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5.


《로봇과 일자리》

 나이절 캐머런 글/고현석 옮김, 이음, 2018.3.27.



작은아이가 어제부터 “고구마가 있으면 좋겠는데, 아주 큰 고구마. 그러면 숯불에 구워먹게요.” 하고 노래한다. 오늘 낮 이웃 할아버지가 불쑥 찾아와서 “어, 최 선비, 맨날 애들한테 풀만 뜯어먹여서 애들이 크나? 괴기도 좀 먹여야지. 그리고 고구마도 좀 먹이소.” 하면서 한 꾸러미를 안기신다. 이웃 할아버지가 베푼 고구마는 내 팔뚝만큼 굵다. 작은아이 노랫소리가 이웃집까지 퍼졌을까? 해가 기울 즈음 작은아이는 가랑잎하고 대나무를 그러모아 불을 피운다. “재를 만들어야지! 재를 만들자!” 하고는 굵직한 고구마를 하나둘 묻는다. 한참 실랑이를 하는데 재가 썩 많지 않다. 처음으로 고구마굽기를 했으니 설익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 그러나 어떤가. 처음부터 끝까지 작은아이 혼자 건사하면서 고구마굽기를 했는걸. “다음엔 좀더 잘 구워야겠어.” 하면서 누나가 찐 고구마를 냠냠냠. “Will Robots Take Your Job?”을 옮긴 《로봇과 일자리》를 읽었는데, 책상맡에서 글을 살피는 이들은 이렇게 ‘글로 글을 낳는구나’ 하고 다시금 생각한다. 오늘날 로봇 아닌 살림이 얼마나 될까? 벌써 ‘로봇하고 함께 살아가는 길’이지 않나? 같이 누리고 함께 나아가려고 여기면, 풀꽃나무뿐 아니라 로봇하고도 얼마든지 이웃이 되리라 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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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4.


《좋아서, 혼자서》

 윤동희 글, 달, 2019.12.30.



빨래터 아랫샘을 치운다. 어제는 바람이 되게 셌지만 오늘은 보드랍다. 빨래터 윗샘도 치워야겠지만 다에날 하기로 한다. 복닥복닥 집일을 하고 마을일까지 마치고서 함씽씽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간다. 전주 이웃님이 손전화로 닭집 꽃종이(쿠폰)를 보내 주었는데 시골에서도 바꿀 수 있나 궁금하다. 마침 꽃종이 닭집이 고흥읍에 있고, 되는지 물으니 된단다. 두 아이하고 곁님을 헤아려 한 마리를 더 시킨다. 그런데 부피가 참 작다. 이렇게 작은가? 값은 제법 되는데? 그래 그렇구나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함씽씽이는 천천히 달린다. 굽이길을 느긋하게 가니 좋다. 건널목 하나조차 없는 시골길이니 느슨히 가도 느리지 않다. 아이들을 재우고 하루를 돌아보며 《좋아서, 혼자서》를 떠올린다. 2000년이나 2010년 무렵만 해도 이러한 말은 섣불리 하기 어려웠다면, 2020년을 넘어서는 이즈음에는 이 말씨가 제법 퍼진다. 마땅한 노릇인데 스스로 즐거울 길을 가야 맞다. 다른 눈치 아닌 스스로 마음을 읽으면서 가면 된다. 책쓴님은 서울에서 스스로 좋은 길을 가겠지. 부디 그 길이 멋길보다는 푸른길이면 좋겠는데, 남한테 이런 길을 바랄 까닭 없이 내가 선 이 자리에서 스스로 푸른길을 가면 되겠지. 시골 밤하늘은 미리내잔치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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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3.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글, 민음사, 2015.12.7.



마을책집을 두루 다니다 보면 비슷하게 꽂힌 책을 으레 본다. 이 가운데 《보건교사 안은영》이 있다. 언젠가 “그 책 재미있어요. 작가님도 좋아하실 텐데.” 하는 말을 들었지만 안 집었다. 몇 해 흘러 2020년 10월 전주에서 이 책을 비로소 집어서 펼친다. ‘오늘의 젊은 작가’란 이름이 붙는데, 오늘날 젊은 글님은 이러한 줄거리·얼거리·이야기가 재미있다고 느끼는구나. 선 채로 다 읽고서 얌전히 제자리에 놓았다. ‘퇴마’라든지 ‘마녀·마귀·악마’라든지 ‘마법사’ 같은 낱말을 혀에 얹거나 손에 놓는 분들은 그러한 빛이나 숨을 얼마나 보거나 느끼거나 맞아들일까? 나는 영화 〈식스센스〉를 보면서 끝없이 울었다. 그 영화에 나오는 아이는 내가 보낸 나날하고 비슷했기에. 영화는 ‘아이가 본 죽은 넋이 떨치지 못한 몸뚱이에 흐르는 핏자국’을 매우 부드럽게 그렸지만, 막상 ‘그들을 보는 눈’은 그렇게 ‘부드러운(?) 모습’이 아닌, 덜덜 떨밖에 없는 모습을 본다. 삶터(사회)·배움터(학교)에서 겪은 멍울을 살짝 익살스레 담는다고 하지만, 익살보다 눈물이 보이는 《보건교사 안은영》이던데, 모쪼록 마음을 폭 쉬고 달래면서, 맨발로 숲길을 거닐어 보시면 좋겠다. 숲바람은 모든 멍울을 씻어 주면서 새글빛을 알려준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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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2.


《비 오는 날에는 귀신이 나타난다》

 모로호시 다이지로 글·그림/고현진 옮김, 애니북스, 2019.10.25.



책숲 얘기글월(소식지)을 꾸민다. 지난달에 이어 겉뜨기(복사) 아닌 새로찍기(인쇄)로 한다. 지난달에는 열세 살 큰아이 그림을 담았고, 이달에는 열 살 작은아이 그림을 담는다. 두 아이 그림을 본 분들은 “어디서 그림을 배웠어요?”나 “누가 그림을 가르쳤어요?” 하고 묻지만, 아이들은 그저 스스로 그리고 싶어 스스로 붓을 놀리며 살아왔다. 어느 누구도 아이들더러 ‘이렇게 그려라’나 ‘저렇게 고쳐라’ 하고 말하지 않았기에, 이 아이들 그림은 매우 홀가분하다. 그림배움터 분들한테는 안된 말씀이지만, 그림님이 되려면 그림배움터를 다니면 안 되고, 그림스승을 두어서도 안 된다. 글님이 될 적에도 글배움터나 글스승이 없어야 한다. 밥을 맛있게 짓는 길은 그저 스스로 즐겁게 지으면 될 뿐이다. 글이랑 그림도 똑같다. 《비 오는 날에는 귀신이 나타난다》를 다 읽고서 제법 오래 책상맡에 쌓아 놓았다고 느낀다. 큰아이가 “아버지, 이렇게 잔뜩 쌓은 만화책 언제 치워요?” 하고 묻는다. 아아, 언제 치우려나? 이 만화책에 나오는 말씨를 갈무리해 놓아야 치울 텐데. 모로호시 다이지로 님이 빚는 만화에 나오는 ‘귀신’은 우리 이웃이자 동무이자, 바로 우리 스스로이기도 하다고 느낀다. 귀신이란 따로 없으니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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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1.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마 박쥐》

 G.바게너 글·E.우르베루아가 그림/최문정 옮김, 비룡소, 1997.4.20.



새달로 접어든다. 시월이 잘 흘렀고 새달도 잘 흐르겠지. 전주마실을 하고 돌아온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작은아이랑 달림이를 즐거이 타고, 앞으로 할 일도 가누다가 등허리를 펴려고 누워 노래꽃을 쓴다. 지난해 끝무렵부터 차근차근 쓰던 ‘풀꽃나무 노래꽃’을 제법 모았다. 처음 글머리를 잡을 적에는 이만큼 쓸 수 있나 아리송했으나 씩씩하게 쓰자고 여기니 어느덧 넘실넘실한다. 큰아이는 조금 벗어났으나 아직 덜 벗어났고, 작은아이는 아직 벗어나려면 더 기다려야겠구나 싶은 ‘밤빛’ 이야기를 들려줄 만한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마 박쥐》를 읽는다. 밤은 밤빛이고 낮은 낮빛이다. 낮이고 밤이고 무서운 때나 안 무서운 때가 아니다. 그저 다르게 흐르는 빛줄기인 줄 느끼면 좋겠지만, 만화나 영화나 책을 가까이하면 어느새 물들고 만다. 배움터를 드나들 적에도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지. 하양도 까망도 따로 없는 줄, 낮하고 밤은 그저 겉모습일 뿐인 줄, 마음으로 바라보면 언제나 꿈이랑 사랑 두 갈래만 바라보며 나아가는 즐거운 길이 되는 줄, 부디 어른부터 고이 품고서 아이들한테 들려주면 좋겠다. 가만 보면 아이들은 멀쩡한데 둘레 어른이 “아이, 무서워!”나 “아이, 징그러!” 하면서 아이들을 엉뚱하게 이끌고 만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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