건네었다. 올해가 지나가면 큰아이한테 《충사》를 읽어도 된다고 이야기할 생각이다. 우리 삶자리에서 피어나는 숱한 모습이란 꿈같을 수 있는데, 이 꿈이란 늘 우리 생각에서 오고, 우리 몸짓에서 자란다. 모든 이야기는 우리 곁에 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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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9.4.


《선생님, 더불어 살려면 어떻게 해요?》

 정주진 글·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20.9.1.



어린이 옷을 장만하러 순천으로 가는 길에 《선생님, 더불어 살려면 어떻게 해요?》를 챙겨서 읽었다. 큰아이 옷을 장만하려는 길이었는데, 큰아이는 “오늘 몸이 많이 힘들어. 안 가고 싶은데?” 하기에 “그래, 그러면 네가 좋아하는 빛깔을 알려줘.” 하고서 큰아이가 바라는 옷을 듣는데, 막상 순천에 가서 여러 가게에 들르는데, 긴옷이 없다. 더구나 어린이 옷은 늘어놓지도 않는다. 아아, 이렇구나. 옷집마실을 하려고 했으나 아니네. 셈틀을 켜서 사야 하는구나. 하기는, 몇 해 앞서부터 우리 형이 “옷은 인터넷으로 사지 그래?” 그랬는데. 2019년까지는 그래도 옷집을 찾아가서 아이들 옷을 골랐다면 2020년에는 영 아니다. 한 벌도 못 사고 다리만 퉁퉁 붓는다.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는 찻길에 가득한 전깃불빛에 자가용 불빛으로 눈이 따갑다. 아, 눈가리개는 안 챙겼는데 눈이 너무 아프다. 참으로 이런 나라에서 “더불어 사는 나라”를 그릴 만할까? “더불어 사는 나라”란 뭘까? 자가용도 아파트도 부동산도 없이, 오직 사랑과 꿈과 살림과 노래로 아이를 돌보는 길이 없다면, 이 나라에서 “더불어 살아갈” 길이 있을까? 이 책은 알차지만, 나라·사회·학교는 영 엉터리이지 싶다. 더불어 살려면 숲을 나눠야 할 텐데.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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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9.3.


《나무들의 어머니》

 지네트 윈터 글·그림/지혜연 옮김, 미래아이, 2009.1.25.



올해 날씨는 종잡을 길이 없다고 할 만하다. 이제 좀 그칠까 싶은 벼락비가 며칠이고 안 그치더니 이레나 열흘을 내리 퍼붓기도 하고, 이 장마가 그친 다음에는 볕이 좀 들까 싶다가 돌개바람이 몰아치는데, 돌개바람 하나가 지나가고서 얼마 있다가 새 돌개바람이 찾아든다. 나는 고흥에 살면서 다른 고장을 틈틈이 다니느라 여러 고장 다른 날씨를 지켜보는데, 보성이나 순천에서 비바람으로 뒤집어져도 고흥은 멀쩡하다. 순천까지 돌림앓이 걸린 사람이 꽤 퍼져도 고흥은 멀쩡하다. 그나마 ‘아직 고흥은 아파트도 적고 막삽질이 적’으니 그럴 만하지만, 고흥군수나 공무원은 막삽질하고 아파트를 밀어붙이고 싶어 안달을 낸다. 《나무들의 어머니》를 읽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시큰둥히 여긴다. 나무 이야기라면 ‘우리 집 나무’ 이야기가 재미있으니 그렇다. 우리 집에서 우람하게 자라는 나무, 그리고 아이들이 옮겨심거나 새로심는 나무가 재미있지. 아무튼 오늘은 큰바람 지나가고서 조용한 하늘이며 햇볕을 누리는데, 이내 다른 돌개바람으로 하늘을 가득 덮겠지. 큰바람이 칠 적에 나무 곁에 서면서 마음으로 묻는다. “어때?” “응? 나 춤추는 모습 보여?” “응.” “그래, 너도 춤 좀 춰 봐.” “그렇구나.” “알겠니?”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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