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9.27.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최영미 글, 이미, 2019.6.26.



서울에서 아침을 맞는다. 경북 상주에 있는 ‘푸른누리’로 간다. 잿빛집으로 가득한 서울은 나무나 풀이 살 틈이 매우 좁거나 없다. 잿빛이 너울거리기에 풀빛은 숨을 죽이고, 이 고장을 벗어날 즈음부터 빛깔이 잿빛에서 풀빛으로, 또 하늘빛으로 바뀐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는 곳에서 늘 잿빛을 마주한다면, 사람들 마음에 어떤 숨빛이 흐를까? 퍽 오래 푸른길을 걸어온 어른들이 모여 ‘우리말 새뜸’을 놓고 이야기한다. ‘새뜸’은 ‘신문’을 가리키는 새말이라지.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매우 어울린다. ‘신문’뿐 아니라 “새로 뜬다”를 나타낼 터이니 ‘개안·개벽·달관’ 같은 말씨도 풀어낼 만하다. 저녁에 청주로 건너가서 길손집에 드는데, 3만 원을 받는다. 어제 서울 길손집은 39000원을 받으면서 아주 싸게 준다고 티를 냈는데, 청주는 아무 티도 없이 훨씬 넓고 시원하며 깨끗하다.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을 읽었다. ‘En시인’하고 얽힌 노래는 매서우면서 포근하게 어루만지는 글월이라면, 다른 노래는 좀 싱겁다. 들쑤시고 쳐들어오는 ‘그들’을 놓고는 글이 빛나는데, 여느 삶을 노래할 적에는 어쩐지 글힘이 없다. 싸울 적에 빛이 나도 나쁘지 않지만, 살림할 적에 노랫마디가 모두 너른 사랑이라면 좋겠는데.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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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9.26.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3》

 우미노 츠나미 글·그림/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9.10.25.



아침에 길을 나서려고 밤새 여러 일을 끝내려 하지만 못 끝내는 일이 꽤 된다. 자, 자, 느긋이 가자고. 못 끝내면 다음에 끝내자. 하루치기로 몰아서 끝내려 하지 말자. 빨리빨리 갈 길이 아닌, 노래하며 갈 길이잖니. 한밤에 두 시간쯤 눈을 붙인다. 두 시간 눈을 붙이니 새로 기운이 솟는다. 쏟아지는 별을 올려다본 뒤에 어깨를 펴고서 짐을 추스른다. 아침에 일찍 깬 작은아이가 “아버지, 이제 가게요?” “응, 보라가 오늘 이모저모 살림 잘 가꾸면 좋겠어. 아침에 빨래도 해보고.”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3》을 읽었다. 어느덧 석걸음을 읽는데 첫걸음처럼 와닿지는 않는다. 줄거리가 풀렸다고 할까. 확 느슨하달까. 달아난다고 해서 부끄럽지도 창피하지도 않다. 아니 ‘달아나기’란 무엇일까? 용을 써도 안 되기에 뒷걸음을 하고서 가만히 앉아서 지켜봐도 좋다. 온힘을 다했는데 그만 힘이 쫄딱 빠졌으면 벌러덩 자빠져도 좋다. ‘안 되면 되게 하라’ 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꿈을 바라보며 가자’처럼 말을 돌리면 좋겠다. 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닌, 우리가 스스로 지피면서 가꿀 꿈길인가 아닌가를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면 넉넉할 테지. 서울에 닿아 책집 네 군데를 돌고 길손집에 깃든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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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9.25.


《공원 아저씨와 벤치》

 다케시다 후미코 글·스즈키 마모루 그림/사과나무 옮김, 크레용하우스, 2001.7.10.



이튿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먼저 서울에 들르고, 다음날 상주에 가서 바깥일을 보고, 그날 저녁은 청주로 건너가소 하루를 묵고, 그다음날 비로소 조치원을 거치고 순천을 지나 고흥으로 돌아오지. 집에서 할 일이 여럿인데, 하나씩 마무르기로 한다. 아침 일찍 바깥마루에 옻바르기를 한다. 이다음에는 이웃밭으로 넘어간 나뭇가지치기를 한다. 이러고서 우리 집 마당나무 가지치기를 하고는, 고샅길 풀베기를 한다. 마무리로 마당을 쓸고 치운다. 아, 하루가 기네. 바깥일을 보고 와서는 무화과나무 옆으로 무너진 돌담을 새로 쌓아야겠고. 저녁에 비로소 쉰다. 아이들은 마당에 천막을 치고서 바깥에서 잔다며 시끌시끌하다. 《공원 아저씨와 벤치》을 새삼스레 읽는다. 마을을 이루면서 지내는 따스하고 즐거운 살림길을 포근하게 담아낸 그림책이라고 본다만, 어쩐 일인지 이 그림책은 일찌감치 판이 끊어졌다. 어렵게 찾아냈다. 마을을 살리는 길이라면 이 그림책을 펴면 된다. 나라살림이건 고을살림이건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저씨랑 아이들처럼 까르르 깔깔 놀고 어우러지고 나무 곁에서 푸른바람을 누리면 된다. 사랑스레 사는 길은 안 어렵다. 사랑인걸.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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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9.22.


《강아지가 된 칼렙》

 윌리엄 스타이그 글·그림/최순희 옮김, 느림보, 2005.11.25.



순천 헌책집 〈형설서점〉 지기님이 찾아오신다. 여러모로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백년가게’란 이름으로 나라에서 이바지하려는 일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형설서점〉은 1982년부터 이어온 책집인데 거의 마흔 해에 이르는 책살림이다. 올해까지 서른아홉 해라면 앞으로 고이 이어 머잖아 온해(100해)에 이를 만한 터전이라고 본다. 헌책집이 ‘백년가게’ 이름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밤새 생각을 기울여 글종이 25쪽 부피로 글 하나를 여민다. 마을새책집도 마을헌책집도 거의 안 다니다시피 하는 벼슬아치(공무원)가 책집·마을책집·헌책집이라는 얼거리를 읽고 느껴서 생각하도록 글을 쓰자니 만만하지 않다만, 다 쓰고 나니 보람차다. 《강아지가 된 칼렙》을 두고두고 읽는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그냥 읽고, 나중에는 아버지가 몽땅 글손질한 책을 새로 읽는다. 어린이책인데 옮김말은 참으로 아쉽다. 윌리엄 스타이그 님은 틀림없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풀어낸 영어’를 썼을 텐데, 어째 우리말로 옮길 적마다 얄딱구리한 번역 말씨에 일본 한자말이 춤춘다. 칼렙이란 사람이 곁님하고 나누는 따사롭고 깊은 사랑을 헤아리면서, 둘이 마음으로 지필 살림을 들려주는 아름책인데.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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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9.24.


《나의 작은 화판》

 권윤덕 글, 돌베개, 2020.5.29.



오늘도 반딧불이를 만난다. 몇 해 만에 반딧불이를 다시 만나고 보니 하루가 새롭고 저녁을 설레며 기다린다. 지난 몇 해를 돌아보자면, 고흥이란 고장은 갈수록 농약을 엄청나게 뿌리고, 비닐집하고 유리온실하고 큰헛간이 끝없이 늘어날 뿐 아니라, 멧자락이나 기스락까지 햇볕판이 치고 들어온다. 고흥이나 우리 책숲에 오는 분들은 고흥 곳곳에 끔찍하도록 퍼진 ‘태양광 판넬 더미’를 보고는, 또 이 햇볕판을 박으려고 멧자락을 사납게 파헤친 자리를 보고는 혀를 내두른다. 다시 말해, 깨끗한 시골일 적에는 마을에서도 반딧불이가 날았으나, 돈벌이를 앞세워 드론이나 무인헬기로 농약질을 해대는 곳에서는 반딧불이도 제비도 싹 죽는다. 《나의 작은 화판》을 읽었다. 애쓴 걸음걸이를 차곡차곡 여미셨네 싶다. 그런데 살짝살짝 아쉽다. 그다음 그림책을 지으려고 숨돌리고 그림감을 찾는 나날을 보내기보다는, 스스로 ‘살림짓는 즐거운 숲길’이라면 좋을 텐데. 권윤덕 님이 선보인 《꽃할머니》는 줄거리를 넘어선 이녁 마음빛이 스며들어서 고왔다고 본다. ‘하고 싶다’는 생각도 나쁘지 않지만 ‘사랑하고 싶다’라든지 ‘사랑노래로 숲이 되자’는 생각으로 거듭난다면, 옷이나 연장이나 총을 다루는 그림책이 확 달랐으리라 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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