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치 그림책 (사진책도서관 2016.5.24.)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아이들하고 두 가지 영화를 함께 보다가 이 영화에 바탕이 된 그림책이 떠오릅니다. 어디에 그림책을 꽂았을까 하고 헤아리면서 《모글리의 형제들》하고 《How the Grinch stole Christmas!》를 찾아냅니다. 집에서 이 그림책을 더 깊게 차근차근 두고두고 다시 읽어 보려 합니다. 내가 그림책을 찾는 동안 작은아이는 들딸기하고 오디를 훑겠다면서 풀밭을 살핍니다. 큰아이는 이사이에 만화책을 펼칩니다. 빗물이 스며드는 쪽에 돌을 몇 얹었는데, 돌을 얹기만 했어도 빗물이 훨씬 적게 스며듭니다. 긴신을 꿰고 일부러 웅덩이를 찰방찰방 걸으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 그림책은 옷 안에 넣었어?” “아니.” “그럼? 어디에?” “옷 속에 품었어.” 여름을 부르는 한결 따뜻한 비를 느끼면서 마을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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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제본 교정 (사진책도서관 2016.5.25.)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보기책(가제본)을 묶어서 보내 주셨습니다. 이 보기책으로 글손질(교정)을 마지막으로 하려 합니다. 찾아보기 표도 엮어야지요. 앞으로 이만 한 두께와 부피로 책이 나오겠구나 하고 여기면서 가만히 펼칩니다. 멋진 책이 태어날 테지요? 그야말로 멋진 책이 알차고 아름답게 이웃님 손으로 갈 수 있도록 기운을 내어 글손질을 해야겠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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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5-2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뿌듯하세요! 축하드립니다.

숲노래 2016-05-26 21:43   좋아요 0 | URL
마지막 손질을 하는데
여태 한 교정 가운데
가장 품이 들면서 시간도 드네요 @.@

미리 받은 축하로 더 기운을 내야겠어요.
고맙습니다 ^^

13minee 2016-05-26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내셨네요. 숲노래님같은 분이 저의 이웃인 것이 기쁘네요.
고맙습니다.

숲노래 2016-05-26 21:43   좋아요 0 | URL
아직 책이 나오지는 않았고,
끝손질을 합니다.

이 끝손질을 마치면
참으로 `마지막 교정`을 하고,
그 마지막 교정을 거치고
이러는 사이에 표지 디자인이 나오면

여기에 ˝마지막 디자인 편집˝이 안쳐지면서
6월 10일 언저리에 짠 하고 태어나리라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
 

‘상중’인 집에 들이닥치지 마셔요



  어제 5월 24일 낮에, 어느 방송국 다큐팀에서 전화가 왔다. 5월 26일 목요일부터 6월 5일까지 열흘에 걸쳐서 방송을 찍자고 한다. 너무 갑작스럽기에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아이들하고 읍내에 나가는 군내버스였기에 집으로 돌아가서 연락하겠노라 하고 끊었다.


  다큐 방송은 지난해부터 촬영 섭외가 왔다. 지난해 끝무렵에는 ‘올해 유월에 선보일 새로운 사전 원고’를 마무리하느라 아주 바빴기 때문에 뒤로 미루자 했고, 올 1월에는 ‘올해부터 우리 집 아이들하고 시골집 도서관에서 새롭게 배우고 가르치는 얼거리를 세우기 때문에 어떤 바깥손님도 받지 않는다’는 말로 미루자 했다. 적어도 삼월쯤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월 즈음 다큐팀에서 고흥에 한 번 왔는데, 그 뒤로 딱히 언제 찍겠노라 하는 말이 없어서 안 찍나 보다 하고 여겼다. 이러다가 지난주 즈음 새로운 피디가 찍기로 했다면서 이주에 다시 한 번 와서 어떤 살림을 찍으려 하는가를 이야기하겠다고 했는데, 다시 와 본다고 하면서 언제 오겠노라 하는 말은 없이 다큐팀 회의로 촬영 날짜를 잡아서 통보를 한 셈이다.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차렸다. 아이들이 밥을 먹도록 한 뒤에 전화 아닌 쪽글로 우리 살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 5월 21일에 ‘유산’을 한 곁님을 돌보아야 하기에, 적어도 석 주는 바깥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방송국 다큐팀은 내 쪽글에 “네 알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 하고 답쪽글을 남겼다.


  짤막한 답쪽글을 받고는 내 마음속에서 뭔가가 일어났다. 이를테면 ‘끓어오르는 짜증’ 같은 뭔가가 일어났다.


  ‘한 목숨이 며칠 앞서 바람처럼 떠나서 조용히 지내는 시골집’에 ‘열흘씩이든 하루이든 방송국에서 바깥손님으로 들이닥치는 일은 반기지 않는다’는 뜻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을까? 내가 아무리 사회하고 손을 끊고 지낸다고 하지만, ‘상중’인 집에 무턱대고 찾아가지는 않는다.


  방송국에서는 무엇이든 ‘그림이 되는 다큐’를 찍겠다는 마음일는지 모른다만, 방송이든 다큐이든 어떤 일이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는 일을 하겠노라 한다면, 언제나 ‘찍히는 사람’을 헤아릴 노릇이라고 느낀다. 아무 때에나 아무나 찍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아이들을 재우고, 두 아이 사이에 누워서 끙끙 앓으며 자다가 깊은 밤에 문득 한 가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이번 다큐 방송은 말끔히 손사래쳐야겠다고. ‘방송국 사람’은 ‘이웃이나 동무’가 아닐는지 모르나, 피디나 작가라는 자리에 앞서 그들이나 나나 모두 ‘사람’이라고 하는 대목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집이나 우리 도서관에 찾아오려면 먼저 ‘이웃이나 동무’가 되려는 마음이시기를 바랍니다. 2016.5.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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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minee 2016-05-26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들은 자기들 입장에서만 상대방을 대하는듯 합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숲노래님의 방송도 보고 싶네요.
 


 미추홀북 후보 (사진책도서관 2016.5.23.)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함께살기)는 인천에서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인천에 사진책도서관이 있을 적에 날마다 인천 골목마실을 했고, 이 골목마실을 바탕으로 2010년에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이라는 사진책을 한 권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2010년에 태어난 이 책은 올 2016년에 이르기까 아직 2쇄를 찍지 못했습니다. 2쇄는 못 찍었어도 이 사진책을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좋아해 주시는 분이 있을 테지요.


  인천 ‘미추홀도서관’에서 ‘2016 미추홀북’을 뽑는다고 합니다. 처음에 66권을 1차 후보로 뽑았고, 이 가운데 여섯 권을 추려서 2차 후보로 삼았다고 해요. 이제 5월 25일부터 6월 30일까지 투표를 해서 이 여섯 권 가운데 하나를 ‘2016 미추홀북’으로 뽑는다고 하는데, 《골목빛》이 마지막 여섯 권 후보가 되었어요. 2010년에 나온 책이 2016년에 이르러서야 인천에서 비로소 눈길을 받는 셈이에요.


  출판사에서는 절판을 시키려다가 ‘책이 예쁘’기 때문에 ‘팔림새가 무척 낮아’도 이제껏 절판을 안 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일곱 해를 고이 지켜본 보람을 거둘 수 있을까요? 사진책 《골목빛》에 깃든 골목마을 모습 가운데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져서 이 사진책에만 남은 사랑스러운 ‘골목빛’이 참 많습니다. 사라지기 앞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찍은 사진이었어요. 새삼스레 설레는 미추홀북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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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라도닷컴> 2016년 5월호에 실었습니다.


..


시골도서관 풀내음

― 나무 곁 풀밭에 누우며



  봄이 무르익으면서 따사로운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골짝마실을 갔습니다. 자전거로 골짜기를 탄다든지 봉우리를 넘자면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지만, 천천히 달려서 천천히 둘러보는 숲길이 언제나 반갑습니다.


  골짝물은 아직 많지 않습니다. 골짝물에 몸을 담그며 놀기에도 아직 찹니다. 그렇지만 바위를 타며 숲놀이를 즐깁니다. 가랑잎을 엮은 ‘잎배’를 물줄기에 살며시 올려놓으며 놉니다. 발밑에 밟히는 가랑잎 소리를 들으며 숲을 찬찬히 거닙니다. 이러다가 아주 작고 하얀 꽃을 봅니다. 쓰러진 나무 밑에서 피어난 하얀 꽃입니다. 아주 작아서 먼발치에서는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아버지가 땅바닥에 쪼그려앉아서 뭔가를 들여다본다고 여긴 두 아이가 어느새 옆으로 달라붙습니다. 셋이 함께 쪼그려앉아서 작은 숲꽃을 바라봅니다. “아버지 이 꽃 뭐야? 예쁘다.” “예쁘지. 예쁘면 네가 이름을 지어 줘.” “음, 흰꽃? 아니면 별꽃?” 꽃 학자나 풀 학자가 붙인 이름이 있습니다만, 나는 이런 이름을 먼저 알려주기 앞서 아이들 나름대로 꽃이나 풀이나 나무를 마주하면서 어떤 느낌이 떠오르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른바 ‘학명’은 맨 나중에 알려줍니다.


  골짝마실에서 돌아와 여러 가지 사전을 뒤적입니다. 우리가 숲에서 본 꽃을 놓고 ‘산자고(山茨菰)’라고 하는 이름도 쓴다지만, 이보다 훨씬 오래되고 시골사람 사이에서 쓰는 이름이 있으리라 느끼기 때문입니다. 먼저 ‘말물옺’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동의보감에 나온다는 ‘가채무릇’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북녘에서는 ‘까치무릇’을 학명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세 가지 이름을 찾아보면서 이 가운데 어떤 이름을 아이한테 들려줄는지, 또는 세 가지를 모두 알려주어야 할는지 헤아려 봅니다. 이 나라에서는 꽃이나 풀 한 가지를 놓고 ‘여느 이름(시골 이름)’하고 ‘학문 이름’이 왜 다른가 하는 대목도 밝혀서 들려주어야 하는구나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반다나 시바 님하고 마리나 모르푸르고 님이 함께 글을 쓴 어린이 생태인문책 《씨앗이 있어야 우리가 살아요》(책속물고기,2016)가 있습니다. 100쪽이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책에 담은 이야기는 매우 알차다고 느껴요.


  “다국적 씨앗 회사들은 씨앗을 서로 나누는 농부들을 골칫거리로 생각했어요. 씨앗을 보관하고 나누는 것이 원래 농부의 일이고 권리인데 말이에요.” (50쪽)


  다국적 씨앗 회사에서는 ‘씨앗 특허’를 내요. 씨앗 회사가 이런 일을 하기 앞서 ‘꽃 특허’가 있어요. 씨앗이든 꽃이든 장사를 크게 벌여서 돈을 많이 거두어들이려고 하면서 특허를 누가 먼저 올리느냐 하는 다툼이 불거진다는데, 이러는 동안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만지는 사람들이 덤터기를 쓰고 말아요.

  나눈다는 생각이 없으니까 다투지 싶어요. 함께 즐긴다는 마음이 없으니까 싸우는구나 싶어요. 이 봄에 손수 씨앗을 심어서 알뜰히 보살피는 하루를 누리는 살림이 된다면 다툼이나 싸움이 아닌 사랑으로 나아갈 만하리라 생각해요.


  이 봄에 아이들하고 날마다 밭을 일굽니다. 지난 다섯 해 동안 묵힌 밭을 날마다 두 평씩 갈아서 씨앗을 심습니다. 기계로 하면 한나절도 안 걸릴 밭일이지만 한 달 남짓 차근차근 밭일을 합니다. 어찌 보면 밭놀이일 수 있고 ‘소꿉밭’일 수 있습니다. 한나절 만에 다 갈아서 씨앗을 심고 끝내는 밭일도 나쁘지 않지만, 아이들이 늘 밭을 살피며 흙을 만지며 함께 놀기를 바라면서 소꿉밭을 짓습니다.


  소꿉밭을 다 지은 뒤에는 다른 살림을 만져요. 보드랍고 싱그럽게 올라오는 나물을 훑어서 밑반찬을 마련하고, 겨우내 미룬 헛간 치우기를 합니다. 서재도서관 책꽂이를 손질하고, 이불이랑 봄옷을 빨며 방을 새로 꾸밉니다. 그리고 찔레싹을 한가득 훑어서 찔레무침을 합니다. 한 소쿠리는 날찔레를 고추장으로 무칩니다. 한 소쿠리는 데쳐서 된장으로 무칩니다. 소복히 담은 찔레무침 한 접시를 들고 마을회관으로 갑니다. 마침 낮밥을 자시던 할머니들이 찔레무침 접시를 보시더니 “두릅이요?” 하고 묻습니다. “아니에요. 드셔 보셔요.” “이게 뭔가?” “찔레요.”


  빈 접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서 조영권 님이 쓴 《참 쉬운 곤충 이야기》(철수와영희,2016)를 읽어 봅니다. 이 봄에 돋아서 솜털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흰민들레를 살펴보면 어김없이 노린재가 민들레씨를 붙안으면서 놀곤 합니다. 노린재는 짝짓기를 할 적에 솜털씨앗이 폭신해서 좋아할까요.


  “물속 곤충들은 물에서 썩어 가는 부식질과 유기물을 먹고 살아. 만일 이들이 없다면 물이 부패하고 탁해지는 것을 막기 어려워.” (147쪽)


  밭에서 쉽게 만나는 노린재가 어떤 노린재인가를 알아보려고, 또 아직 이름을 모르는 수많은 풀벌레를 조금 더 알고 싶어서 벌레 이야기책을 자주 들춥니다. 냇물이나 골짝물이나 도랑물에서는 이 물에서 사는 작은 벌레가 있기에 물이 맑다고 합니다. 밭이나 숲이나 들에서도 이곳에서 사는 수없이 많은 작은 벌레가 있기에 기름진 흙이 되고 구수한 냄새가 나는 까무잡잡한 멋진 흙이 되리라 느낍니다.


  다섯 해를 고이 묵힌 밭을 일구다 보면 참말로 수많은 벌레를 만나요. 이 시골집에 처음 깃들 적에는 쓰레기더미였던 자리가 어느새 싱그러운 흙으로 바뀌었어요. 삽날조차 안 들어가던 붉은닥세리도 삽날이 잘 들어가는 흙이 되었습니다. 나는 쓰레기를 걷어냈을 뿐이고, 후박잎에 동백꽃에 갓줄기를 이 땅에 얹어서 말렸어요. 흙이 흙답게 되도록 애쓴 일은 모두 풀벌레하고 지렁이가 해 주었어요.


  뒤꼍에서 감나무 뿌리를 감싸던 석류나무를 두 시간 즈음 삽질을 해서 겨우 떼놓아 옮겨서 심었습니다. 이동안 아이들은 나무 둘레에서 놀다가, 감나무를 타다가, 감나무 옆 풀밭에 드러눕습니다. 나무 곁에 누워서 하늘을 보니 어떠니? 풀밭이, 흙이, 나무가, 구름이, 하늘이, 바람이 너한테 어떤 이야기를 속삭이니? 2016.4.19.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도서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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