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6.23.


《자갈자갈》

 표성배 글, 도서출판 b, 2020.6.16.



저녁에 아이들을 재우고서 조용히 사전쓰기를 한다. 이 낱말 저 낱말 사이를 누비면서 실타래를 풀고 수수께끼를 엮다가 부스럭 소리를 듣는다. 지네인가? 아닌데, 지네는 이런 소리를 안 내는데? 꽤 큰아이가 들어온 듯한데 누구일까? 부스럭 다음에는 보스락 소리이다. 내가 부스럭 소리를 들은 줄 눈치챘나 보다. 아니, 큰소리를 낸 아이는 지레 놀랐구나 싶다. 두리번두리번하니, 아하 아주 큰 거미 하나가 있다. 어쩜 이렇게 커다란 거미가 들어왔을까? 아니면 우리 집에서 허물벗기를 하다가 이만큼 자랐을까? 바깥으로 내보내 준다. 낮나절에 읽은 《자갈자갈》을 떠올린다. 공장일꾼인 노래님이 선보이는 새로운 시집이다. 공장에서 길어올리는 산뜻한 노래가, 공장하고 집 사이에서 얼크러지는 싱그러운 노래가, 집이랑 공장 언저리에서 마주하는 사랑스러운 노래가 한 올 두 올 퍼진다. 이 시집을 읽다가 노래님이 ‘딸바보’인 줄 처음으로 깨닫는다. 그러셨구나. 딸바보란 딸사랑이란 뜻. 딸사랑이란 아이사랑이란 얘기. 아이사랑이란 곁님하고 지피는 하루를 사랑한다는 말일 테지. 사랑이란 어떻게 태어날까. 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다 다르게 피어나는 이 사랑이라는 꽃은 우리 하루를 얼마나 눈부시도록 밝혀 주는가. 잘 읽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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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6.22.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박유희 글, 책과함께, 2019.10.27.



4월에 첫 매화알을 훑었고, 알이 더 굵기를 기다려 5월에 두벌 매화알을 훑었다. 바야흐로 6월에 세벌 매화알을 훑는다. 4월보다는 5월에, 5월보다는 6월에 매화알이 굵다. 6월 매화알은 오얏만큼 굵다. 맨발로 나무타기를 하면서 훑었다. 목에 천바구니를 걸고서 나무를 몸으로 감싸듯이 안고서 슬슬 오른다. 맨발에 웃통을 벗고서 나무를 쓰다듬는다. 나무가 찰랑찰랑 춤추면서 반긴다. 목걸이 삼은 천바구니가 매화알로 묵직해서 목이 아프면 나무 밑에 있는 작은아이를 불러서 비워 달라고 이른다. 아침볕을 누리면서 작은아이하고 매나무랑 놀았다. 꽃나무는 꽃그늘이 사랑스럽다면, 열매나무는 열매를 훑으려고 타고오르면서 개구쟁이가 된다.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는 한국영화를 몇 갈래 눈길로 바라보면서 읽어낸다. 뜻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다룬 책이 아예 안 나오지는 않지만 다들 먼나라 이론에 짜맞추려고만 하니까. 그렇다고 이 책이 쉬운말이나 삶말로 영화를 풀어내지는 않는다. 빠뜨리는 영화도 많다. 아무래도 ‘역사인문’이란 눈으로 읽자니 삶자리하고는 좀 먼 이야기가 되지 싶은데, 비평도 논문도 ‘아이랑 함께하는 길’로 바라보면 좋겠다. ‘아이랑 읽는 영화’란 눈길이라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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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6.21.


《긴 호흡》

 메리 올리버 글/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2019.12.20.



“Good night”을 “굿 나잇”으로 옮기면 될까, “좋은 밤”으로 옮기면 될까, 아니면 “잘 자”나 “잘 자렴”이나 “꿈 꾸렴”이나 “고요히 자렴”으로 옮기면 될까. 거꾸로 생각하자. “잘 자”라는 한국말을 영어로 어떻게 옮기면 될까? 《긴 호흡》을 마을책집에서 집어들어 읽다가 내려놓는다. 옮김말 탓에 지친다. “창작은 고독을 요한다”는 무슨 소리일까. 영어가 이런 꼴로 생겼는가, 아니면 영어를 한국말로 옮기면 이런 글이 되는가? 한국말도 아니요, 영어도 아니며, 거의 일본 말씨라고 해야 할, 무늬만 한글인 이런 글이 종이에 척척 찍혀서 나와도 좋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옮겼고, 이렇게 엮었으며, 이렇게 내놓았고, 이렇게 책집으로 들어온다. 학교라는 곳은 아이들한테 어떤 살림을 어떤 말씨로 들려주면서 가르치는가? 사회라는 곳은 아이들한테 어떤 사랑을 어떤 글씨로 보여주면서 들려주는가? 다시 생각한다. “외로워야 짓는다”나 “쓸쓸할 적에 쓴다”나 “조용히 짓는다”나 “혼자서 쓴다”나 “지을 적에는 혼자다”나 “쓸 적에는 혼자다” 같은 말마디를 조용히 읊는다. 아마 어떤 분은 혼자여야 쓰겠지. 아니 쓸 적에는 혼자일밖에 없겠지. 곁님이나 아이나 동무가 있으면 수다를 떨어야 하니, 글은 혼자 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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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6.20.


《장날》

 이서지 그림·이윤진 글, 한솔수북, 2008.9.29.



새삼스레 흐리고 가볍게 비. 어제 이불빨래는 잘 말랐고, 곁님이 잘 덮어서 쓴다. 비가 그친 사이에 빨래를 해서 말리고 건사하는 길은 두 아이를 돌보면서 새삼스레 익혔다. 천기저귀만 쓰면서 똥오줌을 가리도록 이끈 살림이었으니 하루라도 기저귀 빨래가 안 나오는 날이 없을 뿐 아니라, 아이들 옷가지도 날마다 숱하게 빨고, 아이들 이불도 며칠마다 빨아야 했지. 날씨는 늘 하늘하고 바람을 읽으면서 살폈다. 언제 마당에 내놓아 해바람을 먹일는지 살피고, 언제 집안으로 걷을까를 헤아렸다. 가만 보면,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아이를 돌보는 길에 배우는 살림’으로 어느덧 슬기롭고 사랑스런 ‘사람’으로 서는구나 싶다. 《장날》이란 그림책을 두고두고 즐겼다. 뒤늦게 알아보았는데, 판이 안 끊기고 사랑받을 수 있으니 고맙다. 그린님은 어릴 적 즐겁게 뛰놀고 어우러진 오랜살림을 곁에서 모두 지켜보았기에, 어른이 되어 이런 그림을 남길 만했으리라. 그림꽃이란 그림솜씨로 펴지 못한다. 손재주가 좋대서 아름답게 그린다거나 사랑스런 그림책을 빚지는 못한다. 신나게 뛰놀던 어린 나날을 바탕으로, 신바람으로 아이를 돌보며 살림을 가꾼 어른으로 하루하루 맞이했다면, 누구나 찬찬히 어여쁜 그림님·글님·이야기님이 되리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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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6.19.


《모두 어디로 갔을까? 1》

 김수정 글·그림, 둘리나라, 2019.12.18.



이틀 비가 그쳤으니 다시 이불빨래. 곁님은 “이불이 마를까?” 하고 물어보는데, 하늘을 보아하니 잘 말라서 저녁에는 자리에 펼 만하지 싶다. 이불을 빨래해서 널고, 틈틈이 뒤집어 고루 햇볕을 머금도록 하다가 생각한다. 빨래틀을 쓴 지 몇 해가 안 되는 우리 살림인데, 마당이 있고 햇볕을 누리는 우리 같은 시골집이 아닌, 웬만한 큰고장 이웃들 아파트살림에서는 기계에 기댈밖에 없고, 옷이며 이불이며 해를 먹이기란 참 힘들겠네. 옷에 해랑 바람을 먹이면 해바람 내음이 밴다. 옷을 기계로 말려서 집에만 두면 해바람 내음이 하나도 안 깃든다. 그래서 아파트 살림을 꾸리는 분들은 그렇게 온갖 가루비누하고 이것저것 건사해야겠구나 싶기도 한데, 해바람 못 누리는 삶이 길면 길수록 다들 몸이 지치고 아프지 않을까? 돌림앓이가 수그러들지 않는 이즈음이라면 이런 집짜임을 확 뜯어고치는 길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 어디로 갔을까?》 첫걸음을 읽는데, 꽤 재미없다. 동화를 써 보시겠다는 김수정 님 마음은 알겠지만, 만화로 그리시면 한결 나았지 싶다. 줄거리가 뒤죽박죽이고, 여러모로 엉성하면서 억지스럽다. 만화에서는 건너뛰어도 될 대목을 동화에서는 다 집어넣어야 하니 참 강파르다. 지쳐서 끝까지 못 읽을 듯하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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