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30.


《호꼼 꼴아봅서》

 제주 애월 수산리 어르신 글·그림, 책여우, 2021.10.9.



빨래를 한다. 늘 하는 일이지. 밥을 차린다. 언제나 하는 일이지. 노는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는다. 노상 노래하는 하루이지. 마당에 놓은 능금을 쪼는 새를 본다. 신나게 쪼고서 날아갈 때까지 기다린다. 문득 날을 어림하니 곧 설날이다. 설 언저리는 읍내가 붐빌 테니 오늘 다녀오기로 한다. 지난해 가을에 제주마실을 하면서 받은 《호꼼 꼴아봅서》를 자리맡에 석 달 남짓 놓고서 틈틈이 되읽었다. 시골(제주) 할마씨 글이며 그림이 눈물겹고 아름답다. 어느새 전라남도란 시골에서 열두 해째 맞이하는 살림이다 보니 요새는 ‘할머니·할매’라는 말보다 ‘할마씨’란 전남 사투리가 입에 찰싹 붙는다. 그렇다. 사투리는 그 고장을 살아내는 사이에 시나브로 물들면서 피어나는 말빛이다. 기쁘든 슬프든 삶이라는 길로 받아들여서 일구고 짓는 하루에 저절로 태어나는 말인 사투리를 나라 곳곳 이웃님이 곱다시 사랑한다면 이 나라는 참말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인천에서 나고자라고서 서울에서 아홉 해를 살다가 강원도에서 이태 남짓 싸움살이(군대생활)를 하고 충청도에서 너덧 해를 살며 부산사람하고 한참 어울리다가 전라도에서 살아가는 터라 내 말씨는 뒤죽박죽인데, 곰곰이 보니 ‘낱말책(사전)을 쓰기에 어울리는 길’을 왔지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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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29.


《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글/박찬원 옮김, 문학동네, 2020.1.8.



조용히 쉬면서 해를 본다. 오늘치 일을 신나게 하고서, 집안일을 기쁘게 하고서, 마당으로 나와 구름을 본다. 바깥마루에 누워 해를 쬐고 바람을 마신다. 저녁에는 가만히 별을 그린다. 날마다 빼곡하게 숱한 말을 갈무리하는 말꽃짓기(사전편찬)를 하노라면 머릿속은 온통 낱말춤이라 할 테지만, 가벼이 해를 보고 풀잎을 쓰다듬고 나무한테 기대어 바람을 쐬노라면 훌훌 날아가서 호젓하다. 낱말책은 ‘글을 담는 꾸러미’가 아닌 ‘말을 담는 꾸러미’이다. 여태까지 숱한 사람들(글바치)은 오직 ‘글만 쳐다보면서 낱말책을 엮었’는데, 이러다 보니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갈고닦으면서 펴고 나누는 길하고 동떨어졌다. 《작은 것들의 신》을 되읽었다. 2000년에 처음 읽다가 “아, 뭔 글을 이렇게 어렵게 옮겨?” 하고 한숨을 쉬고는 내려놓았다. 스물두 해가 지난 오늘 새 옮김판으로 읽으면서도 한숨은 새삼스러웠다. ‘작은이 하느님’은 무엇일까? 무엇을 작거나 크다고 가르는가? 누가 크고 누가 작은가? 살섞기하고 사랑은 어떻게 다른가? 마을하고 서울은 어떻게 등지는가? 무엇이든 꾸미다 보면 속빛하고 멀다. 가꾸고 돌보면서 고이 안는 숨빛이기에 비로소 환하게 퍼지는 삶을 노래하리라. 묵은책은 이제 굳이 들추지 말자.


#TheGodofSmallThings #ArundhatiRoy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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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28.


《사서의 일》

 양지윤 글, 책과이음, 2021.2.10.



서울 손님이 찾아온다. 서울에서 일하며 지내는 삶이 이제 너무 괴로워서 그만 서울을 떠나려 한다며, 바다가 어울린다고 여겨 바다를 늘 바라볼 만한 곳을 헤아리면서 남해부터 완도 사이를 죽 다니시는 길이라 한다. 우리가 이 시골에서 집을 장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시골사람이 서울사람(도시 귀촌인)한테 어떤 바가지를 씌우는지를 알려주고, 시골집을 빌릴 생각은 버리고 살 생각을 하라고 말한다. 빌려서 살 만하게 고쳤다가 집임자한테 쫓겨나는 사람이 수두룩한 곳이 시골이라고, 시골에서는 집값을 안 치고 땅값만 치니, 스스로 바라는 터전을 살피고, 무엇보다 냇물이나 샘물을 누리는 곳이 아니라면 굳이 시골로 갈 까닭이 없다고 귀띔한다. 이러고서 서울 손님은 두 아이하고 조잘조잘 온갖 삶노래를 주거니받거니 한다. 《사서의 일》을 읽었다. 책숲(도서관)이라는 곳에서 일한 나날을 조곤조곤 갈무리했다. 책숲지기하고 책집지기 목소리는 늘 반갑다. 다만 책결을 스스로 좁게 가두지 않기를 빈다. 책숲이든 책집이든 어른책만으로는 우리 앞길이 캄캄하다. 어린이책하고 푸름이책을 함께 사랑하면서 품는 눈빛을 가꾸어야지 싶다. 어린이랑 나란히 앉아 누릴 책이 밑바탕으로 서야 비로서 어른책을 곁에 조금 놓을 만하다고 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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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27.


《내가 지구별에 온 날》

 나비연 글, 있는 그대로, 2020.11.11.



먼지구름·먼지하늘이 오늘 아침도 잇는다. 고흥이 이만큼이면 광주나 목포나 서울이나 부산은 아주 끔찍하리라. 우리 스스로 풀꽃나무·숲을 비롯해 풀벌레·새·곰·범·늑대·여우·개구리·뱀 모두를 잊어버리기에, 이 모든 숨결이 바스라지면서 먼지가 될는지 모른다. 뚝딱터(공장)에서 뿜어내는 매캐한 기운으로도 먼지구름이 생기지만, 우리 스스로 짓밟은 풀꽃나무하고 숲이 아프게 숨지면서 먼지로 사라져서 하늘을 맴돈다고 느낀다. 조용히 읍내로 나갔다가 호젓이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삼월이 오면 이 시골버스를 타는 푸름이가 늘 테지만, 겨울에는 그야말로 손님이 없다. 내가 안 타면 버스지기 혼자 돌아다니는 판이라고 느낀다. 《내가 지구별에 온 날》을 읽었다. 첫머리를 열며 펼친 푸른기운을 끝까지 이으면 한결 아름다웠을 텐데, 사이사이에 슬쩍슬쩍 헤맨 듯하다. 다른 눈치를 볼 일이 없이 오롯이 ‘푸른별’을 마음에 품고서 ‘푸른길’을 ‘푸른씨앗’으로 토닥이노라면 저절로 ‘푸른글’이 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요 몇 해 사이에 읽은 노래꽃(동시) 가운데 가장 돋보인다. 푸른글을 쓰려는 이웃님이 있구나. 오늘은 며칠 만에 별을 본다. 한밤에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 곁에서 빙글빙글 돌며 별바라기를 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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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26.


《the North American Indian》

 Edwrad S.Curtis, Taschen, 2016.



에드워드 커티스 님은 1868∼1952년을 살았고, 1907∼1930년에 텃사람(북중미 토박이)를 빛꽃으로 담았다고 한다. 이렇게 담아낸 빛꽃을 어마어마하게 갈무리해서 남겼고, 이 가운데 716자락을 간추려 《the North American Indian》이 새로 나온 적 있다. ‘에드워드 커티스’란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물되 ‘인디언 사진’이라면 거의 다 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이이 빛꽃을 오래도록 훔쳐서 썼다. 어제그제에 이어 오늘까지 별을 못 본다. 비가 올 듯 말 듯하기도 했지만, 이보다는 먼지로 뒤덮은 하늘이라서 고흥에서조차 별을 못 본다. 나는 곁님하고 아이들이랑 멧새노래를 누리고, 풀벌레랑 어우러지고, 냇물을 마시고, 미리내를 날마다 보고, 싱그러운 바람으로 온몸을 간질이면서, 포근한 해님을 품으려고 두멧시골에서 산다. 이런 두멧시골에 나날이 부릉이(자동차)에 잿빛(시멘트)이 마구 쳐들어온다. 시골 읍내에 가면 군청을 도청보다 크게 지었을 뿐 아니라, 군청 앞에 잿빛집(아파트)이 빼곡하게 새로 들어찬다. 다른 시골도 비슷한 판이다. 서울을 더 못 키우니 시골을 잡아먹는데, 이렇게 들빛하고 숲빛이 잡아먹히는 나라에서는 숲사람·텃사람 숨결이나 마음이나 이야기도 차츰 잊히면서 스스로 사람됨을 잃어버릴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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