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꽃이 지고 (사진책도서관 2016.5.1.)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새봄에 봄맞이꽃이 핍니다. 봄맞이꽃이 한창 흐드러지면서 매화꽃이나 벚꽃이 피고, 매화꽃이나 벚꽃이 지면서 동백꽃이나 모과꽃이 피고 지고, 유채꽃이나 갓꽃이 피고 지면서, 딸기꽃이 하나둘 피어나면서 덩굴이 뻗는데, 딸기알이 익을 무렵 찔레꽃이 핍니다. 한 꽃이 지면 다른 한 꽃이 핍니다. 다른 한 꽃이 피면 새로운 다른 한 꽃이 피려고 몽글몽글 몽우리가 굵어집니다. 이러는 동안 민들레는 잎사귀를 퍼뜨리고 꽃대도 수없이 오르고 내리면서 끝없이 꽃을 피웁니다. 겨울이 저물 무렵에 첫 꽃을 피운 우리 집 흰민들레는 오월이 되어도 새로운 꽃이 피고 새롭게 씨앗을 맺어요.


  책 하나를 읽으면 다른 책 하나가 찾아올까요? 책 하나를 읽기에 이 책을 바탕으로 새로운 살림을 한 가지 더 재미나게 가꿀 만할까요? 책만 더 읽는 살림이 아니라, 책 하나에서 얻은 새로운 이야기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즐겁게 새 살림을 북돋우자고 생각하면서, 오월 문턱에 마을길이나 우리 집 마당에서 곱게 돋는 붓꽃을 반가이 맞이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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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민들레씨 (사진책도서관 2016.5.9.)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도서관 소식지 《삶말》 23호를 보내면서 흰민들레씨를 함께 부치기로 합니다. 지난 4월부터 바지런히 모은 흰민들레씨를 다섯 톨씩 노란 한지에 쌉니다. 처음에는 혼자서 다 하다가 어느새 큰아이가 옆에 붙어서 흰민들레씨를 담아 줍니다. 비님이 오시는 날 빗소리를 들으면서 소식지를 마흔네 통 꾸렸습니다. 손으로 봉투에 주소를 적느라 품이 제법 들어서 여러 날에 걸쳐서 천천히 꾸립니다. 이주에는 소식지를 다 보내려고 생각합니다. 따스한 고장인 고흥에서 돋은 흰민들레에서 나온 씨앗이지만, 오뉴월 날씨라면 서울 언저리에서도 흰민들레씨가 싹이 틀 만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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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머금은 (사진책도서관 2016.4.30.)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어떤 책이든 시간을 머금습니다. 책뿐 아니라 모든 것이 시간을 머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을 놓고 정부에서 내놓은 안내책자를 문득 보면서 아스라한 시간을 돌아봅니다. 그무렵 정부에서는 한일협정을 홍보하려는 데에 힘을 쏟으면서 이 같은 안내책자를 여러 가지로 내놓았습니다. 그때에나 이제에나 정부는 ‘스스로 잘 했다’고만 밝힙니다. 사람들이 따지거나 묻는 잘잘못을 받아들이거나 헤아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이 흐름은 엇비슷할 수 있습니다. 정치권력이 바뀌더라도 행정을 맡은 사람들 생각은 그대로 이을는지 모릅니다.


  책꽂이를 갈무리하면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조약 및 협정 해설》하고 함께 쌓아 두었던 《에밀과 소년탐정단》을 들춥니다. 이 책은 1962년에 나왔고, 그 뒤로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책이 나왔습니다. 요즈음은 《에밀과 탐정들》이라는 이름으로 나와서 읽힙니다. 나는 어릴 적에 이 책을 1962년 보진재 판으로는 읽지 못했고, ‘딱따구리 전집’ 가운데 하나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다만 줄거리는 하나도 안 떠오릅니다. ‘탐정’이라는 대목, 뭔가 일이 터진 뒤에 이 일 실마리를 풀려고 하는 몸짓에 재미를 붙여서 읽었다는 생각만 떠오릅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어릴 적에 마음을 기울인 ‘탐정 이야기’는 누군가 다른 사람하고 얽힌 일입니다. 숨기거나 가려진 실마리를 찾는 재미가 있었다고 할 텐데, 나는 이제 다른 데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재미를 누린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씨앗이 싹이 터서 잎하고 줄기가 굵어지는 수수께끼를 살피는 재미를 느낍니다. 웬만한 초는 파라핀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파라핀을 넣지 않은 초를 어떻게 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길로 빚을 수 있을까 하는 대목을 찾아나섭니다.


  남이 지어 놓은 시간이 깃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지으면서 삶을 담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 숨결이 흐르는 것이 있고, 내 노래가 흐르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 다른 ‘내 도서관’을 우리 보금자리에서 꾸립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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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소식지 <삶말> 23호에 싣는 도서관일기입니다.

도서관 지킴이 이웃님한테 <삶말> 23호를 부칠 텐데

이번 소식지를 부치면서

저희 집 마당하고 뒤꼍에서 자란 흰민들레가 맺은 씨앗을

다섯 톨씩 담으려고 해요.

지난 4월부터 흰민들레씨를 바지런히 모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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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사진책도서관 2016.5.2.)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곧 도톰한 ‘새 사전’이 한 권 나옵니다. 이 ‘새 사전’은 오래도록 마음에 담은 꿈이요, 이 땅에서 태어나 살면서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생각을 지으려고 하는 사랑으로 엮는 책입니다.


  ‘새 사전’에 붙이는 이름은 어떻게 나올는지 아직 모르는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 ‘새 사전’을 이루는 글은 2015년 1월에 처음 마무리를 지었고, 그 뒤 꾸준히 손질하고 다시 쓰고 고치고 하면서 2016년을 맞이했습니다. 2016년 3월에 드디어 ‘디자인 시안’이 나왔고, 지난 3∼4월은 몇 차례씩 글손질을 했습니다. 5월에도 글손질을 더 할 테고, 참말로 모든 마무리를 지어서 5월에 ‘새 사전’이 나오도록 힘을 쏟으려고 해요.


  다른 여러 가지 ‘우리 말글 이야기’도 올해에 새롭게 씁니다. ‘말놀이’를 하듯이 어린이한테 ‘말을 아름답게 살려서 쓰는 길’을 들려주는 이야기를 거의 다 새롭게 썼고, 요새 끝손질을 합니다. 여기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잇는 책으로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이야기를 씁니다. ‘마을말’ 이야기는 스물네 꼭지 이야기 가운데 스물두 꼭지를 끝냈으니 두 꼭지를 더 쓰면 마무리가 되어요. 그러니까 2016년 1월부터 5월에 이르도록 두 가지 이야기책에 담을 글을 새롭게 쓰고, ‘새 사전’을 수없이 고쳐쓰고 손질하면서 보냈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도서관 소식지나 이야기책을 제때 내놓지 못했어요.


  〈삶말〉 23호를 쓰면서 이 같은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5월에 ‘새 사전’을 선보인다면 살림이 한결 느긋할 테고, 이 ‘새 사전’으로 말을 살찌우며 넋을 가꾸고 사랑을 짓는 슬기로운 길을 이웃님한테 넉넉히 들려줄 수 있겠지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은 500쪽 즈음 되는 도톰한 책 한 권으로는 끝나지 않아요. 첫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수많은 말 이야기를 앞으로 꾸준히 다루어야지 싶어요.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저희 집살림도 도서관살림도, 또 글살림하고 배움살림도, 여기에 삶을 짓는 사랑살림하고 꿈살림까지, 차근차근 가다듬으면서 일구려고 해요.


  ‘새로운 말’이란 이제껏 아무도 안 쓴 남다른 말을 가리킨다고 느끼지 않아요. 스스로 삶을 기쁨으로 마주하면서 웃음으로 가꾸려고 할 적에 저절로 샘솟는 말이 바로 ‘새로운 말’이라고 느낍니다. 오래된 사전에서 캐내는 ‘옛말’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이곳에서 우리 손길로 살림을 지으면서 어루만지는 말이 바로 ‘새로운 말’이라고 느껴요.


  사진책도서관 숲노래가 늘 새롭게 이야기꽃을 길어올리는 배움살림을 짓는 터전이 되기를 꿈꿉니다. 오늘은 텃밭을 갈아 당근씨를 심어요. 밭에는 씨앗을, 마음에는 생각을 심지요.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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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라도닷컴> 2016년 4월호에 실었습니다. 5월이 되어서야 걸쳐 놓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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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서관 풀내음

― 두 손에 담는 냄새



  봄철에 마을 할머님은 쑥 캐고 나물 캐느라 바쁘십니다. 우리 집도 새봄에 바쁩니다. 집살림도 손질하면서 새롭게 치우고, 서재도서관도 손질하면서 새롭게 가꿉니다. 아침에는 집에서 뚝딱거리다가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먹인 뒤에는 서재도서관으로 가서 뚝딱거립니다. 아이들이 배가 고플 즈음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차린 뒤에는 집안을 새롭게 꾸미려고 힘을 씁니다. 이러면서 나도 두 아이하고 소쿠리를 들고 뒤꼍에 나가 쑥을 뜯습니다. 큰아이는 가만가만 쑥뜯기를 하면서 두 손에 쑥내음을 담습니다. 작은아이는 조금 거들다가 이내 꽃삽을 들고 땅을 파면서 흙놀이에 빠져듭니다. 작은아이는 쑥내음보다는 흙내음을 한결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마당 한쪽에 선 동백나무에서 동백꽃이 커다란 송이째 툭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면 모두 이 소리를 알아채고는 그리로 고개를 돌립니다. “와! 꽃 떨어졌다! 소리 되게 커!” 큰아이는 꽃순이가 되고, 작은아이는 꽃돌이가 됩니다. 맨발로 통통통 동백나무 밑으로 달려가서 커다란 꽃송이를 줍고 두 손에 품습니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는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직 개구리가 많이 깨어나지는 않습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 노랫소리입니다. 가깝고 먼 논에서 드문드문 들리는 노랫소리인데 아이들이 저녁을 먹다가 “어라? 개구리 소리잖아! 나 들었어!” “나도, 나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외칩니다. 수저질을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아직 바쁜 일철은 아니라지만 새봄은 참으로 부산합니다. 겨우내 미룬 일을 건사하고, 겨우내 마음속으로 꿈꾸던 일을 하나씩 풀어놓으니까요. 더욱이 이곳을 보아도 꽃이요 저곳을 보아도 꽃이에요. 그리고, 이곳을 보아도 나물이요 저곳을 보아도 나물입니다. 우리는 쑥뿐 아니라 갈퀴덩굴하고 살갈퀴하고 코딱지나물하고 곰밤부리도 실컷 뜯어서 나물무침을 합니다. 매화나무에서 매화꽃잎이 흩날리면 조금 주워서 밥에 살짝 얹어 봅니다.


  하치카이 미미 님이 글을 쓰고, 미야하라 요코 님이 그림을 넣은 어린이문학 《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파란자전거,2011)을 읽습니다. 마음결이 사뭇 다른 두 양이 한마을에서 서로 이웃으로 지내면서 차츰차츰 새롭게 거듭나는 모습을 그리는 책입니다.


  “비가 와서 밭일을 할 수 없는 날, 느릿느릿 양은 그림을 그립니다.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멋진 그림을 그립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물감을 묻힌 붓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립니다(35쪽).”


  느릿느릿 양은 일부러 느리게 살려 하지 않지만 빨랑빨랑 양을 좇아가지 못합니다. 빨랑빨랑 양은 부러 빠르게 하려 하지 않으나 느릿느릿 양하고 걸음을 맞추지 못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러할 뿐입니다. 서로 아끼고 헤아리는 마음으로 지내는 이웃이기에 느릿느릿 양은 빨랑빨랑 양이 어떤 마음인가를 느끼면서 반깁니다. 빨랑빨랑 양도 어느새 느릿느릿 양하고 걸음을 맞출 수 있을 뿐 아니라, ‘빨리’가 아닌 ‘즐거운 살림’을 짓는 손길을 배워요.


  어른하고 아이는 서로 어떤 사이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어른은 아이보다 몸이 크고 다리가 길어요. 어른은 짐을 많이 나르고 밥도 지으며 달리기도 잘 합니다. 아이는 아직 혼자 밥짓기를 못하고, 빨래나 옷짓기나 집짓기도 못 하지요. 그러나 어른은 아이를 돌보면서 아이가 어떤 숨결인가를 읽고 아이하고 걸음을 맞춥니다. 아이는 어른하고 함께 지내면서 몸이 무럭무럭 자라요. 어느덧 어른하고 발걸음을 맞출 만큼 다부지게 큽니다. 일손을 어깨너머로 익히고, 심부름을 손수 하면서 새로운 길을 엽니다.


  고미 타로 님이 쓴 《어른 노릇 아이 노릇》(미래인,2016)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어른이 어른답지 않다고 느끼면서 풀어놓는 이야기가 흐르는 책입니다.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휴일이라면 만세를 외칩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수영장에 가기 위해, 도서관에 가기 위해 학교에 간다는 아이는 적지 않지만, 그냥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는 아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69쪽).”


  생각해 보니, 참으로 많은 아이들이 ‘학교 재미있어!’ 하고 외치면서 학교에 가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학원 신나!’ 하고 외치면서 학원에 가는 아이는 몇이나 될까요. 사회살이를 걱정하는 어버이가 아이를 학교와 학원에 넣고, 입시공부를 시키는 얼거리예요. 즐겁게 놀이하듯이 살림을 가꾸는 삶이 되지 못해요.


  서재도서관하고 집 사이를 오가면서 봄일을 합니다. 저녁에 밥을 지어서 차리고 나면 기운이 쑥 빠집니다. 두 아이를 곁에 누이고 드러누우면 자장노래를 한두 가락 부르다가 그만 먼저 곯아떨어집니다. 새벽이 되어 멧새 노랫소리와 동 트는 결로 하루를 열면 어제와는 다른 기운이 솟아 다시 일손을 잡습니다.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하느라 평상을 손질하는 데에 이레 남짓 걸립니다. 비에 맞아 삭은 자리는 톱으로 잘라내고 새 나무를 받침으로 댑니다. 앞뒤로 옻을 바르면서 찬찬히 말립니다. 이동안 아이들은 일하는 아버지 곁에서 마당놀이를 합니다. 마당 한쪽에서 돋은 제비꽃을 꺾어서 꽃고리를 맺습니다. 옻붓을 쥐고 옻을 발라 보고 싶습니다. 옻이 잘 스며들어 마른 평상에 큰아이가 앉아서 그림을 그리면서 놉니다.


  여러 일을 하느라 잔뜩 어질러진 마당을 치울 적에 아이들이 즐겁게 거듭니다. 비질도 거들고 쓰레기를 자루에 담아서 치울 적에도 거듭니다. 놀면서 웃고, 심부름하면서 웃는 아이들은 밥상맡에서도 웃고 마실을 하면서도 웃습니다. 그냥 걸어다니면서도 웃음보따리입니다. 이 기쁜 봄날에 온마음으로 웃음내음이 퍼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싱그럽게 새파란 하늘이 고맙습니다. 2016.3.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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