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25.


《족제비》

 신시아 디펠리스 글/박중서 옮김, 찰리북, 2020.4.30.



비가 올 듯하더니 먼지잼으로 그친다. 먼지잼도 반갑다. 비도 즐겁다. 구름이 끼어도 산뜻하고,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다. 겨울바람이 무어 시원하느냐고 핀잔하는 분이 있으나, 춥다고 여기니 춥고 시원하다고 맞아들이니 시원할 뿐인데. 쉬엄쉬엄 하루를 살며 아이들하고 함께 밥차림을 편다. 느긋이 살림을 꾸리면서 돌아보노라면, ‘아이한테 밥을 대단히 멋지게 차려줄’ 일이 아닌, 아이하고 함께 이모저모 만지고 다듬으면서 천천히 차려서 함께 누리고 치우면서 쉴 노릇이다. 《족제비》를 읽었다. 미국에서 무슨 보람(상)을 받았다고 한다. 앙갚음 아닌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길을 차분히 그렸으니 보람을 받을 만하다. 다만, 더 깊고 넓게 다룰 대목을 휙휙 지나쳤다. 이를테면, 아이가 숲에서 밤길을 지날 적에 보고 느끼는 이야기를 그저 ‘두려움’으로만 풀어내는데, 마을하고 아주 먼 곳에서 집짐승을 돌보고 숲짐승을 마주하는 아이들이 ‘밤숲 = 두려움’으로 여길까? 아리송하다. 별이 반짝이는 밤을, 밤새가 노래하는 밤을, 또 밤이 걷히고 밝는 새벽을, 새벽이 지난 아침을, 거의 못 그렸다고 느낀다. 줄거리는 알뜰하되 숲사람(북중미 인디언)이 품고 자라며 살아온 푸른길은 거의 못 그렸다고 느낀다. 글을 숲에서 썼다면 달랐겠지.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24.


《달님, 거기 있나요?》

 오치 노리코 글·메구 호소키 그림/유문조 옮김, 스콜라, 2017.5.31.



찌뿌둥하지만 우체국을 다녀온다. 부칠 책에 넉줄글을 적고 자루에 담고 등짐을 메고 시골버스를 탄다. 나는 책집으로 마실을 다니기를 즐기고, 아이들하고 숲하고 바다로 마실을 즐거이 다니며, 온하루가 새롭게 마음마실이라고 느낀다. 모든 마실은 “틈하고 틈을 잇는 길”이라고 여긴다. 책집은 책을 사이에 놓고서 우리가 새롭게 마주하는 길을 잇는 숨결을 느끼거나 헤아리거나 나누는 터전이리라. 《달님, 거기 있나요?》를 읽었다. 달님 아닌 별님을 다루면 제대로 빛나리라 생각한다. 이미 나온 그림책을 어찌하겠느냐만, ‘달’은 “돌지 않는다”고 해야 맞을 테지. 해도 푸른별도 뭇별도 “돌면서 빛나는 터”인데, 달만큼은 돌지도 빛나지도 않는다. 삶터에 퍼진 겉치레를 걷어내기까지는 오래 걸릴 만하다. 배움터를 오래 다니거나 책을 많이 읽더라도, 다들 ‘좋아하는 것’만 보거나 들으려 하지 않나? 좋고 싫고를 떠나 스스로 마음눈을 뜨면서 사랑눈을 틔우는 길을 가야 비로소 속으로 빛나는 삶을 지어 어느새 환하게 노래할 텐데. 스무 살 적에 누가 “좌파나 우파나 본질은 같아.” 하고 말해서 “그런가?” 하고 지나쳤지만, 곰곰이 생각했다. 말밑을 캐니 ‘왼·오른’은 한뿌리이다. 보이는 자리만 다를 뿐, 둘은 같더라.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23.


《얼간이 봉봉 DIY 하우스 1》

 네무 요코 글·그림/심이슬 옮김, 삼양출판사, 2021.6.18.



오늘은 폭 쉬려고 하지만, 쉬고 나면 슬슬 일어나서 일하고, 또 일하고 나서 다시 쉬고, 어제그제 그끄제에 걸쳐 작은아이랑 돌아다닌 얘기를 곁님하고 큰아이한테 들려주고, 다시 쉬고 눕고 일어나서 일하고. 조용조용 하루를 보낸다. 새소리하고 바람소리를 듣는다. 구름빛하고 겨울잎빛을 바라본다. 《얼간이 봉봉 DIY 하우스 1》를 읽었다. 네무 요코 님이 선보이는 그림꽃은 꼬박꼬박 챙겨서 읽는데, 곰곰이 보면 이녁 모든 그림꽃은 줄거리하고 얼거리가 똑같다. 누구라도 ‘똑같은 줄거리·얼거리’로 글이나 그림이나 빛꽃을 펴리라 본다. 속은 똑같되 ‘이야기’만 바꾸거나 가다듬거나 새롭게 짜서 들려준달까. 이웃한테 들려주거나 나누려는 생각이며 뜻이며 사랑이며 꿈은 늘 같은 줄거리라고 할 테고, 이 줄거리에 입히는 이야기가 새롭거나 다르다고 하리라. 나는 우리나라 빛그림(영화·연속극)을 아예 안 본다. 살섞기·좋아하기·싸움을 줄거리뿐 아니라 이야기로까지 삼되 정작 사랑도 꿈도 삶도 드러나지 않는다고 느낀다. 〈친구〉를 비롯해 〈오징어게임〉까지 하나도 안 봤으나 〈효자동 이발사〉는 봤네. 어린이하고 나란히 앉아서 생각을 살찌우고 삶을 새롭게 그리는 이야기가 흐르는 빛그림이 아니면 보고픈 마음이 없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22.


《감자 아이》

 조영지 글·그림, 키위북스, 2022.1.5.



서울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고흥으로 돌아갈 버스때를 어림하면서 길손집에서 나온다. 작은아이는 “서울엔 새가 없어. 서울은 아침이어도 아침인 줄 알 수 없어. 서울은 밤에 별이 없고, 아침에 해를 보기도 어려워.” 하고 얘기한다. “그래, 서울에는 길에 가게에 부릉이에 높다란 집에 사람물결은 있는데, 막상 새도 별도 해도 없네. 하늘하고 구름마저 다 가리는구나. 그렇지만 우리가 새하고 별하고 해하고 구름을 바라고 마음에 품으면 땅밑에서도 볼 수 있어. 서울에 있는 이웃도 느낄 테고.” 하고 속삭이고서 〈글벗서점〉에 들러 책을 잔뜩 장만한다. 이윽고 한낮에 버스를 타는데 고흥엔 별이 돋는 저녁에 닿는다. 비로소 오늘 첫끼를 느긋이 누린다. 《감자 아이》를 되읽는다. ‘감자’란 모습으로 오늘날 어른아이를 나란히 빗댄 줄거리일 텐데, ‘씨감자(싹감자)’이면서 다른 씨감자를 닦달하는 모습은 누구를 닮았다고 할 만할까? 똑같이 넓게 닦은 밭뙈기에, 똑같은 크기와 모습을 가려서 ‘좋거나 나쁘다’로 가르는 몸짓은 누구랑 같다고 할 만할까? ‘좋다 나쁘다 = 옳다 그리다 = 맞다 틀리다’로 잇닿는다. 사람들은 ‘다름(다양성)’을 말하면서도 정작 ‘다른 소리’를 된통 닫아건다. 온갖 새소리가 없다면 이 별은 죽음이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21.


《일곱 가지 핑계》

 황훈주 글·사진, 월간토마토, 2021.11.30.



어제 작은아이하고 책집마실을 나섰다. 수원에서 들르려던 〈탐조책방〉은 오늘 못 가고, 군포로 건너가 〈터무니책방〉에 닿는다. 일찍 왔기에 가까운 어린이쉼터로 가서 그네놀이를 한다. 문득 생각하니 시골 어린배움터에 그네가 없더라. 우리 집 한켠에 그네를 놓을 수 있을까. 낮에 서울로 들어서며 〈카모메그림책방〉하고 〈소요서가〉를 들른다. 은평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하고 〈책방 시나브로〉도 갈까 했으나 그만둔다. 신촌 〈숨어있는 책〉까지 들르고서 길손집에 깃든다. 작은아이가 오늘 하루 잘 걷고 함께 다니며 애썼다. 서울 벗님을 길손집에서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했다. 《일곱 가지 핑계》는 대전 마을책집 일곱 곳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수하면서 조촐히 엮었구나 싶은데, 마을책집을 다루는 글이 엇비슷하다고 느낀다. 다들 ‘책손’이 아닌 ‘만나보기(취재·인터뷰)’를 너무 생각한다. 책집에 갔으면 그곳에 있는 책을 둘러보고 읽다가 사면 된다. 이렇게 책집마실을 하면 저절로 이야기가 피어나고, 그 마을책집이 그 마을 한켠에서 어떤 몫을 하면서 징검다리이자 쉼터인지 느낄 수 있다. 책집을 다녔으면 그 책집에서 장만하거나 읽은 책을 나란히 이야기해야 어울릴 텐데, 책을 안 사면서 책집을 알 수 있을까?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